신파와 함께
나는 얼리어답터가 아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참새가 더 많은 벌레를 잡는다고는 하지만 같은 이유로 밤잠 없는 올빼미가 남보다 일찍 일어나는 참새를 잡아먹기도 하니 참새의 지랄같은 근면은 다 부질없는 짓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자본가 승냥이들이 퍼트린 유언비머'다. 남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개봉일에 맞춰 영화를 보고는 하는데 나는 만석인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끔찍해서 끝물일 때 주로 영화를 본다. 이 넓고 아득한 나와바리에서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은 꽤나 근사한 일이다. 천만관객영화 << 신과 함께 >> 를 보았다. 개인적으로 정보석과 함께 연기를 가장 못하는 연기자에 속하는 차태현이 주연이라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메로나'였다. 저 어설픈 표정 연기와 높낮이 없이 발성되는 대사를 듣고 있노라니 한심하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자홍이라는 캐릭터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 착하고 명랑한 캐릭터 " 를 연기할 때마다 신파를 한방에 터트리기 위해 비축한 풍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다가 울리는 것이야말로 한국 영화의 특징이니깐 말이다. 이제는 특수효과가 영화를 평가하는 데 프리미엄으로 작용하는 때는 지났다. << 신과 함께 >> 특수효과가 할리우드 특수효과와 견줘 손색이 없다손치더라도 그것이 영화를 평가하는 미덕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배우 예수정이 연기하는 어머니 캐릭터는 신파와 최루에 봉사하기 위해 소모되는 납작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 그 > 는 늙고 병들었을 뿐만 아니라 언어 장애를 가진(말을 못하는) 노모'다. 문제는 한국 영화가 장애인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한국 영화 속 장애인은 비장애인을 울게 만들 목적으로 만들어진 " 눈물 - 장치 " 이다. 예수정도 마찬가지다. 깊이는 없고 모성애에 기대서 값싼 눈물을 구걸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가족 동반 자살에 대한 낭만적 접근이다. 그것은 명백한 살인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는 비극적 가족 서사에 봉사하기 위한 헌신적 가족애로 포장된다. 한국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지독한 모성 신화'이기도 하다. 보는 내내, 1초의 환희도 없이 모든 경멸과 혐오를 담아 이 영화를 보았다. " 뭐, 이런 신파 ! 이따구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니. 맙소사. " 나라도 욕이나 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