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사실
1 > 평론계의 자린고비로 유명한 박평식이 영화 << 군함도 >> 에 대해 별을 무려 6개나 주며 촬영과 미술만 평가하겠다 _ 라는 20자평을 남겼는데, 언제부터 종합예술에 속하는 영화를 종합대학이 아닌 단과대학 취급을 했는지 궁금하다. 차라리 촬영과 미술 분야는 높이 평가하지만 연출, 시나리오, 영화음악, 편집, 톤앤매너 따위는 실망스럽다, 라고 평한다면 수긍할 수 있으나 촬영과 미술만 콕 집어 영화를 평가하겠다니 " 핀세또(pincette) 심사 " 인가 ? 박평식의 20자평은 마치 문학상 심사위원이 문학상 후보에 오른 작품을 평가하면서 심사 기준으로 맞춤법만 놓고 평가하겠다 _ 라고 큰소리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박평식은 다면 평가'가 아닌 " 핀세또 심사 " 로 별점을 높이는 속임수를 쓴 것처럼 보인다. 좆문가'라는 뾰족한 말풍선이 말해주듯이, 현대의 전문가는 대부분 자신이 속한 이익 집단을 위해 봉사한다.
2 > 진실(truth)은 아름다울 때보다 그것이 두려운 결과를 초래할 때 힘을 얻는다. 예를 들면 영화 << 스타워즈 >> 에서 다스베이더가 루크에게 내가 네 애비여 _ 라고 커밍아웃할 때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루크 부자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관객은 그들의 불행 앞에서 행복하며 작가 또한 영감의 원천이다. 예술은 사실(fact)보다는 진실(truth)을 원한다. 홍길동이 아버지에게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한다 _ 고 말할 때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가 네 애비여 _ 라고 말할 때 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유는 전자가 사실을 고백하는 대사라면 후자는 진실을 폭로하는 대사라는 데 있다. 영화 << 군함도 >> 가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데 실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류승완 감독은 하시마 섬(군함도)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진실을 말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진실(truth)은 사실(fact)를 바탕으로 하지만 사실(fact)이 반드시 진실(truth)인 것은 아니다. 감독은 군함도에서 벌어진 조선인 노동 착취라는 역사적 사실을 진리를 폭로하는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눈물을 뽑아내려는 용도로만 접근한다.
3 > 진실을 다루기 위해 사실을 정교하게 구성하는 영화는 좋은 영화이지만 사실만 다루고 진실을 외면하는 영화는 좋은 영화라 할 수 없다. << 군함도 >> 는 후자에 속한다. 대자본의 권력에 기대어 만들어진 군함도는 이재용이 입은 체 게바라 티셔츠만큼 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