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자의 없는 척
내가 구멍가게라는 낱말을 좋아한다고 해서 3평 남짓한 구멍-가게'를 수퍼-마켓1)이라고 명명한 가난뱅이 장사꾼의 스웨그'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 없는 자의 있는 척 - " 은 가소롭기는 하나 비난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 있는 자의 없는 척 - " 이 " 없는 자의 있는 척 - " 보다 가증스러운 경우2)가 훨씬 많다. 있는 자는 있는 척-하는 것이 정직한 태도'다. 그렇기에 나경원이 1억짜리 피부 관리를 받았다는 사실과 조윤선이 1년 생활비로 5억을 쓴다는 사실에 대하여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강남 3구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은 정당하다. 오히려 비판받아야 할 대상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평소 씀씀이로 보아 충분히 예상 가능한 데에도 모른 척하며 그들을 찍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대선 때 5000원짜리 국밥을 서민적으로 말아드셨던 각하는 국밥을 말아드신 것이 아니라 국가를 말아드셨고,
박근혜는 바리데기가 아니라 마리 앙뚜와네트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여전히 있는 자의 없는 척은 먹히는 코스프레이다. 내가 정말 꼴불견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는 없는 자의 없는 척도 아니고 없는 자의 있는 척도 아닌, 평소에는 프롤레탈리아 계급을 찬양하며 부르주아 계급을 경멸하는 척하지만 내심 있는 것들에 대한 동경과 자신이 속한 계급에 대한 경멸을 숨긴 사람들이다. 좋은 예가 " 내가 아는 사람 ~ " 이라는 설정을 자주 남발하는 사람이다. 모 블로그 이웃(지금은 해제된 상태이지만...)이 쓴 글은 구멍가게 규모의 가계 살림'에 대해 솔직하게 서술하는 편이다.
유니클로와 다이소의 단골인 그는 소소한 서민적 삶을 예찬한다. 또한 정치적 성향은 이명박근혜 정부에 대한 경멸로 부글부글 끓는 사람이지만 3개월 동안 진행된 촛불 집회에는 참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꽤나 좌파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말끝마다 "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누구누구...... " 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여기서 그가 호명하는 " 누구 " 는 자신과는 달리 대부분 성공해서 삶이 부유한 사람-들이다. 소설가에, 사진가에, 변호사에........ 그는 유니클로와 다이소를 예찬하지만 그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대부분 넉넉한 사람이다. 그가 어느 모임의 사진을 올리며 사진 속 등장 인물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웃음이 났다. 그
것은 자신보다 한 단계 상위 계급을 자신과 동등한 친분 관계로 소개함으로써 자신의 신분 계급을 업그레이드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없는 자가 있는 척하기에는 쪽팔리니까 있는 자와의 친분을 빌려서 자신을 과시하려는 태도에 다름아니다. 사기꾼은 대부분 지체 높은 " ~ 내가 아는 사람 " 이 많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친구 목록에 구멍가게 살림을 근근이 이어오는 당신이 포함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오히려 그는 당신을 소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그 계급을 지지하는 정치 성향을 계급 투표라고 한다면,
그는 겉으로는 서민적 삶을 예찬하면서도 속으로는 있는 것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계급 배반 투표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 나는 계급 배반 투표 성향을 보이는 이보다는 계급 투표 성향인 척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속한 계급에 대한 경멸과 그 반대에 속한 계급에 대한 선망을 가진 부류가 더 한심하다. 없는 자가 없는 척하는 것도 때론 가식이 된다 ■
1) 슈퍼보다는 수퍼라는 표현이 더 좋다
2) 예를 들면 정치인의 서민 코스프레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