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사운드는 넓은 공간에서 나온다


 

 

 


 

 

                                                                                                        칠 월 한 낮, 찌는 듯한 더위. 좋은 사운드 시스템을 갖추고 싶다는, 오직 그 욕망 때문에 지게에 벽돌을 지고 계단을 올랐다.

단계 단계, 계단을 오를 때마다 한 땀 한 땀, 땀이 흘러넘쳤다. 오늘 내가 흘린 땀'이 보다 좋은 사운드를 만들기 위한 디딤돌이 되리라.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 지나자, 품을 팔아 삯을 모은 돈으로 꽤 근사한 오디오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처음 열린 청음회 날, 스티븐 스필버그의 << 라이언 일병 구하기 >> 를 관람했다. 극장용 5채널 돌비 써어 ~ 라운드 스피커가 전후 좌우에서 지원 사격을 하자 " 싸운드의 쓰빽따끌한 입체적 효과음 " 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하울링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고음 파트와 중저음에서 발생하는 파동 에너지에서 오는 박력은 명불허전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 우우우        웅장한 사운드의 힘이로구나 !  

하지만 이 만족감은 이내 무너졌다. 일반 가정집 거실에서,  그것도 깊은 밤에 극장용 사운드 출력으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이웃 간 소음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까닭이다. 이 분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소리를 최대한 줄이거나 헤드폰를 끼고 듣거나 !  그것은 마치 차안에서 라디오 스피커를 켜 놓고 자동차 극장 스크린을 보는 것과 같았다. 비싼 돈을 투자해서 장만한 스피커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  이러려고 땡볕 아래 지게를 지었나 하는 자괴감에 팔공산 뻐꾸기처럼 울었다. 뻐꾹, 뻐꾹, 뻐어어어꾹. 좋은 관람 환경은 좋은 출력 시설에 앞서 좋은 방음 시설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통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딱지 만한 원룸에 살던 친구가 최신식 스마트 티븨'를 사겠다고 했을 때, 나는 좋은 스피커를 장만했지만 볼품없는 집구석 때문에 실패했던 내 사례를 들며 신중한 결정을 당부했다. 하지만 티븨광이었던 친구는 내 충고를 귓등으로 흘러듣고는 100인치 초대형 최첨단 스마트 인공지능 4K LED UHD 쌍방향 유틸리티 티븨를 장만하게 되었다. 그는  100인치 초대형 최첨단 스마트 인공지능 4K LED UHD 쌍방향 유틸리티 티븨를 장만하기 위해 세 달치 월급을 통째로 쏟아부었다. 친구는 원룸에서 가장 넓은 벽에 거대한 티븨를 설치했다. 하마터면 티븨 설치를 못할 뻔했다. 티븨보다 큰 벽은 그 벽 말고는 없었으니까. 감개무량한 듯 친구는 말했다.  

​                          화면 크기를 보라고. 작은 소극장 스크린 규모잖아. 얼마나 똑똑하다고.  100인치 초대형 최첨단 스마트 인공지능 4K LED UHD 쌍방향 유틸리티 티븨는 티븨가 아니라 알파고에 버금가는 로봇이야, 로봇이라고. 별별 기능이 다 있어. 쌍방향 토크도 가능하다네. 우와, 여기 봐봐. 티븨 시청으로 인한 시력 감퇴를 염려해서 주인이 너무 가까이에서 티븨를 보면 꺼지기도 한다니까. 캬 ~  정말 똑똑한 티븨야.

친구는 설치를 끝마치고 나자 곧바로 리모컨으로 티븨 전원을 눌렀다.  팟 _ 소리와 함께.......  어라 ?!  전원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티븨 전원은 들어오지 않았다. 

고객 센터에 전화를 걸어 문의한 결과, 다음과 같은 답변이 들려왔다. " 고객님, 그 티븨는 시청 공간이 최소한 5미터 거리가 확보되어야 티븨 전원이 들어옵니다. 저희가 이번에 야심차게 준비한 시력 방지 기능이죠. 영화관 맨 앞에서 영화 관람하신 악몽 같은 경험 있으시죠 ? 큰 화면은 멀리서 보셔야 제맛이죠. 혹시.....  (혼잣말로) 아니다, 아, 아아닙니다. 정 그러시다면 실례를 무릅쓰고.....   고객님, 집구석이 코딱지 만하신가 보죠 ?   에이, 설마.... 이 제품은 상위 1% 럭셔리 계층을 위한 제품입니다. 박근혜 씨가 최근에 이 티븨를 구입하셨어요. 각하도 티븨광이시잖아요. 지금까지 코딱지 만한 집구석에 거주하시는 분이 이 티븨를 장만하신 경우는 아직..... 없었는데...... "

친구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친구는 리모컨을 쥔 채 현관문을 열고 빌라 복도로 나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걸음을 내딛을수록 참담한 마음이었으리라. 친구는 복도 끝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리모컨을 눌렀다. 팟 _ 티븨 전원이 켜졌다. 영화 전문 채널 OCN에서 << 아바타 >> 가 방영 중이었다. 화면 비율이 16 : 9 였던 시네마스코프 화면은 현관문에 가려져서 9 : 16 프레임으로 보였다. 팔공산 뻐꾸기처럼,  친구는...... 소리 없이 울었고, 나는 <화면이 잘린 < 아바타 >> 를 보면서 안철수를 떠올렸다. 갑철수를 볼 때마다 작은 그릇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느끼게 된다.  비좁은 집구석에서 아무리 좋은 오디오 시스템과 100인치 초대형 최첨단 스마트 인공지능 4K LED UHD 쌍방향 유틸리티 티븨를 갖춘다한들 소용없듯이,  속좁은 사람이 담대한 양 우렁찬 목소리로 위대한 정책 비전'을 쏟아낸들 무슨 소용이랴.

철수 씨, 좋은 사운드는 목소리 변조가 아니라 넓은 도량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자신의 정책 비전이 100인치 초대형 최첨단 스마트 인공지능 4K LED UHD 쌍방향 유틸리티 미래형 윈도우 티븨 화면처럼 넓으면 뭐하냐고요. 마인드가 10센티인데 말입니다. 안철수 지지자 입장에서 보면 내 글이 거북스럽겠지만 어쩌랴. 여러분, 안 그렇습니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7-04-25 15: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오디오 끝판이 리스닝룸 하나 가지는 겁니다.흐..

곰곰생각하는발 2017-04-25 16:53   좋아요 0 | URL
캬, 좋군요. 리스닝룸... 문득 영화 < 무간도 > 가 생각납니다..
무간도 처음 장면이 리스닝룸 비슷한 곳이었는데..

마립간 2017-04-25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드럼 연습실을 원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4-25 16:54   좋아요 0 | URL
드럼 사시기 전에 방음 시설 먼저.. ㅋㅋㅋ

cyrus 2017-04-25 17: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철수의 사자후가 웃겨도 고승덕의 사자후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못난 애비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야ㅏㄴ하아아아아아드으으으으아아아앙아!!!!!

곰곰생각하는발 2017-04-26 09:57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안철수에 한 표 더 던지겠습니아..

시이소오 2017-04-25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ㅋ ㅋ ㅋ ㅋ ㅋ ㅋ 오늘도 살해당했습니다. 촌철살인에. 곰발님은 촌철살인마.

곰곰생각하는발 2017-04-26 09:57   좋아요 0 | URL
앞으로 춘천살인마로 불러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