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   워   라  ,      그   늘 1)  :

 


 

 

 

 

 

 

 

 


 

어쩌면 사랑보다 중요한,  

 

 

 


 

                                                                                                      심야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벨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 시간을 보니 새벽 2시였다. 긴장감이 몰려왔다. 심야에 걸려온 전화를 반길 이 뉘 있으랴. 더군다나 발신자 제한 표시로 걸려온 전화를 말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반지하 쪽방 싱크대 위에 올려진 행주처럼 우중눅눅한 목소리, 흐느끼고 있었다.

솔이었다.  지난 주말,  서울행 대전발 고속버스에서 만났던 말하는 나무였다. 그는 소나무로 이름은 " 솔 " 이다. 버스 안에서 한집에서 같이 살자는 솔의 제안을 거절2)했던지라 마음이 아팠다. 그가 말했다. " 차라리...... 파로 태어날 걸 그랬어. 나의 한 잎이 너의 한입으로 끝난다 해도 아쉬울 건 없으니까. 서울에서 뿌리 내리고 산다는 게 참 힘들구나. 죽..... 고 싶다. "  도, 레, 미, 파, 솔. 그는 솔 음으로 울고 있었다. 고독에 몸부림친 목소리였다. 솔이 솔로 우니 술 생각이 간절했다. 그 고독, 나는...... 이해한다. 결국 말하는 나무 솔과 동거하기로 했다. 그나마 집구석에서 볕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곳은 침대 쪽 창가여서 솔에게 침대를 양보했다. 매트리스를 치우고 그 자리를 흙으로 채운 후 물뿌리개로 물을 흠뻑 주었다. 

다음날, 동사무소에 들려 개명 신청과 함께 전입 신고도 했다. 제 이름은 파파입니다. 여기 뾰족하게 서 있는 친구는 솔솔이고 반려견 이름은 라라입니다. 아뇨, 아뇨. 암컷이 아니라 수컷입니다.                         컹 !  라라가 보란듯이 포효했다. 동사무소 직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군식구가 늘었군요. 나는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뼈가 부서져라 일해야죠. 제 이름이 파파' 아닙니까, 파파 !  파하하하하 !                        집에 돌아오면 솔은 내 몸에 붙은 볕 냄새를 맡곤 한다. 좋다, 외롭지 않아서. 솔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솔의 장래 희망을 물었다. 그가 말했다.

" 다시 태어난다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볕으로 태어나고 싶어. 우리 같은 식물들에게 볕은 밥이 되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항우울제 약이 되고, 비타민을 생성하니 비타민 영양제이기도 하잖아. 어디 그뿐이야 ?  가진 거라고는 불알 두 쪽이 전부인 파파에게는 난로이기도 하니 보일러 대용이기도 하고, 최소한 12시간 정도 지속되는 백열전구이니 근사한 스탠드이지. 또한 살균 소독기이며 공기청정기이지.  볕은 무궁무진한 거야. 이만한 살림 밑천도 없지3). 어쩌면 볕은 사랑보다 중요한 개념인지도 몰라. 파파는 앞으로 뭐가 되고 싶어 ? " 솔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대장이 되고 싶어 !                                내 말에 솔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 그렇지, 사내새끼가 좆 달고 태어났으면 한번쯤은 늠름하고 씩씩한 대장이 롤 모델이지. 우리 파파, 알고보니 쌍 ~ 남자였네 ! " 그 말에 나는 정색을 하며 반박했다. " 무슨 소리야, 그 대장(大將)이 아니라 큰 창자, 작은 창자 할 때 대장(大腸)을 말하는 거야. 안철수의 과민성 대장이 되어서 시도 때도 없이 설사를 의미하는 축축한 신호를 보내고 싶어. 급똥 싸게 말이야. 예를 들면 대국민 담화를 할 때라든지, 대통령 후보 토론 자리라든지..... 똥이 이기나 항문이 이기나 대결을 펼치는 뭐, 그런...... "  내가 킬킬거리며 웃자 솔솔과 라라가 한숨을 쉬었다.

니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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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blog.aladin.co.kr/myperu/6786489 ( 자세한 내용은 클릭 )  

 

 

민달팽이

 

                           김신용

 

냇가의 돌 위를
민달팽이가 기어간다

등에 짊어진 집도 없는 저것
보호색을 띤, 갑각의
패각 한 채 없는 저것
타액 같은, 미끌미끌한
분비물로 전신을 감싸고
알몸으로 느릿느릿 기어간다

햇살의 새끼손가락만 닿아도
말라 바스라질 것 같은
부드럽고 연한 피부,
무방비로 열어놓고
산책이라도 즐기고 있는 것인지
냇가의 돌침대 위에서 午睡라도
즐기고 싶은 것인지
걸으면서도 잠든 것 같은
보폭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꼭 술통 속을 빠져나온
디오게네스처럼
물과 구름의 運行 따라 걷는 운수납행처럼
등에 짊어진 집, 세상에게 던져주고
입어도 벗은 것 같은 사衣 하나로 떠도는
그 우주율의 발걸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간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아내가 냇물에 씻고 있는
배추 잎사귀 하나를 알몸
위에 덮어주자
민달팽이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귀찮은 듯 얼른 잎사귀
덮개를 빠져나가버린다

치워라, 그늘!

 

 

 

 

 

2)http://blog.aladin.co.kr/myperu/9268175  솔의 동거 제안에 대해 나는 북향집 빌라 반지하에 산다는 이유로 은근슬쩍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3) 태양은 주요 에너지 공급원으로, 인류가 이용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은 태양에 의존한다. 수력·풍력도 모두 태양에 유래하고, 나무·석유·석탄도 태양열을 저장한 것이며, 오직 조석력(潮汐力)·화산·온천·원자력 등이 직접 태양열에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 자원 / 두산 대백과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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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1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1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1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1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04-1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과민성 대장의 꿈을 이루신 건가요? 인터넷이 들썩들썩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4-11 18:37   좋아요 1 | URL
안철수 신화가 꽃을 피울 떄 ( 그러니까 2011년.. )제가 안철수는 ˝ 착한 이명박 ˝ 이라고 말해서 이웃들과 졸라 싸운 적이 있는데, 트럼프 이 새끼도 그렇고 원래 성공한 기업가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는 얍삽한 정치가가 대통령이 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사업은 이윤을 내는 것이 목적이지만 정치란 고른 분배를 목적으로 하기에 둘은 전혀 다른 차원이죠. 성공한 기업가가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국립 유치원 못 들어가서 난리인데 병신같이 사립 늘리겠다고 하니.... 이런 마인드 어디서 많이 본 기시감 아닙니까 ? 바로 이런 기업가 마인드가 민영화로 발전하는 겁니ㅏ다. 교육의 기본은 공공성인데
사립 유치원 늘리겠다면 당연히 민영화로 경쟁력 키우자며 병원이며 철도며 공항이고 다 기업하는 놈들에게 팔 놈이십니다... 안철수 이 분은 말이죠..

나와같다면 2017-04-1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이도 곰곰생각하는발님이 비빌언덕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나 보네요..

새벽 2시에 걸려온 발신자 제한 표시로 걸려온 전화.. 흐느끼는 목소리.. 나야..

이게 뭐라고 애잔하죠..?

피톤치드 가득한 평안한 밤 보내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4-12 09:23   좋아요 0 | URL
아, 피톤치드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머리가 맑았군요..
사람은 씻지 않으면 몸에서 악취가 나는데
나무는 좋은 냄새를 풍기니 아무래도 나무가 한수 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