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 꽃 , 가 시 :
피고 지는 꽃 대신
방울을 내어단다 1)
한식이 낀 주말에는 내 성씨가 소속된 ○씨 가문 종친회 행사가 열린다. 뼈대 있는 가문답게 선산 가족 공원 묘'에 모여 성묘를 하고 가족 공원 묘 운영 및 이런저런 대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인척이 다 모이니 제법 규모가 큰 가족 행사'다. 철이 철인지라 오늘 문중 모임에서는 정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집안 대대로 보수 정당을 찍어온 가문답게 설왕설래의 주인공은 안철수였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로 소동단결했던 가문은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도 하나같이 안철수로 대동단결하는 것을 보면 피는 못 속이는 법인 것 같다, 니미 ! 종친회 행사가 끝나고 가족 단위로 각자 뿔뿔이 흩어졌지만 나는 대전에 머물며 볼일을 보고 난 후 다음날 서울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고속버스를 탈 때마다 가벼운 설렘'을 느끼곤 한다. 윤대녕 판타지 기대 심리'라고나 할까 ?
혹여, 옆자리에 미모의 여성이 앉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연이 되어 늦은 밤에 술 한 잔 기울이게 되는...... 그런데 내 옆 좌석에는 사람 대신 제법 큰 소나무 묘목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누가 빈 자리에 이파리가 뾰족한 묘목을 놓은 갖다 놓은 모양이었다. 아, 시바 ! 벚꽃처럼 화사한 여성 대신 푸르죽죽한 녀석과 동행을 해야 하다니 윤대녕 판타지는 글러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조금만 뒤척여도 날카로운 솔잎이 내 살을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얌체 같으니라구, 짐칸에 넣어두면 될 것을 귀찮다고 빈 좌석에 나무 묘목을 놔두고 방치하다니.......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묘목 주인처럼 보이는 승객은 없었다. 나는 소나무 묘목과 함께 서울발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늦은 오후, 창문 안으로 들이닥치는 볕이 눈 감은 눈꺼풀 위로 아른아른거렸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꿈속에서 나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맨발로 가시덤불이 무성한 둔덕을 오르고 있었다. 엉겅퀴 가시가 발 속을 파고 들었다. 앗, 따가워 ! 화들짝 놀라서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깨고 나서야 늦은 오후에 험한 꿈을 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소나무 묘목이 내 옆으로 기울어져 뾰족한 이파리로 내 살을 찌르는 것이 아닌가. 이 빌어먹을 놈의 새끼 ! 이파리가 아주 무기네, 무기. 그때였다. 미안해 ! 소나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
봄이 되니 잠이 솔솔 몰려오네. 맙소사, 앵무새가 사람 말을 흉내 내는 것은 봤지만 나무 쪼가리가 사람 말을 하다니.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보는구나. 내 말에 빈정이 상했는지 소나무가 공격적으로 말했다. Q 닭장 속에 닭이 어떻게 울지 ? A 꼬끼오 ~ / Q 외양간에 소는 ? A 음메 ~ / Q 강아지는 ? A 멍멍 ~ 말하는 소나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회심의 일타를 날렸다. " 사람이 닭 말도 하고, 소 말도 하고, 강아지 말도 하면서 나무가 사람 말을 하는 것은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 " 나무의 너무나 논리적인 지적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 나무라고 해서 사람 말을 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 와와 ~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져서 주변을 살피니 여기저기서 승객들이 창밖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고속버스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을 지나면서 일부러 서행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찬란하여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꽃비를 내리자 모두 다 감탄하는 것이다. 말하는 나무는 솔잎을 파르르 떨며 힘없이 말했다. 누군들 벚꽃으로 태어나고 싶은 마음 없을까. 나라고 피고 지는 꽃방울 대신 혹처럼 생긴 솔방울을 달고 싶겠냐 ? 혹혹 ~ 그 말이 묘하게 내 성정을 건드렸다. 나는 소나무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우우 ~
" 벚꽃 저 새끼는 겉치장만 화려할 뿐 실속은 없는 놈이야. 분이나 잔뜩 바르고 사람들에게 아양 떠는 꼴을 보면 졸라 밥맛이지. 가시가 없는 꽃은 줏대 없는 놈이야. 가시는 장미의 결심1)이란 말도 있잖아. 원래 비린내가 많은 생선은 독한 양념을 많이 넣는 법. 같은 이치야. 나는 자네 같이 뾰족한 가시가 있는 게 좋아, 걱정하지 말게나 ! "
마음이 통한 우리는 가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궁핍한 내 살림에 대해 궁시렁거렸고, 나무는 피폐한 산림에 대해 궁시렁거렸다. 나무가 말했다. 형씨, 마음에 드네. 혹시 집 마당에 작은 땅덩어리 없소 ? 나야 흙 한줌이면 되는데...... 이젠 한곳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고 싶어. 좋은 볕과 호우(好雨)만 있으면 무럭무럭 자라니 비용 문제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소나무에게 조심스럽게 내가 사는 곳이 북향집 반지하 빌라라고 고백하자 나무는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니미.......
1) 현원영 시조집
2) A가 X에게, 존 버거 http://blog.aladin.co.kr/myperu/8648088 ( 자세한 내용은 이곳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