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성의 사내 필립 K. 딕 걸작선 4
필립 K. 딕 지음, 남명성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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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것 이   < 알 > 고    싶 다   :

 

 

 

 

 

 


쩨깐한 세계



                                                                                                                                                                                                                     옛날에는 짜장면 위에 올려진 고명(데커레이션 ?)으로, 짜장 짜잔  ~   " 채 썬 오이 " 와 " 메추리 알 " 이 올려져 나왔다. 검은 춘장 위에 올려진 하얀 메추리 알의 대조적 비주알visual이 강렬했던 탓일까 ? 

짜장면에서 메추리 알이 점점 사라질 때마다 나는 짜장면에 대한 식탐을 버렸다.  21세기가 메추리 알을 버리다니 용서할 수 없다.                                  그깟, 쩨깐한 새알이 뭐라고 미주알고주알 왈왈거리냐 _ 라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메추리 알 없는 짜장면은 별사탕 없는 건빵과 같아라. 쩨깐한 새알의 양은 말 그대로 쩨깐해서 간에 기별도 안 갈만큼  먹으나 마나 한 것이겠지만,  사실 짜장면에서 메추리 알은 다크한 세상을 밝힐 한 줄기 빛이니 짜장면이라는 그림을 완성시킬 화룡정점이다(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메추리 알은 짜장의 우주이닷). 딱 그만큼의 존재 이유.

간에 기별도 안 가서 간에 기별이라도 하라며 메추리 대신 달걀 한 개를 통째로 넣어준다고 해서 새알에 대한 허기가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문학이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서사의 파이를 쓰빽따끌하게 키운다고 해서 그 작품-들이 웅장해지는 것은 아니다. 본편에서는 마을을 지키던 보안관이 속편에서는 국가를 지키는 영웅이 되고,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 되고, 우주를 지키는 영웅으로 확장될 때 그 서사는 망한다. 차이 밍량의 그 유명한 금언1)을 살짝 비틀자면 나쁜 서사는 먼 미래를 걱정하고 좋은 서사는 나의 내일을 걱정한다. 내가 필립 딕의 SF 소설에 대하여 뜨거운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립 딕'은 당대 너머 미래를 다룬다기보다는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다룬다. 그렇기에 웅장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기대했던 독자는 한입도 안 되는 쩨깐한 새알의 세계에 당황하게 된다. 필립 딕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영웅이라기보다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생활인에 가깝다. 읽다 보면 초라한 얼라들이다. 우람한 강철 페니스를 상상했는데 아담한 번데기를 보고 있는 느낌. 그러니까 쩨쩨한 쓰빽따끌의 SF 세계에 경악하게 된다. 맙소사, 초라한 에쓰에쁘의 세계라니 !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매끄럽지 못한 흠집 많은 결이 묘하게 감동적이다.

그것은 담배와 위스키로 숙성한 썩은 음색과 가창력으로 아슬아슬하게 엇박자를 벗어나는 탐 웨이츠의 그것이다. 또한 삑사리는 결격 사항이 아니라 자유로운 예술혼을 높이는 품격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 높은 성의 사내, 1962 >> 도 쩨쩨한 세계이자 쩨깐한 메추리 알이며, 딕(DICK) 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고추-들의 세계'에 속한다. 소설 속 주요 무대인 " 아메리칸 예술 공예품 상사 " 는 말이 좋아 골동품 가게이지 고물상에 가깝다. 채소 즙으로 염색한 염소털 깔개 따위가 무슨 얼어죽을 예술품인가 !  이 허수룩하며 쩨깐한 무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스페이스 오페라이다보니 규모가 웅장할 리 없다.

다른 SF 작가들이 우주 미래를 걱정하며 우주 전쟁을 펼칠 때,  필립 딕은 소설을 빗대서 신경쇠약에 걸린 자신의 불안과 망상을 고백한다.  바로 그 점이 필립 딕 세계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필립 딕 소설은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매우 훌륭한 결과를 도출한다. 짜장면 위에 올려진 쩨깐한 새알의 우주, 딱 그만큼의 스펙타클이 바로 필립 딕 소설이 가지고 있는 소박한 스페이스 오페라이다. 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주문한다. 주문 !  짜장면 위에 올려진 새알을 무시하지 마라. 너는 누군가의 허기를 채워줄 한입이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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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쁜 영화는 먼 미래를 걱정하고 좋은 영화는 내일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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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2017-04-02 0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댓글이 없길래 걍 ㅎ
모두가 잠든시간이라서...쫌 기다리면...댓글 달리면 이거 지우께요.
쩨깐해서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말은 울 엄마 전용언어인줄 알었는데
오랫만에 들으니 피식 웃음이 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4-02 10:50   좋아요 0 | URL
3시의 알라디너답게 역시 3시 즈음에 댓글을 다셨군요... ㅎㅎ
댓글 안 지우셔도 됩니다, 3시 님..

겨울호랑이 2017-04-02 0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메추리알이 든 찌장을 본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4-02 10:51   좋아요 1 | URL
그렇죠 ? 언제부터인가 짜장면에 메추리알이 사라졌어요.

samadhi(眞我) 2017-04-02 0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째깐하고 째째하고 별 볼 일 없는 게 저랑 닮아 매우 땡기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4-02 10:50   좋아요 0 | URL
취향 타는 작가여서 딱히 권하지는 않습니다. 호불호가 분명한 작가죠..ㅎㅎ

2017-04-02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2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02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짜장면에 메추리알 넣던 시절이 있었군요. 처음 알았어요. 횟집에 가거나 생선회를 주문하면 메추리알 주잖아요. 어른들은 그걸 껍질째 씹어 먹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4-02 12:11   좋아요 1 | URL
저 옛날에 꿈을 꿨는데 냉면집에서 냉면을 시켰는데 달걀 반쪽 대신 메추리 알이 나와서 막 화를 내다가 꿈에서 깬 적이 있습니다...



요즘도 중국집에서 짜장 시키면 메추리 알 고명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습니다..

북깨비 2020-07-06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F고전에 꽂혀서 이리저리 헤매던 중에 3년 전 짜장면 대화에 끼어들어 봅니다. 짜장면 고명은 채썬 오이밖에 본 적이 없지만, 간짜장 고명으로 계란 후라이를 좋아했어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20-07-06 12:48   좋아요 0 | URL
필립 딕 문학 어떻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