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철 수, 그 건 안 희 정 :
그놈은 없다
아버지는 화가였으나 실력이 모자란 무명 화가였으며 가장으로서의 능력도 모자란 편이어서 푹 삶은 시금치처럼 축 쳐진 어깨로 돌아다녔다. 설상가상 술을 좋아해서 물감을 살 돈으로 술을 사곤 하셨다. 아버지는 고흐처럼 말했다. 여기, 압생트 한 잔 주쇼 !
물감을 살 돈으로 술을 사곤 했으니 아버지는 궁여지색으로 물감을 직접 만들었다. 파란 물감인 경우, 대청 잎에 오줌을 섞어 죽이 되게 한 후 햇볕을 받게 하면 발효 과정에서 알코올이 생겨나 대청 잎 속에 있는 인디고 색소를 용해하여 파란 염료를 얻을 수 있다. 가장 좋은 방식은 오줌 대신 질 좋은 술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난 후에 배출되는 오줌을 사용했다. 웃자고 하는 허풍이 아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파란색 염료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서 파란색 염료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술 취한 사람을 파랗다고 표현한다.
반면,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는 대장부 같아서 목소리가 크고 억척스러웠다. 이처럼 서로 성격이 엇박자이다 보니 집구석이 편할 날이 없었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각각이다 _ 라고 말했다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불행한 가정도 모두 엇비슷하다. 불행한 가족의 결말은 뻔한 드라마의 종방과 비슷하여 내 부모는 이혼하기에 이른다. 오, 주여 ! 눈이 내립니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이혼 과정에서 벌어진 불협화음은 불행한 일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나 어머니 모두, 당신들이 서로 자식을 키우겠다며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늘상 축 쳐진 둥근 어깨를 하던 아버지는 그날따라 뾰족한 어깨를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 비록 가난한 가정의 아비이나 자식들을 포기할 만큼 모진 부성은 아니라오. 죽이 되든 식혜가 되든 내 손으로 자식들을 키우리다. 그날 누나의 제안으로 아빠와 엄마가 빠진 자식 연합 가족 회의가 열렸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_ 라는 문제를 놓고 회의가 벌어졌다. 모두 다 어머니 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망설였다. 누나가 말했다. 조만간 구청에서 나온 가정 복지과와 이혼 법정에서 나온 이가 방문할 것이니 그때 선택하도록 하자. 이제부터는 각자 도생이닷.
누나의 말대로 가정 복지과 공무원과 이혼 법정에서 나온 직원이 찾아왔다. 개별 면담이 이루어졌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엄마와 아빠 중에 누가 더 좋으니 ? 이런 뻔한 질문-들이 오고가리라.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고 있을 때 상담사가 내게 물었다. " 너희 아빠와 엄마 중에....... 누가 더 꼴보기 싫으니 ? " 뙇 !!!!!!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읽은 글이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이라는 낌새을 알아채고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런, 씹새 ~ 왜냐하면 누가 더 꼴보기 싫으냐고 질문을 던지는 이혼 조정 법률관은 없기 때문이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야당 후보 단일화 협상에 나온 안철수 측이 요구한 설문 문항이 바로 < 너희 아빠와 엄마 중에 누가 더 꼴보기 싫으니 ? (자세한 내용을 원한다면 클릭) > 류'다. 간단하게 문재인과 안철수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_ 라고 대선 후보 호감도를 물어보면 될 것을 엉뚱하게도 여권 후보인 박근혜라는 제3자를 끌어들여서 야당 대선 후보 비호감도에 대해 묻는다. 억지스러운 질문일뿐더러 예의에도 어긋난 질문이다. 안철수, 그건 안희정 ! 언제부터인가 선거는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는 행위라는 프레임이 정설처럼 떠돌아다닌다.
유감이지만 박근혜 정권은 차선이 아닌 차악을 지도자로 뽑았을 때 벌어질 수 있는, " 쓰빽따끌을 뛰어넘는 아스트랄한 지랄의 향연 " 을 증명했다. 지금 우리는 문재인을 찍느니 차라리 박근혜에게 투표한 결과를 경험하고 있다.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나는 안희정이 박근혜만큼 싫다. 세련한 척하지만 촌스러운 몸짓과 말짓거리가 보기 거북하고, 과장된 표정 연출은 과잉의 메소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같아 졸라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희정이 최종 후보에 올라 제2의 박근혜와 대결한다면 기꺼이 안희정에게 투표할 생각이다. 죽 쒀서 개 줄 생각은 없으니까.
이 세상에는 그놈이 다 그놈인 그놈은 없다, 안 그럼 ? 사람이란 지문과 같아서 제각각 다 다른 법이다. 나는 안희정이 말한 선의 발언에서 악의를 읽지만 세월호를 은폐하고 엄호하려 했던 정당의 후보보다는 선하다고 믿는다. 나는 그가 차악이 아니라 차선이라 믿는다. 나의 친애하는 적, 건투를 빈다 ! 선거 때만 되면 갑이 되는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선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