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디가 부릅니다, 니가 있어야 할 곳 :
돌격, 격동의 현장 속으로 !
아빠는 지금 생방송으로 BBC 방송과 박근혜 탄핵 정국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들고 있습니다. ( 치지직 ) 지금 한국은 ....... 격동의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아아, 서울은 지금 불타고 있습니다. 정국이 급박하....... 이때 문을 열고 4살 남짓한 딸이 아장아장 걸어온다.
꼬마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그것은 마치 경제를 이야기하는데 파리가 날아다녀서 방송 사고가 난 꼴이다. 이처럼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면 이야기는 생명력을 얻게 된다. 예를 들면 일본으로 3박 4일 출장을 떠난 남편을 엉뚱하게도 도봉산 아래 장미 모텔 주변에서 목격하게 될 때, 도시락 뚜껑을 열었더니 밥 대신 개구리가 튀어나올 때, 재벌가 가문에 재벌가 가문과는 어울리지 않는 가난한 며느리가 들어올 때 서사는 이상한 낌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지금 니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닌데...... 정치를 논하는 아빠의 무대에서 딸이 깜짝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꼬마는 엉뚱한 곳에서 느닷없이 출몰한다. 먹구름 낀 격동을 이야기하는데 해맑은 아동이 등장하다니 그 누가 상상했으랴.
이야기를 쥐락펴락하는데 능수능란한 작가는 " 대상과 공간의 엇박자 " 를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안다. 딸(꼬마)의 출몰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아이템이지만, 뛰어난 스토리텔러는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일본으로 3박 4일 출장을 갔던 남편이 도봉산 아래 장미 모텔 주변을 배회하는 것을 아내가 목격하는 장면은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여자의 정체가 이웃집 여자'라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야기는 엎친 데 덮쳐야 흥미진진해지는 법이요, 불 난 집에 기름을 부어야 재미의 품격을 유지하는 법. 위 동영상은 흥미있는 서사가 갖춰야 할 모범적 사례라 할 만하다. 네 살짜리 꼬마의 등장도 웃긴 데 엎친 데 덮친 꼴로 보행기를 탄 한 살짜리 꼬마가 등장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관객은 박장대소를 하게 된다. 대한민국 정치를 심각하게 논하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보행기를 끌고 잠입한 아기는 점입가경의 화룡점정이다. 네 살짜리 딸(로 추정되는)이 승(承)에 해당되는 " 뒤죽 " 이라면, 한 살짜리(로 추정되는) 아가는 전(轉)에 해당되는 " 박죽 " 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 두 아이가 아빠의 서재로 잠입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엄마는 결(結)의 주체로서 헐레벌떡 방 안으로 들어와 일을 수습하려 하지만 되려 그녀의 오버액션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된다. 결이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사실은 전인 경우이다.
박장대소는 이제 웃다가 눈물이 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유쾌한 뒤죽박죽 소동극의 모범 사례인 경우이다. 박근혜 게이트는 시민을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스토리텔링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교과서적인, 아주 잘 만든 서사 구조이다. 청와대에 한갓 민간인에 지나지 않는 최순실이 기거하며 국정을 자지우지할지 그 누가 알았으랴. 청와대라는 공간과 최순실이라는 대상의 엇박자가 빚어내는 서사가 바로 박근혜 게이트인 것이다. 설상가상, 병원 수술실도 아닌 안방에서 성형 시술이 이루어지고 주사 아줌마가 들락날락할 줄은, 그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상상 그 이상의 상상력이다.
이제는 박근혜도 < 장소와 대상의 엇박자 > 의 주인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탄핵으로 인해 민간인이 된 박씨가 여전히 청와대 내실 안주인 행세를 하니 말이다. 운명은 뛰어난 소설가'다. 이보다 쫄깃쫄깃한 서사'도 없다. 당신의 탄핵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유쾌한 동영상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4개월 동안 주말이면 광화문 극장에서 욕하면서 보다가 20회를 끝으로 종영하니 서운한 마음이다. 그래서 애타게 불러본다. 굿바이, 박근혜 ! 나의 친애하는 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