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에 갔다

심심하면 저가형 생활 잡화점인 " 다이소 " 에 간다. 딱히 목적이 있어서 가는 것은 아니다. 설렁설렁 걸으면서 잡화 상품을 구경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훌륭한 틈새 상품 앞에서 아, 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 드라이 장갑 " 이다. 흡수력이 뛰어난 파자마 타올 재질로 만든 장갑인데,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릴 때 맨손으로 물기 있는 머리를 터는 것보다는 < 드라이 장갑 > 을 사용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제품이다. 그러니까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는 동시에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는 효과도 있는 것이다. 아, 재기발랄한 코미디 영화를 보는 맛. 이 맛에 다이소에 간다. " 너의 재미있는 서사를 돈 주고 사마 ! "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한 후 드라이 장갑을 끼고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더니 정말 효과가 있는 것 같은 " 느낌적 느낌 " 이 직관적으로 몰려왔다. 와 ~ 적어도 머리 말리는 데 허투루 낭비되는 시간을 조금은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금이라 했는데 이 시간의 티끌을 모으다 보면 금이 되리라. 다음날에도 다이소에 갔다. 이번에는 구멍 난 방충망에 붙이는 방충망 보수 테이프를 발견했다. 상처가 나면 반창고를 붙이듯이 방충망이 뚫리면 방충망 테이프를 붙이면 된다. 이 얼마나 뛰어난 서사인가 ! 감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방충망 보수 테이프가 놓여 있는 자리 옆에는 샷시 물받이 구멍을 떼울 수 있는 테이프도 있었다. 방충망이 촘촘해도 모기들은 샷시 물받이 구멍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온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맛에 다이소를 관람한다. 일상에서의 수많은 불편을 단돈 몇 천 원이면 해결이 가능하다니 놀라운 세상이로구나. 그날도 삶이 무료하고 심심하여 다이소에 갔다. 오늘은 어떤 잡화 상품이 나를 기쁘게 만들까 ? 주변 매대를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공교롭게도 그곳에서 헤어진 옛 애인과 마주친 것이다. 그녀도 당황했는지 동작을 멈춘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나는 다가가 그녀에게 안부를 물었다. " 그동안... 잘 지냈니 ? 음... 나는 아임 파인 탱큐 앤드 유'야. " 내 농담에 화가 났던 것일까 ? 그녀는 아무말도 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 자리를 피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여전히 내 심장은 호박 나이트 클럽 JBL 스피커처럼 쿵쿵 울렸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그 자리를 빠져나가기 위해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깜짝 놀랐다. 그녀는 내가 마주쳤던 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마네킹이 아니라 그녀의 모습을 한 조각상이었다. 그녀가 왜 다이소에 있는 것일까 ? 점원에게 물어보니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상품이란다. 점원이 내게 말했다. " 혹시.... 곰곰생각하는발 씨세요 ? 아... 드디어 만나게 되네요. 저분은 다이소 창업주의 딸이십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헤어진 옛 애인이시죠. 얼마 전에 그만...... 먼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죽기 전 유언을 남기셨더군요. 내 모습을 조각해서 상품으로 내놓으라고 말이죠. 언젠가 빈털털이 남자가 찾아와서 나를 닮은 조각상을 사갈 것이라고 말이죠.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칼에 손이 베인 사람에게는 반창고가 필요하듯이 당신에게는 내가 필요하다면서...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이 많이 아프게 했으니, 구멍난 가슴을 메울 상품이 필요하다고.... " 점원은 끝내 마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다가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 그런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가슴 아픈 창업주 따님의 러브스토리여서 온 직원이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왜 이제 오셨습니까.... " 다이소에는 없는 것이 없다. 다 있다. 지금 라디오에서는 백지영의 << 총 맞은 것처럼 >> 이 흐른다. 너를 생각할 때마다 심장이 멎은 것 같은 고통이 몰려온다.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저 조각상은 혼자 남겨질 나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복수라는 사실을. 아, 너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