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잠


취미 삼아 친구나 동료 얼굴을 그려주고는 한다. 그런데 그게, 그러니까, 애...... 그림의 성격이 애매모호해서 초상화와 캐리커쳐 사이'이다. 초상화라고 하기에는 추상적이고 캐리커처'라고 하기에는 초상적(?!)이어서 애매모호하다는 말이다.
취미로 낙서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다가 " 응시 " 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모델의 눈을 세밀하게 관찰하기 위해 상대방 눈을 집요하게 응시하다가 어색해져서 5초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시선을 외면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우리는 통상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눈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사실은 상대방 얼굴 주변을 이러저리 옮기면서 대화를 나눌 뿐이다. 서로의 눈(정확히 기술하자면 :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을 마주보며 이야기한다는 게 왜 어려운 것일까 ? 동물원 우리에 갇힌 고릴라는 관람객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면 관람객을 공격(혹은 심한 스트레스)한다.
왜냐하면 고릴라는 눈 마주침(정면 응시)를 공격 신호로 받아들이기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원에서는 고릴라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관람객이 옆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주는 특수 안경을 제공한다. 이 안경을 끼고 고릴라를 응시하면 고릴라는 관람객이 시선을 회피한다고 착각한다. 이러한 예는 모든 짐승에게서 발견된다. 인간'이라고 다를까 ? 서로 눈동자를 바라본 채 5초 이상을 지속하면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까닭은 야생의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컷끼리 싸우는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이 나를 기분 나쁘게 꼬라본다는 데 있다. 즉, 타자의 응시는 공격 신호인 셈이다. 메시지는 하나다. 꼬라보지 마라잉 ?
이처럼 응시는 공격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조폭 사회를 들여다보면 " 꼬라봄의 세계 " 를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다. 타자에 대한 지배욕이 강한 사람일수록 시선의 주체가 되려고 한다. 오야붕은 꼬붕을 맘껏 응시할 수 있지만 꼬붕은 오야붕을 응시할 수 없다. 꼬붕은 바닥만 바라볼 뿐이다. 오야붕과 꼬붕이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것은 역린의 증후'이다. 고흐와 피카소가 자신을 그린 자화상을 관찰하면 의미심장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고흐가 그린 자화상에서 얼굴 방향은 대부분 옆면과 정면 중간에 위치하지만 피카소가 그린 자화상은 모두 정면을 응시한다. 피카소가 누구인가 ? 그는 타인에 대한 지배욕으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국회의원이 " 더러운 잠 " 이라는 그림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다들 아시다시피 < 더러운 잠 > 은 마네의 " 올랭피아 " 라는 원작 그림을 패러디한 작품인데, 마네 이전에는 벌거벗은 여자가 정면을 응시하는 누드화는 없었다. 화가는 " 남자는 시선의 주체가 되고 여성은 시선의 대상 " 이 되어야 그림이 잘 팔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림 속 벌거벗은 여자가 정면을 응시하면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고객)이 불편한 심기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네 이전의 벌거벗은 여성 누드화가 정면을 외면하도록 만든 알레고리는 동물원에서 착용하는 특수 효과 안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림 속 벌거벗은 여자는 동물원 특수 안경 기능을 하고, 그림을 감상하는 남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고릴라'다. 왜 시선의 주체는 항상 남성이어야 할까 ?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이 바로 마네이다. 그는 << 올랭피아, 1865 >> 에서 그림 속 벌거벗은 여자가 관람자를 응시하도록 만들었다. 그림을 감상하는 남자 입장에서 보면 보면 볼수록 화가 나는 거라. 왜냐하면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녀 관계에서 남성은 항상 시선의 주체가 되었지 응시의 대상이 되었던 적은 없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 마네의 << 올랭피아 >> 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비하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왜 시선의 모든 주체는 반드시 남성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페미니즘적 질문을 던진 작품이다. 그렇다면 이 예술 작품을 패러디한 << 더러운 잠 >> 은 여성 혐오를 조장한 작품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 나는 << 더러운 잠 >> 이 " 여성 혐오 " 를 조장하는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 작품을 패러디한 작가'가 여성을 " 성적 대상화 " 했다는 데는 동의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위적 성적 대상화'라고 하기보다는 " 무의식적 성적 대상화 " 이다. 새빨간 색으로 그려진 싸드 미사일은 딜도(남근)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원작(올랭피아)과 패러디물(더러운 잠)은 응시 주체가 누구인가를 두고 정반대 해석을 내놓는다. 원작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이는 벌거벗은 백인 여성이고 시선을 회피하는 사람은 흑인 여성이지만, 패러디물은 정반대이다. 그것은 박근혜를 관음의 대상으로 인식한 결과'이다.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회피한 박근혜는 시선을 회피한 특수 안경처럼 보인다. 내가 보기에 작가는 절반은 박근혜가 권력자여서 벌거벗긴 면이 있고, 나머지 절반은 여자여서 벌거벗긴 면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작품(더러운 잠)에 대해 비판할 수는 있지만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강자가 약자를 향해 조롱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약자가 강자를 향해 조롱하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비난의 대상은 될 수 없다. 나는 이 작품을 비판하지만 비난할 생각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