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런 등 신 들 :
친절하지 않을 권리

만화 기법 중에 " 데포르메 " 라는 게 있다. 그 만화의 " 톤 앤 매너 " 와는 달리 8등신 미녀가 느닷없이 2등신 / 3등신 꼬마로 변형되는 경우를 말한다. 만화가가 내용이 너무 진지하다 싶으면 쉬어가는 코너로 마련한 코드'이다.
무게감 있는 작품을 그리는 김혜린의 << 불의 검 >> 에서도 만화 주인공은 종종 데포르메 형태로 변형되기도 한다. 그것은 선동적인 연설가가 가끔 유머를 구사하는 것과 같다. 진지하기만 한 캐릭터가 귀여운 형태로 변신하여 웃음을 주니 만화 깨나 읽었다는 사람은 < 막간에 쉬어갑시다 - 코너 > 를 애정하는 사람이 많다. 만화가가 8등신 미녀를 3등신으로 과장해서 변형시키는 의도는 명백하다. 데포르메 형태에서 " 가와이이 " 를 뽑아내려는 목적이다. " 가와이 " 라는 형용사는 축소지향적이다. < 가와이 > 는 귀엽다와 사랑스럽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작다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말로 " 앙증맞다 " 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남자가 여자에게 " 귀엽다 " 라고 말할 때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위계에 따른 위상이 정립된 결과'다.그 남자는 같은 눈높이로 여성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여성을 내려다보는 시선에 가까우며, 6등신에서 2등신으로의 강등은 대상을 미성숙한 것(어린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2등신 성인 여성은 없으니까, 또한 8등신 아이는 없으니까. 대한민국 대중이 여성 연예인을 소비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데포르메'이다. 대중은 아이유나 하연수를 성인(8등신)으로 인식하고 상품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2/3등신) 이미지로써 상품을 소비한다. 그들은 아이유와 하연수를 귀엽고 사랑스럽다며 찬사를 보내지만
이 호감은 어디까지나 데포르메 캐릭터에게 보내는 " 가와이이 " 다. 가와이이의 대상은 독립된 자아를 거부하는 얼라에게 부여되는 아우라'라는 점에서 퇴행적 욕망'이다. 대중은 오빠를 자청함으로써 귀여운 아이들의 소꿉놀이에서 스폰서를 자청한다. 아이유 미니 앨범 chat-shire'가 논란이 되었던 지점은 로리타 취향이었지만 본질은 아이유가 성인 여성으로서 독립을 선언했다는 데 있다. 그녀는 이 앨범을 통해 국민 여동생이라는 3등신 데포르메를 벗어나서 8등신 성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 여성 만세를 외친 꼴이라고나 할까 ?
아이유의 욕망과 대중의 욕망이 어긋나는 지점이다. 그녀가 당당하고 똑똑하며 독립적인 여성을 선포하자 대중은 배신감을 느낀다. 겉으로는 로리타 취향을 걸고 비판했지만 사실은 성적 자유 여성에 대한 반감이다. 그렇기에 평소 앙증맞던 그녀가 잔망스럽게 보인다. 대중이 아이유에게 바라는 것은 미성숙한 여성 이미지'이다. 하연수 논란도 마찬가지'다. 대중에게 그녀는 귀여운 데포르메'다. 아이-스러운 앳된 외모가 대중에게 인기를 얻은 케이스'이다. 하지만 그녀는 꽤나 진지하고 당당한 여성에 속한다. 할 말을 애둘러 말하지 않는 성격인 모잉이다. 그래서 " 진지충 " 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나 ?
하연수가 sns에서 사용하는 문장 형태를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는 말을 줄이거나 일부러 오타를 사용하거나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글에 정색을 하고 댓글을 다는 것이다. 하연수 sns 댓글 논란에서 대중은 하연수의 미성숙한 태도를 질타했지만 사실은 미성숙한 데포르메인 줄 알았으나 미성숙하지 않다는 데 대한 대중의 반감이다. 하연수는 1990년 생으로 올해 27살인 성인 여성이다. 하연수에게는 친절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대중은 하연수의 댓글에 불쾌감을 표출하지만 그보다 수위가 높은 남성 연예인의 댓글에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영화 << 부산행 >> 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김의성의 트위터는 그 수위가 높은 데에도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렇다. 그것이 그의 개성이기 때문에 그렇다. 같은 이유로 하연수가 남긴 댓글을 개성으로 보면 그다지 불편할 게 없다.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데포르메는 만화에서나 가능하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된다. 만약에 당신이 12살의 로리타 혹은 데포르메'로 대상을 고착시키려 한다면 당신은 험버트 험버트'다. 연예인은 감정 노동자일까,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만약에 연예인이라는 직종이 감정 노동에 속한다면, 나는 감정 노동자의 친절하지 않을 권리를 지지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여자는 자라서 성인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