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 김현 일기 1986~1989, 개정판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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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살 아   있다 :

 

 

 

종생기(終生記)

 

 

이 글은 반드시 이 음악과 함께 들을 것

 

 

 

 

                                                                                        김현의 << 행복한 책읽기 >> 를 다시 읽었다. 다시 읽긴 했으나 오래 전에 읽은 책이어서 처음 읽은 것처럼 새롭다. 책을 읽는 내내 롤랑 바르트의 << 애도 일기 >> 가 떠올랐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하는 마망(엄마)이 죽자 비탄에 빠져 어머니를 추억하며 메모를 남기기 시작한다. 그 텍스트가 << 애도 일기 >> 하지만 롤랑 바르트의 애도는 실패로 끝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 우울한 일기 >> 라는 제목이 정당할 것이다. 애도란 죽은 자를 내 품에서 떠나보내는 제의'다.  죽음을 슬퍼하고 죽은 자를 추모함으로써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도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애도 행위'이다. 반면,  우울은 애도 행위'가 실패하게 될 때 발생하게 되는데,  사랑하는 이가 내 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우울한 마음 속에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있다. 롤랑 바르트는 죽은 어머니를 애도하기 위해 일기를 썼지만  결국 그는 떠난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굶어서 죽는다. 자살인 셈이다. 이 죽음은 주저흔과 흉터를 남기지 않은,  결벽에 가까운 깨끗한 자결이다. << 애도 일기 >> 가 롤랑 바르트와 어머니의 이별을 다뤘다면 << 행복한 책읽기 >> 는 김현과 문학의 결별을 다루는데,  전자가 애착 대상과의 분리'에 실패한 일기라면  후자는 죽음을 앞둔 남자가 일생을 바쳐 사랑했던 문학과 결별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 행복한 ㅡ " 이라는 표현에는 산 자(문학)보다 먼저 떠나야 하는 죽은 자(독자)의 미안함이 담겨 있어서 이 책은 예의바른 유서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198966일 일기에서 기형도의 누이와 몇몇 지인들과 술을 마신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쓴다. “ 그러나 어떻든 젊은 시인은 죽었고 우리는 살아 남아 그를 이야기한다. 죽음만이 어떤 사람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해도 괜찮게 만들어준다.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 ” 당대의 문학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김현에게도 생존한 작가의 작품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칭찬은 하되 상찬은 아낀다. 기껏해야 “ ...... 읽을 만하다 거나 “ ....... 흥미롭다 정도가 그가 작품을 대하는 표현 수위이다. 요즘 평론가처럼  경박하게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 거나 천박하게 과연 이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 ”

따위의 수위를 넘는 표현을 볼 때마다 담백하면서도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김현의 비평이 그립다. 어쩌면 사람들이 신형철을 두고 " 제2의 김현 "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망자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싶다. 김현은 1989년 4월 9일 일기에서 장석주를 비판하는데, 그가 오래 살아서 신형철의 비평 - 들'을 읽었다면 김현이 장석주에게 했듯이 신형철에게도 똑같은 충고를 했을 것이다.    

 

 

시평은 문체에만 의존하고 있으며, 감탄보다는 미문에 더 의존하고 있다. 잘못하면 기술자가 되겠다. 조심해야 될 단계이다. 더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더 고통해야 하는데,   그의 고통은 자꾸만 제스처로 느껴진다.

 

 

내 눈에는 신형철이 즐겨 사용하는 " 몰락 - 이미지 " 가 자꾸만 고통을 과장하거나 고통을 가장한,  통각을 느낄 수 없는 제스처로만 느껴진다. 김현의 말을 빌리자면 신형철은 " 기술자 " 다.  19891212일 마지막 일기는 이렇게 끝난다.

 

 

12.12

새벽에 형광등 밑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진다

두 배, 세 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 있다.

 

 

 

마지막 일기에서 김현은 완성된 문장에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완성된 문장에 마침표를 찍지 않은 경우는 이 책을 통틀어 처음이다. 마침표가 사라진 문장,  그러니까 끝을 유예하려는 마음은 종생(終生)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  아니면 生에 대한 의지 때문일까 ?  하지만 이 욕망도 이내 꺾인다.  주저하는 결행은 " 아, 살아 있다. " 는 문장에서 실행하게 된다.  그는 마지막 일기에서 " 살아 있다. " 고 적고는 있으나 자신이 곧 죽을 것이란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왜냐하면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것은 날개가 없는 것들의 욕망이듯이 살고 싶다는 욕망은 오롯이 죽어 가는 자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날개를 가진 것은 날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지 않으며 살아 가는 자는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살아 있다. ” 라는 표현은 죽어 가는 김현의 머뭇거리는 자기 암시이자 그가 누릴 수 없는 것에 대한 체념이다. 그러나 어떻든 젊은 김현은 죽었고 우리는 살아 남아 그를 이야기한다. 죽음만이 어떤 사람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해도 괜찮게 만들어준다.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 영생 永生을 위해 종생 終生을 기록으로 남긴 그는,  아...... 살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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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8-02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을 읽으니 저도 김현 책을 다시 읽고 싶네요.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니. 헐~~

곰곰생각하는발 2016-08-02 12:23   좋아요 0 | URL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 요즘 저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새 책을 읽을 때 오는 희열보다 재독의 희열이 더 높고.. 그런 것 같습니다..

samadhi(眞我) 2016-08-02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에 김현 책을 메모해두고 곧 읽어야지 했는데 마침 김현에 대한 얘길 듣네요. 곰발님이랑 뭔가가 있나봐요. ㅋ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08-02 12:48   좋아요 0 | URL
사실 옛날에는 안 읽은 책의 이야기가 전부여서(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의무적으로 읽었을 뿐인데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매의 눈, 정확한 분석. 문장의 호흡.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관찰자로서의 시선..... 다 좋습니다.

stella.K 2016-08-02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듣는 음악인데 왜 음악과 함께 읽으라고 하는 건지...?
제가 음악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바가 없어서요.
뭔가 연관성이 있는가 본데...

곰곰생각하는발 2016-08-02 14:34   좋아요 0 | URL
어젯밥 이 음악을 들으며 이 리뷰를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뭐,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 ㅎㅎ

음악이 좋습니다..

yureka01 2016-08-02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이 삼장 박동..즉 살아 있다를 의미하는 듯합니다. 죽음은 심장이 멈춘 상태니까요...잘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02 14:35   좋아요 0 | URL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이 리뷰는 이 음악을 들으며 작성했습니다.
아무래도 음악의 리듬과 이 글의 리듬이 비슷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음악의 종류에 따라 글의 맛이 달라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