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의 세 계 :
비좁은 세계
자모 ㅁ, ㅂ (미음, 비읍) 은 꽉 막힌 느낌을 준다. 사면이 막혀 있다 보니 < ㅁ > 과 < ㅂ > 의 세계는 막힌 공간이며 좁은 세계이고, 복잡한 공간이며 붐비는 세계이다. < ㅅ > 의 세계가 시를 짓는 시인 1 의 생활이라면 < ㅁ > 과 < ㅂ > 은 막장에서 탄광을 캐는 광부의 생활이다. 이 느낌, 그 먹먹한 비애를 끌어앉고 < 목숨 > 이라는 단어를 살피다 보면 인생이란 겨우 2 사는 삶이란 생각이 든다. 몰랐어, 인생은 고해야 ~
좀비라는 단어가 한글로 음역한 단어이기는 하나, 이 단어를 보고 있으면 비좁은 폐쇄공포증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절묘한 일치'다. < 좀비 > 와 < 비좁(다) > 는 서로 象이 좌우로 뒤바뀐 거울 - 이미지'이다. 좀비를 다룬 영화가 유독 비좁은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도 좀비가 내품는 궁핍한 삶에 대한 은유'이다. 뭐니뭐니 해도 좀비 영화에서 진면목은 < 워킹 데드 > 다. < 런닝 데드 > 가 신세대 관객에게는 속도감 있는 공포를 선사할지는 모르지만 빠른 좀비'는 걷는 좀비에게서 느낄 수 있는 조이는, 쪼이는 맛이 없다. 대니 보일 감독이 << 28일 후 >> 에서 처음으로 빠른 좀비를 선보였을 때 나는 속으로 외쳤다. " 멍청아, 좀비는 느려야 한다고 ! "
좀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구매력이 상실된 노동자에 대한 은유이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죽은 자는 상품을 살 수 없으니까. 스타 인문학자 강신주가 서울역 노숙자를 " 좀비 " 라고 말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그가 서울역 노숙자를 좀비로 본 까닭은 노숙자를 " 노동 생산성과 상품 구매력을 상실한 자 " 로 인식했다는 데 있다. 소비하지 않는 행위로 상품 - 자본주의에 저항하자며 괄약근에 힘 꽉 주며 외쳤던 그가 막상 소비하지 않는 행위로 상품 -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노숙자를 좀비라고 지적하니 이보다 더 멍청한 논리 모순은 없다. 그는 자본주의적인, 너무나 자본주의적인 사이비 인문학자'다.
내가 수많은 좀비 영화를 보면서 깨달은 것은 < 곁 > 을 빼앗긴다는 것의 비애'다. 내 기준에 의하면 좀비는 노동 생산성과 상품 구매력을 상실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곁을 빼앗긴 존재'다. 좀비는 사회적 거리와 개인적 거리를 상실한 존재로 그들에게는 자신을 방어하거나 우아하게 살아갈 영토권이 없다. 그들은 영토를 잃고 사유지 없이 떼로 몰려다닌다는 점에서 빈곤한 노마드'다. 강신주는 좀비와 노숙자를 동일한 존재로 인식했지만 좀비와 노숙자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 곁 > 에 있다. 좀비는 좀비끼리 서로 붙어서 비좁게 사는 존재이고, 노숙자는 사람들이 눈살을 찌뿌리며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서 외로운 존재'다.
전자는 곁이 없는 존재이고 후자는 곁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그 차이를 강신주는 읽지 못한다. 말머리가 길었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 부산행, 2016 >> 은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좀비가 떼거지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반가운 영화다. 영화 << 곡성 >> 에서 좀비 한 명이 출현했다고 해서 감격했던 내가 이 영화에서는 좀비를 떼거지로 만나니 기쁘지 않을 리 없다. 다만, 너무 빠르다. 감염 속도도 빠르다 보니 인간에서 좀비로 변하는 과정에서 오는 애틋함과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없다. 더군다나 좀비와 한국형 신파를 엮으니 부유하는 느낌이 들고 각각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전형적이어서 신선한 구석이 없다. 상업 영화, 그 틀 안에서만 작동하는 영화'다. 연상호 감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좀비 장르의 상업적 성공이라는 점에서는 매우 반갑다. 좀비 영화를 즐겨 보는 관객 중 한 사람으로서 이 영화를 보면 장점과 단점이 분명해서 아쉬운 대목이 많지만 어찌 되었든 : 좀비, 너, 한국 진입, 성공적 ! 기차는 < ㅁ > 의 공간이지만 < ㅁ > 이 병렬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 ㅂ > 의 세계이기도 하다. < ㅂ > 에서 뿔처럼 위로 돌출된 두 세로 획은 < ㅁ > 과 < ㅁ > 를 연결 역할을 하는 갈고리'이다. 그것들은 칸칸이 막힌 공간이다. 비좁은 이미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좀비물에서 이보다 훌륭한 무대 장치'도 없다. 그렇기에 << 부산행 >> 은 연출력보다 기획력이 훌륭한 영화'다. 감독보다는 제작자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한 << 28일 후 >> 나 << 월드 워 z >> 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월터 힐의 골때리는 폭력 영화 << 워리어, The Warriors, 1979 >> 가 떠올랐다 3. << 부산행 >> 은 좀비를 다루지만 좀비는 헬조선을 살아가는 노동자 乙 처럼 보인다. 칸마다 설치된 칸막이는 계급 장벽'이다. 乙은 가축우리인 ㅁ 에 갇혀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공간조차 없는 곳에서 살아간다. 말 그대로 " 살아간다 ". 그것은 살다의 능동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수동과 피동이 섞인 세계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비용에 비해 乙이 버는 화폐는 현저히 낮다.
생존을 위해 굶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니 88만 원이 인간을 좀비(같은 생활)로 만드는 것이다. 끝으로, 야구부 응원 단장인 진희(안소희 분)가 야구부 선수인 영국(최우식 분)에게 사랑을 고백하자, 주위에 있던 야구부원들이 둘의 사랑을 응원하며 영국에게 " (진희의 사랑을) 받아 줘 ! 받아 줘! 받아 줘! " 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이 장면을 보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살다 살다 이토록 음란한 대사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잘못 알아들은 것으로 판명이 나긴 했지만, 내 귀에는 < 받아 줘 > 가 < 박아 줘 > 로 들렸기 때문. 박아 ????!!!! 아, 아아. 왜 이런 착각을 하게 된 것일까 ?
소년 야구부원이 방망이를 들고 받아 줘 _ 라고 외쳤기 때문에 ?! 모를 일이다. 받아 줘 _ 라는 순수한 소망을 박아 줘 _ 로 이해하는 나는 음탕한 개저씨요, 범성론자인 것 같아 혼자 속으로 울었다. 이상하다. 요즘은 머리가 빨리 자란다. 거세해야 겠다 ■
1) 김소연, 시옷의 세계
2) 겨우'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불교 사상을 한 단어로 압축하라면 < 겨우 > 를 선택하겠다. 불교가 지향하는 것은 최소화된 삶인데 겨우는 이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3) << 워리어 >> 에서 싸움질을 하는 주요 공간도 지하철이다. 각지에서 모인 갱단은 서로 야구 방망이를 들고 싸운다. 모두가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은 아니지만.
- 워리어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