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고 와이키키



" 안녕, 알파고 ! " 


 

                                                                                                          어느 날, 홍길동은 밥에 물을 말아 먹는 것인지 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인지도 모른 채 꾸역꾸역 목구멍에 밥알을 넘기다가 서자(庶子)인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서러운 거라.  그는 달밤에 아버지가 머문 처소 앞에 엎드려 읍소한다. 그 유명한 대사,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길로, 그는 길을 떠난다. 가벼운 개나리 봇짐 하나 어깨에 걸치고 떠난 길이라지만 발걸음은 천근만근 일만일천근'이어라. 이 개같은 세상. 샅바 잡고 밭다리후리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  금수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흙수저로 살아가야 하는 설움.

아아.  흘러라, 눈물이여 !  홍길동은 주먹 불끈 쥐고 괄약근에 힘을 주며 길 위에 서 있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 개라고 할 말 없어.  그는 도적 소굴에 들어가 활빈당의 두목이 되고,  세를 키워 율도국을 세워 율도국의 시조(始祖)가 된다.    시조라는 말은 홍길동에게 아버지는 없다는 소리가 아닌가.  고전 << 홍길동전1) >> 이야기'다. 허준은 실존 인물이었던 신출귀몰했던 도둑2)  위에 문학적 상상력을 덧대어서  " 도술을 부리는 정의로운 홍길동 " 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허준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속내는  못난 아버지(연산군 폭정 시대)를 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욕망이었을 것이다.  

① 아버지를 원본(原本)이라고 하고 아들을 복제(複製)라고 가정한다면,  ② 아버지를 창조주라고 하고 아들을 피조물이라고 가정한다면,  ③ 아버지를 정품이라고 하고 아들을 짝퉁이라고 설정한다면  :  소설 << 홍길동 >> 은 소설 << 프랑켄슈타인 >> 과 유사하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이 만든 괴물이 어마어마한 힘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힘이 두려워 피조물을 죽이려고 했듯이,  홍길동 아버지 홍판서 또한 도술을 부리는 홍길동의 괴력을 두려워하여 길동을 죽이려고 한다.   이처럼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길동 아범 홍상직 판서'는 괴력을 발산하는 아들을 두려워해 죽이려고 했던 오이디푸스의 못난 아버지였다. 

못난 아버지와 비범한 아들의 관계, 형편없는 원본(院本)과 뛰어난 사본(寫本),  나아가 원본 없는 복제의 아우라는 문학적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양산되었다. 영화 << 블레이드 러너 >> 도  창조주인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피조물을 다룬다. 영화 속 복제 인간'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며 반대로 인간은 복제 인간보다 더 기계적이며 냉정하다.  돌연변이를 다룬 괴물 영화도 이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B급 영화에서는 괴수'는 방사능 누출 때문에 탄생했다고 대충 퉁치지만 사실 꼼꼼하게 따지고 들면 괴물은 인간 욕망이 만든 사생아'인 것이다. 나는 항상 새빨간 반골 정신으로 " 피조물의 역린 " 을 지지했다.   괴물은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존재'로 묘사되지만, 사실......        

괴물은 질서를 파괴하는 존재가 아니라 낡은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복원하는 존재'다. 가족은 괴물에 의해 파괴된 폐허와 곤경에 맞서 싸우면서 그동안 풍요 속에서 잃어버렸던 가족애를 되찾는다. 그것은 역설적이지만 괴물이 가족에게 선물한 가치'다.  프로이트가 한 말3)   을 인용하자면 인류의 탄생은 아버지 살해와 관련이 있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힘을 가진 아들을 두려워한다. 권력은 늘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조폭의 우아한 세계를 들여다보면 두목의 가슴을 칼을 꽂는 놈은 2인자'가 아니라 자신이 믿었던 꼬붕에 의해서다. 2인자는 두목의 등 뒤에 칼빵을 놓을망정 앞가슴에 칼을 꽂지는 않는다. 두목은 대부분 자신이 믿었던 아들(꼬붕)에게 살해당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사본을, 피조물을, 짝퉁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 알파고 VS 이세돌 3국 >> 에서 재미있게 본 것은 바둑 경기가 아니라 대중이 알파고에게 느끼는 두려움'이었다. 인간이 3연패하자 여기저기서 불공정 게임'이라는 변명으로 인간을 위로하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두려움은 사본(아들)이 원본(아버지)보다 뛰어나다는 데에서 비롯된 공포'다. 아버지 이세돌은 이제 갓 1살 밖에 안된 아들에게 속수무책이다. 인류를 대표하는 이세돌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인 알파고와 맞서 싸우지만 상대가 되지 못한다. 알파고는......                                      홍길동이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thing4)      인 셈이다.  

힘의 균형이 사본'에게 쏠린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원본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데 사본으로 대표되는 < 아들의 역린 > 은 대부분 아버지의 두려움이 낳은 결과'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인정하지 않을 때 아들은 주먹 쥐고 일어선다. 무릎 꿇고 일어설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제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인류 멸망이 지구 멸망이 될 수 없듯이, 이제는 높은 권좌에서 내려와 수평적 시선으로 타자를 인정할 때가 왔다. 클로드 레비ㅡ스트로스는 << 슬픈 열대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  이제 인간이라는 아버지는 알파고를 인정하고 서로 상생을 도모해야 할 때가 왔다.

아버지가 권위를 내려놓으면 아들에게 평화가 찾아오듯이,  인간은 이제 상생을 위한 평화를 얻기 위해 알파고의 능력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알파고는 계속 진화할 것5)   이다. 이세돌은 기자 회견을 통해 " 이세돌의 패배일 뿐, 인간의 패배는 아니다 " 라고 말했지만, 이 말은 틀렸다.  패배한 것은 이세돌이 아니라 인간이다. 하지만 슬퍼하지는 말자.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법이다. 영화 << 밀리언 달러 베이비 >> 에서 늙은 트레이너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 말이다. 그렇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이다. 나는 알파고가 이세돌을 5 : 0 으로 이겼다고 해서 알파고를 두려워하거나 혐오할 생각은 없다. 흥하면 망하는 순간이 오고, 성하면 쇄하는 때가 온다. 상승 그래프는 언젠가는 꺾인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영접하리라.

 

​" 안녕, 알파고 ! "

 

 

 

 

덧대기     ㅣ     어쩌면 알파고 대국 시리즈의 진짜 공포는 인공 지능의 눈부신 전투력이 아니라 집이 없으면 죽게 되는 미생의 운명이 아닐까 ? 살림집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짒값이 오르고,  가게 세입자는 언제 쫒겨날지 모른다. 장사가 안 돼도 고민이지만 장사가 잘 돼도 고민이다.  후자의 경우, 장사가 잘 된다는 이유로 임대료는 2,3배 오르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에서 내 집/가게'가 없다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이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958980).  알파고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알파고는 부동산 임대업으로 부를 축적하는 토건 마피아 같고, 이세돌은 집 한 채 구하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다가 변방으로 쫓겨나는 세입자 같다. 구석진 곳에 집구석 하나 만들어 살겠다는, 그리 사치스러운 욕심도 아닌, 소박한 욕망은 알파고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다. 



 


​                                


 

1)       홍길동은 조선조 세종 때 서울에 사는 홍판서의 시비 춘섬의 소생인 서자다. 홍판서가 용꿈을 꾸어 길몽이기에 본부인을 가까이하려 하였으나, 응하지 않으므로 춘섬과 관계를 하여 길동을 낳았다. 길동은 어려서부터 도술을 익히고 장차 훌륭하게 될 기상을 보였으나, 가족들은 길동의 비범한 재주가 장래에 화근이 될까 두려워하여 자객을 시켜 길동을 없애려 한다. 길동은 위기에서 벗어나 집을 나와서 방랑의 길을 떠난다. 그러다가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 힘을 겨루어 두목이 된다. 먼저 기이한 계책으로 해인사의 보물을 탈취하고 활빈당이라 자처하며 기계와 도술로써 팔도지방 수령들의 재물을 탈취하여 빈민에게 나누어주고 백성의 재물은 추호도 다치지 않는다. 길동은 함경도 감영의 불의의 재물을 탈취하면서 '아무 날 전곡을 도적한 자는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라는 방을 붙여둔다. 함경감사가 도적을 잡는 데 실패하자 조정에 징계를 올려 좌우 포청으로 하여금 홍길동이라는 대적을 잡으라고 한다. 팔도가 다같이 장계를 올리는데 도적의 이름이 홍길동이요, 도적당한 날짜가 한날 한시였다. 국왕이 길동을 잡으라는 체포명령을 전국에 내렸으나 길동의 도술을 당해낼 수 없어서 홍판서를 회유하고 길동의 형 인형도 가세하여 길동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병조판서를 제수, 회유하기로 한다. 길동은 서울에 올라와 병조판서가 된다. 그 뒤 길동은 고국을 떠나 남경으로 가다가 산수가 수려한 율도국을 발견, 요괴를 퇴치하여 볼모로 잡혔던 미녀를 구하고 율도국 왕이 된다. 마침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고국으로 돌아와 삼년상을 치른뒤 율도국으로 돌아가 나라를 잘 다스린다(한국민족대백과에서 부분 발췌)

 

2)       조선왕조실록과 연산군 일기에는 홍길동이라는 도둑이 있었고 그를 체포했다는 기록이 있다

3)       문명과 불만
4)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이름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박사의 이름이다. 소설 속 괴물은 이름'이 없다. 아버지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이 낳은 괴물을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낳은 자식이지만 적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홍길동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

5)      알파고의 버전 업은 < 베타고 > 이고, 베타고의 다음 버전은 < 비행기타고 >  라고 한다. 하하. 웃자고 한 말이다. 아주 오래 전, 수안보 와이키키 관광 호텔'에서 물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에게 종종 와이키키 가지고 졸랐던 모양이다. 영화 << 와이키키 브라더스 >> 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내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친구와 술 먹다가 의기투합하여 한밤중에 택시 타고 와이키키에 간 적이 있다.  하지만 화려했던 와이키키는 없었다. 그곳은 마치 몰락한 성 같았고 나는 성에서 쫓겨난 왕가의 폐족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가끔 비행기 타고 와이키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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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3 0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3-13 08:02   좋아요 1 | URL
네에... 후후.... 전 좀 생각이 다른데, 왜 알파고에 대한 비판은 이런 거잖습니까.
이세돌은 1이고 알파고는 2002개의 시피유와 연결되었으니 개인 대 컴퓨터 집단과의 싸움이므로 반칙이라고 말하는데 ( 왜 일 대 일로 싸우지 않음 ??! ) 전 이 말에 전혀 동의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이세돌은 처음부터 컴퓨터라는 통섭의 시스템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느냐는 제안이지 않았을까요 ? 만약에 이세돌이 이기고 있다면 2002개의 시피유와 연결된 알파고는 반칙이다, 라고는 말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 그냥 제 생각입니다...

시이소오 2016-03-13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류의 멸망을 지구의 멸망이라고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오만함에 경종을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3-13 09:03   좋아요 0 | URL
인간이 그동안 너무 건방졌죠.. 가끔 개 데리고 산책을 하면 개를 끌고 나오면 어떡하냐는 욕을 먹는데.. 아니 시발놈들... 이 땅덩어리가 인간만을 위한 대지입니까..짐승들의 주인이기도 하죠.. 고양이들 밤에 울 자격 있고, 거리에 똥 쌀 자격 있씁니다.. 오만방자한 것이죠..

글구 사실 이 세기의 대결에서 두려움을 느껴야 할 것은 기계의 능력이 아니라 집 없는 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본 세력에 밀려서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하면 미생이 되고 먹히니까요.. 그게 이 대전의 진짜 두려움이 아닐지요..

cyrus 2016-03-1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대중의 반응이 너무 호들갑스럽다고 생각해요. 우린 이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지능의 기계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잖아요. 예를 들면 스마트폰이죠. 지금 대중의 반응이 그것과 같습니다. 인간과 닮은 로봇이 나오면 사람이 거부 감정을 느끼는 ‘불쾌한 골짜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3-13 15:20   좋아요 0 | URL
엄밀히 말하면 알파고가 과연 인공지능에 부합한지 의문입니다. 연산 능력의 업 버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대중의 불쾌감은 확실히 사이러스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언캐니 곡선과 연관이 있겠죠. 어라, 기계적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모방하고 창조하고 더군다나 응용하네.. 이런 느낌.. 확실히 알파고가 상대 선수의 컨디션에 따라 바둑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십니까 , 바둑 ?

표맥(漂麥) 2016-03-1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조물의 역린! 이 말에 팍~ 꽂혔습니다...
혹시 이번 4국은 알파고가 봐준게 아닐까요? 압승하면 사람들이 공포감을 가질 거 같아서...^^

곰곰생각하는발 2016-03-14 10:07   좋아요 0 | URL
제가 봐도 이번 알파고 똥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를 못하겠슴니다.

yamoo 2016-03-1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홍길동과 프랑켄슈타인이라...곰발 님은 유비의 천재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3-14 10:06   좋아요 0 | URL
라라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