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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반양장)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 새물결 / 2006년 1월
평점 :
수염 난 아저씨가 보고 있단다 :
존 맥클레인 형사 그리고 , 김길태
영화 << 다이하드 >> 시리즈'는 내가 즐겨 보는 액션 영화'다 : 존 맥클레인,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죽도록 고생하는 사나이. 실벳탸 스텔론이 용병이 되어서 베트남에서 싸울 때 브루스 윌리스는 형사가 되어서 뉴욕에서 흰 쫄티와 맨발로 악당과 싸운다. 전자는 해외 용병이고 후자는 자치 경찰'이다. " 아사리판 나와바리. 오오, 오호츠크 시밤바들아 " 이 두 마초가 닮은 점은 타자의 사유지1) 에서 폼 나게 총싸움(질)을 한다는 점이다. 한 방 쏘면 해결될 걸 열 방 쏜다. 어차피 그들은 돌아갈 고향이 있으니 싸움터가 심해 밑바닥 뻘보다 더 참혹한 폐허’가 되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쏘가리도 아니면서...... 닥치는 대로 쏜다.
미국이 내세우는 전쟁 전략은 언제나 동일했다. " 남의 나라에서 폼 나게 싸우기 " 다. 미국 본토’가 < 적 > 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경우는 일본 가미가제 공격과 알카에다 공격이 유일했다. 가미가제가 모더니즘적 증후라면 9.11테러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증후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카토미 전투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펼치는 대리전2) 이다. 영화 속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고개 숙인 남자'가 될 판이다. < 그 > 는 직장에서는 ① 골치 아픈 동료였고, 아내에게는 ② 무능한 남편이었으며, 딸에게는 ③ 유령'이나 다름없는 아저씨에 불과하다. 가정은 위기일발 상황에 놓여 있다. 나카토미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아내는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처녀적 이름으로 직장 생활을 한다.
그러니깐 아내는 < 홀리 맥클레인 > 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결혼 전 이름인 < 홀리 제네로 > 로 처녀 행세를 하는 것이다. 맥클레인 형사는 나카토미 빌딩 로비에 있는 방문자 명단에서 아내가 처녀적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살을 찌푸린다. 맥클레인 가문을 부끄러워하는 아내. 설상가상, 참기름처럼 생긴 회사 동료가 아내인 홀리를 " 홀리 " 는 더러운 꼴도 본다. 맥클레인'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아내로부터 제거(거세)된 상태'다. 지금 그의 페니스는 발기와 거세 사이에 있는 것이다. 잘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꼴린 것도 아닌 상태. 마치 휴대폰 표시창에 방전을 알리는, 깜박거리는 아이콘’처럼 말이다. 그는 자신의 남근이 죽지 않았다3) 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존 맥클레인 형사, 추락한 자존심을 세울 수 있습니꺄 ?
이 영화에는 재미있는 역설이 돋보인다. 전쟁터의 주요 무대인 < 나카토미 빌딩 > 은 하이테크 벙커로 최고의 방재와 보안 시설을 자랑하는 건물이다. 그런데 테러리스트는 오히려 디지털화된 보안 시스템 때문에 보호받는다. 경찰은 나카토미 하이테크 보안 시스템 때문에 건물 내부로 진입할 수 없다. 빌딩 철문은 먹이를 문 악어의 입처럼 열릴 줄을 모른다. 다시 말해서 :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철통 보안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적을 보호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역설은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하이테크가 오히려 위험을 강화하는 역기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기술 발전은 리스크의 파이'를 키운다. 초가집이 불타면 단순한 화재가 되지만 초고층 빌딩이 불타면 재앙이 되는 법이니깐 말이다.
대한민국은 며칠 동안 < 필리버스터 정국 > 이었다. 필리버스터를 통해 테러방지법은 테러를 빙자한 테러빙자법이자 국민사찰법'이라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국민을 감시하는 주체는 " 빅브라더 " 이다. 그것은 푸코가 말하는 판옵티콘의 세계이니, 국민을 " 부처님 손바닥 " 위에 놓고 감시하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좋다,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안전하게 논다면야 불만은 없다만 < 부처님 손바닥 > 이 < 악당의 손아귀 > 로 바뀌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테러방지법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 애들아, 이 아저씨'가 보고 있단다. " 빅브라더는 빅데이터'를 먹고 사는 괴물이다. 사찰 행위의 핵심은 정보를 모으는 것이다. 가장 원시적인 방식은 쓰레기 봉투'를 뒤지는 것이다.
쓰레기 봉투 속에는 당신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구겨진 영수증, 정액이 담긴 콘돔, 다이어트 콜라, 생리대, 각종 상품 비닐 봉투 따위는 스토커에게는 보고(寶庫)다. 당신이 쓰레기 봉투에 버리는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정보'다. 하지만 빅브라더는 굳이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뒤질 필요가 없다. 검은 선그라스에 넥타이 맨 7급 공무원이 쓰레기통이나 뒤지려고 정보원이 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 대신 << 디지털화된 정보 >> 를 수집하는 쪽이 " 클리어 " 하다. 당신이 컴퓨터에 접속한 데이터와 교통 카드 내역 그리고 신용 카드 내역을 조사하면 < 다 > 나온다. 살해당한 시체는 반드시 흔적을 남기고 신용카드와 핸드폰은 반드시 정보를 남긴다. 국정원이라는 빅브라더가 욕망하는 것이 바로 디지털화된 개인 정보'이다.
기술 집약 사회는 위험 사회인 것이다. 이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테러방지법을 없애거나 자신의 디지털 정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경찰이 어린이 살해범이었던 김길태를 공개 수배했는데도 불구하고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유는 김길태가 컴퓨터나 신용카드 혹은 휴대폰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디지털 흔적이 없다 보니 행방이 묘연한 것이다. 그동안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면서 의사 진행 발언을 했던 국회의원들이 이와 관련된 책을 소개하고는 했는데, 아쉬운 점은 울리히 벡의 << 위험사회 >> 를 빼먹었다는 데 있다. 섭섭하다, 감시 사회'를 이해하는 데 이보다 좋은 책은 없다 ■
1) 나카토미 빌딩 : 람보는 베트남에서 싸우고 존 맥클레인 형사는 뉴욕에서 싸우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존 맥클레인 형사는 미국이 아닌 일본 자본이 투자한 나카토미 빌딩'에서 싸운다. 나카토미 빌딩은 미국을 위협하는 아시아 신흥 자본 세력'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이 < 자리 > 는 미국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타자화된, 오리엔탈化된 공간이다.
2) 대리전 혹은 재현 : 이 영화는 2차 세계 대전의 주요 전범 국가가 주요 모티브로 등장한다. 미국이 상대해야 할(경계해야 할) 대상은 공교롭게도 일본 자본과 독일 테러리스트'이다. 나카토미 플라자 회장(제임스 시게타)는 맥클레인'에게 말한다. " 2차대전 때는 패했지만 지금은 워크맨이 미국을 뒤집었잖소 ? " 또한 헬기를 탄 경찰이 속삭인다. " 마치 2차 세계대전 같군 ! "
3) die hard : 다이 하드'는 여간해서는 죽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영화는 발기 불능인 두 사내(백인 형사와 흑인 경찰)의 브로맨스 케미 액션 영화'다. 빌딩 밖에서 순찰을 하던 흑인 경찰은 백인 형사의 멘토이자 멘티이다. 그들은 모두 " 간댕거리는 자지 " 를 소유한 거세 직전의 불쌍한 형사들이다. 흑인 형사 알 파웰'은 실수로 13살 소년을 쏘아 죽인 후, 더 이상 권총(페니스)를 발사(사정 射精)하지 못한다. 그 또한 발기 불능'인 형사다 ! 사실 존과 홀리의 포옹보다는 존과 알의 포옹이 더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