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에 대하여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ㅡ 詩, [ 껍데기는 가라 ] 전문

 


 

                                                       그 1993년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노벨문학상은 그의 < 몫 > 이었을 것이다 ㅡ 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 그 > 는 " 일본의 카프카 " 라고 불리는 아베 코보'이다(다음해, 오에 겐자부로는 << 만연원년의 풋볼 >> 이라는 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오에 겐자부로'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이 수상 결과는 아베 코보의 죽음이라는 자장 아래 놓여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베 코보의 소설 세계'는 주로 신체 변형에 따른 이형(異形)을 주요 모티브로 삼는다는 점에서 데이빗 크로넨버스의 영화 세계와 유사한 구석이 있다.


소설 << 타인의 얼굴 >> 에서는 사고로 얼굴을 잃어버린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얼굴이 " 어글리 " 하다는 것보다는 < 얼굴이 텅 비어 있다는 데 > 있다.  얼굴없는얼굴은 움푹 파인 구멍처럼 보인다.  그는 결국 " 타인의 얼굴 " 을 본뜬, 고무로 만든 피부 가면을 쓰고 타인 행세를 하며 아내를 유혹한다. 이 타인의 얼굴 ㅡ 가면'은 가죽(皮 : 가죽 피)뿐인 헛것(彼 : 저쪽 피)을 내세워 나(我)를 숨긴다는 점에서 그것(가면)은 투명 망토요, 도깨비 감투에 대한 은유'다. 여기,  아내의 취향을 속속들이 꿰차고 있는 낯선 남자(이면서 동시에 남편)가 아내를 유혹한다. 아내는 이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 

그는 페이스 오프 face-off 한 다크맨Darkman이면서 동시에 투명인간이 된 할로우맨 Hollow Man1이다. 이 매혹적인 설정은 수많은 영화에서 차용2되었다. 가면 뒤의 얼굴은 구멍이었다. 반면, 소설 << 모래의 여자 >> 에서는 모래 구멍에 빠진 곤충학자'가 등장한다. 모래 속에 갇힌 그는 모래 밖으로 탈출하려고 갖은 노력을 시도하지만 결국에는 모래 구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모래는 끊임없이 구멍 속으로 흘러내려 모래 속에 지어진 사상누각沙上樓閣을 위협한다. 살기 위해서는 집 안으로 스며드는 모래를 파내야 한다. 희망 없는 절망 속에서 노동은 반복된다. 그는 벼랑 끝에 매달린 프로메테우스이면서 시시포스인 셈이다. 으, 시시시시하다 ! 

이 소설에는 그 어떤 괴물도 등장하지 않지만 괴물이라는 상징적 공포 자체만으로(괴물이 존재한다는 소문만으로) 패닉에 빠지게 되는 재난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 두 소설 타인의 얼굴, 모래의 여자  을 관통하는 것은 < 구멍 > 이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여의도 정치'는 이제 우화 偶話 의 차원이 아니라 불안의 증후'로 다가온다. 성장을 이야기하면 애국자가 되지만 분배를 이야기하면 빨갱이가 된다. 이 느낌은 환멸보다는 공포에 가깝다. 이 공포 감정은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는, 껍데기가 알맹이를 흉내 내는,  구멍(들)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한국 정치를 자지우지하는 < 페니스 파시즘 > 은 이미 도를 넘은 상태'다. 반성은 없다. 이명박은 팔팔하고 박근혜는 도도하며, 노동자 저항은 미미'하고 파업과 투쟁'을 바라보는 시민 반응은 시시하다.  권력자를 향한 아첨이 난무하니 삼권분립은 삼위일체가 되어 신앙이 되었고, 애국가 4절을 끝까지 부르는 놈은 그 신앙에 대한 간증'이 되었다.

그리고 " 믿숩니까 ? " 라고 질문을 던질 때 이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순간, 당신은 진실한 사람에서 " 광탈 " 하게 된다. 권력자를 향한 충성이 곧 애국이며 신앙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치는 < 메시아-파시즘 > 이기도 하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1번을 찍을 것이라는,  유령처럼 떠도는 짤방 앞에서는 웃음보다는 소름'이 돋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직언이 사라진지는 오래되었다. 바람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청와대를 맴도는 말의 팔 할이 아첨이란다. << 아첨 >> 은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남은 구멍을 뜻한다. 한자 첨(諂)은 言 : 말씀 언 + 臽 : 구덩이 함'으로 구성된 글자다( 부수인  는 움푹 파인 절구 구'이다). 즉, 아첨이란 구멍 뚫린 말. 실속은 없고 헛된 말이라는 점에서 아첨은 기의(記意, 시니피에) 없는 기표(記標, 시니피앙)3로 작용하는 공언 空言 이다, 빈말이라는 소리'다.

박근혜가 통치하는 청와대는 바로 구멍 뚫린 말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들의 목표는 돈과 권력이다, 그 모오든 쇠붙이(錢) 을 움켜쥐는 것이 그들의 욕망이다. 아첨(阿諂)이,  극에 달한 시대'이다  ■





  1. HOLLOW : 오목한, 속이 텅 빈
  2. 미녀는 괴로워-류의 체인지 서사'도 가면을 통한 타인 되기'에 속한다. 성형한 얼굴은 타인의 얼굴(가면)인 셈이다.
  3. 기의 없는 기표로 작용하는 무의미의 대표적 표현이 개소리'다. " 멍멍멍 ! " 이라는 의성어에는 기의는 없고 기표만 둥둥 떠다닌다. 개소리는 소리를 모사할 뿐 의미는 없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행복하자 2016-02-01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안성기나오고 김민인가하는 얼굴 좀 긴 여배우나온 영화제목에도 구멍이 있었는데요... 원작도 있고... 최인호였었나?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잘 잊혀지지 않는 제목이었어요~~
날이 추워 뇌가 마비되어 헛소리 하고 갑니다~
따뜻한 국물에 쏘주 한잔 그리운 차가운 날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2-01 20:11   좋아요 0 | URL
네, 생각납니다. 김민... 아, 이 배우 뭐하죠 ?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코맹뫵이 소리가 인상에 남았던 배우였는데 말입니다....

구멍 하니 차이밍량의 구멍이란 영화도 생각나네요..
날이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겨울은 추워야죠, 라고 말하려도 노숙자 생각하니 그런 말 하면 안 되겠네요.
겨울이 따듯해졌으면 합니다. 아, 그러면 또 농민들이 싫어하실려나요.. 아무튼..

지금행복하자 2016-02-01 20:27   좋아요 0 | URL
감독하고 결혼해서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하던데 그후로는~~
우마서먼 느낌이 날뻔해서 애정하던 배우였었는데. , ㅎㅎ

날씨가 추워도 걱정.. 따뜻해도 걱정...

곰곰생각하는발 2016-02-01 20:32   좋아요 0 | URL
아 , 맛다... 맞습니다. 감독하고 결혼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체형이 왜 서구 미인형이어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분도 이소령 체육복 입으면 의외로 근사할 거임..
노란 채육복의 갑은 우마써먼 따를 자 없지만 말입니다..

cyrus 2016-02-01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껍데기는 가라`라는 구절만 기억해서인지 시 본문에 `아사달 아사녀`가 있었는지 의심했습니다. 방금 인터넷에 검색해보니까 곰발님이 올린 시 원문이 그대로 맞더군요. 여때까지 시의 1연과 마지막 연만 기억하고 살았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2-01 21:26   좋아요 0 | URL
왜 고전이 읽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읽지 않은 책이라면서요 ? ㅎㅎ. 이 시도 그런 경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저도 오늘 처음 전문 읽었습니다. 아사달 아사녀 나와서 깜놀했네요..

samadhi(眞我) 2016-02-0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만 들은(?) 고담대구, 무섭네요. 숨이 컥 막힙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2-01 21:37   좋아요 0 | URL
친일파 후손들이 잘먹고 잘사는 이유가 있는 거죠..
안중근 의사나 김구 선생이나 나라 팔아 먹는 놈들과 싸우다가 그리 되셨는데
저 할머니는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합니다. 뭐, 빨갱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

yamoo 2016-02-02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찰진 비판이군요! 좋습니다~~ㅎ

근데, 아베 코보가 그리 대단했단말이지요~ <모래의 여자>를 읽어 봐야 겠습니다. 아베 코보 작품들은 사다놓고 읽어 본 적이 없는지라..ㅋ 왜 펼쳐보지도 않았는지 의문이 드는군요! 이참에 구경이라도 해 봐야 겠습니다.

제가 찬미하는 한 사람인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과 유사하다니 놓칠 수 없겠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2-02 18:26   좋아요 0 | URL
쫀득쯘독하죠 ? ㅎㅎㅎㅎㅎ.. 농담입니다.

모래의 여자`는 제가 항상 강추하는 소설입니다. 얇아요. 책이. 지루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은 절판되어서 구하기 힘들지만 단편집 보면 정말 희한한 소설이 많습니다.

stella.K 2016-02-02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정말 얼굴없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암세포가 얼굴을 파 먹어 복구불능 상태가 되어버린...
그 사람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네요. 정말 안타까웠는데.

저의 엄마만 하더라고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발목을 잡는 건 민주당이라고
생각합니다. 뻘갱이 새끼들이라며.
저는 여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민주당 역시도 신뢰를 못하겠으니
갈수록 강건너 불구경이 되요. 저 같이 생각할 사람이 한 둘이 아니겠죠?
어느 당을 지지해야 할지...
오늘도 미국 경선 내용 보면서 미국 사람들은 항상 보면 대통령 선거를 축제 같이 하잖아요.
그들의 낙천성이 부럽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절대 그렇게 못하지요. 쩝

곰곰생각하는발 2016-02-02 18:25   좋아요 0 | URL
저 샌더스 지지자인데, 와... 진짜 이번 선거 재미있네요. 득표율 49% : 49%.. 정말 아찔하지 않습니까 ?
샌더스 지지율이 누가 이 정도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다. 한국식으로 따지자면 통진당 후보가 여기까지 온 것이죠. 대단함.... 저는 두 당 지지자 아닙니다만, 그래도 여당의 독주는 막아야죠.

강건너 불구경하지 마시고, 어찌되었든 여당은 지지하지 맙시다. 민주당 싫으시면 제가 지지하는 정의당 지지하시지요.. 됐고.

저도 얼굴 없는 사람 본 적 ( 티븨에서 )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좋은 사회가 되려면 이런 얼굴 없는 사람이 괴물 취급 받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