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아 ! 



 

 

 

 

 

​                                                   여성학자이자 소설가인 로잘린드 마일스는 자신의 저서 <<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 >> 에서 이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1. "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 만일 남자 요리사가 차렸다면 열광하는 추종자를 잔뜩 거느린 성인이 되어 그를 기념하는 축일이라도 생기지 않았을까 ? 이런 물음들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괴롭혔 " 기에, "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썼다고 한다. 이에 정희진도 이 책에 대한 서평에서 다 된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다. " ......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 많은 설거지는 누가 했을까?’이다2. " 같은 만찬을 두고 두 여성은 관심사는 비슷하지만 < 결 > 은 사뭇 다른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여성이기에 가능했던 시선이다.

반면, 남성인 스펜서 존슨은 <<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 ?3 >> 에서 위의 두 여성과는 관심사가 전혀 다르다. " 쥐새끼 같은 놈, 누가 내 맛있는 치즈를 훔쳐먹었지(옮겼지)? " 만찬을 누가 먹었는가에 방점을 찍는다. 이처럼 만찬을 앞에 두고 접근하는 방식이 제각각 다르다. 흥미로운 " 차이 " 다. 스펜서 존슨은 지배 계급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로잘린드 마일스와 정희진은 피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두 여성 가운데 보다 마이너 비주류 질문을 던진 쪽은 정희진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법. 부엌일 가운데 제일 하기 싫은 것이 " 뒷처리(설겆이) " 다. 음식을 하는 일은 배가 고플 때의 프로세스이고, 설겆이를 하는 일은 배가 부를 때의 프로세스'이니 말이다(설겆이와 잔반 처리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도 설겆이 프로세스에 속한다).

오랜 시간 동안 1인 독거 생활을 해온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 구더기 무서워서 담 못 담근다고,  설겆이 귀찮아서 음식을 사 먹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한여름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최악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생선 몇 마리 사서 요리하려다가 생선 내장을 손질한다는 것이 고역이라는 사실에 경악을 하기도 했다. 요리를 하는 과정보다는 뒷처리가 문제였다. 특히 싱크대 잔반통에 버려진 물컹한 내장들을 꺼내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 에 담는 과정은 끔찍했다. 오, 주여 !  또한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날을 놓쳐서 방치하다가는 구더기가 들끓는 < 통 > 에 요리를 한다는 것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입에서 씹는 것은 잠시요, 음식물 처리는 영원했던 것이다. " ...... 니미, 사 먹고 만다 ! " 

내가 말머리에서 " 설겆이 행위 " 를 길게 나열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 음식 - 뒷처리 > 과 < 살인 - 뒷처리 > 가 꽤나 유사하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연출한 << 사이코 >> 는 내가 자주 보는 영화'다. 심지어는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보고 또 보지만 보고 또 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볼 때마다 새롭다. 자주 보다 보니 정이 든 까닭일까 ?  어느 순간부터 연쇄살인범 노먼 베이츠(안소니 퍼킨스)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 사서 고생하는구나...... "  그는 시체를 수습하고 은폐하기 위해 낑낑거린다. 욕실에 남겨진 핏물을 제거하고 온갖 흔적을 지우고 시체를 은폐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막노동이리라. 안 봐도 비디오'다.  히치콕, 말년 작품인 << 프렌지4 >> 도 시체를 수습하기 위한 살인자의 " 다이 하드 " 가 펼쳐진다. 

살인자가 감자 트럭에 올라 시체를 수습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장면'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살인을 수습하는 과정은 요리를 하고 난 다음에 해야 할 뒷처리 과정을 닮았구나 ! " 살인은 쉽다. 때론 짜릿한 쾌락을 얻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살인을 하고 난 다음은 싱크대 안에 널브러진 그릇을 닦듯이, 시체를 닦아야 하는 고된 일이 기다리고 있다. 죽은 자는 반드시 증거를 남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 살인자는 죽은 자의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아야 한다. 모근이 달린 머리카락이나 거웃이 떨어지지는 않았을까 ? 손톱자국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  정액이나 타액은 ? 시체를 옮길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흔적을 지워야 한다.

설령, 시체를 다른 곳에 은폐한다 해도 자신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없애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 집 안 곳곳에 뿌려진 핏자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  실제로 살인사건이 발생한 날, 당일 수도 사용량이 한 달 사용량보다 많다는 점을 발견하여 남편을 살인자로 지목한 경우도 있었다. 살인범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하루 종일 소독약을 타 대대적인 물 청소를 했던 것이다. 문득 토막 살인'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리노 나쓰오의 눈부신 걸작 << 아웃 >> 은 바로 부엌-노동과 살인-노동'이 비슷하다는 점을 간파한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여성(들)은 시체를 토막 내어 유기하고 뒷처리하는 과정을 능숙하게 처리한다. 부엌일과 프로세스'가 겹치기 때문이다.  처음 작업할 때는 부들부들 떨던 그녀(들)은 이제 작업할 때 유들유들 여유를 부린다.

생선 토막을 내고 내장을 바르고 잔반을 처리하듯이, 여자들은 남자 시체를 토막 내고 내장을 바르고 핏기를 뺀다.  작가가 태연스럽게 일처리를 하는 모습을 나열할 때는 경악하게 되지만 한켠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성이라면 설겆이와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늘상 하던 일이니깐 말이다. 이 소설,  읽지 않았다면 가아아아아아앙력하게 추천한다. " 눈부신 걸작 " 이라는 나의 호들갑이 결코 허풍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소설 속 시체 처리반 여성(들)은 무능하고 폭력적인 남편(들)을 대신해서 도시락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 동료(들)이다. 그들은 낮에는 집에서 부엌 일을 하고, 밤에는 공장에서 부엌 일을 하고,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부엌으로 향한다. 

그러니까 손에서 물이 마를 날이 없다. 손에 물을 묻히던 여성(들)은 어느 순간 손에 피를 묻히면서 페니스 파시즘에 대항한다. 무시무시한 여성이 등장하지만 독자는 그들 편에 서서 그녀들을 응원하게 된다. 주류 남성 사회는 여성의 부엌일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로잘린드 마일스와 정희진이 누가 음식을 차렸고 설겆이는 누가 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때 스펜서 존슨은 누가 치즈를 먹었는가에 집중하지 않았던가 ? 남성 눈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만 보일 뿐 그 음식에 스며든 여성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보지 못한다. 특히 대한민국은 이상한 판타지에 사로잡혀 있다. 집밥이라는 판타지 말이다. 먹기만 하는 자는 음식을 만드는 노동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음식만 만드는 자는 하루 종일 설겆이를 하는 노동자의 고단함을 모른다.

정희진의 접근법이 맞다. 가장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정치적으로 옳다.  





 



  1.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출판사 보도 자료에서 참고했다
  2. 정희진처럼 읽기 중 <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 > 146쪽
  3. 이 책을 읽고 두 번 좌절했다. 첫 번째는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이 이 책에 대해 삶에 대한 심오한 진리라고 말할 때, 두 번째는 이 책이 200만 부나 팔렸다는 데 있다.
  4. 이 영화는 " 먹는 장면 " 이 자주 나온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꾸역꾸역 먹고 마신다. 그뿐이 아니다. 끊임없이 음식에 대한 농담(혹은 콩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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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12-30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엄마와 역할 분담을 해서 엄마는 주로 음식을 하는 쪽이고
설거지는 제 담당였죠. 처음엔 잘 몰랐는데 그것도 자꾸하니까 할만 하더라구요.
하면 할수록 지저분한 것에서 깨끗한 쪽으로 점점 넓어지니까. 무엇보다 단순하잖아요.
요리는 신경 쓸게 넘 많더라구요. 마트에서 사야지 다듬고 씻어야지, 볶아야지, 끊여야지.
진짜 혼자라면 사다 먹지 누가 이걸 하나 싶더군요.
특히 정말 여름에 쓰레기 안 버리면 봉투 속에서 구더기가 바글바글.ㅠ
백선생 집밥 보면서 이 셋팅 누군가 하고 백종원과 남자들은 편하게 요리만 하는 거겠지 하면
부럽기도 하지만 프로그램 끝나고 정리하는 사람 생각해서 적당히 좀 하지 그럴 때도 많아요.

<아웃>이 그리도 좋나요? 전 신경숙 땜에 얼마 전 <우국>을 읽어 봤는데 정말 묘사가 뛰어나더군요.
곰발님 그리 말씀하시니 읽어보고 싶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30 19:01   좋아요 0 | URL
< 아웃 > 은 제가 일본 장르 소설에 대한 편견을 한순간에 날리게 한 걸작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나쓰오 여사 광팬입니다. 약간 또라이 같은 작가예요. 스타일에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저도 종종 백선생 보면서 스탭 말단들이 설겆이는 다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cyrus 2015-12-30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모레부터 쓰레기봉투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급하게 슈퍼마켓 여러 군데 다니면서 남는 봉투가 있는지 확인했어요. 젊은 남정네가 봉투가 있느냐고 묻는 모습을 슈퍼마켓 주인 아주머니, 할아버지들은 신기하게 바라봤어요. 아마도 쓰레기봉투를 처리하는 일을 여자 담당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그렇게 봤을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30 21:29   좋아요 0 | URL
봉투 가격 오릅니까 ? 얼릉 사두어야겠네요.... 감사홥니다...

기억의집 2015-12-31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거지는 설거지 기계가~

전 어릴 때부터 설거지해서 그런지 설거지에 대한 부담이나 귀찮음은 없어요. 오히려 깨끗해지는과정을 즐기는.... 집밥에 대한 예찬은 식비가 덜 들기때문이 아닐까 해요.

나쓰오 여사님 책 대부분 읽었어요 아웃 읽는데 너무 화가 나서..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하나 갈등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나쓰오 여사가 끝까지 간다 주의잖아요. 저는 아웃을 읽고 뭐에 홀렸는지 그녀의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는는데 재와 다이아몬드가 최고였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31 10:29   좋아요 0 | URL
나쓰오 여사 소설 중에 재와 다이아몬드가 있었나요 ? 금시초문입니다.. ㅎㅎㅎㅎ
혹시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재와 다이아몬드를 착각하신 것은 아닌지 조슴스럽게 묻습니다.. 흐흐흐...



혹은 미로 시리즈 소설 말씀하시는 겁네까 ?

기억의집 2015-12-3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의잠 재의 꿈이에요. 소설에 저 감독의 영화 재와 다이아몬드가 모티브 여서 착각했어요. 나이 드니 깜박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31 12:42   좋아요 0 | URL
후후. 이 작품이군요. 이 작품이 미로 시리즈 번외 작품이죠 ?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함 읽어봐야겠네요. 추천 감사드립니다.

기억의집 2015-12-3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역시 나쓰오답게 하드한데, 이 작품 읽고 나쓰오 직품들을 읽으면서 분노했던 거 단 한방에 날아갔을 정도입니다. 미로의 아버지 이야기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01 09:51   좋아요 0 | URL
오오오오오... 반드시 보겠습니다. 외전이어서 오히려 전 안 읽었는데... 아니었군요... 나쓰오는 일단 믿고 가는 편이라서요... 호호..

samadhi(眞我) 2015-12-3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 후처리는 미국드라마 덱스터의 주인공 덱스터가 최고죠.
그러게요, 설거지를 잘 하고 좋아하는 저도 지금 설거지 거리를 잔뜩 쌓아두고 있어요. 집에 돌아가 세밑 설거지와 청소할 생각을 하니 에효~

곰곰생각하는발 2016-01-01 09:52   좋아요 0 | URL
뎃스터도 캐릭터가 참 독특해요. 연쇄살인범 주이는 연쇄살인범이니.. 말입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