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력의 탄생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지배 계급의 욕망'을 반영한다. 비록,  당신이 乙이라 해도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는 甲의 언어'다. 좋은 예가 꼰대들이 즐겨 사용하는 "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다 " 는 말이다. 과노동 예찬'이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 과노동 " 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 일찍 일어나는 새 " 는 고용주가 고용인에게 요구하는 인재상'이다. 그런데 이 문장에는 불편한 진실이 하나 숨어 있다. 먹이 사슬'을 甲乙 관계로 치환하면  :  당신은 < 새 > 가 아니라 < 벌레 > 에 가깝다는 점이다. 벌레 입장'에서 보면 늦게 일어나는 벌레보다 일찍 일어나는 벌레가 새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높다. 이처럼 당대의 언어'는 지배 계급의 생각을 피지배계급을 세뇌시키는 도구다.

국어사전은 노골적으로 차별을 합법화하는 경향이 있다. < 여의사 > 라는 낱말은 있지만 < 남의사 > 라는 단어는 없다. 마찬가지로 < 여교수 > 라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등록되어 있지만 < 남교수 > 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  답은 간단하다. 언어란 기본적으로 주류 남성의 욕망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같은 주류 남성'이라 해도 서열이 있으니 어린이는 어른의 < 쫄 > 이다. 어른이 저지른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 무서운 ~ " 이라는 수식을 붙이지 않지만 10대의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항상 " 무서운 십대 "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나이에 따른 언어 차별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정부가 < 노동자의 날 > 을 굳이 < 근로자의 날 > 로 개명한 것도 위와 같은 맥락이다.

노동자와 근로자는 뜻이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꼼꼼 따지고 곰곰 생각하면 의미가 다르다. 일할 勞, 움직일 動으로 이루어진 노동이라는 단어는 몸을 움직여서 일을 한다는 뜻이다. 반면, 근로는 부지런할 勤에 일할 勞로 이루어진 단어로 단순히 일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부지런하게 일하는 노동'에 방점을 찍는다. 노동량을 산출해서 크기 부호로 표현하자면 노동 < 근로 다. 수식으로 나타내면 < 노동 × 3 = 근로 > 다. 국가가 < 노동자의 날 > 을 애써 < 근로자의 날 > 로 호명하는 이유다.  " 일찍 일어나는 새 " 가 상징하고 있는 노력'이라는 단어는 뻔뻔한 고용주 꼰대의 좆같은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노력(努力 : 부지런히 일할 로)이고 다른 하나는 노력(勞力 : 일할 로)이다.

사전에 의하면 노력(努力)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쓴다는 뜻이고, 노력(勞力) 은 힘을 들여 일한다는 뜻이다. 언뜻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이지만 여기에는 악마가 숨어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노력을 기울이다, 노력을 쏟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 일을 해내다 따위는 모두 노력(努力)이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똥을 누면서1 나는 지배 계급의 치밀한 전략에 혀를 내둘렀다. " 야, 이 씨발놈들...... 쩨쩨하네 ! " 한자 努의 형색을 꼼꼼 뜯어보면 내가 항문에 힘을 주며 외친 말풍선을 이해할 것이다. 한자 사전'이 주는 정보에 의하면 努는 " 뜻을 나타내는 力 : 힘 력과 음을 나타내는 奴의 뜻이 합 " 한 글자'다.

여기서 奴는 종, 놈, 저(자신을 낮추는 말)'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노력(努力)은 머슴이 주인에게 잘보이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는 서사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이 노예 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 이솝우화 >> 이다. 노예였던 이솝이 주인에게 바치는 << 용비어천가 >> 인 셈이다. 이 주류 지배계급의 언어 습속에 반기를 든 것이 바로 < 노오력 > 이다. 이 요샛말은 신통방통한 구석이 있어서 노력 강도에 따라서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다. < 노오력 > 이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는 < 노오오오오오오오력 > 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 오 > 는 길게 발음하라는 < : > 부호의 기능을 대체하고 있지만 < - 력 > 앞에 < 오 > 가 버티고 있어서 < 노역 > 이 된다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 노오력 > 이란 요샛말을 창조한 이, 뉘인 줄 모르겠으나 그는 努力의 의미를 꿰뚫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 노역 > 이 몹시 괴롭고 힘든 노동이라는 뜻과 함께 고용인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노예처럼 혹사를 당하는 일'이란 뜻이니 말이다. 이처럼 어르신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챙기신다. 영화 << 달콤한 인생 >> 에서 이병현은 보스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머슴(奴)으로 나온다. 말이 좋아 매니저'이지 오야붕을 위해 힘(力) 쓰는 일이다. 그는 보스의 여자'에게 잠시 마음이 흔들렸으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보스의 여자'는 사내를 유혹에 빠트리기 위해 보스가 두고 간 김중권의 다이아몬드 반지요, 술 담배를 할 줄 모르는 느와르 팜 파탈이다. 또한 이병현은 심순애'다. 아, 저 알반지 ! 사내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남근을 다스린다. 발기할 때마다 얼음 찜질로 힘(力) 조절에 애쓴다.

그런데 이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보스가 사내의 노오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병현이 울부짖으며 외친다. " 얼마나 더 노오력을 해야 내 사랑을 받아주실 겁니까 ? 네에 ??! 얼마나 더 많은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력이 필요한 겁니까 ! " 그는 다시 묻는다. "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네 ? 당신을 위해 개처럼 일한 나에게 왜 그랬어요 ? "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보스는 이 질문에 < YES > 라고 말해도 죽고 < NO > 라고 말해도 죽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죽는다. 노력은 반드시 노력한 대가를 보상하지는 않는다. 노력은 손 내밀면 꼬리를 흔들다가도 뒤돌아서는 순간 발뒤꿈치를 무는 못된 개처럼 배신을 하기도 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벌레를 잡는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자신을 새라고 착각하는 벌레'다.

이 격언은 새에게는 유익할 지 모르겠으나 벌레에게는 백해무익하다. 계급 인식이 중요한 이유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어떤 일이든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자만이 금수저 밑에서 일을 한다. 유병재의 말이다. 노동은 신성하다.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단, 단서가 붙어야 한다. 모순 없는 사회 구조와 바른 제도'에 한해서 노동은 신성하다





 

  1. 화장실 변기 옆에는 항상 두꺼운 국어사전이 놓여 있다. 남들이 책상 앞에서 사전을 펼칠 때, 나는 항문에 힘을 주며 사전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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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5-12-28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카로운 분석... 깜놀~~~^^

곰곰생각하는발 2015-12-28 14:03   좋아요 0 | URL
앞으로는 분석남이라 불러주십시오

ZZZ 2015-12-2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깊은 뜻을 쉽게 풀어내는 솜씨는 압꿘
타의추종을 불허해뜸^^

곰곰생각하는발 2015-12-28 14:04   좋아요 0 | URL
타의추종까지는 아니구여. 님 댓글 오지구여 ~

마태우스 2015-12-2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동개혁법이란 이름을단 법안이생각나네요 그딴걸 개혁이라부르는건 양심이없는 짓거린데 문제는 거기에 넘어가는 사람들이많더군요 자신은물론 후손들을 다 죽이는법인데 말입니다 이나라는 정녕 희망이없는 곳인가 싶네요 새해가 무섭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28 15:44   좋아요 0 | URL
실화 한 토막 : 어떤 인간이 정부의 대형마트 주말 영업 금지 때문에 주말에 쇼핑하는 맛을 잃었다고 두고두고 원망을 하더군요. 탁상 행정이라고.... 그러더니 느닷없이 앞으로는 평생 시장에서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비판하려면 탁상 행정을 한 정부를 욕해야지 아무 잘못 없는 시장을 왜 욕하냐, 했더니 자기는 박근혜 지지자라고 하더군요... 순간, 아....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구나 했습니다.

마태우스 2015-12-29 23:15   좋아요 0 | URL
그게 그쪽 지지자들의 실체죠 뭐. 무슨 배려 같은 게 전혀 없다는... 통큰치킨을 롯데서 팔았을 때, 재벌이 그딴 일까지 하느냐고 비판을 해야 하는데 우르르 줄을 서고, 또 동네치킨은 왜 비싸냐고 따졌었죠 아마. 어려울수록 배려하면 좋은데 그게 참 어려운가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30 16:48   좋아요 0 | URL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해서 약자에 대한 증오가 탄생하게 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을 순화해서 그렇지 ˝ 시장 가면 더럽고, 불친절하고, 주차할 곳도 없고.. ˝ 등등등. 왜 증오를 엉뚱한 사람에게 돌리는지 이해가 안 가더군요. 그깟 한달에 2번 문 닫는 제도가 뭐 그리 자기에게 불편을 주었다고 말입니다. 약간 또라이 미친 새끼였던 것 같습니다.

수다맨 2015-12-2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김신용과 백무산이 노동은 그냥 통증에 불과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얘기했던 게 생각납니다......
이번 주 평일에 혹시 시간이 나시는지요? 한 해가 가기 전에 곰곰발님과 술 한잔 하고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28 16:42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술한잔하자고 연락드릴려고 했습니다. 뭐... 목요일이 뵐까요?

2015-12-28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9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30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30 16:46   좋아요 0 | URL
넵, 그때 봅시다요..

stella.K 2015-12-28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에잇, 드러분... 그러다 치질 생겨욧!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12-29 16:15   좋아요 0 | URL
ㅎㅎ. 치질은 인생과 함께 가야 할 병입지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6-01-04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성공학(?) 강의 한답시고 꼭 드는 예가 있지요. 아침부터 일어나 근면성실하게 살았더니 어느새 운전수를 둔 싸장님이 되어있더라 카는... 전 그럴 때마다 `그럼 운전수는? 그 사람도 싸장님 아침 새벽 스케줄 때문에라도 부지런히 사는 거 아닌가?` 같은 생각을 했는데 용기가 없어서 차마 질문을 못 했지요. 근데 알고보면 싸장님은 첨부터 혜택받은 사람이었다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