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둑
추석 연휴 끝물에 소레 포구에 가서 구입한 < 게 > 로 담근 " 간장게장 " 을 꺼내 먹다가 문득 < 간장게장 > 이 왜 < 밥도둑 > 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을까, 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간장게장 한 마리'면 밥 한 그릇은 뚝딱이니까 ? 글쎄다, " 혓바닥 " 만큼 둔한 감각 기관이 또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 맛 > 은 고정된 관념이 세뇌되어서 고착된 측면이 있다. " 봄 도다리, 가을 전어 " 라는 말도 있고, "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 " 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가을 전어가 진미 중에서도 으뜸 진미일 터인데, 정말 그럴까 ? < 전어 > 는 청어'에 속하는 가장 흔한 생선이다. 옛날에는 맛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던 생선이다.
물론 가을에는 기름이 올라서 고소한 맛을 자랑하지만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올 만큼 " 진미 " 는 아니다. 내가 먹어본 바로는 그저 그런 맛. 만약에 내가 바람나서 집 나간 며느리'였다면 < 전어 > 대신 등짝이 박연폭포처럼 넓고 허벅지가 무등산 칡뿌리처럼 튼튼한 < 애인 > 을 택했을 것이다. 전어보다는 캄캄한 방구석에서 애인의 등짝 밑에 깔려서 손톱으로 등골을 파며, 아..... 하는 맛이 더 중독성이 있을 테니깐 말이다. 흔히 맛있는 반찬을 " 밥도둑 " 이라고 한다. 반찬이 맛이 있다 보니 밥을 더 먹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밥도둑이라고 일컫는 목록을 훑으면 일견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굴비, 간장게장, 젓갈류를 생각하니 아... 침이 고이네.
당대에 유행하는 신조어를 보면 그 나라 " 형편 " 이 보인다. 요즘 < 흙수저 > , < 김치녀 > , < 된장녀 > , < 집밥 > , < 먹방 > 처럼 " 식문화 " 와 관련된 신조어'가 대량 생산되었다는 점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손에 카프카의 도끼나 니체의 망치 대신에 밥숟가락을 집어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은 " 집단적 구순기 집착 " 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 밥숟가락을 놓다 " 라는 관용구는 크게 두 가지 중의적 내용을 담고 있다. 죽을 때가 되어서 밥숟가락 드는 힘조차 없다는 것과 직장(밥그릇)을 잃었다는 것. 이제는 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구호가 남일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일터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니까.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도래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들 신조어와 함께 < 헬조선 > 이 뜨는 것을 보면 이제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21세기는 어느덧 18세기로 퇴행했다. 대통령은 왕(비)가 되었고 국회의원은 신하가 되었으며, 경찰청은 포도청으로, 국정원은 승정원이 되었다. 박근혜는 말한다. " 내가 조선의 국모다 ! " 오호츠크해 시밤바 같은 소리이지만 여전히 변치 않는 지지율을 보면 수많은 백성이 그리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 이 없어 !
-
경종은 장희빈 아들'이고, 영조는 무수리 아들이었다. 둘 다 숙종이 낳은 자식이나 母가 다르니 당연히 배다른 형제'다. 경종이나 영조가 모두 적통(嫡統)의 자식이었다면 별 문제는 없지만 경종은 사약 마시고 죽은 장희빈의 아들이고, 영조는 근본 없는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니 왕위 계승을 놓고 이익 세력 간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형인 경종이 왕위'에 오른다. 그런데 문제는 경종이 병약했다는 점이다. 경종은 제위 기간 내내 아팠다. 밥숟가락 놓고 침상에 누워 시름시름 앓고 있는 형을 보다 못한 영조가 입맛 돋우라고 간장게장과 감'을 진상했으나, 경종은 동생이 올린 간장게장(과 감)을 먹고 나서부터 계속 설사를 하다가 그만 죽고 만다. 1724년 10월 11일의 일이다.
형이 죽자 동생인 영조가 왕위를 계승하지만 주변에서는 동생인 영조가 간장게장에 독을 타서 형'을 죽였다는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 독살설 > 이 아니라 간장게장과 감'이다. 입맛이 없어서 밥숟가락 놓는 횟수가 빈번하던 경종은 왜 < 간장게장 > 과 < 감 > 을 맛있게 먹었을까 ? 혀에서 느끼는 맛은 크게 다섯 가지로 짠맛,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이다. 이 가운데 신맛은 음식이 부패했을 때 나는 맛이고, 쓴맛은 독의 맛이어서 몸은 즉각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이 맛에 익숙하려면 반복된 학습과 경험 축적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삭힌 홍어'에 환장하는 한국인은 없다. 이처럼 < 신맛 > 과 < 쓴맛 > 은 학습 효과에 의해 익숙해진다.
반면 < 짠맛 > 과 < 단맛 > 은 학습과 경험이 전무해도 몸은 즉각 받아들인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짠맛과 단맛을 좋아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영조는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 짠 게장 >> 과 << 단 감 >> 을 진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 간장게장은 밥도둑인가 ? 아니다. 간장게장이 맛있어서 밥을 더 먹는 게 아니라 간장게장이 짜기 때문에 밥을 더 먹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밥도둑 목록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우리가 짠맛을 선호하는 이유는 짠맛이 맛있기 때문이 아니라 신체가 나트륨을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며, 단맛 또한 몸의 에너지로 쓰이는 당을 생성한다는 데 있다. 게 딱지 위에 밥을 비벼 먹으며 뉴스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의 밥도둑은 게가 아니구나. 급식비를 못 낸 학생에게 급식비를 내지 않으면 밥을 굶으라고 했던 충암고는 감사 결과 편법을 동원하여 급식비를 4억 원 가량 과잉 청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감사에서 한 조리원은 “어떤 날은 식재료를 너무 많이 빼서 국거리가 모자라 조리가 안 될 정도였다”고 진술했는가 하면, 모 충암고 교사는 " 밥과 반찬이 다 떨어져가지고 급식당번을 하는 학생들이 이리저리 막 뛰어다니는 거죠, 음식을 구하려고. 조리실에도 가고 조리원들한테 가서 더 받아오고. 이게 하나의 풍경이었습니다. 거의 끝에 배식받는 아이들은 못 먹는 경우도 가끔 발생하고요. " 라고 말했다.
밥도둑은 바로 이런 놈들이다. 그리고 거대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밥그릇을 걷어찼던 재벌과 노동악법에 대해 팔 걷어부치며 동조했던 정부도 밥도둑인 셈이다. 게는 잘못 없다. 미안하다, 오해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