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왜 이래
남들이 안 볼 때 몰래 버리고 싶은 것 ? 지저분한 쓰레기나 병든 애완동물이 아니다. 기타노 다케시의 정의'에 의하면 그것은 " 가족 " 이다. 말에 뼈가 있는 소리이다(말에 살이 있다고 하면 이상하잖아). 대한민국은 지나치게 가족'이라는 가치를 과대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모든 문제는 < 가족 간 사랑 > 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니 가족 로맨스는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하지만 약의 효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과용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병원 처방전에 따라야지 효과 좋다고 한입에 열 알씩 털어 넣다가는 약물 과용으로 죽을 수도 있다. < 가족 - 치유력 > 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뛰어난 약효를 발휘하는 알약이 아니다.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은 대부분 가족 구성원이 중심이라는 점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행하는 희생 강요과 내정 간섭은 폭력'이다.
이제는 한국 사회도 가족이라는 가치를 과소평가해야 할 때가 왔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한쪽으로 너무 높이 치솟은 불균형을 균형이 잡히도록 바로잡자는 의미에서 과소평가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리이니까. 이제는 가족끼리 너무 붙어 있지 말고 어느 정도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찰떡 같이 붙다 보면 나중에는 개떡이 된다. 심각한 가정 불화 가운데 상당 부분은 부부 간 관계보다는 시댁과의 불화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가족 바깥 세력(부부 관계 이외에는 모두 바깥 세력이다)이 가족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불화의 주범인 외세(外勢)와 잠시 결별할 필요가 있다. 화난 어조로 " 가족끼리 왜 이래 ? " 라는 말은 폭력이다. 가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정은 공동생활이 이루어지는 최소 단위이다. 그리고 사회생활의 연장선이다.
그렇기에 가족 구성원의 사적 영역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sbs 오락 프로그램 동상이몽이 논란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딸에게 과도한 스킨십을 시도하는 아버지가 방송을 탄 모양이다. 내용인 즉 : 고등학생인 딸이 아버지의 과도한 스킨십(포옹, 키스 요구, 허벅지 만지기, 침대에 함께 눕기 따위) 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얼굴에 " 가족끼리 왜 이래 ? " 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본인 입장에서는 < 애끓는 가족 로맨스 > 일 뿐인데 딸이 < 에로스, 가족 로맨스 > 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서운한 모양. 그런데 이 아버지가 내뱉는 항변을 듣다 보면 착각도 유분수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스킨십이 딸을 향한 극진한 부성애 표현이라는 말은 " 미이즘(me-ism) " 에 불과하다. 자기중심주의 사고'다. 설령, 그러한 스킨십이 백 퍼센트, 레일, 진짜, 오리지날 부성애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쾌하다면 그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는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타자의 입장에서 불쾌를 공감할 필요가 있다.
딸이라서 만진다는 말과 딸 같아서 만졌다 라는 말은 다른 듯하지만 본질은 같은 말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캐디와 피가 섞인 딸은 모두 타자의 몸이다. 내 몸이 아닌 이상은, 내 핏줄이라 하더라도 타자의 몸이다. 그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가 이 방송을 보고 나서 짧은 감상평을 날렸다. 자기는 조카가 귀여워서 자주 만지는데 커서 거부하면 슬플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 커서 삼촌의 스킨십이 싫다고 할 때까지 자신은 꿋꿋이 만지겠다는, 핏발 선 넋두리였는데 그 결연한 의지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시바. 왜 사니 ? 라고 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