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 캐처 그리고 서울여대
올해 초, 개봉된 영화 중에서 인상 깊게 본 영화'가 << 폭스 캐처 >> 다. 납처럼 무거운 분위기와 멜랑꼴리한 중독성'을 원한다면 추천한다(네이버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를 이용하시길 !). 레슬링 선수 마크 슐츠'는 자신을 지지하며 후원을 아끼지 않는 백만장자 죤 듀폰'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영화적 배경이 대한민국이었다면 "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 운운하며 레슬링 유망주를 발굴하는 모집 광고를 냈을 것이다. 마크 슐츠에게 존 듀폰'은 상징적 아버지'다. 그에게 존 듀폰은 자신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대상이다. 말 그대로 스폰서인 셈'이다.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는, 애비는 있으나 애비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고아 신분을 벗어나 존 듀폰의 가족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에게는 서자에서 로열패밀리로 진입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동성애적 뉘앙스가 풍기는 끈끈한 남성 동맹 brotherhood 은 계급 진입 장벽에 부딪친다. 존 듀폰은 마크 슐츠가 성적이 부진하자 냉정하게 돌아선다. 동료애를 빗댄 동성애'는 결국 애증으로 변질된다.
그들은 모두 인정 욕구에 시달리는 꼬마 한스'요, 레슬링 훈련장은 인정 투쟁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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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여대는 축제 분위기를 잡친다는 이유로 파업 중인 청소 노동자의 현수막을 쓰레기 봉투에 담았다. 축제 며칠이 노동자의 간절한 밥줄보다 중요하다?!
서울여자대학교 총학생회'가 미관상 흉물스럽다는 이유로 학내에서 파업 중인 청소 노동자들이 내건 현수막을 일방적으로 철거한 사건을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영화는 공교롭게도 << 폭스 캐처 >> 였다. 왜 느닷없이 이 영화가 떠올랐을까 ? 서울여대 총학생회'는 1년에 단 한번 있는 축제를 위해서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고는 하나, 검은 쓰레기 봉투에 현수막을 담아 학내 청소 노동자 사무실 앞에 버려둔 짓을 두고 양해 운운하는 것은 뻔뻔한 일'이다. 총학생회는 이 사건 이전(경비 노동자 해고 문제)에도 약자보다는 강자의 편에 서서 핸드마이크 역할을 하곤 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아아, 마이크 테스트. 그들은 성능 좋은 핸드마이크에 대고 경비 노동자에게 훈수를 둔다. 냉철한 논리와 강한 어조가 섞인 명문이다.
<< 노동조합에 대한 총학생회의 입장 >> 이란 글에서 " 민주노총 외 다른 노동조합 및 무노조인 경비 노동자들은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고 있지 않다. 이 분들은 자신들이 소리를 내는 것이 그동안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도 있도록 해준 학생들과 학교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라고 입장을 표명한 후 " 일부 노조가 지금까지 우리 학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사람들로 하여금 학교는 타도의 대상이며, 학교에 반대하는 것만이 정의인 듯 여기게 만드는 점이 매우 개탄스럽다 " 면서 " 서울여대분회는 '통합 경비 시스템'을 반대하는 이유가 학교와 학생을 위해서인지 노조를 위해서인지 그 행보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 고 엄중 경고한다. 제목을 읽지 않고 바로 본문부터 읽었다면 사학 재단의 강경한 입장 표명처럼 들린다.
윤흥길의 소설 << 완장 >> 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총학생회는 반론을 제기하는 글에 대한 댓글로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편다. "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학교에서 일하는 인턴의 임금보다 노동자 분들의 임금이 많은 것은 알고 있느냐 " 이 문장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이 태도는 누가 봐도 <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기는 자세 > 다. 대학을 졸업해도 대학 청소하는 노동자'보다 못한 임금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현실을 청소 노동자와 연결하려는 속내는 과연 합리적 논리'일까. 육체 노동자'가 대학을 졸업한 사무직 노동자'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 과연 불합리한 노동 구조일까 ?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는데, 총학생회는 약자와의 연대는커녕 강자의 하수인처럼 행동한다. 글을 읽다 보면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디오피아 난민이 미국의 비만을 걱정하는 꼴이다.
블루 칼라가 화이트 칼라'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 나라는 수두룩하다. 총학생회는 한국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계급 차별을 당연시한다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보다 적은 연봉을 받아야 하는 사회적 차별에 대해서도 침묵해야한다. 졸라 쪽, 팔린 태도'다. 이런 태도는 백만장자인 아버지에게 잘보이려고 온갖 알랑방귀'를 뀌다가 좆된 레슬러'를 떠올린다. 그들은 같은 계급을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선망하는 지배 계급에게 투표를 한다. 가난한 유권자가 부자를 대변하는 정당에게 투표하는 심리와 동일하다. 논란이 되자 총학생회는 중립을 지키겠다는 자세이지만, < 중립 > 이란 지배 계급이 퍼트린 논리'다. 1%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중립이 아니라 편애'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예수야말로 조건 없이 무조건 사회적 약자 편에 섰던 성인이 아니었던가 ? 누군가 말했다. 갈라진 두 편 사이에서 어느 한 편을 지지해야 된다면 무조건 약자 편을 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총학생회는 자신의 레벨을 청소 노동자와는 다른 계급이라고 인식히지만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다. 같은 계급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손톱 밑 죽은 살(굳은살)을 뜯어내다 보면 이내 생살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한다. 하지만 이 깨달음은 항상 늦다. 피를 보아야 깨닫게 되는 통증이니 말이다. 청소 노동자 문제는 자신과 상관 없는 " 죽은 살 " 이 아니다. 여자가 남자의 미래'라면, 청소 노동자 문제는 바로 당신의 미래'다. 제이크 폭스'라는 야구 선수'가 있다. 그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던 저니맨(journey man)이었다. 2003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전체 73순위로 시카고 컵스에 포수로 지명됐다가 방출된 그는 3개 나라 19개 팀을 전전했다.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 멕시칸리그와 도미니칸리그를 떠돌다가 꼴찌를 밥 먹듯 하는 한화에 둥지를 틀었다.
그가 떠돌이 생활을 한 이유는 단 하나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다. 취재진이 "폭스는 생계형 타자인가"라고 묻자 김성근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가 올해 받는 연봉은 12만 달러'다. 외인 용병 가운데 가장 낮은 연봉'이다. 나는 그를 지지하기 위하여 한화를 응원하기로 했다. 이유는 없다. 계급 투표일 뿐이다. 가난한 노동자가 가난한 생계형 노동자를 지지한다는 데 무슨 놈의 중립이고 이데올로기'란 말인가. 제이크 폭스가 처음 맡은 보직은 포수였다고 한다. 어쩌면 서울여대 총학생회의 태도를 보다가 느닷없이 떠오른 것은 영화 < 폭스 캐처 > 가 아니라 < (제이크) 폭스 캐처 >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처는 포수를 의미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