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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한공주
이수진 감독, 정인선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한공주 , 그 후 : 꼬리치는 당신

사람들은 성범죄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들은 제일 먼저 짐승만도 못한 범인 얼굴을 공개하라는 요구'한다. 악마에게 인권은 없다는 주장이다. 저런 놈은 인권이고 나발이고 광화문 거리에서 공개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인권 운운하면서 사형 제도'는 야만적이라고 했다가는 " 씹선비 " 라거나 " 꼴페(꼴통 페미니스트) " 라는 소릴 듣기 십상이다. 이 자리를 빌려 누누이 고백했지만, 내 정치적 스펙트럼과는 달리 사형 제도'를 적극 찬성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휴머니티'에 대한 기대가 없을 뿐더러 참회'라는 감정 소모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공지영 소설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을 읽었을 때, 공지영을 향해 느꼈던 철없는 소녀 감성에 대한 혐오감은 내가 삐딱하게 나아가면 " 일베 " 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에서 고마운 소설이었다.
아무개가 나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속지에 " 낭만 좌파 " 라는 문장을 남겼던데, 내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았다면 그런 소리는 못할 것이다. 나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고, 쪽파도 아니고 대파도 아니다. 그리고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고 박근혜 지지자'도 아니다. 다만 내가 속한 계급'을 지지할 뿐이다. 가난하니까 가난한 자를 지지하고, 노동자이니까 노동자를 지지할 뿐이며, 주저흔을 남긴 사람에게 연민을 느낄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새누리당 지지자를 경멸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여튼, 누군가의 목숨을 가져갔다면 자기 숨퉁을 내놓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참회고 나발이고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이다. 인간이 저지른 일을 두고 신이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내정간섭이다.
범죄자의 얼굴'을 궁금했던 적은 없다. 얼굴을 공개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사건이 잊혀지고 나서, 그러니까 세월이 흐르고 나서의 얼굴은 궁금하다. 사건 발생 후 10년, 20년, 30년, 40년 후...... 가끔 <<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 가해자 얼굴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사건 발생 10년이 지났으니 가해자들은 얼추 20대 중후반이 되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알고 있는 내막보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잔인한 사건이었다. 영화 << 한공주 >> 에서는 가해자들이 수면제를 먹인 후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집단 강간을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는 쇠파이프로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킨 다음에 여인숙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다. 그때 여인숙에 모인 가해자는 12명이었고 피해 여성 나이는 고작 14살이었다. 성폭행은 1년 동안 지속되었다. 누군가가 이 장면을 촬영했고 이 동영상은 인터넷에 유포되었다.
경찰은 사건 가담자 수가 44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44명 이외에도 많은 청소년이 이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니까 14살 여자아이를 죄의식 없는 청소년들이 1년 동안 수없이 성폭행을 저지른 것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흐지부지 끝났다. 지방 유지 부모를 둔 덕에 가해자 모두는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 선에서 처벌을 받았다. 적극 가담자 몇몇은 소년원(소년원은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다. 이 사건은 지역 불량 써클 조직인 << 밀양연합 >> 에서 주도했다. 소년원에 간 가해자는 3명이었고 나머지는 훈방 조치'였다) 으로 갔고, 나머지는 학교에서 3일 간 봉사 활동을 하는 선에서 끝났다. 사건이 마무리되자 밀양연합 써클은 자신들의 무사태평을 자축하기 위해 술 파티'를 벌였다. 사진 속 가해자들은 모두 술잔을 높이 들며 웃고 있었다.
그 밑에는 " 수고하셨습니다 형님들 " 이라는 자막이 삽입되어 있었다. 반성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이 사건은 자랑스러운 " 훈장 " 이었다. 쇠파이프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고, 집단 강간을 하고, 금품을 빼앗고, 피해 여성 음부에 성인용품을 강제로 삽입해서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으며 낄낄거렸던 것에 대한 국가 권력의 처, 처처처절한 응징'이었다. 지금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 그 후, 몇몇 소식은 들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피해 여성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일일 근로'로 간신히 생활하고 있고, 밀양연합 써클과 어울렸던 한 여성은 7년 후 경찰이 된다. 그녀는 사고 발생 시 가해자 미니홈피에 피해자 여성을 조롱하며 " 좆도 드럽게 못생겼드만, 하여튼 수고했다 ㅋㅋㅋ " 를 남기기도 했다.
여기서 " 좆 " 은 " 졸라 " 를 의미하는 욕이 아니라 말 그대로 여성 성기'를 지시하는 명사였다. 같은 여성으로써 상처받은 자궁에 대한 연민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시민 단체의 항의로 그녀는 대기발령되었으나 2주 만에 다시 경장으로 승진했다. 어떤 이는 아버지의 돈으로 근사한 카페를 차려 카페 사장이 되기도 했고, 대기업에 취직한 이도 있었으며,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 이도 있었고, 밝은 미래를 꿈꾸며 유학을 떠난 이도 있었다. 권선징악이 아니라 권악징선'이 된 셈이다. 이 피해 여성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조롱과 혐오가 대부분이었다. 이 여성 혐오를 단순히 작용-반작용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 피해 여성이 꼬리치고 다니니까 가해 남성이 불끈, 발기한 것일까 ?
대한민국은 남녀평등사회'가 아니다. 여성 혐오는 여권이 신장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정서가 아니라 유교적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기형적 괴물'에 가깝다. 긴 말 하지 않겠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이 터진 후 밀양 지역 시민에게 이 사건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다. 설문에 응한 응답자 가운데 64%가 여학생이 잘못했다고 대답했다. 성폭행의 주 원인으로는 가정 교육이 형편없는 가정에서 자라서 행실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가해자 부모는 한 인터뷰에서 여자애가 꼬리를 쳐서 벌어진 일이라며 사고 책임을 피해 여성에게 돌렸고, 가해자 가운데 대부분은 피해 여성이 섹스를 즐겼다고 대답했다. 그들에 의해 행실이 나쁜 여자가 된 피해자는 수면제 20알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으며 그 후로도 몇 번 더 자살 시도를 했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36%의 가해자와 64%의 남성 중심적 사고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남성에 의한 강간 사건은 하루 44.3건이며 시간당 1.8건이 발생한다. 가해자 가운데 상당수는 피해 여성이 즐겼다고 대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