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에서...
티븨에서 의사와 교수가 단체로 나와서 멘토 짓을 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되면 잽싸게 채널을 돌린다. 모 대학 정치학 교수는 종편을 종횡무진한다. 아침 먹고 반짝, 점심 먹고 반짝, 저녁 먹고 반짝 !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니 인기 연예인 못지 않게 스케쥴이 빡빡할 것이다. 그래도 이 사람은 정부 앞잡이는 아니어서 쓴소리를 곧잘 하는데 신뢰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 교수는 정치평론가라는 직함과 함께 현역 교수라는 점이다. 내가 이 사람에게 궁금한 것은 학교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까 라는 의문이었다. 아침부터 방송국에 들락날락거리는 사람이 대학 강의를 제대로 할 리 없다. 궁금하여 이름 석 자 치고 찾아보니 그 대학 학생이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을 발견했는데 온통 불만투성이'였다. 휴강을 남발하고, 시간 강사 불러서 수업 채우고, 리포트 제출로 대체한다는 것. 1000만 원 등록금을 세대가 보기엔 이런 교수는 염치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 정치를 진단하고 호통을 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다. 티븨를 보다 보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자칭 전문직 종사자를 자주 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100% 가짜'다. 의사와 교수가 있어야 할 곳은 방송국 스튜디오가 아니라 병원과 대학이다. 마찬가지로 목사가 있어야 할 곳도 예배당이지 방송국이 아니다. 기본 자세도 안된 사람들이 나와서 멘토랍시고, 힐링 전도사랍시고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면 역겹다. 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직업은 " 목수 " 다. 예수도 목수였으니 이 직업은 실로 오래되었다. 목수는 결을 거스리지 않는다. 결대로 대패질을 하고, 못이 들어갈 자리를 미리 살핀다. 왜냐하면 못이 박힐 자리는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좋은 목수는 나무를 자르기 전에 다시 한번 길이를 잰다고 한다. 예수 또한 나무를 자르기 전에 다시 한 번 길이를 재지 않았을까 ?
대한민국은 " 기술 " 을 단순히 남들보다 빨리 일을 처리하거나 볼거리가 화려한 사람을 실력이 뛰어난 기술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들 때 현란한 손동작으로 쉐키 쉐키 쉐키'를 한다고 해도 칵테일 맛이 떨어지면 칵테일 쇼는 " 지랄 " 에 불과하다. EBS에서 방영되는 << 극한 직업 >> 이 SBS에서 방영되는 << 생활의 달인 >> 보다 뛰어난 점은 노동을 단순히 볼거리나 속도 따위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을 품평하자면 << 생활의 달인 >> 이 오징어라면, << 극한 직업 >> 은 원빈이요, << 생활... >> 이 각하의 음성이라면 << 극한... >> 은 문재인의 음성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좋은 목수의 기준은 현란한 못 박기, 나무 빨리 자르기 따위가 아니라 자르기 전에 다시 한번 길이를 확인하는 꼼꼼함에 있다. 그 아무리 나무를 빨리 자른다고 한들 치수를 잘못 재면 도로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 된다.
좋은 정치'란 좋은 목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순리에 어긋나지 않게 결대로 대패질을 해야 하고, 못이 박힐 자리를 꼼꼼하게 살핀 후 나무의 저항을 계산하는 것. 그리고 자르기 전에 다시 한번 길이를 재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정치가가 배워야 할 대상은 노무현이나 김대중의 유훈 정치가 아니라 목수가 나무를 다루는 방식이다. 대한민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군사 독재를 견재하느라 재벌 독재를 막지 못했고, < 민주화 > 가 " 민주주의의 과정 " 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 민주주의의 완성 " 이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치수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 없이 섣불리 나무를 잘랐고, 못이 박힐 자리를 확인하지 않은 채 못질을 하다가 나무의 저항을 받아 못이 튕겨나간 꼴이 되었다. 톱질도 엉망이었고, 못질도 형편없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집권한 후 민주주의는 과거로 " 인터스텔라 " 했다. KTX보다 빠른 광속으로 말이다. 또한 바늘 구멍보다 좁은 취업 전쟁은 20대를 보수화시켰다. 애늙은이'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은 행동하지 않는다. " 내 일 " 만 한다. " 네 일 " 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 " 내일 " 이 없는 것이다. 모두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대체로 추세가 그렇다는 소리.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이들은 이런 " 히마리 " 없는 20대를 겨냥해서 20대 개새끼론을 퍼트렸지만, 이 말은 절반은 옳고 절반은 그르다. 왜냐하면 20대만 개새끼가 아니라 30대도 개새끼이고, 40대도 개새끼이며, 50대도 개새끼이고, 60대도 개새끼'이기 때문이다. 똥 묻은 개가 똥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다. 너나 잘할 필요가 있어요. 영화도 빠르게 보수화가 진행되고 있다. 박근혜 집권 이후 흥행 돌풍을 몰고 온 영화들은 대부분 충효와 연관이 있다. << 수상한 그녀 >> 가 내포하는 메시지는 진부한 모성의 답습이다. 여성의 성적 욕망보다 중요한 것은 모성 본능'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여성은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만 진정한 여성이 된다고 가르친다. 반면 << 명랑 >> 은 " 국민 아버지 " 인 이순신을 호명해서 명량하지 않은 명랑의 다이하드'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
옛 조상이 피와 땀을 흘린 대가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모르면 ? 그렇다, 호로 자식'이제 ! 영화를 보고 나면 남는 것은 어르신에게 잘하자, 이다. 모르면 원숭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호로 자식이 된다. 끝으로 << 국제시장 >> 은 노골적인 박정희 향수를 건드린다. 이 영화는 흥남부두,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 전쟁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같은 신파를 적극 끌어들였지만 " 그때 그 시절 " 에 대한 " 그땐 그랬지 " 로 전락하고 만다. 영화를 보고 나면 << 포레스트 검프 >> 의 최루 버전'을 본 느낌이 난다. 가슴 아픈 한국 현대사'는 5,60년대 유행했던 스크린 프로세서'用 화면으로 작용한다. 역사적 배경과 인물이 따로 논다는 말이다. 황정민은 스크린 앞에서 연기를 하고, 스크린에서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흥남부두가, 독일 탄광 막장이, 베트남 전쟁터 화면이 스펙타클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물과 기름 같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 영화는 새누리당 지지자가 좋아할 만한 모든 미덕을 갖춘 영화'다. 산업화 세대에 대한 예찬과 가난한 시절에 대한 향수를 그린다. 이러한 감성팔이 영화들이 대중으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복고 취향이 아니라 퇴행'으로 보아야 한다. 가족 간 핏줄'보다는 노동자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대중 영화가 강박적으로 가족이라는 핏줄과 향수에 빠진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가족이 해체 위기에 빠졌다는 점을 말해준다. 흔히 사람들은 위기에 빠진 가족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가족뿐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가족을 복원할 수 있는 것은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바른 정치와 제도'이다. 대한민국 노동 시장은 이제 저임금 중노동으로 재편되었다. " 나인 투 파이브 " 는 이제 " 나인 투 나인 " 이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모든 노동이 극한 직업이 되었다.
대한민국 보수는 성공했다. 재벌은 성공했고 노동자는 실패했다. 이제는 아무도 노동자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잔인한 4월, 바다 속으로 침몰한 것은 세월호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도 침몰했다. 대한민국 다 족구하라 그래라. 축구 싶냐. 농구 있다. 야구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