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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선생님, 더 이상 일기를 못 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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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0월 25일, 앙리에트 벵제는 세상을 떠난다. 그녀 나이 여든네 살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1977년 10월 26일부터 메모지에다 그날그날 단상을 적는다. 남자는 날마다 한 여자를 애도한다. 그가 애도하는 대상은 바로 어머니다. 앙리에트 벵제는 롤랑 바르트의 어머니'다. 이 쪽지 글을 모은 책이 << 애도일기 >> 다. << 애도 일기 >> 는 정확히 말하자면 " 일기 " 라는 형식을 빌려 죽은 어머니를 애도했다기보다는 " 메모 " 라는 형식을 빌려 죽은 어머니를 애도했다고 보아야 한다. 손바닥만한 낱장에 단상을 적었으니 말이다. 읽다 보면 기분이 장마철 창문에 걸린 커튼처럼 눅눅하다. 손에 힘을 주어 짜면 책에서 소금기 먹은 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만 같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 죽은 자를 애도한다는 것, 산 자가 죽은 자를 잊지 못해 한숨을 글로 적는다는 것, 더군다나 죽은 어머니를 애도하는 아들이 쓴 글을 읽는다는 것은 독자로서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일이다. 누군가 이 책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 내용이 짧고 종이 여백은 길다 " 는 지적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를 패로디한 문장인가 ? 날짜별 일기가 대부분 내용이 짧아 페이지 여백이 많다 보니 당연히 페이지 수는 늘어날 테고, 늘어난 페이지는 곧 책값 인상으로 이어지니 소비자인 그가 보기에는 이 여백은 출판사가 부리는 " 꼼수 " 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만약에 날짜별로 " 페이지 나눔 " 을 하지 않고 " 칸 나눔 " 으로 내려쓰기를 해서 여백 없이 빡빡하게 책을 구성했다면
나는 오히려 그 사실에 대해 불평이 담긴 100자평을 남겼을 것이다. " 닝기미, 그깟 종이값 하나 아끼겠다고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짓입니까 ?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확 펼칩시다 ! " << 애도 일기 >> 에서 여백은 쉼표와 같다.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신파 영화에서 엔딩 크레딧'을 길게 끄는 것은 관객을 위한 배려'다. 눈물을 닦을 시간이 필요하니깐 말이다. 건방지게 말하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일기장은 " 딱 " 두 부류로 나뉜다. 날짜가 바뀌면 다음 페이지에 일기를 적는 페이지 나눔 형식과 페이지를 나누지 않고 아래 칸에 내려쓰기 형식. 선택은 개인 취향에 따라 자유이나 여백이 없는 일기장은 일기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기록장( 혹은 가계부?!) 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
그런 식으로 일기를 쓰는 사람은 롤랑 바르트보다는 이명박에 가까운 째째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 이 인간이 일기를 썼을 것 같지는 않지만... ) 일기와 기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일기 속 " 여백 " 과 " 짧은 글 " 은 다른 형식의 글쓰기와는 다르다. 일기장에 남긴 여백은 글을 쓰지 않아서 생긴 공간이 아니라 글씨가 보이지 않은 연필심으로 쓴 결과일 뿐이다. 일기장 속 여백은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짧은 글도 마찬가지'다. 일기에서 짧은 글은 ( 적을 내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 너무 복잡한 심경이어서 그 심란한 마음을 글로 길게 풀어쓸 힘이 없을 때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이 일기에 " 오늘은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다 " 라고 짧게 썼을 때, 우리는 그날 이순신이 느꼈을 복잡한 심경을 읽을 수 있다.
롤랑 바르트의 << 애도 일기 >> 에서 가장 격렬했던 날은 1978년 6월 12일에 쓴 매우 짧은 일기였다. " 격렬한 슬픔의 습격. 울다 " 사람은 기분이 좋으면 말과 글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격렬한 슬픔 앞에서는 말과 글이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우울과 애도로 인해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비단 " 웃음 " 만이 아니다. " 표현(표정)을 잃어버리는 것 " 이야말로 우울과 애도가 가지고 있는 뼈아픈 본질'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롤랑 바르트는 우울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다. 전매특허가 된 롤랑 바르트식 짧은 단상'는 어쩌면 우울한 기질이 만든 필연적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일본 문화를 다룬 에세이 << 기호의 제국 >> 에서 롤랑 바르트가 " 하이쿠 " 에 대해 관심을 보인 이유는
하이쿠 형식이 " 간결성이 완벽성을 보장하며 단순함이 심오함을 입증해주는 인상 ( 의미로의 침입, 91쪽 ) " 에 있다. 돌이켜보면 롤랑 바르트가 쓴 글은 묘하게 하이쿠와 닮은 구석이 있다. 그에게 있어 하이쿠는 생략과 부재 그리고 무의미가 만들어 낸 것은 풍부한 주석과 명징한 주체성 그리고 선명한 의미이다. 짧지만 강렬하다는 면에서 하이쿠와 푼크툼은 닮았다. 이 주장에 대해 믿지 못하겠거든 변명 따위는 하지 않겠다. 대신 바쇼의 하이쿠 하나 소개하련다.
내가 아는 사람은 어릴 때 일기를 열심히 썼다고 한다. 그가 전한 성장통'은 다음과 같다 : 아이는 일기를 열심히 썼다. 선생님은 빨간 색연필로 일기장에 꼬박꼬박 답글을 달았다. 일기를 바르게 쓰는 요령이 아닌 소소한 일상에 대한 찬양에 대하여 ! " 오늘은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었구나 ? 어이쿠, 얼음과자 많이 먹으면 배탈나요. ^^ " 아이는 선생님이 쓴 답글'을 보고 다시 일기'를 썼다. 아이는 선생님이 자기에게만 들려주는 귀엣말이 좋았던 것이다. 아이는 선생님에게 더 많은 사랑받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일기를 썼다. 날이 지날수록 내용은 점점 길어졌지만 선생님은 늘 한결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일기장을 펼쳐 놓고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그리고는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대신 " 선생님에게 ..... " 로 시작하는 편지'를 일기장에 썼다.
사랑하는 샘 !
미안해요. 이젠 일기를 더 이상 쓰지 못할 것 같아요. 저에게도 사춘기가 오려나봐요......
나는 이 짧은 사연 속에 일기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 모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사춘기가 다가오자 아이는 더 이상 샘에게 관심을 받기 위한,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일기'를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비밀을 간직하는 순간 사춘기는 시작되는 것이니깐 말이다. 샘은 어떤 답글을 남겼을까 ?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오늘도 비가 온다. 볕을 보지 못한 창가 커튼이 눅눅하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45773 ㅣ 러브레터 : 애도와 우울
덧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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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금이다. 손금에 그려진 꽃은 벗꽃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이 벽화 그림 제목은 " 굿나잇 " 이었다. 도배를 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아서 4B연필로 그렸다. 색을 입히기로 결심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사방 벽( 심지어 천장까지도! ) 을 모두 그림으로 채울 생각이었으나 그것마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옛 애인은 이 그림 제목을 무척 싫어했다. 바람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집에 이사를 온 사람은 이 그림을 보고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오자마자 새로 도배를 했다고 ! 집주인이 내게 전화를 해 도배 비용을 요구했으나 나는, 생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