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
心 : 마음 심
산부인과 병원 실수로 신생아가 바뀌는 일이 벌어진다. 두 여자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다. 운명이 바뀌니 삶도 바뀐다. A와 B 모두 부잣집이거나 가난한 집 딸이라면 운명은 팔자려니 하며 살 텐데, 한쪽은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한 집이고 다른 한쪽은 넓은 정원이 딸린 청담동 부잣집이다. 오래 전에 상영된 mbc 주말 연속극 << 반짝반짝 빛나는 >> 이야기다. 가난한 집 딸 이름은 금란이고, 부잣집 딸 이름은 정원이다. ( 정원 딸린 집에 살아서 정원이라고 기억하면 쉽다. ) 금란은 억울할 터 ! 금란이 보기에 정원은 자기 삶을 빼앗은 도둑이다. 정원이 걸친 명품 핸드백, 명품 구두, 유명 브랜드 옷은 사실 금란의 것이 아니었던가 ? 뿔, 따구’가 날 만하다. 그
래서 바꾸자고 제안한다.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금란은 정원네'로, 정원은 금란네'로. go, go. go ! 금란이 보기에 정원의 구김살 없는 예쁜 얼굴은 전적으로 돈 걱정 없이 산 배경 탓이다. 아, 이제 금란도 불행 끝 행복 시작. 눈썹과 눈썹 사이에 새겨진 부정 < 川 > 자가 긍정 < 三 > 자‘로 바뀌리라. 호, 호, 호. 그런데 川 자를 옆으로 쓰러트리기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가난한 집 둘째 딸로 태어나 28년 동안 가난하게 산 (불행했던)금란’은 사모님 딸로 신분이 상승되었지만 여전히 이마엔 川 자가 짙게 그려져 있다. 환경이 180도 바뀌어도 그녀는 욕심 많은 여자이고, 나쁜 여자이며, 불행한 여자로 살아간다. 구김살이 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구겨진다. 이 정도면 장밋빛 인생이라는 애초의 설계에서 한참을 벗어난 궤도이탈이다.
반면 남의 운명을 산 덕에 28년 동안 부유하게 산 (행복했던)정원‘은 가난한 밥집 아줌마 딸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행복하다. 환경이 180도로 바뀌어도 그녀는 긍정적인 여자다, 착한 여자이고, 예쁜 여자이다. 갑에서 을이 되었지만 여전히 할 말은 하고 사는 여자이다. 그러니깐 정원이 가지고 있는 밝은 기운은 환경 때문이 아니라 바탕 자체가 착한 데서 비롯된 기운이다. 드라마는 행복한 삶이란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이 행복한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은 결정된다, 고 말한다. 부와 명예가 행복을 줄 것 같지만 “ 마음씨 고약한 금란 씨 꼬라지를 보셔셔셔셔요. ” 지긋지긋하게 듣는 < 마음먹기에 따라서 - 論 > 이다.
이 말은 불교 유심 사상‘에 바탕을 둔다. 혜민 스님이 방긋 웃으면서 만날 하는 소리가 유심론이다. 맞벌이하느라 아이와 눈으로 스킨쉽하기 힘들죠 ? 해결책은 간단하답니다. 1시간 일찍 일어나서 아이와 웃으면서 말해요. 니체라면 유심론을 노예근성이라고 욕했을 것이다. 몸이 힘들면 제일 먼저 생기는 것은 짜증이고,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은 웃음이다. 맞벌이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쳤는데 1시간 일찍 일어나 아이와 놀아야 한다면, 과연 웃을 수 있을까 ? 스피노자와 니체는 단연코 아니라고 할 양반들이다. 사실 <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가르치는 속내 > 를 들여다보면, 이 발화‘는 지배 계급이 가난한 노동자 계급을 달래기 위해 어르는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는다.
< 반짝반짝 > 드라마 작가’가 금란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혜민 스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금란아, 행복은 부와 명예 따위의, 좋은 환경을 취득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정원이를 보렴 ! 정원이 없는 집에 살지만 정원이 있는 집에 살았던 시절처럼 행복하게 살잖니. 가난하지만 행복하잖아. 사람들에게 사랑받잖아.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 행복을 위해서 돈은 지나가는 개에게 줘버렷, 정신차렷, 열중쉬엇 ! 앞으로 나란히, 뒤로 굴럿, 무릎 꿇고 일어섯. 어섯 !!!! ”
시청자 : ( 이구동성 감동의 박수삼창 ) 짝, 짝, 짝 !!!
그런데 정말 그럴까 ? 정원은 바탕 자체가 긍정적인 여자라기보다는 28년 동안 누린 좋은 환경과 교육을 받았기에 긍정적인 여자로 성장한 것이다. 가난은 얼굴에 어두운 그늘’을 새기는 법이고, 풍요는 활짝 웃는 방법을 알려주는 기술자다 ! 마음먹기‘는 행복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지배 계급’은 언제나 전부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발악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팜므파탈인 금란을 응원했다. 갖은 악행을 다 저지르지만 그래도 금란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잘빠진 빽그라운드‘가 금란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지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뭐, 다들 아시다시피 결과는 정원이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났다. ( 이 드라마는 딱 1/3 까지만 좋았다. 나머지는 욕심을 부리다가 좆됐다. )
" 국익이란 국가의 이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급의 이익'을 말하는 것 " 이라는 김규항의 지적처럼, 사실 통념은 지배계급이 안정적 시스템 유지를 위해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지배 계급은 최저임금제 100원 인상하는 데에는 손을 벌벌 떨면서, 대중의 우민화 작업에는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알 수 없는 종족이다. 혜민이나 김난도에게 속으면 안 된다. 마음먹는다고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다.
속으면 안 된다.
1) 마음은 만물의 본체라는 주장은 불교 유심 사상에서 파생된 개념이다. 이 주장을 일상의 처세술에 대한 답으로 둔갑시키면 전혀 다른 뜻이 된다. 지배계급은 교묘하게 이 개념을 민중의 우매화 작업을 위한 선전도구로 사용한다.
2)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이 불만 없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기를 바란다. 폭동이라도 일어난다면 자신들에게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중을 어리석은 상태‘로 만들 필요를 느낀다. 드라마’는 그 좋은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