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뒤의 얼굴은 인간이다.
MBC 주말 오락 프로그램 < 진짜 사나이 > 가 대중들에게 " 인기 " 있는 방송이 되었을 때, 나는 " 공포 " 를 느꼈다. 군 문화를 찬양하는 나라치고 정신이 제대로 박힌 나라를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군대 무용론을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연예인을 동원해서, 지상파 방송 카메라를 동원해서, 군대 문화를 미화하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군 문화를 오락거리로 미화하는 방식에 대한 언론 비판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내가 < 진짜 사나이 > 를 신랄하게 비판했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오락은 오락일 뿐 오해하지 말자고 말했다. 하지만 둑은 언제나 작은 균열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무너지는 법이 아닌가 ? 웃자고 시작한 일에 나중에는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 된다. 單刀直入的(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 진짜 사나이 > 는 < 가짜 사나이 > 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 단도직입 " 을 한자로 풀면 單刀直入이다. 무시무시한 뜻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칼(단도)을 들고 적을 찌르기 위해 곧장 쳐들어간다는 뜻이다. 군대를 4자로 정리하자면 < 단도직입 > 이다.
< 리얼 다큐 > 라는 제목을 달고 방송되는 지상파 오락 방송 프로그램에서 " 리얼 " 과 " 다큐 " 는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수많은 스텝들이 카메라 뒤에서 피사체를 따라다니는 마당에 진짜 " 리얼 " 을 뽑아내기란 불가능하다. 착한 척할 뿐이고, 예쁜 척할 뿐이고, 다정한 척할 뿐이다. 리얼이 아니라 리얼을 가장한 콩트'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연예인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캐릭터 연기를 한다. 샘 해밀턴은 구멍 병사 연기를 하고, 박형식은 먹방의 신을 연기하며 무조건 황홀한 표정을 선보인다. 연예인 중심 리얼 버라이어티'만이 아니다. 일반인이 출연하는 < 짝 > 이나 < 인간 극장 > 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출연자는 자기 검열을 작동시킨다.
그것은 마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담임에게 일기장 검사를 받아야 하는 ) 초등학생 일기장과 같다. 그 일기장에 거짓을 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쓰는 것도 아니다. 방송용 카메라에 찍힌 영상은 골목길 CCTV에 찍힌 영상이 아니다. < 진짜 사나이 > 는 병영 체험을 통해 용기, 전우애, 애국심, 극기 따위를 말하지만 군대를 나온 사람은 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묘사하는 전우애 따위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조작'인가를 잘 알고 있다. 체력 테스트에서 낙오될 위기에 처한 샘 해밀턴을 위해 동료 병사들이 그와 함께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해서 단체로 진급 테스트 탈락 위기에 놓인 에피소드는 쌍욕이 나올 만큼 천박한 기만이었다. 그러한 전우애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일 뿐이다.
그 장면을 보며 박수치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시청자는 아이들과 여성. 그리고 군대에 간 적 없는 남성뿐이다. 군대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멀리 볼 것 없다. 내 군 경험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고참 군화발에 맞아서 팔이 부러진 적 있다. 그리고 내 아래 기수 가운데 한 명은 정기 휴가가 끝났는 데도 부대로 복귀하지 않았다. 부대 근처 여관에서 농약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헌병이 그를 찾았을 때 그는 병실에 누워 있었고, 그 이후로는 그 후임병을 본 적은 없다. 다른 부대로 옮겼다는 소리만 얼핏 들었다. 이런 사건 사고는 너무 흔해서 언론에 노출되지도 않는다. < 진짜 사나이 > 속 구멍 병사'는 동료들의 지지와 도움으로 어려운 난관을 헤쳐나가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고문관으로 통용되는 구멍 병사'를 도와주는 병영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약점이 잡히는 순간 지옥은 시작된다. 사자가 들소 무리에서 표적을 찾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무리 중에서 이상한 걸음으로 걷는 녀석이다. 걸음걸이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부상을 입었다는 증거이니깐 ! 인간도 마찬가지다. 절뚝거리는 순간 표적이 된다. 그게 본질'이다. 군대 내 폭력은 일상이 되었다. 28사단 윤일병이 죽었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참혹했고 쓸쓸했다. 모두 다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는 뻔한 궁시렁이 이어졌다. "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지 ? " 여기에는 인간의 탈을 쓴 무리와 자신을 전혀 다른 종으로 분류하려는 속내가 읽힌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실은 이렇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탈을 쓰고 악행을 저지른다. 짐승이 인간의 탈을 쓰고 악행을 저지를 수는 없지 않은가 ?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것처럼 < 악 > 은 평범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권위에 복종한다. 밀그램의 " 권위에의 맹종 " 실험은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신문에 모집 공고를 낸다. 사례비는 시간 당 4달러였다. 하는 일은 간단했다. 명령자가 버튼을 누르라고 하면 버튼을 누르면 되는 일이었다. 30개의 스위치는 15볼트를 시작으로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15볼트씩 올라간다. 그리고 각 스위치에는 단계별로 경고문이 쓰여 있었다.
1단계 / 15 v : 미세한 충격
.
.
.
.
.
10단계 / 150 v : 강한 충격
13단계 / 195 v : 아주 강한 충격
17단계 / 255 v : 격렬한 충격
21단계 / 315 v : 극도로 격렬한 충격
25단계 / 375 v : 위험, 극심한 충격
29단계 / 435 v : xxx
30단계 / 450 v : xxx
이 실험에서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실험실 안에서 전기 충격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단계별로 버튼을 누르라고 명령한다. 연기자'는 전기 볼트가 높아질수록 아픔을 호소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구조'를 요청하는 연기를 펼친다. 그러니깐 피험자는 고스란히 그 죽어가는 고통을 목격하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심리학자 대부분은 450 볼트'를 누를 수 있는 가능성을 0.1 %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놀랍게도 65 % 였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다.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들은 모두 최종적으로 300볼트 버튼을 눌렀다. 사람들은 220볼트가 사람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살을 잘 알면서도 참가자 전원이 300v 이상을 누른 것이다.
밀그램 실험 딜레마'는 이후에도 다양한 변주'를 통해서 각국에서 시행되었다. 결과는 모두 엇비슷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이 실험 수치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실험 참가자 중 450볼트 버튼을 누른 상당수의 실험자는 이 상황이 몰래카메라'라는 사실을 실험 도중 깨달았기 때문에 450 볼트 버튼을 누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심리학자 세리던과 킹'은 똑같은 상황에서 전기충격을 받는 것처럼 연기하던 사람'를 귀여운 강아지'로 교체하고 실험을 진행했다. 역시 버튼은 450 볼트' 단계까지 30단계로 이루어졌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강아지'가 전기충격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 물론 강아지가 전기 충격을 받긴 하지만 450 볼트의 충격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 강아지가 연기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
피험자들은 이 실험이 리얼'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인식하고 진지하게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강아지는 낑낑거리며 헛바퀴를 돌며 고통스러워 했다.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자 피험자 중 450 단계 버튼까지 누른 권위 복종자는 54%였던 반면, 여자'는 100 % 였다. 대부분은 개를 키운 경험이 있거나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었다. 이 결과를 놓고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설마, 그래도,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나. 필립 짐바르도가 진행한 < 스탠퍼드 감옥 실험 > 은 " 설마 ? " 하는 의심에 단단히 쐐기를 박았다. 스탠포트 감옥 실험은 < 상황적 요소 > 가 < 개인적 기질 > 를 압도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니깐, 어떤 상황에 처해지면 평범한 사람도 인간의 탈을 쓰고 " 그짓 " 을 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도덕은 유리처럼 깨지기 쉽다. 유리는 균형을 잃고 깨지는 순간 칼이 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균형을 잃고 깨지는 순간(불합리한 상황적 요소) 인간 본성은 본색을 드러낸다. 인간은 모두 짐승이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인문학이란 인간의 탈을 쓴 가면을 벗기니 가면 속 얼굴은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은 없다. 인간의 탈을 쓴 존재는 오로지 인간이다. 가면 뒤의 얼굴은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