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기다리며

내 가족은 " 화목 " 한 가정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 원수 " 같은 가족 관계도 아니었다. 그 흔한 " 가훈 " 이나 " 가족회의 " 를 한 기억이 없다. < 화목 > 보다는 < 월하 > 의 하숙집 모드'였다. 주말만 되면 ●●●권사님 형제자매들은 꼴뚜기처럼 씩씩하게 두 발로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가 새벽에 오징어가 되어서 흐느적흐느적 집에 기어들어 왔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시라. 화목하지 않았다는 말이지 가정 불화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무덤덤한 가족이었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동요는 << 개굴개굴 개구리 >> 였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찬양하는 삶이 최고라고 생각하셨지만 불초자는 개굴개굴 울면서 개구리 코스프레를 하는 대신 을지로 한복판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고래 코스프레를 했다. 인간은 두 종류다. 개구리파와 고래파 !
목청 좋은 개구리가 되기를 원하셨지만 고래가 된 아들을 용서하십시요. 어머니, 미안함돠 ! 나는 예수를 사랑했지만 하느님을 그닥 존경하지 않았고, 기도는 숭고한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찬양은 촌스러운 자기PR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를 제외하면 나머지 가족은 교회를 다니다 말다 다니다 말다 하다가 결국 다니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가족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배덕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 어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암묵적 동의'가 된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여름 휴가철만 되면 온가족이 모여서 가족 여행을 떠나는 것이 연중행사처럼 되었다. 김보성이 십 년 동안 으리으리으리'를 외쳤다면, 내 가족은 몇 년 동안 산과 계곡에서 화목화목화목금토를 외쳤다.
열명 남짓한 가족이 우르르 몰려다닌다고 생각해 보라. 나는 가족 단체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고,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단체 가족 여행은 늘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올해, 누이가 야심차게 준비한 곳은 중국여행이었다. 가족은 떠났고 나는 봉다리만보면잘띠네 씨와 함께 남았다. 북경'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3일 전이었다. 무더운 밤에 잠이 안 와서 맥주를 사러 밖으로 나왔다. 밤 골목에는 사람 대신 고양이들이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나는 고양이들이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가까이 다가가면 고양이는 경계를 하며 도망쳤다. 곁을 허락하지 않는 길 고양이를 볼 때마다 매력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바로 내 앞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구멍가게 앞이어서 고양이는 환한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길고양이들이 주로 담 아래 모퉁이나 차 밑에 숨어 있는 반면, 이 고양이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일까 ? 잠시 그런 생각도 했지만 이내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고양이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로 힘없이 걷고 있었다. 병든 고양이였다. 고양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고양이는 날렵하게 피하지 못하고 약간 거리를 두며 물러났다. 물러났다기보다는 몸을 웅크린 채 그 자리에 있었다. 도망칠 힘도 없는 듯 보였다. 몸이 쇠약해져서 방어와 경계 본능을 상실한 것이다. 고양이에게 속삭였다. " 잠시만 기다려라, 내가 저녁 식사를 대접하마 ! "
나는 후다닥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샀다. 마음이 급했다. 고양이가 떠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앞선 손님이 물건을 잔뜩 사는 바람에 나는 계산대 앞에서 꽤 기다려야 했다. 다급한 마음에 밖을 보니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고양이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고양이는 저 멀리 힘없이 어두운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 소세지 하나를 건내자 녀석은 먹이를 물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데 자꾸 그 고양이 생각이 났다. 가족 없는 텅 빈 집에 홀로 술을 마시니 서글퍼졌다.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풍요로운 도시'에도 누군가는 굶어서 죽는 존재가 있고, 집 없이 떠도는 생이 있구나.......
유대교와 축구의 공통점은 전쟁도 불사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월드컵 축제를 즐기고 있는 사이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폭격했다. 이스라엘 군은 최첨탄 공격 무기로 무방비 도시인 민간인 지역을 공격했다. 명백한 민간인 학살이었다. 죄없는 선량한 사람들이 죽었다.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 지구촌 사람들이 " 축구에 정신이 팔리는 시간 " 을 이용한 것이다. 전술은 제대로 먹혔다. 사람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웃고 울었지만 정작 팔레스타인 학살에 대해서는 울지 않았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 경기장에 설치된 PPL 광고 가운데 빈도수가 가장 높았던 입간판 광고는 HYUNDAE였다. 월드컵 입간판 광고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에서 현대 기업은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한 노인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천 년 동안 자신이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을 내쫒기 위해 강제로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을 철거하고 있다. 노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아이들이 자랄 때마다 눈금으로 표시했던 높은 기둥이 무너져 내릴 때, 노인 또한 억장이 무너졌으리라. 자랑스러운 현대 로고가 박힌 굴삭기를 보는 순간 월드컵 경기장 입간판에서 점멸하는 현대 로고'가 생각났다.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월드컵 축구를 보며 열광하고 있는 사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학살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은 불행을 필요로 한다. 불행이 없다면 행복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천국에는 행복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날, 나는 같은 시간에 밤 골목을 서성거렸으나 그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만날 수 있을까 ? 늦은 밤, 나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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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병사 2명이 팔레스타인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있다. 폭행당한 이는 15살 소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