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번개 모임 후기.
표명희와 장개동 씨.
소주 5병 + 생맥 500cc 7잔 + 빼갈 한 병
모임평 ㅣ 다시는 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지 않는다.
모임 만족도 ☆☆☆☆★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낙원동 일대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천 원짜리 국밥을 파는 곳이 있고, 삼천 원짜리 안주를 파는 포장마차도 있고, 오천 원짜리 이발소'도 있고, 만 원짜리 딴스홀'도 있었다. 그리고...... 기형도 시인이 심야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급사한 옛 파고다 극장은 다른 장소가 되어 있었다. 당시 파고다 극장은 동성애자들이 은밀하게 모이는 " 만남의 장소 " 로 유명한 곳이어서 기형도의 죽음'을 두고 말이 많았다고 한다. " 동성애 " 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동성애 문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성애자가 동성애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투에는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에게 베푸는 같잖은 " 관용 " 과 " 배려 " 가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과연 동성애 문화를 이해와 배려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은 것일까 ? 동성애자의 항문 섹스'가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라면 이성애자의 질 섹스'도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동성애 문화를 < 스페셜 > 이 아닌 < 노멀 > 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약속 시간이 되어서 바삐 되돌아갔다. 아, 무도 없었다. 그리 당혹스러운 일도 아니다. 약속을 받아 논 알라디너는 " 수다맨 " 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수컷 둘이서 술을 마셔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 수다맨을 기다리며 벽에 걸린 골뱅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t가 왔다. 알라딘 번개 공지를 보고 무작정 왔단다. 놀랄 일도 아니다. 그는 항상 온다는 약속 없이 그냥 온다. 그리고 나 또한 그가 온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가 온다는 약속을 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는 했다.
우린 서로 한마디도 없이 술을 마셨다. 그는 내 동의도 없이 맥주잔에 소주를 털었다. 우린, 그런 사이'다. 그때 수다맨이 왔다. 내 예상을 완전히 뒤집은 비주얼이었다. 문학과 인문학적 깊이'로 보아 조용한 선비 스타일이라 생각했는데, 맙소사 ! 그는 앳된 용모를 간직한 도령 스타일'이었다. 꽃미남이었다. 피부가 어찌나 곱던지...... 수다맨은 자리에 앉자마자 문학을 말하기 시작했다. 김연수를 아주 신랄하게 깠는데 사실 그의 외모는 김연수를 닮았다. 그렇게 우린 수컷 셋이서 술을 마셨다. 수다맨은 홀린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흠모의 눈빛이었다. " 마성의 게이 " 캐릭터 역할로 인기가 있었던 나는 이 멜랑꼴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느낌 아니까 ! < 마성의 게이 > 란 별명은 수컷인 내가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없지만 남성들에게는 절대적 지지'를 받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다. 특히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는 연애인 취급을 받아서 그들은 호시탐탐 내 몸을 탐했으나 나는 단 한번도 내 몸을 허락하지 않아서 그들은 나를 Virgin Islands ' 출신이라고 불렀다.
박근혜가 형광등 백 개를 켜 놓은 아우라'라면 나는 핵 발전소 핵 융합 시 발생하는 섬광 같은 아우라'를 발산했다. 원빈 곁에서는 모두 오징어가 되듯이, 어느새 수다맨과 t는 꾀죄죄죄한 오징어가 되어 있었다. 아, 불쌍한 사람들...... 하여튼 수컷 셋이서 술을 마시는 일은 아주 지겨운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수컷 넷이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점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 불행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불행한 경우를 떠올리는 것이다. 수컷 셋이서 버텨야 하는 이 자리를 버티기 위해서는 수컷 넷이서 술을 마시는 것을 상상하면 위로가 된다. 그런..... 기술이 필요하다. 바로 그때 k가 태연스럽게 와서 자리에 앉았다. 이 분도 약속을 정하고 온 사람이 아니다. 나만 빼고 모두 다 화들짝 놀랐다. 그의 등장에 모두들 인상을 찡그렸다.
주도(酒徒)의 주도(酒道) 랄까 ? 모임을 주도(主導) 한 나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좋은 사람과 함께 마시는 술이 가장 좋은 안주라고 ?! 개 같은 소리는 지나가는 민들레에게는 줘라. 술을 마셔야 하는 자리에서도 편을 갈라 술을 마시는 것은 지겹다. 그것은 민주적이지 않다. 수컷 넷이서 골뱅이와 노가리'를 안주 삼아 조용히 술을 마셨다. 무협소설( 정치 소설이었나 ?! ) 을 쓰고 있는 중이라시던 k가 느닷없이 내게 책을 한 권 선물했다. 표명희의 소설집 < 내 이웃의 안녕 > 이라는 신간이었다. 신간이니 새책이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새책이 아니었다. 책을 넘기다가 책 간지'에 쓰여진 메모'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 흔한 감상문이리라. 나는 내색을 숨친 채 눈 미간에 川자를 그리며 메모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표명희 소설가'가 직접 내게 보낸 메시지였다. 눈물이 앞, 을 가렸다.
이 모습을 k는 흐뭇한 듯 바라보았다. 사연인 즉, k와 표명희 소설가'는 아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표명희 소설가 또한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k는 그녀에게 책을 받아 내게 준 것이다. k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전제에서 말하자면 표명희 작가가 나의 애독자'라는 것이다. 나는 너무 감동해서 폭풍 같은 눈물을 흘렸다. 애독자는 나인데 소설가가 나의 애독자라 하니 그 소박한 겸손함에 오열을 했다. 술자리에는 수컷 넷이 전부였지만 표명희 작가야말로 이 자리를 빛내준 분이었다. 우리는 기분 좋게 한 잔 한 후 2차로 중국집에 가서 빼갈에 짜장면과 깐풍기를 먹었다.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t가 3차로 대학로 도어즈에 가서 음악을 듣자고 했으나 수다맨의 집이 먼 관계로 우리는 뿔뿔이 헤어졌다. 오징어 셋을 떠나보내고 혼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기형도를 닮은 사람을 보았다.
술에 취한 김에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했다. " 죄송합니다. 불 좀... " 그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라이터를 빌려주었다. 내가 말했다. " 혹시... 기형도 닮았다는 소릴 듣지 않나요 ? " 그가 나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 술 한 잔 하시겠습니까 ? " 우리는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어두운 거리에 있다가 밝은 실내로 들어오니 그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맙소사, 그는 정말 기형도'였다 ! 그는 촉촉한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 자발적 유배'이지요. 에우리디케를 찾기 위해 죽음의 땅으로 떠난 오르페우스적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는 시간이 오더군요. 그것은 사망 선고나 다름 없었습니다. 시인이 아닌 삶은 생각할 수도 없었죠. 그래서 새롭게 태어나기로 했습니다. 제가 한때 신문사 기자 생활을 했으니 동료들에게 부고 기사를 내도록 했죠. 그래서 서류상 저는 죽은 시인'이 되었습니다. 아, 참.... 곰곰발 씨 ! 저는 당신의 열렬한 애독자'입니다. 당신 글을 읽으면 똥 쌀 정도로 재미있더군요. 전 당신의 애 ! 독 ! 자 ! "
나는 그 말에 태풍 같은 눈물을 흘렸다. 감동한 나는 최고급 룸살롱으로 가 그를 모셨다. 강남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텐 프로 두 명을 불렀다. 기형도 시인은 굶주렸다는 듯이 파트너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저러다가는 300cc 실리콘이 터져서 흘러내릴지도 모릅니다, 기형도 씨 ! 항간에 떠도는 " 기형도 시인 동성애자 " 라는 소문은 말 그대로 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물어볼까 하다가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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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은 경찰서에서 작성하는 것이다. 눈을 뜨니 경찰서였다. 나는 그새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자신을 기형도라고 소개한 자는 기형도가 아니라 전과 15범의 장개동'이란 인물이었다. 내가 술에 취해 테이블 위에 쓰러진 틈을 타 지갑 속 신용 카드를 훔쳐서 다른 술집에서 사용했다가 잡혔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가 훔친 신용 카드는 체크 카드였다. 통장에 삼만 팔천 오백 원이 전부인 체크 카드였다. 내 주제는 무슨 신용 카드인가 ! 술값을 내지 못한 그는 술집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잡히게 된 것이었다. 때마침 장개동이 수갑을 찬 채 구치소로 끌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말했다. 밥은... 먹고 다니냐. 나는 지금 후암 파출소에서 표명희의 < 내 이웃의 안녕 > 을 읽고 있다. 눈물이 앞, 을 가린다. 표명희 님의 애독자로써 두 개의 곡을 띄운다. " Kirsty McGee가 부릅니다. Sandman ! 앤드........ Dumb ways to dies !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847111 ㅣ 2부 표명희와 기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