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와 김정은.
안부를 묻다, 에서 안부(安否)는 그새 편안하게 잘 지냈는지(安) 아니면 잘 지내지 못했는지(否)를 묻는 것이다. 그러니깐 안부'란 기본적으로 安이냐 否냐를 묻는 행위'다. 우리가 영혼없이 습관적으로 묻는 " 식사하셨어요 ? " 라는 말은 밥을 먹었는가 못 먹었는가, 를 통해서 < 安 > 인가 < 否 > 인가를 가름했다. 그만큼 굶지 않고 먹고 사는 길'이 어려웠던 시절의 흔적이 바로 " 식사하셨어요 ? " 다. 그래서 강철 군화 시절에는 정의고, 민주고, 나발이고 간에 우선 배불리 먹고 사는 일이 제 1 미덕이 되었다. 그때 통용되던 국가 슬로건이 바로 " 근검절약 " 이다. 부지런히 일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서 저축을 하자는 말이다. 그 시절 저축은 미덕'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치를 악덕으로 규정한 정부는 IMF 이후 돌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주인이 머리를 쓰다듬을 때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가 뒤돌아서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주인의 발뒤꿈치를 물어뜯는 개처럼 말이다. 20세기 내내 절약이 미덕인 대한민국 근대사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는 21세기에는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21세기는 소비'가 미덕이 되었다. 신용카드는 거리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바로 그때 BC카드 전속 모델이었던 김정은'은 영화 < 러브레터 > 에 나오는 오.갱.끼.데.스.까, 를 흉내 내며 손나발을 하고는 " 여러분, 부자되세요 !!! " 를 외쳤다. 이 말은 부자처럼 펑펑 쓰라는 소리'다. 뭐, 다들 아시겠지만 카드 펑펑 써서 부자가 되는 사람은 카드사뿐이다. 하여튼, 이 시절에는 " 식사하셨어요 ? " 대신에 " 부자되세요 ? " 가 인삿말이었다. 그동안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던 자본주의가 생얼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김대중은 신자유주의자'였고 노무현은 그 길을 닦았으며, 이명박은 그 길에 전봇대를 세웠고 박근혜는 30촉 알전구 가로등을 전봇대에 박을 참이다. 색깔은 모두 제각각이었으나 하는 짓은 모두 똑같았다. 이런 것을 두고 화룡점정이라고 하나 ?! < 식사하셨어요 > 라는 오래된 안부가 < 부자되세요 > 라는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바뀌고 그 피해가 심각해지자 이제 다시 오래된, 버려진, 낡은 안부를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 안녕들, 하십니까 ? " 강신주는 바로 이 틈'을 노린다. 모두가 승자 독식의 자본주의'에 대해 치를 떨 때 강신주는 " 자본주의, 조까라 ! " 를 외친다. 모두가 기를 쓰고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하려 했지만 실패했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많거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乙 은 새우젓 같은 자본주의'라는 말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김난도의 < 아프니깐 청춘이다 > 가 촌스럽게 대중을 힐링했다면,
강신주는 쿨한 방식으로 대중을 힐링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의 강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니며 웃고/울었다. 멋진 소비였다 ! 그들이 보기에는 < 아프니깐 청춘이다 > 는 자기 계발, 처세술, 성공학에 기반한 통속처럼 보였지만 김신주의 강의'는 뭔가 인문학적인 지식 소비처럼 보이지 않은가 ? 같은 힐링'을 소비하더라도 격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 내가 보기에는 이 둘의 차이는 없다. 차이가 있다면 하우스에서 재배되었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강신주를 지지한다고 자본주의에 대항한 체 게바라'가 될 수는 없는 노릇 ! 그저 유니클로에서 파는 체 게바라 프린팅 티셔츠를 입으면서 나이키를 신고, 코카콜라를 마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강신주'라는 브랜드가 소비되는 방식은 매우 자본주의적'이다. 한때 " 인문학, 조까라 ! " 를 외쳤다가 한순간에 찌그러진 충청도 증평이 낳은 스타 김미경과도 유사하다. 아침마당을 거쳐 힐링 캠프'에 나와 인기를 얻는다.
김미경 루트'냐고 ?! 아니다, 강신주 로드'다. 이건희는 자기 마누라만 빼고 모두 바꾸라, 라고 말했지만 이 말은 자본주의적 시선으로 보자면 꽤나 낭만적인 소리'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건희는 낭만적 자본가'이다. 자본주의는 팔 수만 있다면 내 마누라도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자본주의'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자신(자본주의)를 욕하는 강신주가 상품으로써 가치가 있다 싶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유통시킨다. 강신주 신드롬은 바로 자본주의적 얼굴이 얼마나 계산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다. 유감스러운 말이지만 강신주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준 사용설명서'다. 그는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직장에 다닐 필요 없고, 돈을 주고 상품을 구입하지 않으면 자본은 힘을 잃고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 물론 이 방식을 자본주의와 맞써 싸워야 할 대안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
그런데 이 " 싸움의 기술 " 을 몸소 실천하는 무리가 있다. 바로 노숙자'다. 노숙자는 직장 다니지 않고 돈을 쓰지도 않는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노숙자는 자본주의를 가장 위협하는 집단이다. 항상 자본주의를 붕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입장이라면 이 무위'는 전복적 투쟁이다. 그런데 그는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그는 이 전사들을 좀비 운운한다. 명백한 명제논리 모순이다. 무대 위에서는 직장 다니지도 말고 상품을 사지 않으면 자본주의 체제는 무너진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노숙자들에게는 수치심을 모르는 무리 운운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논리적 모순을 강신주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토록 간결한 모순을 말이다. 강신주는 김정은과는 정반대로 부자되세요 대신 가난하세요, 를 외친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돈을 벌 생각하지 말고 그 돈으로 가족과 함께 여행이나 다니면서 추억을 만들라고 말한다.
그런데, 참... 묘하다. < 부자되세요 > 와 < 가난하게 사세요 > 는 정반대이지만 교묘하게 동일하다. 모두 소비'를 미덕이라고 하지 않던가 ? 물론 그는 냉장고의 용량을 줄여서 과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결국은 저축하지 말고 있는 돈 그때 그때 써라, 라고 말한다. 자본가 입장에서 보면 둘 다 환영할 일이다. 베리베리 땡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