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설 ㅣ 세 가지 사실.
1. 출소한 지 어언 2년 : 내가 사는 집은 가파른 재'에 있다. 그래서 아랫집 옥상과 내 집 마당은 수평이다. 물론 내 집 옥상은 윗집 마당과 수평이기도 하다. 언덕배기에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 특유의 주거 형태'다. 3년 전부터 개를 키웠다. 레트리버 종으로 몸무게가 평균 25~ 30 kg이 되는 대형견'이다. 주로 맹인 안내견이나 구조견으로 쓰이는데 이 녀석은 성정이 지랄 같아서 좀 난폭하다. 동물 병원 의사도 혀를 찰 만큼 성질이 들떠서 ADHD 환자 같다고 할 정도였다. 비극은 이웃들이 개를 싫어한다는 데 있었다. 개털이 날린다고 민원을 넣어서 한여름에 개털을 빡빡 민 적도 있다. 털 달린 짐승에게는 털이 피부를 보호하기 때문에 더워도 털을 깎는 것은 좋지 않지만 하도 지랄'을 해서 깎았다. 쩍쩍이( 개 이름 ) 는 그렇게 한여름을 털 뽑힌 채로 살아야 했다.
벌거숭이 개를 볼 때마다 털 뽑힌 하림 닭이 생각나 눈물이 앞을 가렸다. 미안한 마음이 들다 보니 날마다 < 비비빅 > 을 먹이고 아침에는 항상 계란 후라이와 커피 한 잔을 주던 게 습관이 되어서 아침에 계란 후라이와 땃땃한 커피 한 잔을 대접하지 않으면 지랄을 한다. 신기한 것은 커피를 탈 때 조금이라도 물을 많이 넣어서 주면 안 먹는다는 점이다. 꼭 인간이 먹는 그 농도의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비비빅을 까서 개에게 줄 때마다 야릇한 상상을 하게 된다. 크기와 길이 그리고 단단함이 꼭 내 거시기 같기 때문이었다. 비비빅에서의 BIG은 자꾸 발기'를 떠올렸다. 아, 모든 것에서 성적 상징'을 유추해내는 범성론자의 비극이라니. 그러던 어느 날, 개가 심하게 짖길래 나가 보니 아랫집 옥상에 이웃들 몇몇이 모여서 쩍쩍이를 향해 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개에 대해서 온갖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시끄럽다는 것은 기본이고, 개털이 날린다거나 개똥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민원을 지속적으로 넣어서 어떻게 해서든 이 개를 쫒아내겠다는 것이었다. (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말했다. 일주일에 한번은 반드시 목욕을 시키고 날마다 털을 빗는데 무슨 놈의 털투성이이고 냄새인가. 쩍쩍이가 노숙자인가 ? ) 흥분한 나는 오리처럼 소리를 꽥 질렀다. " 이봐 ! 아줌마들.... 나 교도소 출소한 지 얼마 안 되서 마음 잡고 살려고 했는데, 시바 ! 내 마음에 불 지르지 마쇼 ! 에이, 썅 ~ " 내 말을 듣던 옥상 위 아줌마들이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한 사람이 무슨 죄로 들어갔냐고 물었다. " 사람 죽였수다 ! 됐소 ? " 그날 이후로 개가 짖는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옥상 위 아줌마 가운데 한 명이 이곳 터줏대감인데 동네 사람들에게 모두 내 이야길 한 모양이더라. 나는 한 순간에 사람을 죽인 전과자'가 되어서 내가 지나가면 뒤에서 사람들이 수근거린다. 씐난다 ! 영화 속 주인공 같아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2. (어르신이 내 앞에 서 있다고 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권리 : 나는 요즘 어르신은 영양 상태'가 좋아서 서서 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허리가 굽은 노인'이 아니고서는 굳이 일어나지 않는다. 몇 달 전에 버스 안에서 우람한 노인이 잠이 든 척하는 학생을 향해 투덜대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말이 좋아 혼잣말이지 자리에 앉아서 졸고 있는 척하는 학생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나는 졸고 있는 척하는 학생이 한심했다. 그가 졸고 있는 척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무단 승차를 한 것도 아니고 당당히 요금 내고 탔는데 과연 그 학생은 스스로에 대해 욕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어떤 이가 나이 든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기준일 뿐이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해서 요즘 젊은것들은 싸가지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싸가지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서 타인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천박한 것이다. 나는 노약자석에 자주 앉지만 노약자 같지도 않은 건장한 노인이 내 앞에 서 있는다고 해서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리고 그 행동이 비도덕적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시내 버스에 배치된 1인석 좌석 가운데 열에 아홉은 노약자 지정석'이다. 2인석 자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자리가 노약자석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 노인은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이에게 불평을 쏟아내고, 젊은이'는 속물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은 전형적인 관치 행정이다.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인가 아닌가는 개인의 도덕적 잣대'에 맡겨야 하는데,
기관이 개인의 도덕성에 간섭하여 훈계를 하는 꼴이 된다. < 노약자석 > 이라는 슬로건'은 마치 밀가루 분식을 권장하던, 국민의 밥상마저 간섭을 하려고 했던 70년대 관치 스타일처럼 보인다. 자리 양보'가 미덕이 될 수는 있지만 자리 양보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악덕이 될 수는 없다.
3. 내 나이를 묻지 마세요 : 가끔 모임에 나가면 첫 번째로 주고받는 짓이 " 민쯩 " 까는 거'다. 노골적으로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기가 그러니깐 돌려서 한다는 소리가 " 몇 학번 " 이냐고 묻는다. 그런데 주민번호를 묻는 것보다 더 야만적인 것은 학번'을 묻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한 달에 자위를 몇 번 하세요 ? 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학번을 묻는 이유는 명확하다. 나이와 학벌에 대한 궁금증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고졸이어서 학번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 다른 나라 가서 이런 식으로 말했다가는 따귀 맞기에 좋다. 그래도 여전히 이 나라에서는 나이를 묻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나이 서열이 정해지면 결과는 뻔하다. 네가 나이가 어려서 그렇다는 둥, 살아봐라 라는 둥, 철이 안 들었다는 둥, 배부른 소릴 한다는 둥........
그럴 때마다 꼴값이 지나치면 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하는 모든 고민은 철이 안 들었기 때문이라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 어린 놈이 건방지다고 해서 당신이 훈계할 일이 아니다. 당신만 건방지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어린 놈이 섹스를 하건 말건 그것 또한 당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당신만 잘하면 되는 일이다. 비비빅이나 까서 빨아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