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표현된' 잡담(들)
1. 변절과 전향
새해가 시작되면 늘 새로운 다짐을 하고 계획을 세운다. 금연, 금주, 책 100권 돌파, 몸무게 10kg 줄이기 등등. 이런 계획은 실현 가능하다. 그런데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있다. 매사에 부정적 사고를 가지고 있던 이가 긍정적 사고를 갖자, 라거나 천성이 게으른 자가 부지런한 사람이 되자고 계획이 좋은 예이다. 그것은 금연이나 금주보다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다. 왜냐하면 천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적 사고를 가진 이가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으로 개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검은 개 꼬리 십 년 땅에 묻어도 검은 개 꼬리이듯이 인간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인생역전 스토리를 다룬 티븨 프로그램에서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외향적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사실 변한 것이 아니라 변한 척을 하는 것뿐이다.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 흉내를 낸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종교 간증 서사'를 믿지 않는다. 깡패 새끼는 죽을 때까지 깡패 새끼로 남는다. 양은이파 조양은은 교도소에서 신을 영접한 후 새사람이 되었다고 간증 집회에서 고백했지만 결국은 칼질하는 본성을 버리지 못하지 않았던가 ? 종종 좌파였던 이가 극우 인사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는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 변절 " 이라고 욕할 것이다. 하지만 386 운동권 진영의 화려한 변신은 변절이 아닌 전향'에 가깝다. 변하는 것(變 : 변할 변) 이 아니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轉 : 선회할 전)일 뿐이다. 날카로운 매의 눈은 세월이 흘러 썩은 동태 눈깔이 된 것이다. 시력이 떨어졌다고 해서 그 눈동자가 옛날과 다른 눈동자일 가능성은 없지 않은가 ? 인간은 절대 천성을 버리지 못하는 짐승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우스개가 있다. 그것은 동굴에 새겨진 낙서'다.
수천 년 전에도 " 요즘 젊은것들은 싸가지'가 없어 " 라는 낙서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젊은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싸가지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100년 후의 젊은이'도 요즘 젊은이처럼 싸가지가 없을 것이다. < 종교 > 의 핵심은 인간'에게서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기에 신에 의지하는 것이고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 인문학 > 은 인성 (人) 을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 속에 숨겨진 수성 ( 獸 ) 을 탐구하는 영역에 가깝다. 결론은 인간에게서는 희망은 없다는 사실이다. 지구 생태계를 위한 가장 좋은 결론은 인간의 멸종이다. 만약에 인간을 위해서 만물이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만물을 위해서 인간이 사라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한다면 당신은 뻔뻔한 사람이다. 시간 개념을 인간 중심으로 보지 말고,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안'이다.
2. 편리함과 불편함
스티브 잡스가 검은 쫄티에 청바지'를 입고 서민 코스프레를 선보일 때마다 문득문득 방정희가 떠오르고는 했다. 낮에는 논바닥에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밤에는 아방궁에서 수입 위스키'를 마시던 그 기만의 서민 흉내 말이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잡스일 뿐이지 스티브 잡스가 체 게바라'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마트폰은 세상을 편리하게 만든 발명품이 아니라 불편하지도 않았던 것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나쁜 것으로 인식하게끔 만들었을 뿐이다. 옛날에는 운전자가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만, GPS가 생기면서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행위'는 마치 어리석거나 불편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전화를 받지 않으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화부터 낸다. 이게 스마트폰이 당신에게 선사한 편리한 세상'인가 ? 스마트폰은 일상을 편리하게 만드는 만능 기계'가 아니다.
우리가 이 매혹적인 기계'에게 홀딱 반하는 이유는 기계에게 인간이 속았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지적했다시피 스마트폰은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상대적으로 반사이득을 취한다.
3. 슈트와 양복.
방송에서 손님으로 등장한 어느 출연자가 멋진 양복을 입고 등장하자 고정 출연자1이 그에게 양복이 멋지다며 인삿말을 건냈다. 그러자 평소 옷맵시에 신경을 쓰는 고정 출연자2'가 이런 말을 했다. " 무식하게 양복이 뭡니까 ? 이런 옷은 슈트'라고 해야지... " 그 말에 사람들은 모두 낄낄 웃었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 양복 > 이라고 하면 촌스럽고, < 슈트 > 라고 해야 세련된 언어'로 인식되는 듯했다. 보그-병신체'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천박한 취향이 고급으로 둔갑하는 걸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쓰면 대뜸 꼰대가 어디서 훈계조로 가르치려고 하느냐고 중뿔나게 나서겠지 ? 그래서 이렇게 말하겠다. " 슈트'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두고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만 자신의 언어 감각을 두둔하기 위해서 < 양복 > 이라고 말한 사람을 무식한 사람 취급하는 꼴은 비판받아야 한다. "
사실 < 우리말을 사랑하자 > 따위'를 말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 나온 김에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무조건 순우리말이 좋으니 번역투 문장이나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를 몰아내자는 주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오염되고, 그 오염된 언어가 살아남는다. 현대어는 순혈이 아니라 혼혈'에 가깝다. 한자가 섞이고 일본 문장 구조가 섞이고 외래어가 섞인다. 그게 언어의 운명이다. 한글만이 처한 상황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상 모든 언어는 서로 섞인다. 그래서 나는 한글 순혈주의자가 주장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한글에서 한자를 배격하자는 주장은 지나친 애국주의'가 아닐까 싶다. ( 됐고 ! )
요즘은 양복과 슈트'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다. < 양복 > 은 서울 구경하기 위해 상경한 시골 영감이나 늙다리 아저씨들이 입는 옷처럼 인식되고, < 슈트 > 는 젊거나 빳빳하고 화려한 명함을 소유한 자들이 입는 옷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요즘은 사람들이 부쩍 양복'이라는 말 대신 슈트'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방송 출연자가 " 이런 옷은 양복이 아니라 슈트라고 해야지 " 라고 말하는 태도에는 취향의 구별짓기'가 엿보인다. 요약하자면 양복은 乙이고, 슈트는 甲이다. 그러니깐 갑에 대한 속물적 욕망과 허세'가 양복과 슈트를 구별짓기하는 것이다. 사실 옷차림'으로 서열을 정하는 사회는 신분 사회'이다. 옛날에는 옷차림으로 신분을 알 수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렇다. 옷의 종류뿐만 아니라 색깔로도 구분을 지었다. 페루의 < 치요 > 라는 모자는 그 색깔에 따라서 결혼 유무, 직업, 나이, 지위 따위를 알 수 있었다.
모자 색깔만 가지고도 개인 정보를 대충 알 수 있었으니 걸어다니는 빅 데이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이 양복과 슈트라는 단어로 甲과 乙을 구별하려는 것은 정치적 퇴행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슈트에 대한 집착은 영화 < 아이언맨 > 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그 이전에 이미 ~ 맨'으로 끝나는 만화 속 영웅은 모두 슈퍼 슈트를 착용한 인물들이다) 명품 슈트는 이제 강철로 만든 만능 슈트로 변형된다. 이 슈트'만 입으면 어마어마한 힘이 생기는 것이다. 진정한 갑 (甲 : 갑옷 갑) 이다. 그래서 제목 또한 " 아이언맨 " 이 아니었던가. 이번에 새롭게 개봉할 < 로보캅 > 도 양복이 아닌 슈트'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반영한다. 이 갑옷'에 대한 욕망은 甲이 되고 싶은 乙의 속물 근성에 기반한 속내이지만 다른 식으로 보자면 이제는 평범한 양복을 입고 생활해서는 결코 乙을 벗어날 수 없다는 불안이 반영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양복과 중산층을 하나로 묶었지만 이제는 양복 = 중산층' 이란 공식은 깨졌다. 그래서 현대인은 슈트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 너무 무리한 해석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