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노조와 마가렛 대처
마가렛 대처가 올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한국 언론은 그녀가 이룩한 업적을 나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박근혜가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를 가졌다면, 대처는 101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처럼 묘사했다. 영국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거나 포퓰리즘에 굴하지 않고 민영화를 밀어붙인 불굴의 투지 운운했다. 이 정도면 단테가 베아트리체에게 바치는 헌사요, 요사가 이불 속에서 새엄마를 찬양하는 꼴이었다. 마치 박근혜의 롤모델은 마가렛 대처'가 되어야 한다는 속내가 깔린 의중'이었다. 그런데 정작 영국 언론은 대처'에게 애도를 보냈지만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진보지인 가디언'은 " 마거릿 대처의 유산은 인간 정신을 파괴한 사회 분열, 이기심, 탐욕 "이라는 독설을 내뱉었고 < 인디펜던트>도 8일자 칼럼에서 " 대처리즘은 지금도 우리를 파괴시키는 국가적 재난 " 이라고 평가했다.
마가렛 대처 시대를 다룬 영화만 보더라도 대처'는 최악에 가까우 지도자'였다. 우리가 엄혹한 시대를 다룰 때 늘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를 배경으로 영화가 진행되듯이, 영국 영화 또한 희망 없는 굴욕의 시대'를 다룰 때는 어김없이 마가렛 대처 시대'가 배경으로 깔렸다. 그 선두에는 항상 캔 로치 감독이 있었다. 마가렛 대처의 영원한 앙숙이며 안티'였다. 다른 감독들은 상류층의 위선을 고발하기 위해서 상류 사회'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캔 로치'는 상류층의 위선을 다루기 위해서 상류 사회를 소재로 다루는 것 자체가 꼼수'라고 보았던 듯하다. 그는 상류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상류 사회를 다룬 영화들이 자칫 잘못하면 비판이 아닌 욕망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이썼다. 그는 오로지 하층민을 다루면서 줄기차게 사회적 모순을 제기한 감독이었다. 그에게 타협이란 없다.
1993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 레이닝 스톤 Raining Stones / 1993 > 은 딸의 성찬식 드레스를 마련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어느 가난한 실직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 제목 < 레이닝 스톤 > 은 " 노동자에게는 일주일 내내 돌이 비처럼 쏟아진다 " 는 의미'로 일주일 내내 돌멩이가 비처럼 쏟아지는 시대를 견디어야 하는 하층 노동자 계급에 대한 영화였다. 이 영화는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미학적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나는 움직이는 대상에 접근하는 카메라의 동선, 빛을 받아들이는 필름의 감각 따위를 중요한 미학적 기준으로 삼았으나 정작 중요한 것은 진심을 담은 목소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영화였다. 신부님을 통해 발설된 " 날것 그대로 전달한 메시지 " 는 지나치게 선동적이고 거칠었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문장은 본 적이 없었다.
마가렛 대처가 사망했을 때 캔 로치는 “그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경쟁 입찰에 붙여 가장 싼 업체에게 맡기자. 대처 본인이 원한 것도 바로 그런 방법일 것이다 ” 라고 말했다.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대처에 대한 영국인의 증오를 잘 나타내는 조사 결과가 있다. 대처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는 사람이 무려 75%에 이르렀다. 이런 사실은 감춘 채 한국 언론은 대처를 불굴의 위대한 지도자'로만 애도했다. 언론의 대처 찬양에는 이유가 있을 터, 찾아 보니 박근혜는 2007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 대처 총리가 영국병을 치유해 새로운 도약을 이룩한 것처럼 대한민국의 중병을 고쳐 놓겠다 ” 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 내용을 보면 정권의 내시로 전락한 언론이 대처'에게 호들갑을 떤 이유'를 알 수 있다.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대처가 아닌 메르켈'이 되기를 희망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박근혜 대통령은 대처를 염두에 둔 것이다.
캔 로치의 2001년도 영화 < 내비게이터 > 는 " 영국 철도 민영화 이후 " 를 다룬다. 대처가 후계자로 지목한 존 메이저 총리'는 철도 민영화'를 1995년에 시작해서 1997년에 마무리했지만 그는 대처의 민영화 정책을 계승했을 뿐이다. 결과는 재앙이었다. 1997년 급행열차와 화물열차가 충돌해 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1999년에는 래드브로크 그로브에서 열차 충돌이 일어나 3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사고 원인은 민간 철도 기업인 " 레일 트랙 " 이 비용 부담을 이유로 자동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비 미비'가 모든 사고의 주범은 아니다. 16만 철도 노동자는 1997년에 9만 2000명으로 줄었다. 비용을 줄이겠다는 당초의 계획과는 달리 정부는 민간 철도 기업인 레일트랙에게 13억 파운드의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결국 파산하게 된다. 정부는 다시 레일트랙을 사들여 재공영화한다.
철도를 기업에게 판 6년'은 참혹했다. 영국 정부는 기업에 판 철도를 다시 국영화하는 과정에서 부채를 떠안아야 했는데 그 부채 비용이 45억 파운드'였다. 45억 원'이 아니다. 환산하면 8조 2천억 원'이다. 레일트랙'이 파산 신청을 했다고 해서 주주들이 파산했을 리는 없다. 영국 정부는 재공영화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에게 2천억 원'을 배상해야 했다. 이처럼 영국 국민들은 소수 부자 주주를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것이 진실이다. 이처럼 대처리즘'은 99%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고, 1%를 더욱 배부르게 만들었을 뿐이다. " 마가렛 대처 정부 " 는 " 막가네 배째 ! 정부 " 였다. 영화 < 내비게이터 > 는 철도 민영화'가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내 언론은 철도 노조 파업을 비난에 가까운 공격을 하면서 귀족노조들이 철밥통을 지키려고 한다고 주장하지만 철도 노조는 귀족 노조'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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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제의 경우 상하원 보수가 다른 국가의 경우 하원 연봉을 적용
*일본과 스위스는 연봉평균 활용, 스위스의 국회의원 연봉은 2011년 자료임.
출처: 류현영 “국회의원 보수 국제비교”(http://www.politics.kr/?p=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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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2500으로 시작해서 평균 근속 19년을 보내야 하고 야간 근무와 휴일 수당을 다 합쳐야 평균 6000만 원 연봉을 받는 사람을 귀족'이라고 말한다면 국회 입성하자마자 1억 4천 연봉을 받는 국회의원은 어떤 계급인지가 궁금하다. 여기에 각종 수당과 혜택을 감안하면 국회의원들이야말로 황족 집단이고 철밥통이다. 물가를 감안한 ppp값으로 보자면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세계에게 가장 비싼 철밥통을 보유한 집단에 속한다. 그리고 복지 혜택을 망국의 원흉으로 보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대표적인 복지국가군이라 불리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핀란드 의원들이 받는 보수보다 2배 가까이 더 받는 이유가 궁금하다. 20년 일해야 수당까지 합쳐 6000만 원을 받는 철밥통과 4년 일하고 1억 4천만 원을 받는 철밥통 가운데 어느 철밥통이 귀족일까 ? 복지는 망국이라고 외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받는 월급이 복지국가군에 속하는 국회의원이 받는 월급보다 많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
개지랄하지 말자. 하층민 아이들이 먹는 우유까지 빼앗아서 " 우유 도둑 " 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대처'가 이 나라에서는 불굴의 영도자'로 대우를 받는 게 내 눈에는 영 꼴사납다.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밥그릇을 차고, 노조를 해체시켜서 대량 실업 사태를 만들어낸 대처는 그 실업자들의 자녀들이 먹을 우유마저 빼앗은 인물이었다. 그나저나 영국 노동자들은 영국병'이라 걸려서 그 모진 시대를 겪었다고 치자. 도대체 한국 노동자는 과연 복지병'을 앓아서 거만해진 것일까 ? 그런 혜택을 누리기는커녕 빨갱이'라는 소리만 들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하다. 철도청을 철도공사로 분리해서 민영화 물꼬'를 튼 노무현 정권 세력과 민주당'이 민영화 반대를 하며 쇼를 하는 꼴을 보면 어이가 없다. 그립 윤창중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국민이 정치를 망친다고 말이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국민은 정치를 망친다.
하지만 이 명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그것은 " 정치가 국민을 망친다 " 이다. 잘못된 정치는 어리석은 국민을 만들고, 그 국민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어 정치를 망친다. 그러니깐 이 몰락의 시작은 잘못된 정치'다. 철도 노동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 파업이 불법'이라고 하기 전에 이 불법을 야기한 정치권에 대해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노동자여, 아무도 믿지 마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런 시대에는 귀는 막고 입은 열어야 한다. 내일은 12월 28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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