舌,

 

양말.

 

 

우울한 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봄 볕에 잘 말린  옷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세탁한  옷들을 개고 나면, 늘 마지막에는 한 짝을 잃어버린 양말들이 남는다. 그럴 때마다 쓸쓸하다. 왜냐하면 양말은 다른 옷들처럼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늘 짝이 있어야지만  쓸모가 있는 것 ! 양말은 짝을 잃으면 버려지는 것들이다. 내 신세 같다. 신기하다, 어디로 갔을까 ?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디로 갔을까 ?  밖에다 버려두고 온 것도 아닌데, 저녁이면 늘 집에 와서 벗어놓은 것'들인데, 신기하게도 밀린 빨래'를 하다 보면 늘 한두 개 정도 짝 없는 양말'들이 남는다. 기억'도 어쩌면 양말 같은 게 아닐까?   잃어버린 줄도 모르지.  모르고 앓은, 몸 안의 항체처럼 말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 둘 기억에서 사라지는 이름들이 있다. 조용히 사라졌기에 우린 그 이름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아마, 나에게도 당신 이름'을 잃어버리는 날이 오겠지?  그리고는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될 것이다. 잊고 살다가, 빨래를 개다가, 남겨진,  더 이상 짝을 맞출 수 없는 양말 하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때 깨닫게 되리라.  아, 당신 ! 내가 사랑했던 낡은 여자. ( 2010년/05월/31일 字 )

 

 

대한민국 인구가 5000만'이라고 가정했을 때, 1인당 1년에 양말 10컬레 정도 잃어버린다고 가정을 하자. 그러면 양말 5억 개'가 짝이 없다는 이유로 멀쩡한 양말 한짝을 버리게 된다. ( 사람들이 1년에 양말 10컬레 정도를 읽어버린다는 가정은 무리한 계산이 아니다. ) 여기에 대한민국은 양말 생산이 제로'여서 전체 물량을 중국으로 수입한다고 가정했을 때, 양말 한 켤레를 중국으로부터 2000원에 수입한다고 하면 총 1조 원'의 금전적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1조 원이면 전국 무료급식 비용'은 물론이요, 몇몇 지역에서는 무상 교육까지 가능하다. 그러니깐 대한민국 국민 각자가 양말 한 짝'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전국 무료 급식비'와 무상 교육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아무리 조심을 해도 양말을 한 켤레'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양말은 말 없는 귀신 같아서 항상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귀걸이 한 쪽'처럼 말이다. 이 양말 분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도 약 1조 원'을 절약할 수 있으니, 만약에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은 대한민국 영웅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돈을 적게 벌면 소시민이 되고, 많이 벌면 부자가 되지만, 왕창 벌면 영웅이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간단하다. 양말 색깔을 동일한 것으로 통일하면 된다. 대한민국 5000만 백성이 모두 검은색 양말'만 신는다면 적어도 짝이 없어서 멀쩡한 한 짝'을 버리는 비극은 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양말은 오른쪽과 왼쪽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짝 잃은 양말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른쪽 양말 한 쪽은 있는데 왼쪽 양말 한 쪽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신발은 좌우 구별이 있지만 양말은 좌우 구별이 없다 ! 만약에 양말을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한다면 묶음 개념인 켤레'라는 집합 개념이 사라지게 된다. 한 짝이 사라졌으면 그냥 아무 양말이나 신으면 된다. 이처럼 양말 색깔이 통일된다면 1년에 평균 열 개 정도의 양말 한 짝'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결국은 다섯 개 정도만 잃어버린 꼴이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양말이 통일되면 1년에 잃어버리는 양말은 < 10 켤레 (20개) > 가 아니라 < 10 개 > 가 된다. 5000억'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참신한 생각을 넘어 매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아닐까 ?

 

내가 안철수 대선 후보 진영 정책 담당이었다면 국회의원 수를 줄여서 세비'를 아끼겠다는, 정말 황당한,  뜬구름 잡는 유아적 발상 대신 < 양말 색깔 통일제 > 를 주요 정책 공약으로 추진하겠다.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보다 실용적인 정책 공약이 어디 있나 ? 양말 색깔이 모두 제각각이어서 한 짝을 잃어버렸단 이유로 멀쩡한 다른 쪽 한 짝'도 버리는 것은 금전적 문제뿐만 아니라 생태환경적으로도 엄청난 손해이다. 양말 한 켤레'를 만드는데 소요되는 에너지 소비와 재료 손실을 감안하면 < 양말 색깔 통일제 > 는 친환경적 정책이기도 하다.

 

그뿐이 아니다. 짝을 찾아 양말을 개느라 소비되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 켤레 > 에서 < 개수' > 로 바뀌니 굳이 양말 짝을 맞춰 묶어둘 필요가 없다. 그러니 시간이 절약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모인 짜투리 시간'은 얼마나 될까 ? 대한민국 정치'가 개판인 이유는 정책 공약들이 모두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정책들만 남발하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조차도 서울시 공약으로 내세울 때는 무조건 건설 토목 공약으로 방향을 세운다. 건물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리면 개발인가 ? 이게 무슨 개지랄'인가 !

 

양말'은 매우 사소한 것 같지만 사실은 대한민국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오브제'일 수도 있다. 다만 사람들은 양말이 너무 저렴하고, 가치 없는, 사소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모를 뿐이다. 이 세상에 가치 없는 것은 없다. 모든 풀은 자기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니깐 잡초란 이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물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깊게 사고하면 의외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 양말 > 하나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접힌 부분 펼치기 ▼ ( 곰곰생각하는발 대선 후보 연설 )

 

 

 

 

안녕하십니까 ?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 저는 오늘 이 자리를 빌려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하려 합니다. 지난 정부의 퇴행을 지켜보며 더 이상 수수방관해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저를 현실 정치'에 뛰어들게 만들었습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자리 나누기'를 위한 나누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우선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한글 맞춤법 중 < 사이시옷 > 을 전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이시옷 시행에 따라 반대말'은 반대말이 맞는 표현이고, 존대말은 존댓말'이 맞는 표현이 되어서 국민을 혼돈에 빠트렸습니다. 한순간에 국민은 완전히 새 됐습니다. < 사이시옷 > 규범 때문에 맞춤법도 틀리는 국민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  

 

와, 와와와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 지금의 대한민국의 시장은 재벌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지금의 극단적 부의 불균형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금지한 시장 자유주의'가 낳은 패단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적극 지지합니다. 대기업 견제를 통해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잘 살 수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들겠습니다.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요 ? 한 나라'가 한 기업'의 흥망으로 망할 수 있다면 그 나라는 차라리 망하는 게 낫습니다. 대한민국 그렇게 허술하지 않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우선 양말 규격을 통일시키는 < 양말규격통일제 > 를 과감하게 시행하겠습니다. 색은 블랙 42번, 발목 길이는 10센티미터'의 단일 품종으로 통일시키겠습니다.  

 

우, 우우우우.  

 

국민 여러분 ! 한 해'에 짝을 잃고 버려지는 양말'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계십니까 ? 노란 양말 한 짝이 없어서, 파란 양말 한 쪽이 없어서, 혹은 빨간 양말 한 쪽이 해져서 버려지게 되는 멀쩡한 다른 한 쪽'에 대해서 고민하신 적 있으십니까 ? 이 방송을 보고 계실 국민 여러분 ! 버리지는 멀쩡한 양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티끌이 모이면 태산이 되는 법. 양말 규격이 단일종으로 통일된다면 짝을 잃었다는 이유로 멀쩡한 양말을 버려야 하는 잘못된 소비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양말 단일종 생산은 왼쪽과 오른쪽이 한 짝이라는 < 컬레 > 의 기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양말 짝에 맞춰 갤 필요도 없습니다. 양말통 속 양말은 모두 똑같은 디자인이니 그냥 손에 잡히는 양말을 꺼내 신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짝이 없다거나 해졌다고 해서 멀쩡한 다른 쪽 양말을 버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와, 와와와와와와와와와와와 ! 

 

짝이 없어서 버려지는 양말 때문에 소요되는 경제적 비용이 1조입니다. 놀라셨죠 ?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남편들이 아무 데나 벗어놓은 양말 한 짝을 찾느라 받은 스트레스'는 담배를 10년 간 피웠을 때의 니코틴과 맞먹는 독성이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양말 짝을 맞추느라 소비한 인생의 시간'은 총 2일'로 잠정 집계되었습니다.

 

우선 < 양말규격통일제 > 를 실시하면 적어도 1조의 손실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저는 양말 통일제로 보전한 이 비용'으로 " 한 동네 한 도서관 " 을 짓겠습니다. 전국을 걸어서 10분 거리 안에 도서관을 건립하겠습니다. 여러분 ! 양말 도서관'를 짓겠습니다 ! 그리고 그에 따른 시간 절약은 시간이 모자란 시한부 인생'이나 잠이 부족한 수험생 여러분에게 기부하는 제도를 만들겠습니다. 시간이 절실한 이들에게 이 시간은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까요 ? 당신이 양말 짝을 맞춰 개느라 소비한 의미없는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백 년 같은 하루과 될 것이고, 또 수험생에게는 달콤한 단잠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시간을 나누어줍시다.  

 

우리는 양말이 주는 교훈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른쪽이 집권한다고 해서 왼쪽을 버리는, 같은 이유로 왼쪽이 정권을 장악했다고 해서 오른족을 버리는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잃어버린 양말이 주는 교훈입니다.  이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 그리고 방송을 보고 계실 국민 여러분 ! 저는 이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의 새로운 정치적 실험에 동참하여 주십시요, 지지하여 주십시요 ! 감사합니다.  

 

와, 와와와 x 10000000. 기립박수 1시간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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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3-08-29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말말고도 스타킹도 해주십시오! 페티시즘을 가진 사람들은 웁니다...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9 18:02   좋아요 0 | URL
여성도 검은 양말로 통일해야 합니다. 페티시' 분들을 위해서 스타킹은 성인용품점에서 비싼 가격으로 팔릴 것입니다.

잉크냄새 2013-08-29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기 대선에서 폭풍의 눈으로 작용하겠군요.
미리 공약 선점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9 18:03   좋아요 0 | URL
저는 대충 기호 7번 정도 되겠습니다. 잉크냄새 니 지원 받고 무모하게 출마하겠습니다.

조선인 2013-08-2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말 공약은 별로지만 사이시옷에 한 표 던지기로 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9 18:03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전 사이시옷을 굳이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이거 보면 짜증이 확 납니다.

마립간 2013-08-2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결혼 전
양말을 10켤레(20짝씩) 구입했죠 (당연히 같은 크기에) 같은 디자인으로. (제가 shopping을 안 좋아하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한짝이 빵꾸가 나더라도 (잃어버린 적은 거의 없는 것 같고) 다른 것과 짝을 지어 신을 수 있기 때문에 19짝이 헤질 때까지 신을 수 있습니다. 19짝이 사라질 동안 마지막 남은 짝도 맡은 바 소임을 다했기 때문에, 멀쩡하게 버려지는 외로움/소외감이 없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9 18:0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역시 저랑비슷하군요. 저도 그냥 한 종류로 20컬레 사두고 씁니다.
이게 엄청 편해요.짝 맞추고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히히 2013-08-30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0거리 안에 도서관이 있는 곳에 살고 있으므로
곰...발님을 찍지 않겠습니다.
블랙42가 아닌 줄무늬나 땡땡이로 바꾸실 의향이 있으시면
재고해 보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31 03:32   좋아요 0 | URL
어휴... 일부러 도서관 바로 앞에 사셨군요
근데 저도 도서관 바로 앞에서 산 적 있는데 책은 한 권도 안 빌렸습니다.
전 빌린 책은 못 읽겠더라고요. 밑줄 긋는 버릇이 있어서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