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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전갈과 예수.
영화 < 크라잉게임 / 닐 조던, 1993 > 에는 " 개구리와 전갈 " 에 대한 우화가 나온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전갈은 헤엄치는 개구리에게 등에 업혀서 강을 건널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한다. 그러자 개구리는 성질 고약한 전갈이 자신을 물까봐 거절한다. 이에 전갈은 어이없다는 듯 한 마디 한다. " 이봐, 개구리 양반 ! 내가 자네를 물면 우린 둘 다 강물에 빠져 죽는다네. 내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거라 생각하는가 ? " 가만 생각해 보니, 전갈이 한 말이 옳은 듯하여 개구리는 그를 태우고 강을 건넌다. 그런데 전갈은 약속을 져버리고 강 한가운데에서 개구리'를 문다. 전갈이 말한다. " 미안해 ! 이게 나의 천성인걸. " 그래서 개구리와 전갈 모두 강물에 빠져 죽는다는 우화.
이 우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순수했던 한때'를 기억하는데 사실 그것은 자아도취'에 지나지 않는다. 어릴 때'는 순수했으나 사회 생활 하면서 타락했다는 변명은 우리가 흔히 범하게 되는 거짓말'이다. 같은 이유로 과거로 돌아가면 개과천선해서 착한 사람으로 거듭나겠다는 말도 뻥이다. 개망나니'가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산다고 해서 그 천성'을 버리기는 힘들다. 인간이란 어차피 생긴데로 노는 법이다. < 천성 > 을 두고 < 성선설 > 이나 < 성악설 > 중 한쪽을 선택해야 된다면 < 성악설 > 에 한 표'를 던지겠다.
왜냐하면 < 성선설 > 은 인간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판단에 의한 논리적 비약'을 허용한다면, 병아리도 아니면서 비약, 비약, 비약 한 번 나열하련다 : < 성악설 > 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서 희망'을 읽는 자세'이다. 인간을 긍정적으로 보는 문장들은 대부분 종교에 기댄 힐링 서적과 자기계발서'가 팔 할'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적들은 겉으로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빈 껍데기'이다. 당근과 채찍뿐이다. 반면 인문학은 " 인간은 본질적으로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자세 " 에서 출발한다. 인문학은 인간이라는 괴물'을 탐구하는 영역이다. 역설적이지만 희망이란 이러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열매'다.
불교 사상'은 성악설에 가까운 듯하다. 불교용어인 " 교화 " 란 부처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쳐 착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천성이 < 선 > 도 아니요 < 악 > 도 아닌 < 무 > 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교화'를 통해서 후천적으로 선'을 얻는 과정이라면 불교는 적어도 성선설은 아니지 않은가 ? 기독교의 세계관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운명이니깐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성악설'을 주장하면 나를 사회 불만 세력'으로 간주한다. 그리고는 늘 이런 주장을 한다. " 이봐, 곰곰생각하는발 ! 그렇다면 이토록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악의 씨'란 말이오 ?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고 말씀하시구랴 ! 가족이란 신성한 겁니다. 부르르르르르. " 그럴 때마다 나는 늘 당당하게 말한다. " 아이들은 < 악의 씨' > 가 아니라 < 아기 씨' > 에서 태어난 존재죠. "
신성한 가족 이데올로기'라는 주제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가족 신화'는 해체되어야 된다고 믿는다. 가족 신화 대신 모성 신화'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된다. 현대 혈연 중심 사회인 가족주의'는 부패하기 가장 좋은 구조'다. " 우리가 남이가 ? " 는 대표적인 유사 혈맹자들이 즐겨 쓰는 해병전우회用 혈서 같다. 차, 카, 게, 살, 장 ! 가족 중심 사회인 가톨릭 국가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북유럽 국가보다 부정부패 지수'가 월등하게 높은 이유는 가족주의'가 부정 부패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가족주의를 버리고 개인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만약에 이러한 가족 해체 주장'이 과격한 북조선 빨갱이들이 한 소리'라고 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그에 대한 반격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 그런 놈이다.
대중운동에 대한 125가지 단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 맹신자들 / 에릭 호퍼, 1951 > 은 얼핏 보면 대중운동'에 대해 빅엿'을 날리는 것 같다. 할 일 없는 눈먼 놈들이 지랄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학창시절에 최루탄 좀 던져봤다고 비분강개'하여 울분을 토해내는 리뷰'가 몇몇 있던데 과연 그런 식으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 이 책이 쓰여진 시점에서 보면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니다. 1,2차 세계대전이 막 지난, 대중의 집단적 광기가 휩쓴 시절에 쓰여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 이 책에서 말하는 < 대중 운동 > 은 사실 < 대중 선동 > 으로 바뀌어야 의미가 명확해진다. 에릭 호퍼의 지나치게 보수적 시각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무릎을 탁 치며 아, 할 정도'로 예리한 부분도 많다. 그는 가족주의와 기독교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우리 시대의 어떤 대중운동도 초기 기독교만큼 가족에 대해 적개심을 거리낌없이 표출하지는 않았다. 예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
- 맹신자들, 63
에릭 호퍼의 지적은 옳다. 예수는 십자가를 든 혁명가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는 사랑을 가르쳤지만 동시에 정당하게 분노하는 방법도 설파했다. 예수는 썩어빠진 이교도 사회를 혁명을 통해서 개혁하기를 원했다. 혁명이란 본질적으로 기존의 견고한 공동체'를 해체시키는 일이다. 이 공동체를 이루는 근간이 바로 가족'이다. 그래서 예수는 가족 해체'를 주장한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는 그,그그그그급진주의자'였다. 예수는 현대적 의미의 가족 울타리'를 확대할 것을 당부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 이웃, 나아가 인류 모두의 가족화를 설파하지 않았던가 ? 예수는 혈연이라는 가족'를 해체하고 더 큰 대안 가족을 받아들이라고 말한 청년이었다. 그렇다면 부처는 ? 부처야말로 가족의 탄생을 경멸했던 사람이었다. 가족이란 욕망이 탄생되는 무간지옥'이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와 부처는 성악설을 근간으로 해서 가족의 해체'를 주장한 사람'들이었다. ( 여기서 해체란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지 말 그대로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그런데 대한민국 기독교는 가족의 의미'를 완전히 오해했다. 성선설과 가족 신화가 기독교 기복신앙과 서로 뒤엉키면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한국형 가족주의는 장점은 적고 단점이 많은 불치병이 되었다. 가족이 가문'으로 확대되어서 가문의 일원'으로써 책무를 다 하라고 요구하면 그때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시부모는 사사건건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된 아들을 여전히 지시하고 통제하려 든다. < 가족의 심리학 > 이라는 책을 쓴 임상심리학자 토니 험프러스'는 시원하게 내뱉는다. " 시부랄, 그런 부모라면 의절해버리쇼 ! 가족의 중심은 부부가 되어야지 외부 가족이 간섭하면 엉망진창이 된다오. "
누누이 주장하는 바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핵가족 문제'보다 심각한 것은 대가족 문화'다. 한국 사회는 대가족화'를 건강한 가족 문화'라고 치부하면서 핵가족화'를 불안한 가족 형태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근거없는 뻥이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가족 해체가 아니라 가족 축소'다. 가족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최시중이 여자는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야 한다고 주접을 떨 때 이미 이 사회를 지랄같은 사회'가 된 것이다. 비혼자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은 고쳐야 할 것 가운데 하나다. 결혼은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