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시스템으로 키워진 등단 작가들은 단편을 문예지에 팔면서 근근이 생활한다. 단편이 모이면 단편집을 내고, 같은 방식으로 몇 권의 단편 소설집’을 낸 후 장편에 도전한다. 육상 종목'에 빗대자면 단거리 선수로 출발했는데 중간에 장거리 선수로 전향하는 것이다. 물론 성공하는 선수도 있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물론 단거리와 장거리 모두 좆 빠지게 달려야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지만 이 두 분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단거리는 전력 < 집중형 > 이고, 장거리는 전력 < 분배형 > 에 있다. 반면 평론가는 좋은 작가를 발굴해서 대중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게 뒤집어져서 작가가 평론가의 구미에 맞춰 글을 쓴다. 평론가가 모시는 윗분은 출판사다. 혹은 출판사가 스타 평론가를 모신다. 뭐 대충 이런 시스템이 운영되니 가장 밑바닥엔 소설가'가 깔린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 소설가의 가오 中
주례사 비평에 대하여.
오늘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서 운우지정( 雲雨之情 ) 을 나누는 날이니, 밤 하늘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져야 하나 공교롭게도 별똥'이 떨어진단다. 새벽 3시 즈음에 장관이 펼쳐지리라는 정보를 입수한 나는 뚫어지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도시에서 쏘아올린 빛 공해 때문에 가려진 뿌연 밤 하늘이다. 별똥은커녕 별도 볼 수 없는 서울의 밤'이다. 오늘따라 그 흔한 인공위성조차 보이지 않는다. 항상 정해진 자리에서 인공 광원을 쏘아대던 SK 이동인공위성사업 본부에서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GEG2 - 01호 인공위성이었는데 말이다. 개미가 기어가는 모습을 찍을 수 있다 하길래 나는 새벽 3시면 되면 인공위성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날리고는 했다. " 안녕, 365일 날마다 반짝이는 인공위성 씨, 엿이나 먹어랏 ! 잇힝 ~ "
365일 동안 그 짓을 하면 결국 에스케이텔레콤 인공위성 사업본부'에서는 내가 사는 집을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는 인공위성에서 전송한 수많은 퍽유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하겠지. " 고객님, 저희 회사에 불만 있으세요 ? " 그런데 아...... 오늘은 그 인공위성마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새벽에 퍽유를 날릴 대상을 찾지 못하자 삐딱해졌다. 혀 짧은 권상우 발음으로 " 대한민국 다 족구 하라 그래 !!! " 라고 외치고 싶었다. 아무나 붙잡고 " 너, 축구 싶냐 ? " 라거나 " 농구 자빠졌네 ! " 라고 비웃고 싶었다.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딴지를 걸 대상을 찾아헤매다가 딱 걸린 것이 바로 문학평론'이었다. 오호라, 잘 걸렸다 ! 멍석 말아 타작을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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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행'이 몇 개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케이블 낚시 방송 시청'이다. 한때 24시간 낚시 방송만 틀어놓고 산 적도 있다. 낚시 방송 하면 해양 스펙타클 다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 사실은 강태공 한 사람이 저수지에 앉아서 낚시하는 게 전부인 방송이다. 방송 진행자가 송사리'라도 잡으면 오, 오오오오오. 송사리가 잡혔어 ! 참고로 나는 낚시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cnn 뉴스를 자주 시청하는 것도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스피킹은 고사하고 리스닝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cnn 뉴스를 듣는다. mbc뉴스보다는 재미있다. 오늘 냉면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는데 24시간 속보 체제로 시큐어시티 로봇 탐사기의 화성 착륙을 보도했다. 3조 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시큐어시티의 주요 임무는 화성에 생명체 발견이란다. 속으로 소설을 쓴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외계인이 어디에 있나 ? 그런 것은 모두 공상 과학 소설에나 나오는 것. 화성에 생명체가 있나를 확인하기 위해서 3조 원이란 돈을 낭비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 내가 목숨 걸고 주장하지만 외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할복하겠다.
날이 덥고 해서 동네 카페'에서 시원한 피서를 할까 하고 길을 걷는데 독특한 디자인의 외제차'를 발견했다. 평소 외제차에 시큰둥하게 반응하곤 했는데 이 차는 정말 처음 보는 외양의 차였다. 그런데 가까이서 가 보니....... 맙소사 !!!!!!!!!!!!! CNN뉴스에서 24시간 속보 체제로 생중계한 그 시큐어시티'가 아닌가 ? 화성에 있어야 할 놈이 왜 대한민국 서울시 강북 어두컴컴한 곳에 떨어진 것일까 ? 시큐어시티 캠이 나를 녹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살짝 뒤를 돌아보았더니 시큐어시티'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 찌지지지지직.... 뚜,뚜,뚜. 당신은 생명체입니까 ?
- 나 말이오 ?!
- 삐리리릭. 전 탐사용 로봇 시큐어시티. 전투용 로봇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다시 묻습니다. 생명체입니까 ?
- 뭐요 ? 아니.. 그럼 당신은 내가 위니아 에어컨 실외기처럼 보이오 ? 허... 참 ! 아니 이 어두컴컴한 강북에서 뭐하는 겁니까 ? 당신은 지금 화성에 있어야 한다고 !
- 삐리리리릭. 저는 지금 화성에 와서 탐사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삐리릭...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유... 이 새끼 ! 더위 먹었나 ! 여긴 지구야 ! 어스... 지구라고 !
어이가 없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닝기미, 여기가 화성이면 난 화성인인가 ? 내가 외계인이면 지금 당신들은 외계인과의 교신에 성공한 것이 아닌가. 어머니에게 자조지종을 설명하니 어머니가 갑자기 선풍기 프로펠라'를 빼더니 공중을 향해 던졌다. 오, 프로펠러는 하늘을 날더니 이내 멀리 사라졌다. " 어머니, 왜 이 더운 날 선풍기 프로펠러를 날려버립니까 ! " 어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 본부와 연락을 취하는 거다. 지구인이 우리 화성인'을 공격하기 위해 침공했어 ! "
이건 또 무슨 망망한 말인가. 멘탈이 붕괴될 것 같았다. 잠시 후 하늘을 향해 날린 프로펠러가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왔다. 어머니는 프로펠러와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지붕 위로 올라가 안테나를 뽑고 선풍기 프로펠러를 꽂았다. 어머니는 이내 방으로 들어오셔서 리모컨을 조종했다. 프로펠라가 작동하더니... 맙소사 ! 집이 붕 뜨더니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닌가 ! 집은 알고 보니 우주선이었던 것이다. 선풍기 프로펠러가 우주선 프로펠러였다니. 어머니가 외치셨다. " 우주 전쟁이 시작되었다 ! 어택, 어택, 총 공격 ! " 지금 나는 우주선 안에서 이 글을 쓴다. 지구를 향해 이동하는 우주선 안에서 말이다. 사람들이 종종 나를 두고 화성인이라고 농을 칠 때마다 그냥 웃고 말았는데 알고 보니 정말 나는 화성인이었던 것이다.
피하시라. 지금 당신의 지구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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뗄래야 뗄 수 없는 짝패 사이가 있기 마련이다. 동양에는 귀신과 사또‘가 있고, 서양에는 유령과 햄릿‘이 있다. 반면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에서는 사건 의뢰인과 탐정 사이도 고전적 짝패 관계'이다. 한쪽을 귀신, 유령, 고객'으로 묶고, 다른 쪽을 사또, 행릿(왕자), 탐정'으로 묶어보자. ( 전자를 A라고 하고 후자를 B라고 하자. ) A 집단과 B 집단 간의 공통점은 무엇이 될까 ? A는 자신이 처한 곤경, 하소연, 넋두리'를 말하는 위치이고, B는 그 사연을 듣는 청자 역할을 한다. 즉, A는 스토리 제공자이고 B는 그 텍스트를 분석하는 위치'에 있다. 환자와 의사 사이'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소설가와 비평가 사이'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깐 소설가 혹은 소설은 귀신, 유령, 의뢰인, 환자와 같은 역'을 담당하고, 비평가는 사또, 햄릿, 탐정, 의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오늘은 다른 짝패는 접어두고 소설가와 비평가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학평론가에 대한 독설이다. 환자를 진료할 때에는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문학비평은 정확한 진단은커녕 권력 집단을 향한 풍각쟁이'로 전락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문학평론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현란한 비평 언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 타자의 허구적 영역 > 이라거나 < 전복적 상상 > 이라거나 < 자아라는 환상의 복원 > 이라거나 < 타인과의 매혹적인 합일의 체험 > 이라거나 < 위대한 사소성의 소설 > 등등...
얼핏 보면 훌륭한 조합 같지만 이건 <조합> 이 아니라 <조잡> 이다. 이런 문장을 접할 때마다 < 타자의 허구적 영역 > 은 < 4번 타자에게 걸려든 정직한 투수의 직구 > 이라거나 < 전복적 상상 > 은 < 바닥의 진흙을 먹고 사는 서해 전복의 쓸쓸한 생각 > 이라거나, < 타인과의 매혹적인 합일의 체험 > 은 < 당신과 함께 모텔에서 뒹군 황홀한 경험 >이라고 고쳐 쓰고 싶다. 이들 문학 비평 먹물들은 < 의 > 라는 조사와 < - 的 > < -性 > 이라는 몇몇 접미사‘만으로 국물의 맛’을 내는 얼치기 주방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 ~ 의, 적, 성 > 이라는 단어의 재료로 국물을 내는 비평가는 라면 스프나 조미료만으로 요리를 하는 주방장과 같다. 뭐, 맛은 난다 ! 다만, 몸에 해롭다는 것이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 세 개‘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문장은 일단 그럴듯하다. < A 의 B 的 C 性 > 은 그들이 즐겨 쓰는 문장이다. 전복'이란 단어가 나왔다 하면 무조건 전복은 상상만 한다. " 전복적 상상 " 운운은 지겨우니 " 전복의 생각 " 이라거나 " 전복이 꿈꾸는 세상 " 이란 조합은 어떤가. 지겨운 것이다. 이 뻔한 클리세'가 지겹다는 말이다. 이런 문장은 어떤가 ? “ 자아의 획일적 자폐성’은, 근대성에 대한 도전적 질문의 방식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유령의 서사를 빌려서 고백하는 것이다. 주인공 A의 고립'은 본질적으로 의도적 수인의 수동적 자기 함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
이런 문장으로 원고지 100장을 채우라고 한다면 1시간 안에 근심 없이 채울 자신이 있다. 이런 것‘을 두고 황홀한 문장 운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교통 정리'가 되지 않아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 어지러운 문장 > 을 < 어려운 문장' > 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 조잡한 문장 > 을 < 조화로운 문장 > 으로 이해하는 독자 또한 비판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문장'을 만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그들에게 충고해야 한다. " 쉽게 말하세요.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해야지,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것'은 위선이 아닐까요 ? "
그런데 정작 먹물들은 반성할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패거리’를 정해 놓고는 아귀다툼에 정신이 없다. 출판사 **‘는 *** 평론가를 중심으로 모이고, 출판사 **은 *** 씨로 뭉친다. 이제 ****는 ***로 모일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의 변절은 보는 내내 슬프다. 신파다. 그놈의 다이아몬드가 뭐라고 ! 초기 *** 의 평문은 날카로웠으나 비평계 스타 작가‘로 떠오르자 기고만장해져서 본래 가지고 있던 벼린 칼’은 무디어진 지 오래‘다. 그가 최근 보인 행보’는 정치적이다. ***가 동인문학상 종신심사위원으로 발탁되면서 남긴 변은, 맙소사 !
***씨와 *** 씨‘처럼, 특정 출판 권력’에 기대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그것은 혈맹 간 자폐적 옹호‘이기 때문이다. 내가 요즘 잘나가는 젊은 비평가에게 의심을 풀지 않는 이유이다. ****에서 출간하는 책 끄트머리’에 살짝 끼워 넣는 그들의 작품 해설‘은 솔직하게 말하지만 아침 신문에 끼워 넣는 광고 속지’ 같다. “ 이럴 수가, 망했다 ! 세계 최초 나이킹 본사 물류 창고 大방출. 선착순 20인에 한하여 신라면 1박스 무료 증정.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 사거리 미미예식장 1층 ! 지하철 홍제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인기 상품은 조기에 품절될 수 있으니 서두르세요. ” -
A 출판사가 낸 소설을 A 출판사 전속(이나 다름없는) 문학평론가에게 속지 비평을 청탁하는 자세는 옳은 태도일까 ? 설령 그 청탁을 받고 쓴 글은 정직할 수 있을까 ? 대한민국 스타 작가들은 자신이 속한 출판사에서 출간된 소설에 대해서만 비평을 하는 경향이 있다. 책 속에 삽입된 주례사 비평'을 수없이 읽어봤지만 백이면 백, 모두 성찬이다. 이런 주례사 비평'만 읽다 보면 한국 작가는 노벨 문학상을 백 번 정도 수상해야 할 것만 같다. 설상가상, 출판사는 답례로 속지 비평을 모아서 평론집’을 내준다. 안 팔려도 좋다 ! 문학평론가가 출판사에 노력 봉사 한 대가'다. 나는 책 속에 광고 속지‘( 주례사 비평 ) 를 끼워서 서점에 내놓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평론가가 내뱉는 설레발은 믿지 않지만 서평가가 쓴 글은 귀담아 듣는 이유이다.
적어도 서평가들은 출판사와 결탁된 혈맹의 지랄같은 동맹 욕망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독자는 단순히 평론가의 분석‘에 복종하는, 지적으로 멍청한 < 띨띠리’ > 가 아니다. 독자 모두는 ( 모두라고 할 수는 없지만 ) 귀신의 말풍선‘을 주의 깊게 분석하는 능력을 갖춘 사또이며, 햄릿이며, 탐정이며, 프로이트’이다. 굳이 속지 비평가'가 친절하게 작품 해설을 하지 않아도 독자는 충분히 비평적 위치에서 작품을 분석할 수 있다. 속지-비평가‘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면 우리 모두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릴 거라는 순진한 사고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속지' 속 과장 광고'에 모두 한두 번은 속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 대방출은 알고 봤더니 미끼 상품이란 사실을, ** 역에서 걸어서 3분은 걸어서 10분 거리이고, ** 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는 사실 말처럼 뛰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란 사실을 말이다. 모든 신문 속지 광고는 과장이 팔 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