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결혼을 거부한 철학 교사 편을 읽으면서(읽는다고 막 자랑하며 설레발을 친 것에 비하면 진도는 아직 2장이네요^^)
드는 생각은 역시 떡잎부터 다른 보부아르의 10대 시절 철학적인 사유에 절로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젯밤 조지 앨리엇의 <플로스강의 물방앗간>을 잠깐 읽다가 꿈나라로 갔다 왔었는데, 보부아르는 아가 학생 시절에 이미 <플로스강의 물방앗간>을 읽고, 느끼고, 백자평?도 썼다.

조지 앨리엇의 <플로스강의 물방앗간>은 아무것도 모를 열한 살, 열두 살 즈음에 읽었다. 그 책에서 떠올린 다른 질문들도 시몬의 생애와 철학에 자취를 남긴다. 앨리엇의 작중 인물 매기 털리버는 똑같은 바느질을 반복하는 패치워크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시몬에게 힘들고 단조로운 가사 노동이 으레 당연한 일처럼 주어진다면 어떻게 자신과 타인의 욕망 양쪽 모두에 충실할 수 있을까? 여성은 많은 것을 희생하는데 남성은 별로 그러지 않는 게 ‘사랑‘이라면 사랑은 과연 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학생이었던 1926년에 쓴 일기에서 시몬은 여전히 자기 자신을 얼마만큼 양보하고 지켜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숙고한다. 매기 털리버가 사랑하게 된 스티븐은 그런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남자다. 보부아르는 왜 메기가 그에게 끌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관계는 친구 같은 사랑이다. 책을 교환하고 대화를 즐기는 남녀 사이가 영원히 남는 것 같다˝
(62쪽)

보부아르는 어린시절부터 ‘나‘와 ‘타인이 보는 나‘ 사이의 양가 감정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진정한 내 모습인 것인지? 고민하는 조숙함이 돋보인다.

타인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과 나를 위해 살고 싶은 마음, 이 상충하는 욕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보부아르의 학생 시절 일기, 실존주의 윤리, 페미니즘의 중심 질문이다.
(65쪽)

어린 시절부터의 오랜 고민이 결국 실존주의 윤리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고, 훗날 사르트르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시몬은 일기에서 스스로 삶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한다. 삶을 얻은 이상, 가능한 한 최선의 방식으로 살아낼 의무가 있다. 자기를 온전히 내어준다는 것은 사실상 ˝정신적 자살˝이다. 자기를 얼마나 내어주고 지킬 것인지 결정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편이 쉽다. 시몬은 이때 필요한 것이 ˝균형˝이라고 말한다. 균형이 잡힌 사람들은 ˝타인을 섬기기 위해 자기 의식을 완전히 없애지 않고도˝ 자기를 내어준다. 시몬은 자기를 내어주되 자기를 잃지 않으면서 살고 싶었다.
(81쪽)

어린 시절부터 미래의 약혼자라고 약속 아닌 약속되어진 관계의 자크라는 남자와도 서로 왕래하며 잘 지내왔지만 막상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보부아르는 자크와의 결혼 생활에 대한 기대를 일찌감치 접는다.
보부아르의 어머니는 자크와 연결시켜 보려고 노상 좌불안석이었지만 말이다.
참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글 쓰는 딸들> 책에서 보부아르 편에 그려지는 보부아르 어머니 프랑수아즈는 매우 엄격하고, 고지식한 엄모로 그려졌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여기서는 엄하고 고지식함도 여전하지만, 조금 더 극성스러운 엄마로도 비친다. 그리고 프랑수아즈도 머리가 상당히 비상하였던 듯 하다. ‘딸들이 크고 시간이 많은 프랑수아즈는 독서와 공부에 매달리면서 시몬의 공부를 따라갔다고 한다. 머리가 좋았던 프랑수아즈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다니엘루 선생의 커리큘럼에 감탄하게 되었다.(77쪽)‘
라고 한다. 보부아르의 엄마 프랑수아즈도 환경이 달라 좀 더 많은 교육을 받았더라면 보부아르의 교육의 질은 다른 방향으로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1927년 5 월 일기에서도 이 외로움의 표현을 볼 수 있다.
˝나는 정신적으로 매우 외롭고 내 삶의 초입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나에게 가치가 있고, 할 일과 할 말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시몬은 자신의 ˝지적 취미˝와 ˝철학적 진지함˝을 ˝미소˝로 일축해버리던 자크의 태도를 돌이켜 보고 결연하게(여백에 강조까지 해 가면서) 이렇게 썼다. ˝내 삶은 단 하나뿐인데 하고 싶은 말은 많다. 그는 내 삶을 나한테서 앗아 갈 수 없을 것이다.˝
자유를 다시 생각한 시몬은 일기에 이렇게 쓴다.
˝자유로운 결정과 상황의 상호 작용을 거쳐야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86쪽)

균형, 상호 작용, 자유로운 결정...
줄곧 고민해 온 사유들은 곧 보부아르 철학의 정신을 이루어 준 결과물이었다.

일기에는 자기와 타자 사이의 ‘균형‘ 문제가 계속 나온다. 시몬은 자기 삶을 두 부분으로 쪼개기 시작했다. ˝타자들에 대한˝ 삶과 ˝자기 자신에 대한˝ 삶. 이 구분은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수립한 그 유명한 구분 -‘대자 존재‘ 와 ‘대타 존재‘ - 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앞선 것이다. 사르트르의 구분이 시몬의 소설과 <제2의 성>에서 영향을 끼쳤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한 시각은 시몬이 이미 어릴 때부터 독자적으로 수립한 것이다.
(90쪽)

보부아르 관련 책을 먼저 읽고, 사르트르의 책을 순서로 읽어봐야 할 이유를 발견한 셈이다.
근데 언제 읽나?

암튼,
읽으면서 내내 감탄 하며 도넛을 먹다가,
문득 이 도넛과 커피는 보부아르 님께 바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엉뚱하면서도 예의바른?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오늘의 보부아르님 책 독서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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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0-04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총명한 어린 보부아르!
감탄하게 되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이런 의문과 분석과 사유를 하는지...
도넛과 커피... 빵 터졌습니다. ㅋㅋ

책읽는나무 2022-10-04 16:49   좋아요 2 | URL
총명하고 영특했죠?
떡잎부터 달라요~달라~^^
도넛이랑 커피 마시다가 보부아르님의 위엄에 압도당하여 내가 사진 앞에서 혼자 먹어도 되나? 싶더군요. 오늘은 얼굴 나오신 책 표지를 얼른 치우고, 먹었어요ㅋㅋㅋ

수이 2022-10-04 14: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넛과 커피를 보부아르 언니에게 바치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당장 보부아르 언니한테 달려가고픈 마음이 들어요. 앞으로 쭉쭉 더 감탄하시게 될 겁니다.

책읽는나무 2022-10-04 16:50   좋아요 1 | URL
또 더 감탄하게 된다구요?
어휴~ 책을 앞에 두고 이젠 감히 못 먹겠군요? 미리 다 먹고, 책을 펼쳐야겠어요^^

미미 2022-10-04 14: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저는 열한살, 열두살에 뭘 했었나 회상해봅니다. 놀기 바빴던것 같아요ㅋㅋㅋㅋ
이 책 찾으면 저도 나무님 따라 읽고 싶네요. (책탑 쓰러질까봐 지금 뒤지지도 못하고 있어요ㅋㅋ)

책읽는나무 2022-10-04 16:56   좋아요 2 | URL
우리 열한 살, 열두 살 땐...천둥벌거숭이 아녔을까요?ㅋㅋㅋ
조지 앨리엇을 읽다니!!!!!🥴🙉
전 아까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책을 한참 찾았네요ㅜㅜ 분명 읽으려고 옆에 놔뒀는데 없어져서 도서관에 놔두고 왔나?? 놀래서 찾았더니 저기 젤 윗 책장칸에 올려놨더라는...
저도 책탑 아랫쪽에 있었음 뺄 엄두도 못냈을겁니다ㅋㅋㅋ
미미님 부지런히 책탑 완독하시는 날이 보부아르님 영접하는 날이네요^^

scott 2022-10-04 14: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넛이 넘 얇아여! 두툼해야 하는데 ㅎㅎㅎ나무님 물방앗간 열두살 열한살때 완독을!ㅎㅎ저는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열 세살에 읽고 괴테를 싫어 하게 되었습니다 ^^

책읽는나무 2022-10-04 17:01   좋아요 2 | URL
도넛이 가운데 뻥 뚫린 링모양이라 그렇긴한데 실은 저 포크랑 머그컵이 커서 도넛이 작아 보일 수도 있어요.
포크가 스파게티용 큰 포크에요ㅋㅋ
도넛 찝어 먹을 땐 대형 포크가 좋더라구요^^
아니...스콧님!! 열 세살에 괴테를??
음~ 제2의 보부아르님 되실 뻔 했네요.
ㅋㅋㅋ
베르테르 전 아직 읽어보진 않았는데 주인공 컨셉이 별루였나봐요?
열 세살 꼬마에겐 불이었군요.ㅜㅜ

호우 2022-10-04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과 커피와 도넛이라니, 참 바람직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이군요. ^^ 보부아르님의 십대 시절은 존경의 마음을 품게 하네요. 이런 선진들 덕분에 오늘 날의 우리가 그 열매의 맛을 보나 봅니다. 나무님의 다음 노트가 기다려지네요~~

책읽는나무 2022-10-04 17:04   좋아요 2 | URL
계속 감탄, 감탄 중인데요~ 앞으로 더 하다고 하시니...이걸 어떻게 더 얼마나 더한 감탄 리액션을 해야 할지?ㅋㅋㅋ
지금 벌써 감탄 리액션을 무리하게 다 써버렸는데 말입니다^^
기록 노트를 기다려 주신다니...또 커피 마시고 힘 내서 다음 편 감탄을 할 준비를 하고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10-04 17: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조지 앨리엇을 11~12살 무렵에 읽었다구요?ㅎㅎ 아니...ㅠㅠ 저 그때 놀기만 한 것 같은데요. 역시 떡잎부터 달랐던 보부아르군요. 보부아르는 팬들이 워낙 많아서 도넛이고 커피고 마음 속으로 하트 날리고 계실 것 같습니다.
나무님 서재 오면 항상 독서대에 가지런히 놓인 책과 커피, 간식을 기대하게 됩니다ㅎㅎㅎ
오늘도 어김없이 츄릅~!

책읽는나무 2022-10-04 18:06   좋아요 2 | URL
그리 적혀 있어서 어젯밤 플로스강 책 읽다가 졸아버린 제가 참 거시기 했네요ㅋㅋㅋ
저도 그 시절 막 놀러 다녔던 것 같아요. 아..남자애들도 막 때리고 다니기도 했었던...여자애들 괴롭히는 짖궂은 남자애들 벌 주러 막 떼지어서 혼내주러 다녔었는데 지금은 세상 쫄보가 되어 암말도 못하고 사는 제가 되었네요ㅜㅜ
보부아르님 팬들이 많아서 선물 공세 많이 받으셨겠죠?
암만...당연하실껍니다^^
이젠 미안해하지 말고 당당하게 먹어야겠군요ㅋㅋ

희선 2022-10-05 0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넛과 커피를 보부아르 님에게... 잘 받았을 거예요


희선

책읽는나무 2022-10-05 09:12   좋아요 0 | URL
살아계셨음 던킨 도넛이랑 커피랑 택배로 막 보내드렸을지도 모르겠네요?
보부아르님 단 거 좋아하실 것 같은데 말입니다ㅋㅋ
그러고보니 팬이라고 선물 같은 걸 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국내작가들에게 한 번 해볼까요?ㅋㅋㅋ
그냥 책이라도 사 주는 걸로 대신해야겠습니다. 책 사기도 바빠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