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실천적 사회과학자 '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신간이 출간됐다. <지식의 불확실성>(창비, 2007). '새로운 지식 패러다임을 찾아서'가 부제이며 월러스틴의 새로운 사회과학 방법론 모색작업을 압축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한권으로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창비, 2001), <사회과학의 개방>(당대, 1996),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창비, 1994) 등을 모두 '카바'할 수 있겠다. 생각해보니 이 나머지 책들을 소장하고 있지 않은 듯하여(나는 월러스틴의 책을 서너 권밖에 갖고 있지 않다) 뭔가 '다이제스트'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신간을 손에 들었다.

 

 

 

 

아직 리뷰들이 올라와 있지 않은데, 소개에 따르면 "'세계체제' 분석으로 널리 알려진 사회과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타인의 지식패러다임의 비판적 전망서"로서 "그의 전 저서들-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사회과학의 개방> 에서도 비판하듯이, 이매뉴얼월러스틴은 19세기식 학문의 시효가 만료되었음을 재차확인하고, 새로운 지식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다.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9세기 학문의 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과, 새로운 지식 패러다임에 대한 모색이 내용의 큰 부분을 이룬다."

특이한 것은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의 저자 일리야 프리고진에게 이 책을 헌정하고 있는 점. "과학자이자 인문학자이자 학자였던 일리야 프리고진(1917-2003)을 기억하며"라고 월러스틴은 서두에 적었는데, "지은이에 의하면 일리야 프리고진의 '복잡성'으로 대표되는 '복잡성 과학'과 기존의 담론에서 소외되었던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기 시작한 '문화연구' 는 19세기식 지식패러다임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며, 이 종말 이후에 보다 총체적인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가 지향, 제시하는 총체적인 방법론은 배타적인 이분법 대신, 양쪽을 감싸안으면서 새로운 비전을 줄 수 있는 '역사적 사회과학' 이다."

말하자면 이 '역사적 사회과학'이 불확실성의 시대의 새로운 지식 패러다임일 터이다(제목은 프리고진의 <확실성의 종말>(사이언스북스, 1997)을 바로 떠올리게 한다). 월러스틴이 프리고진으로부터 힌트를 얻어온 개념은 '배제되지 않은 중도(unexcluded middle)'인데, 그것은 달리 '결정주의적 혼돈' 혹은 '혼돈적 결정주의'를 가리키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방법론을 통합하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지시하는 듯하다. 역자가 인용하는 바에 따르면, 그러한 방법론을 통해서 월러스틴이 모색하고자 하는 길은 "새로움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결정주의적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와, 모든 것이 부조리하고 원인이 없고 불가해한, 주사위놀이를 하는 신이 다스리는 세계, 즉 소외로 이끄는 이 두 개념 사이에 난 좁은 길"이다.

'중도'는 요즘 정치권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는 노선인데 월러스틴의 통합적 방법론으로서 그것이 얼마만큼 생산적이며 또 어떤 구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건지는 (아직 책을 읽기 전이라)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월러스틴이 낸 '좁은 길'을 따라가는 여정의 길잡이가 매우 상세한 해제(옮긴이의 말)를 붙이고 있는 믿을 만한 역자인지라 적어도 '번역의 불확실성'으로 고생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은 기대해볼 만하다. 뒷표지에 실린 한 추천사에 따르면, "월러스틴의 책은 항상 읽기 쉽고, 상당히 설득력이 있으며, 심오하다."니까 가벼운 복장으로 따라나서기만 하면 되겠다.   

07. 04. 25-26.

P.S. 보다 자세한 내용은  내일자 한겨레의 리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05562.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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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경향신문의 연재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첫회를 옮겨놓았었는데 그 두번째 이야기가 연달아 게재되었다. 따로 옮겨놓을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S님이 상기시켜주는 바람에 부랴부랴 퍼놓고 며칠 뜸들이다가 몇 자 적는다. '지금,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가 기사의 타이틀이지만 잠시 유행하던 제목을 본떠서 '그 많던 지식인들은 어디로 갔을까?'라고 새로 제목을 붙여서. 사실 유사 타이틀을 단 책이 나오긴 했었다. 프랭크 퓨레디의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청어람미디어, 2005)가 그 책이다.

 

나는 생각난 김에 어제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했고, 또 덩달아 생각난 김에 파스칼 오리 등의 <지식인의 탄생>(당대, 2005)의 몇 대목도 복사했다. 죽음은 언제나 탄생의 장면에 대한 회고를 불가피하게 불러일으키기 때문인데, <지식인의 탄생>은 사실 지식인의 그 쇠잔해져 가는 운명을 끄트머리에서 다루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한 책에서는 "정치적 인간의 상황에 처한 창조자 또는 매개자로서의 문화인, 이데올로기 생산자 또는 소비자"로 다소 번잡하게 정의내리고 있지만, 사르트르의 정의가 훨씬 간편하고 유용하다. 그건, "지식인이란 자기와 상관도 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더 간단히 말하자면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바로 지식인이다.

고종석은 그 사르트르의 말을 이렇게 풀었다. "지식인은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다. 그 말을 바꾸면 지식인은 세상의 모든 일이 자신과 관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사르트르는 더 나아가 지식인은 자신의 지적 영역에서 쌓은 명성을 "남용"-사르트르에게 이 "남용"이라는 말은 당연히 긍정적 의미로 사용된다-하여 기존의 사회와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바로 이 "남용"이야말로 지식인의 본질적 부분이고, 어떤 체제, 어떤 시대에도 지식인이 처할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코드 훔치기>)

경향신문의 연재에서 지식인이란 말은 좀더 두루뭉술하게 사용되는 듯하다. 가방끈 긴 이들 가운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세우면서 행세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는 게 아닌가란 인상이다. 그러니까 거기엔 (러시아식 계보의) 인텔리겐치아와 (영미식 계보의) 인텔렉츄얼이 혼합돼 있는 듯싶은데(다양한 분포는 그래서 나오는 것 아닐까?), 그건 좀 비생산적이다. '지식인이 처할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이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기도 하고. 해서 '지식인 생태학'에 관한 참고자료로서나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지식인의 죽음과 지식인 지도가 양립가능한가?).   

경향신문(07. 04. 25)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1-2. 지금,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지식인 사회가 분명한 ‘민주 대 반민주’ 전선으로 양분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지식인 사회는 ‘사상해방’이라고 할 만큼 다양하게 분화됐다. 반공주의자는 냉전적 사회인식이 힘을 잃어가면서 세가 줄었다(*'반민주적 지식인'이 가능한 포지션인가?). 특히 2000년 6·15공동선언 등 남북한 화해무드가 지식사회 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파 지식인들도 반공주의를 배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민족주의자의 경우 위세는 여전하지만, 인권·시민사회· 탈민족주의자의 부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너도 나도 자유주의를 자처할 만큼 자유주의자가 증가하고 있다. 노동, 성, 환경 등 다양한 주제가 등장하면서 지식인의 분포도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부상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동아시아론’ 등 대안 담론의 도전을 받고 있다. 좌파 지식인들의 우파 전향 및 ‘중도선언’이라는 새 경향도 나타났다. 80년대 중반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포기한 좌파 경제학자 안병직(뉴라이트재단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을 비롯해 90년대 소련 등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김영환(시대정신 편집위원), 신지호(자유주의연대 대표) 등 ‘주체사상파 운동권’들이 전향했다. 최근 홍윤기(동국대 교수), 황석영(소설가) 등은 ‘급진적인 좌파나 경직된 우파가 아닌 통합적 대안으로서의 중도’를 천명했다.

경향신문은 최근 이들의 사상 궤적을 토대로 ‘2007년 한국사회 지식인 지도’를 작성했다. 정치·경제·사회 이념의 좌우 성향(가로축), 민족주의 성향 여부(세로축)로 한 2차원 공간에 주요 지식인을 배열했다(*표 자체는 옮겨오지 못했다). 두 축의 교차점에서 멀수록 이념적 특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강정구(동국대 교수)와 강만길(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고려대 명예교수)은 좌파 성향에 차이가 있지만 민족주의적 특성이 강하다. 강정구는 좌파 민족주의자, 홍세화(한겨레신문 기획위원)는 좌파 탈민족주의자, 복거일(문화미래포럼 대표·소설가)은 우파 탈민족주의자를 각각 대표한다.

김호기(연세대 교수)는 “우리의 지식인 이념 분포 양상은 서구 사회와 다르다. 서구적 틀로는 좌파가 탈민족주의, 우파가 민족주의 중심으로 분포하지만 우리는 좌파민족주의 지식인들이 많다”며 “이는 김구 등 우파 민족주의 그룹이 몰락하고 나서 수십년간 반공체제가 공고해진 탓”이라고 말했다.

#민족주의자
좌우 이념 성향에 따라 북한체제의 포용 및 통일 방식의 개방성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좌파 민족주의자는 ‘분단 국가의 일부’로서 남한이 가진 정체성의 한계를 강조한다. 70년대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등을 써 통일지향의 필요성과 민족문제에 대한 자각을 일깨운 강만길, 남북한 모두의 내부 모순을 해소하기 위한 통일(분단체제론)을 주장한 백낙청(‘창작과 비평’ 편집인·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진보적 민족주의자다. 급진적 좌파 민족주의 지식인들은 ‘북한도 우리의 일부’란 시각에서 반외세 자주 통일을 지향한다. ‘민중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는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강정구, 송두율(독일 뮌스터대 교수)이 있다. 우파 쪽의 대표적 인사로 신용하(독도학회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서길수(고구려연구회 이사장·서경대 교수) 등이 있다. 남한 체제 우위의 통일을 추구하거나, 통일보다는 대외 영토·역사 문제에 천착한다. 중도적 민족주의자로는 ‘전통 문화·정신’을 강조하는 김지하(시인·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를 들 수 있다. 북한을 타도 대상으로 보는 통일지향 세력으로서 극우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인사로는 97년 월남한 ‘주체사상의 대부’ 황장엽(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을 들 수 있다.



#좌파·진보주의자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결함을 비판한다. 마르크스주의, 진보적 시민사회론, 근대비판주의 등으로 분화해 있다.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은 사회 구성과 발전의 주체로서 노동자 계급을 강조한다. 특히 불평등 문제를 주시한다.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 위원으로 활동 중인 장상환(경상대 교수)은 현실 참여를 통한 사회 개선을 추구한다. 오세철(연세대 명예교수)은 좌파 학자들 위주로 ‘부르주아 체제에 포섭되지 않는 대안학교’인 진보적 사회과학대학원의 설립을 추진중이다. 손호철(서강대 교수)은 계급·민중적 시각의 사회평론에 적극적이다.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지식인 그룹으로는 문화주의, 트로츠키주의, 자율주의자가 있다. 문화주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을 비판하는 한편 자본주의 체제 내 문화가 계급 및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한다고 본다. 강내희(중앙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시민단체 ‘문화연대’를 통해 음악 저작권 강화 반대, 18세 선거권 낮추기 운동, 외국인 노동자 문화축제 등을 펼치고 있다. 트로츠키주의자 정성진(경상대 교수)은 국가 단위의 자본주의 극복이 아닌 세계 수준의 혁명을 추구한다. ‘노동계급의 국제연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같은 노선에는 국제사회주의 단체 ‘다함께’가 있다. 자율주의자 조정환(갈무리출판 대표)은 스탈린식의 일당(전위당) 독재를 거부하고 노동자 자율에 의한 혁명과 발전을 추구한다.

진보적 시민사회론자들은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사회변화의 주체를 ‘억압 당하는 노동계급’이 아닌 ‘시민’으로 본다. “민중이 자신의 다양한 이익을 체제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최장집(고려대 교수)의 민주주의 담론이 이와 연계된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김상조(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운영위원 조국(서울대 교수)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근대비판주의 지식인의 스펙트럼은 넓다. 페미니즘, 생태주의, 탈근대론 등 체제 비판 이론이 다양하게 분포해 있다. 국가주의, 개발론, 민족주의 등 근대적·권위주의적 담론을 거부한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적 사회체제가 가지는 폭압적 구조를 반대한다. 여성운동의 대가 이효재(이화여대 명예교수)로 시작된 페미니즘은 ‘여성의 신체’(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에서 ‘여성노동자’(조순경 이화여대 교수)까지 논의의 폭을 넓혔다.

생태주의는 ‘대안적’ 삶·사회를 꿈꾸는 급진적 개발반대론이다. ‘지속가능한 발전’(환경주의)을 넘어 ‘인간의 탐욕’이란 문제 의식에 기초해 “생태 문제를 최우선시하고 생태가치를 생활의 전반에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종철(녹색평론 대표), 장회익(녹색대학 석좌교수)이 있다. 탈근대론자들은 ‘민족주의 비판’(임지현 한양대 교수), ‘냉전적 국가론 비판’(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소수자 소외 비판’(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등을 통해 가부장적 획일주의, 순혈주의를 비판한다.

#우파·보수주의자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반대, 자본주의 지향을 유지한다. 반공주의, 반공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뉴라이트, 시장자유주의 등이 분포하지만 각각 명백히 구분되지 않은 채 혼재된 양상이다. 반공주의 지식인들은 ‘정통 보수’를 자칭하며 ‘대한민국의 법통’을 강조한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서 대한민국은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대항해야 한다는 논리를 토대로 한·미동맹과 보안법을 최우선시한다. 조갑제(전 월간조선 대표)가 이 그룹의 대표적 지식인이다. ‘산업화 세력’에 대한 ‘민주화 세력’의 폄훼 시도를 적극 방어하는 이들은 “뉴라이트는 위장 전향한 빨갱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뉴라이트는 신지호 및 홍진표, 최홍재(각각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 조직위원장) 등 ‘전향 386’들이 주도하는 ‘신우파’ 그룹이다. 자유주의, 북한인권 중시, 대외개방 및 시장주도 경제, 기간산업 민영화 등을 주장한다.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성에서 드러나듯 “자폐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애국적 세계주의를 지향”한다. 대외 개방을 중시하는 탈민족주의자들이다.

“전통적 반공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됐고 사회 담론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지호의 지적처럼 뉴라이트 그룹은 최근 보수진영의 사회 이슈를 선점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창달을 통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추구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박세일(서울대 교수), “자본주의의 참담한 모순만 다룬, 잘못된 역사쓰기는 바로 세워져야 한다”는 교과서포럼 공동대표 박효종(서울대 교수)이 같은 노선이다. 시장자유주의는 영어공용화론을 주장하는 복거일, 자유시장 경제 지상론을 펴는 민경국(강원대 교수), 좌승희(경기개발연구원장) 등이 있다. 경제·통상 이슈에 집중하며, 정부의 시장개입은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작은 정부론’을 주창한다.

#자유주의자
국내 자유주의 개념은 포괄적이며 모호하다. 사회복지를 내세우는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와 시장자유주의(libertarianism) 모두 자유주의로 해석된다. 최장집과 신지호 등 좌우파 지식인들이 모두 자유주의자를 자처한다. 상대적으로 이념 성향이 강하지 않은 지식인 그룹을 자유주의로 분류된다. 좌파와 우파를 넘나드는 총체적 시각으로 현상을 비판한다. 사회주의나 군부 독재 하에서의 ‘동원체제’ 등 억압적 권위를 거부한다. 윤평중(한신대 교수)은 자유주의자를 “열려 있으면서도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 연대하면서도 패거리 만들지 않는 사람”이라며 “사회의 여러 이념들 간의 괴리를 메울 수 있는 지식인”이라고 정의했다. 최근 ‘중도’를 선언한 홍윤기(동국대 교수)가 자유주의자 가운데 상대적 좌파, 유럽적 우파로 통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출신의 이근식(서울시립대 교수)이 상대적 우파로 분류된다.(장관순·손제민기자)

경향신문(07. 04. 25)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87년 이후 지식인상의 변화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주류적인 지식인상은 저항적 지식인이었다. 사르트르가 역설한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은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는 명제는 4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은 80년대 대학 신입생의 필독도서였고, 그들을 새로운 현실로 인도하는 안내서였다(*나도 대학 1학년때 읽은 기억이 있다). 스스로를 지식인으로 자각하는 것이 사회와 현실로 나아가는 초대장이었던 셈이다.



-탈근대화, 천대받는 ‘진실’-
문익환 목사는 생전에 강연회에서 종종 지식인과 민중의 관계를 칼날과 칼등의 관계로 비유하곤 했는데,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지식인들은 비유 그대로 ‘민중의 칼날’이었다. 당시의 현실에서 지식인은 근대적 합리성과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많이 교육받은 존재였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담지자로 기능했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과 같은 추상적 개념은 이들에 의해 만질 수 있고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 실재로 감지됐다. 민중의 계몽가이자 선구자로서 지식인은 사회의 각 영역에 큰 자취를 남겼다.

시대의 선생으로 불린 함석헌과 리영희의 저작들, 장준하(*사진)의 선구적 활동, 백낙청과 김현이 주도한 비평의식의 고도화,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탈춤과 같은 민중 문화의 재발견 등은 그러한 현상의 몇몇 예에 불과하다. 70, 80년대에 걸쳐 지식인은 민주화 투쟁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린 교사였으며, 특정한 의미에서 ‘민족’과 ‘문화’의 창안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일들은 추억 속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굳이 푸코나 리오타르 같은 프랑스 사상가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지식인의 사회적 위상이 현저하게 추락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다양하게 설명돼야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같은 세계사적 전환이 바탕을 이루며 거기에 한국 사회의 역사적 변천이 조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밑바닥에 탈근대적 현실이 있다.

근대 극복을 목표로 출발한 탈근대주의는 근대가 창출한 각종 제도, 가치, 개념, 역사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데 일조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시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근대에 이르러 ‘만들어진 전통’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현실과 진실의 관계가 흔들렸다. 과거에는 현실을 깊게 파고들면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진실’이라는 단어가 천대받은 적이 있었던가? 총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현실을 총체적으로 재현·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탈근대주의가 가르친 진실이다. 리오타르는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가치를 여전히 설파하는 지식인이란 무지이거나 권력의지의 산물일 뿐이라고. ‘지식인의 종언’은 무엇보다 지식인 자신에 의해 천명됐다.

여기에 사회주의의 붕괴로 대표되는 이념의 붕괴는 한국 지식인상의 변화에서 기억할만한 사건이다. 박노해나 조정환, 이진경처럼 이 무렵 새로 등장한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로 무장한 채 선배 세대인 4·19세대, 유신세대와 자신들을 날카롭게 구분했다. 하지만 민주화가 시작되고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이러한 구분법의 의미도 모호해졌다. 이념의 붕괴는 역설적으로 사상의 해방을 몰고 왔다. 분수처럼 사상이 흩어졌으니, 사람들은 저마다 급진좌파에서 뉴라이트로, 헤겔에서 들뢰즈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오늘날 한국 지식인 사회는 사상의 백가쟁명 시대를 새롭게 관통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사상의 대변인으로서, 혹은 안내자로서 지식인의 사회적 입지는 현저하게 약화됐다.

아마도 지식인을 날것의 현실로 끌어내린 직접적인 계기는 외환위기일 것이다. 자살이 속출하고 노숙자로 넘쳐나는 거리가 매일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모든 것이 물질적 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신지식인’이다. 현재까지 3316명이 선정된 것으로 알려진 신지식인은 외환위기 속에서 경제적 가치창출이라는 일반적 목표에 국민을 동원하려는 상징조작이었다. 신지식인은 한편으로는 기존 지식인의 권위에 기대면서도 수량화, 물질화, 공유화라는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지식인의 ‘유용성’에 강력한 의문부호를 새겨놓았다(*사실 '기회주의'는 지식인의 근본조건이다. 지식인의 '결단'은 기회주의적 조건에서 파생되는 것이기에).



-IMF뒤 평등에서 양극화로-
외환위기의 극복이 신자유주의의 적극적인 수용으로 귀결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강화되었다. 신지식인은 이제 하나의 해프닝이 되고 말았지만, ‘인문학의 위기’는 필연이었다.
자본의 거칠 것 없는 자유와 제국으로의 수렴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담론의 중추를 민주주의로부터 돈으로, 평등과 인권으로부터 양극화와 개방으로 옮겨놓았다. 황우석이 찬양되던 시절, 각종 뉴스는 앞으로 벌어들일 로열티를 계산하느라 바빴다. 그곳에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지식인, 아니 환산되어서는 안 되는 지식인이 설 자리는 없다. 또한 황우석 사태는 지식인의 보루였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함으로써 마지막 옷고름을 풀어헤쳤다. 연이어 고위공직자나 총장 등의 표절사건이 불거지면서 ‘지식인의 종언’은 엉뚱한 방식으로 현실화됐다. 이것을 ‘관행’이라 하던데, 그렇다면 그러한 관행으로 지탱돼 온 과거 지식인의 존재방식을 누가 존경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은 혼돈의 와중에 서 있다. 그의 자산인 ‘지식’은 인터넷이 대신하며, 그의 도구인 ‘글쓰기’는 댓글보다 읽히지 않는다. 그의 언어인 보편성은 의심의 대상이며 그가 가리키는 방향은 신뢰성을 썩 잃었다. 시대의 양심이란 칭호는 역사책에나 둥지를 틀었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지식의 가치는 무한대로 상승했지만 지식인의 가치는 역사상 유례없이 추락했다. 교양과 지적 유희를 제공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지식의 효용성은 거듭 강조되지만, 이를 종합하고 비판할 지식인의 필요성을 적극 긍정하는 목소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실 민주화라는 지상과제와 총체성을 강조하는 거대담론의 존재는 사상과 이론의 성찰을 억압해왔다. 이로부터 해방된 지식인들은 낡은 갑옷을 벗어던지고 근본을 파고들었다. 근대성, 젠더, 민족주의, 기억, 일상권력 등이 비판목록에 오르면서 전선(戰線)은 갈라졌고 심화됐다. 문제는 ‘부분’에 대한 비판이 ‘전체’로서 존재하는 권력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는가이다.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지식인의 기능화 양상은 지식인 자신이 부분성에 매달려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근에 지식인과 관계된 논의가 여전히 하나로 존재하는 ‘국가’로 수렴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황우석 사태가 애국주의의 광풍을 등에 업고 등장·확산됐던 상황, 현재 진보진영이나 보수진영 모두 ‘선진(화)’ 담론을 둘러싸고 경쟁적으로 국가정책 마련에 부심하는 경향, ‘인문학의 위기’론이 국가의 지원 요구로 귀결되는 풍경, 학술진흥재단이라는 국가기관이 학문의 기반을 좌우하는 현실 등은 지식인의 국가종속성 내지는 국가지향성을 강하게 예시한다.

이런 상황은 지식인과 국가의 관계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권력의 민주성 문제만이 초점일 수 없다. 많은 논의들이 국가로 수렴될 때 그로 인해 가려지는 부분들이 상당하며 그런 부분들이 오히려 지식인의 질문과 대답을 기다리는 곳일 수 있다. 따라서 질문은 지식인들이 ‘민주화 이후’의 국가에 대해 얼마나 지혜롭게 대응하고 있는가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권력은 민주화되었을지언정 지식인의 국가론이 지혜로워졌다는 증거는 많지 않다. 국가와 지식인의 관계 설정은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그간 일어난 지식인상의 변화 중 ‘독립적 지식인’의 확산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강준만, 박노자, 고미숙, 이정우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탈근대적 사유에 기반을 두면서 탈권위주의, 다원화 그리고 ‘대중’과의 직접소통을 지향한다. 여러 방면에서 과거 지식인의 존재방식과 다른 차원을 선보이는 이들의 활동은 향후 지식인상의 갱신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시금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과 다른 궤도에 속하지만 공병호나 이덕일처럼 직접 대중을 상대로 한 자유저술가의 확산도 현 단계 지식인상의 또 다른 변모 양상을 보여준다.

-새로 떠오르는 ‘대중지성’-
최근에 ‘대중지성’ 개념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도 지식인의 몰락과 대중의 등장이라는 현상과 연관이 깊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자율주의에 기반한 ‘다중네트워크’가 주도적으로 제창하고 있는 이 개념은 지식인의 위계적, 엘리트적 사유로부터 벗어나 대중을 근원에 두는 새로운 지식 창출·향유 방식을 겨냥한다. ‘대중지성’은 계몽주의적 지식인의 역할이 한계에 봉착하고,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대중이 지식의 소비자이자 창조자로 부상하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지식(인)과 변별되는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지식의 창출과 향유가 지식인의 일이었던가?).

한국 사회의 물질적, 구조적 변화를 빠트리고 지식인상의 변화를 말할 수 없다. 서울대 입학생 중 상류층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가는 현실을 덮어둔 채, 소득격차가 학력격차로 이어지고 학력격차가 신분고착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말하지 않고, 여전히 미국박사가 최고고 학연과 인맥이 우선시되는 문제를 괄호치고 지식인상을 논한다는 것은 난센스가 아닌가. 하지만 그러하기에 더더욱 ‘지식인’은 되새겨져야 할 화두이다. 과거에도 지식인은 학력과 신분으로서 규정되지 않았다. 지식인이란 본시 실천적 개념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존재’가 아니라 ‘행위’이다. 허위에 저항하고, 현실을 인간화하며, 가야할 길을 묻는 한 그는 언제나 지식인인 것이다(*현실을 인간화하며, 가야할 길을 묻는' 같은 문구는 상투형이다).(박헌호/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연구교수)

07. 04. 25-27.

P.S. 지식인은 '존재'가 아니라 '행위'이다란 말은 절반만 옳다. 자본가/노동자는 '존재'가 아니라 '행위'이다, 라는 주장과 견주어서 그렇다. 지식인은 중간자적, 어중간한 존재이기에 '존재'만으로 자신을 입증할 수 없다. 거기엔 필연적으로 '행위'가 개입되어야 한다.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할 때 '비판적'이란 어사가 가리키는 게 바로 그 행위일 것이다. 따라서 '지식인'이란 말은 언제나 '비판적 지식인'을 가리키며 스스로의 존재를 담보로 내걸었기에 언제나 '위기에 처한 지식인'을 지시한다. '지식인'은 레떼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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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4-25 17:48   좋아요 0 | URL
^^ 윤건차 교수의 책에다 구 맑시스트들과 YS,DJ에 적극 참여했던 멤버들을 좀 가려내고 정리한 듯 합니다..ㅍㅍㅍ 스스로 좌파가 아닐까 고민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겠네요.(나 보다 왼쪽이면 좌파..주변 친구들보다 진보적이면 좌파)...^^ 저 좀 분석해주세요.전 좌파 민족주의자 1컵, 문화주의자 1컵,트로츠키주의자 1컵, 진보적 시민운동 1컵,근대비판론 1컵,생태주의 1컵,사회적 자유주의 1컵 ... 으로 섞여있는데...일단 '뉴라이트'는 아닌 것 같긴해요..정답을 찾자 끙끙..

정답은 '폭탄주'....아님 ..'맹물' ^^ (..2번이네)

...제가 어떤 님 페이퍼에 남긴 글이 생각나네요.스스로 '좌파' 라고 의심하셔서(제가 보기엔 별로 '좌파'같지 않던데.)'좌파'가 무얼까요? 라고 말이죠...
저는 평생 '폭탄주'나 '맹물'로 살 듯 합니다.ㅜㅜ 에잇.

로쟈 2007-04-27 20:13   좋아요 0 | URL
저로선 지식인의 죽음을 진단하면서 지식인 지도를 작성하는 일이 코믹하게 여겨집니다. 포스트모던한 현상이거나...
 

낚시질 하고 있을 때는 아닌데 낮에 잠깐 둘러본 '새로 나온 책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책이 있어서 눈도장을 찍어둔다.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의 <거짓말쟁이는 행복하다>(부글북스, 2007). 저자의 이름이 생소한데, 당연 처음 소개되는 책이다.  

사실 제목만으로는 감을 잡을 수 없는 책이고, 잠시 소개를 읽어보아야 한다. "진화생물학과 인지과학, 진화심리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기만과 자기기만을 다시 조명하고 있는 책.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은이는 우리 인간에게도 무의식중에 타인의 마음을 읽고, 타인을 속이고, 타인을 조종하고, 자신마저 속이기 위해 특별히 진화된 '마키아벨리 모듈' 같은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지은이는 인간 존재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터무니없을 만큼 조금 알고 있고, 타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다고 지적한 뒤에,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편견들을 견제하기 위해 자신 스스로의 모습부터 찬찬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건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진화생물학과 인지과학, 진화심리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기만과 자기기만을 다시 조명하고 있는 책"이란 설명으로 충분하다. 보관함으로 들어가기엔 말이다(어제 무리를 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신간을 구매할 수 없다). 분량도 300쪽이 좀 넘으니까 아주 얄팍한 책은 아니다(물론 기대만큼 두꺼운 책도 아니지만). 원서는 256쪽. 원서의 이미지를 찾아보니 시커먼 책이 뜬다. 번역서의 표지와 사뭇 달라서 잠시 놀랐다. '우리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Why we lie)>(2004).

The Most Dangerous Animal: Human Nature and the Origins of War

저자는 "뉴잉글랜드 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뉴잉글랜드 대학의 인지과학 및 진화심리학 연구소를 창설해 소장을 맡고 있다"는데, 올해 나온 그의 신간은 <가장 위험한 동물: 인간의 본성과 전쟁의 기원(The Most Dangerous Animal)>(2007)이다. 이 또한 번역되어도 좋을 만한, 흥미를 끄는 책이다.

  

거짓말쟁이 얘기가 나온 김에 떠올린 책은 스티븐 쿼츠 등이 쓴 <거짓말쟁이, 연인 그리고 영웅>(소소, 2005)이다. 부제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뇌과학의 대답'이니까 스미스의 책과는 초점이 약간 다르다. 그리고 저자들은 진화생물학자가 아니라 신경생물학자들이다.

소개에 따르면, "뇌영상 기술, 컴퓨터 모델링, 유전학의 최신 발견들을 자료로 삼아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대답을 시도하는 '문화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이끌고 있는 지은이들의 책"으로 "'인간의 본성은 유전자가 정하는가 환경이 정하는가' 또는 '인간은 왜 더불어 살고, 사랑하고, 죽이는가' 등 인간성의 오래된 질문들에 대해 과학적 대답을 찾아본다." 덧붙이는 바에 따르면, "지은이들은 본래 신경생물학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신경회로의 발생 과정에 대해서는 '선천주의' 대 '건설주의' 논쟁이 뜨거운데, 두 저자는 건설주의의 대표적 인물들. 이들은 유전적 토대 위에 문화나 학습의 역할로 빚어지는 후천적 요소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쪽"이라고.

범상한 제목이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 텐데, 내겐 '거짓말쟁이, 연인 그리고 영웅'이란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구내서점에 갔다가 (고가라서 집어들지는 못하고) 가끔 손만 대보는 책이다. 여하튼 이런 책들을 당장 서가에 꽂아두지 못해서 나는 잠시 불행하다...

07. 04. 24. 

P.S. 거짓말에 관한 책으로 오래전에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파트릭 코뱅의 <새빨간 거짓말, 셋>(세종서적, 1994)이다. "프랑스 작가 파트릭 코뱅의 14번째 소설. 따뜻한 마음을 지녔지만 지식인다운 허풍과 거짓말을 밥먹듯 내뱉고 다니는 철학교수 앙트완느 베르티에의 '거짓말 이야기'를 통해 거짓말 투성이인 현대사회의 우스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책인데, 마음 편하게 미소를 머금으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구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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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런스 2007-04-25 06:13   좋아요 0 | URL
오호, 흥미로운 책이네요.. 소개 감사해요. 퍼갈께요...(맨날 그냥 퍼가면서, 오늘따라 척하기는..^^)

마늘빵 2007-04-25 09:19   좋아요 0 | URL
제목 참 끌리는군요! ^^

Joule 2007-04-25 13:38   좋아요 0 | URL
모두 먹음직스러운 책이네요.

비로그인 2007-04-28 08:57   좋아요 0 | URL
기만과 자기기만이란 주제는 의식(그리고 무의식)과 관련하여 흥미를 끄는 주제지요. '이기적 유전자'의 초판(1976) 권두사에서 밥(로버트 L. 트라이버스)이 했던 말에도 일찌감치 예시된 바 있었죠.
안 그래도 거짓말에 대한 책들을 좀 모으고 있었는데, 이 책의 주제가 바로 요즘의 제 주제네요.

로쟈 2007-04-28 12:27   좋아요 0 | URL
어제 한겨레의 기사를 보니까 이 책은 '나쁜 책'으로 분류되더군요(거짓말은 본성이자 전략이므로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거짓말'에 대한 연구(?) 결과를 기대해보겠습니다...
 

금요일(한겨레)과 수요일(한국일보)를 제외하면 내가 주로 가판에서 조간으로 집어드는 건 경향신문이다. 아마도 작년 하반기에 연재된 '진보개혁의 위기'란 '특집기사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듯하다. 기획력과 기동력이 있는 신문으로 새롭게 각인된 것이다. 이 연재는 올봄에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후마니타스, 2007)으로 묶여 출간되기도 했다.  

그러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읽히는데,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이라는 기획기사가 오늘 아침신문의 특집으로 실렸다(한동안 연재될 듯하다). 민주화 이후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이 감소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향이라 '유예돼 왔던' 죽음이라 고 해야 할 텐데, '한국의 사례'로 읽어두고 옮겨놓는다(기사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분기점은 김대중 정부에서의 '신지식인론'이었다. '항소'나 올리는 전통적 지식인상에 '사약'을 내린 격이 아니었을까?).   

경향신문(07. 04. 23) 지식 찍어내는 사회, 지성은 숨쉬는가

서울대 경제학부 김수행 교수는 1989년 3월부터 서울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마르크스 강의였다.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300명 규모의 강의실은 매번 만원이었다. 비좁은 계단을 파고들어 앉아 기어코 강의를 들었다. 91년에 이 강의를 수강했던 신모씨(36)는 “중간·기말 고사 때 1000여명이 모여 시험을 치르느라 건물 한 동을 다 빌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18년이 흐른 지난달 30일 오후 1시 서울대 멀티미디어강의동(83동) 506호. 김교수는 여전히 마르크스를 가르치고 있었다. “케인스는 상당히 훌륭한 경제학자예요. 자기가 살던 시대 문제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죠.” ‘현대마르크스 경제학’ 과목. 이날 수업은 케인스의 유효 수요 이론과 장기 정체설에 관한 것이다. 210명 규모의 강의실에 40여명의 학생만 앉아 있다.



조교 정상준씨(32)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업에는 안 들어와도 시험 때 들어와서 밖에서 토론하고 ‘학습’한 가락으로 일필휘지 답을 적고 나가던 ‘고수’들이 있었다. 지금은 강의를 열심히 듣지만 판에 박힌 답안만 제출한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요즘 학생들을 보면 다들 취업에 너무 매달려. 신입생 때부터 그래. 이해는 돼. 대한상공회의소 이런 데서는 성적표에 마르크스 경제학 표시가 돼 있으면 ‘이런 수업을 왜 들었느냐’고 물어본다지”라고 했다.

올해 정년을 맞는 김교수는 요즘 후임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경제학부 교수가 34명인데 미국 박사가 31명이야. 비주류 경제학은 나 하나뿐이야. 올해 내가 정년퇴직하면 비주류 경제학이 없어질지 몰라. 요즘 새로 들어온 경제학과 교수들 대부분이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어. 마르크스 경제학을 둘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가진 젊은 교수들이 많아.” 이 문제는 비주류 경제학자를 뽑을 것인가라는 단순한 임용 문제가 아니라 한국 지식 사회에 비판적 지식인의 재생산 구조가 존재하는가의 문제이다.

학부 시절 김교수의 ‘마르크스’ 수업에 열광했던 인문학자 고병권씨는 ‘지식인의 비극적 죽음’을 예감했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김교수 같은 분들의 글이 잡지에 실리면 논쟁에 불이 붙고, 대자보도 붙이고 했는데 지금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제는 대학을 ‘지성의 전당’이라고 말하는 이도 드문 세상이 됐다. 실용과 부가가치 창출은 대학의 최고 목표가 되었다. 일부 대학의 국문학과는 ‘시나리오 학과’로 명칭을 바꿨다. 대학가 인문과학서점은 하나 둘 줄더니 요즘 대부분 문을 닫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걸쳐 전개된 ‘지식기반사회’ ‘지식기반경제’는 우리 사회가 지식을 비판이성의 관점이 아닌, 산업으로 수용하도록 주입시켰다. 교육의 목표는 ‘올바른 시민’의 육성이 아닌, ‘시장반응형 인간’ 양성으로 변했다. 기업은 대학의 진정한 주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교육부와 전경련이 함께 경제교과서를 만들어 노동을 모욕하고 재벌을 찬양하는 세상이 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지식인’이란 명사를 동사로 만들었다. 지식인에게 묻는다는 것은 ‘지식iN’ 네트워크와 검색툴을 이용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지식은 붕어빵처럼 대량생산되는 복제품이 된 것이다. 한때 시대 정신을 선도했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저술활동은 쓴 사람과 평가하는 사람들만 읽는, 틀에 얽매인 지루한 논문들로 대체되고 있다. 학자는 ‘논문 작성 노동자’로 변모하고 있다. 이것이 지식인의 죽음이 어른거리고 있는 한국사회의 풍경이다.(김종목·손제민기자)

경향신문(07. 04. 23) 2007년 한국 지식인의 풍경

“지식인의 몰락 또는 위기 담론에 동의하는가.” 특별취재팀이 지식인들에게 던진 물음이다. 한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위기’니 ‘몰락’이니 하는 건 그 이전 지식인이 큰 힘을 쓰던 시절이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 건데, 과연 그랬던 적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김진애(도시건축가)는 “‘합리적 대안 생산자’ ‘대승적 소통자’로서의 지식인 역할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진애는 “‘지식인의 ‘위기’니 ‘몰락’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87년 이후 민주화 20년을 맞아 등장하고 있는 지식인의 죽음 논쟁은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야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전상인(서울대 교수)은 “관 주도로 전 국민을 직업과 지위에 관계없이 신지식인으로 만들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발상은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의 개편과 교체를 예고한 서막이었다”고 말한다.

98년 12월4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2차 경제대책조정회의. 김태동 정책기획수석이 학력 위주의 지식인 개념을 독창성·능동성 위주로 확장시킨 ‘신지식인상’을 보고했다. 이듬해 초 신지식인 찾기 운동이 ‘제2의 건국’ 캠페인과 맞물려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용가리’로 272만달러 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심형래씨가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되었다. 그는 신지식인 광고에 나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당신도 신지식인입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부가가치 창출의 다른 말이었다. 졸지에 ‘구지식인’으로 몰린 지식인들이 반발했다. 이남호 고려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지식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바로 엄격한 비판정신과 사회적 책임감에 있을 것이다. 신지식인은 이러한 지식인의 근본적 의미를 완전히 무시한다(경향신문 99년 4월29일자 칼럼)”고 했다.



지식인은 이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자’가 되었다. 지식인은 비판적 이성이 거세된 전문가로 대체되고 있다. 권력에 위험하지 않은 지식인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아니, 키워지고 있다. 교육부 정식 명칭은 교육‘인적자원부’이다. 사람을 어떻게 효율적인 생산 수단으로 만드는가를 고민한다는 뜻이다. 교육부가 2005년 대통령 보고에서 “다양화·특성화된 ‘시장반응형’ 인력을 양성”하고 “지식기반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산학연 협력 활성화’를 통해 성장 동력을 창출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시장반응형 인적 자원? 이들이 바로 새 세대의 지식인이 될 것이다.

아직도 수많은 학자들이 있는데 우리 사회가 쉽게 이런 새 세대 지식인들에게 압도당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의심스러워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학자의 세계를 들여다 보자. 한 교수가 말한다. “대학 교수에게 중요한 게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연구 업적이고 또 하나는 연구비를 따오는 거예요.” 그는 자기 학교에서 우수 교수 평가 기준은 ‘연구비 수령 건수와 액수’라고 전했다. 이런 현상은 학계의 ‘빅브라더’ 한국학술진흥재단과 관련이 있다.

이른바 ‘학진’이란 약자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연구 지원 기관은 학계의 거대한 지배자다. 학진의 힘은 연간 1조원 가량을 쓴다는 사실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이 기관의 연구비 지원을 받으려 경쟁하는 체제, 이것이 한국 학술의 레짐(regime·체제)이다. 프랑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온 김모씨. “전 에세이식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학진 체제 아래서는 빛을 볼 수 없어요. 학진은 정형화된 논문식 글쓰기밖에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어진 김씨의 말. “이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 마감 맞추는 걸 가리키는 말이에요. 좋은 평가로 연구비 지원을 받아 먹고 사는 ‘논문 작성 노동자’만 수없이 양상되는 거죠.” 그는 “학진 체제 아래 지식인들이 신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계간지 편집장은 “학술지 또는 계간지에서 그야말로 ‘재미있는’ 글을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담론 논쟁을 주도하는 경우도 거의 없어졌다. 모두 학진 등재지에 딱딱하고 재미없는, 심지어는 같은 전공자들도 안 읽어줄 글을 쓰느라 밤 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틀에 박힌 지식을 재생산하는 데는 학진 체제가 유용할지 몰라도, 한 시대를 뛰어 넘는 창의적인 저술, 그 저술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라는 지식사회의 풍경은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느 대학 교수는 “예전에는 권력이 정부에 반대되는 글쓰기를 통제하는 정도였다면 지금 학진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식인들의 글쓰기를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문 성과? 최근 한 문화재단에서는 학술상 심사를 벌였다. 심사위원 5명 중 2명이 추천대상을 내놓지 않았다. ‘사회개혁·발전과 학문업적을 연결시키는 저작’이 수상 요건이었지만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다수 학술상 주최측이 수상 요건 미흡 때문에 수상자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논문의 양은 갈수록 늘지만 ‘성과’라 할만한 결과물은 갈수록 줄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교수들은 이런 체제에서 행복할까? 요즘 교수들은 정치권력, 경제권력과 사귀는 데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어느 방송 진행자는 “최근 모 대선 주자 캠프 소속의 지식인이 참여한 정치 관련 토론을 진행하다, 그 지식인의 눈에서 불꽃이 튀는 걸 봤다”고 말했다. 이런 살기어린 토론은 교수와 정치의 관계를 잘 드러낸다. “잘 나가는 대선 주자 캠프에 지식인 수백명이 줄서 있다”는 소문은 터무니없는 과장이 아니다. 어느 대학 교수는 지식인이 정치에 참여하려면 3가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①정·관계에 진출하려면 대학에 사표를 내야 한다. ②대학에 있으면서 특정 정치 집단의 브레인이 되면 그 사실을 공개해야 한다. ③각종 위원회에 참여한 경우 그 활동을 통해 얻은 금전적 수입과 활동내역을 대학에 보고해야 한다.

부수입 올리고 영향력 행사하며 재미는 다 보고, 학생 가르치기는 소홀히 하는데도 ‘업적평가’ 점수를 덤으로 받는 이들이 오늘날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모습이다. 이렇게 정치권력에 종속되거나, 아니면 저항하거나 양 극단 사이에 방황해 온 것이 한국 지식인 사회이다.



기성 지식인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지식인 재생산 메카니즘이 고장난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더 이상 지식인은 막걸리 집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강의실에서의 논쟁을 통해, 감옥의 사색을 통해 등장하지 않는다. 지식인은 미국이라는 거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은 지난달 말 미국을 제외하고 올해 가장 많은 학부 합격생을 배출한 국가는 한국이라고 밝혔다. 35명이다. 불과 두자릿수라서 적다고 여겨진다면, 미국 이민세관국(ICE)의 최근 발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ICE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 내 외국인 학생 중 한국 출신이 9만3728명으로 전체(63만998명)의 14.9%를 차지, 국가별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미국 고등교육전문 주간신문 ‘고등교육 연감(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에 따르면 99년에서 2003년 사이 미국 박사 학위 취득자의 학부를 조사한 결과, 서울대가 1655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지식인 재생산의 주권을 잃어가고 있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경제권력’과도 잘 어울린다. 대학은 재벌 총수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지 못해 안달이고, 산학협동은 ‘산학일체’로 진화중이며 대기업 연구 용역비를 받는 상당수 교수들은 재벌개혁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는다.(김종목·손제민·장관순기자)

경향신문(07. 04. 23) 지금 왜 지식인이 문제인가

지식인은 신분적 특권이나 재산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지식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힘을 행사한다. 지식인과 그 출신 배경이 반드시 직접적으로 연결될 필요는 없다. 지식인의 지식은 어느 정도 자율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지식인의 자유로움에 대한 주장은 이런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지식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독학으로 유명 지식인이 된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식을 통해 힘을 행사하는 정도의 지식인이 되려면 권위 있는 교육기관에 소속되어 오랫동안 배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동안 지식의 습득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학(同學) 끼리 유대 관계도 맺어진다. 이른바 학벌(學閥)이라는 것은 이런 친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지식인은 한편으로 신분과 계급으로부터의 상대적인 자유로움과 독립적인 사고를 자랑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기집단의 이익을 위해 결속을 하며 문화적인 동질성을 도모한다.



집단으로서의 지식인은 두 가지 다른 집단을 상대한다. 하나는 지배 엘리트로서 정치적, 경제적 지배 집단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피지배 집단인 일반 대중이다. 지식인은 지배 엘리트와 결탁하기도 하고, 피지배 집단에 봉사하기도 한다(*그러한 지식인상의 원조가 러시아 인텔리겐차이다).

전자의 경우 지식인은 기존 체제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주장하며 지배집단의 헤게모니를 정착시킨다. 후자의 경우에 지식인은 현 지배체제의 착취구조를 폭로하며 대중의 혁명의식을 고취시켜 새로운 지배체제를 만들려고 시도한다. 체제 고착이든 체제 전복이든 지식인은 자신의 무기인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어느 경우에나 지식인의 힘은 자신의 이해 타산을 숨기면서 공정하고 보편적인 수사학을 동원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지금의 체제가 강고하게 버티건, 아니면 뒤집어져서 새로운 체제가 되건 그건 아무래도 좋다. 지식인이 지닌 관점을 보편성의 준거로 삼으면서 그의 상징적 권력을 인정해주는 상황이라면 지식인은 어느 쪽이라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어떠한가? 그럴 경우라면 지식인의 위기를 논하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 사회에서 집단으로서의 지식인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왕조가 위기에 처한 한말과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던 일제시대이다. 기존 신분제가 해체되고 새로운 권력 기반이 형성되는 상황에서 지식인은 당시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질곡에서 벗어날 방향을 일반 대중에게 알려주면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했다. 망국의 울분을 토로하고, 독립의 희망을 간절하게 표현하면서 지식인은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선구자로서 인정받았다. 더구나 위기상황 돌파의 유력한 방법으로 교육을 통한 체제 갱생을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지식인은 자신의 재생산 기반을 쉽게 마련할 수 있었다.

해방이 되자, 그동안 민족독립의 공통분모 아래 억눌려있던 지식인 집단의 다양한 노선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당시의 냉전 상황에 따라 좌우의 극단적 대립을 보이면서 지식인은 양극화되었다. 이런 대립은 결국 한국전쟁으로 나타났고, 휴전과 더불어 남쪽과 북쪽의 체제는 각각의 이데올로기를 섬기면서 서로 이질적 이데올로기의 배제와 탄압에 골몰했다. 우파의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게 된 남쪽의 경우 지식인 집단은 민족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북쪽과의 경쟁에 적극 참여했다.

좌우의 민족통합 이데올로기가 억압된 상태에서, 1970년대의 지식인들은 한편으로 경제성장을 위한 개발독재의 옹호, 다른 한편으로 보편적 인권과 민주화 지향 노선으로 나뉘어 복무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하여 대부분의 지식인은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화 노선의 역사적 타당성에 동의하게 되었다.

민주화 노선이 대세를 점하기 시작한 1987년부터 지금에 이르는 20년 동안 많은 지식인들이 인권과 민주화의 명제를 확산시키는 작업에 주도적으로 가담했고, 그 명제의 안정적인 정착과 함께 그동안 상대적으로 억압되었던 민족 통합의 이데올로기도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차이를 넘어서서 민족 통합을 이루려는 이와 같은 남쪽의 시도는 동유럽과 소련의 해체, 중국의 급속한 개혁으로 위협을 느끼고 있던 북한의 모험주의를 견제하고, 새로운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요청된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이처럼 민주화와 민족 통합을 동시에 이루고자 노력했고, 지식인의 담론도 대체로 이런 방향에 호응했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시기에는 인권 보장과 민주화의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되고 정착되었다. 언론에 대한 권력의 직접적 통제도 사라졌고, 그동안 금기 영역이었던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비판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공적인 자리에서 대통령이 불편함을 토로할 정도였다. 그동안 지식인 현실 참여의 주요 통로였던 민주화 명제는 어느 정도 실현되었고, 민족 통합에 대한 전망도 남북 교류의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부시 정권의 북한 퇴출 압박에 북한이 핵개발로 맞서면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런 국제정세의 변화를 계기로 하여 남쪽과 북쪽의 대결을 주장하며, 민족 통합의 지향을 견제하는 담론이 부각되었고, 이른바 ‘신우파’라는 세력이 형성되었다.

민주화의 실현과 정착에 따라 지식인의 민주화 명제는 구호의 단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성취를 위한 것으로 변화되었다. 민족 통합의 명제는 정부의 주도 아래 검토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 ‘신우파’의 미미한 견제만 보일 뿐이다. 민주화의 명제가 현실화되고, 민족 통합의 노력이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면서, 이를 맹렬하게 요구하던 지식인은 담론의 초점을 잃고 새로운 열정을 찾아 헤매고 있다. 더구나 공산주의가 몰락한 국제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한국 사회가 강제로 포섭된 사건은 지식인의 위기의식을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여러 이데올로기가 각축하는 가운데 스스로 보편성을 구현한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한 지식인이 이제 신자유주의의 나팔수로서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세계적인 ‘투명’ 경쟁 체제의 효율성을 당연하게 선전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관점은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역사의 종말을 외치며 자신이 절대 지존임을 자랑한다. 그 헤게모니 체제에 대항하는 지식인은 대안 없이 허풍만 떠들어대는 자이고, 현실성이 없는 자로 취급 받는다. 지식인의 상상력은 대항 체제를 만들어내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공장 체제 안에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써야 한다고 선전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식인의 전통적 권력도구였던 글쓰기도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문자시대가 가고, 새로운 구술시대와 영상시대가 오고 있는 마당에서 지식인은 자꾸 낯선 곳으로 몰리고 있다. 이전에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었던 자들이 지식인의 독점 영역에 침입하여 ‘신지식인’임을 주장한다. 그에 따라 자신은 어쩔 수 없이 ‘구지식인’으로 치부되는 형편이 된다. 보편적 지식인의 요새였던 대학의 변신도 현저하다. 대학도 수요와 공급 법칙의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대학의 지식인은 상인(商人)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 지식인은 시대의 방향을 이끄는 선구자가 아니라, 문화상품을 만들어 파는 샐러리맨의 처지가 된 것이다.



지식인은 더 이상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고를 자랑하지 못한다. 그들의 지식은 문화 콘텐츠 개발에 연관될 경우에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화적 동질성도 더 이상 확보될 수 없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기반인 글쓰기의 위상 변화에 보이는 그들의 당혹감일 뿐이다. 그들의 옛 열정은 사그라졌고, 그들의 상징권력은 더 이상 당연시되지 않기 때문에 바야흐로 지식인의 위기가 설왕설래되고 있다.(장석만 충간문화연구소 소장)

07. 04. 23.

P.S. 러시아 인텔리겐챠를 영국의 젠틀맨, 일본의 사무라이에 비교하기도 한다(우리라면 '선비'에 해당할까?). '지식인의 죽음'은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마지막 사무라이' 시대에 견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분명 한때는 그들의 시대였다. 하지만, 시대는 변한다. 해서 지식인의 죽음은 애도할 만한 것이지만 비통한 일은 아니다. 차라리 지식인을 '가장'하는 치들이 더 문제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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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4-23 09:37   좋아요 0 | URL
지난 두어주 정신없이 보내며 감성이-분노에 가까운- 이성을 지배하는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 주부터는 좀 가라앉히고 지내기로 했습니다.^^ 건드리지 말아야될텐데.

안그래도..출근해서 새로운 기획 기사를 읽고...옮겨야지 했는데...이미 로쟈님이 선수를 치셨습니다.^^

"지식인은 이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자’가 되었다. 지식인은 비판적 이성이 거세된 전문가로 대체되고 있다. 권력에 위험하지 않은 지식인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아니, 키워지고 있다."

"교육의 목표는 ‘올바른 시민’의 육성이 아닌, ‘시장반응형 인간’ 양성으로 변했다. 기업은 대학의 진정한 주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신문을 못볼경우 로쟈님의 페이퍼로 읽어야겠어요.

로쟈 2007-04-23 09:43   좋아요 0 | URL
'지식인의 죽음'은 서구나 일본에선 이미 뉴스거리가 아니라고 하는데, 우리의 경우 잠시 유예됐을 뿐이겠죠. 87년 때문에. 그 후 20년이니까 '약발'이 다 돼 갈 만한 시기이긴 합니다...

자꾸때리다 2007-04-23 12:17   좋아요 0 | URL
암울하네요. 퍼갑니다.

클리오 2007-04-23 14:40   좋아요 0 | URL
휴.. 여러가지 생각들이 왔다갔다 합니다. 제 자신의 입장과 미래를 포함해서요...

yoonta 2007-04-23 14:53   좋아요 0 | URL
"지식인의 죽음"...심각하죠. 그런데 지금의 한국의 상태가 일본혹은 특히 서구(유럽)보다 더 심각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로쟈님은 유예되었을 뿐 서구나 일본이 더 심각하다고 하셨는데..전 잘 모르겠네요. 오히려 국내가 더 심한 것이 아닐지..

로쟈 2007-04-23 16:10   좋아요 0 | URL
yoonta님/ 그쪽이 더 심각하고 자시고 할 건 없는 것 같고요, 그쪽에서 먼저 그런 일이 일어났고 우리도 자연스레 그런 추이를 따르는 거라 생각합니다. 지식인의 발생 자체가 역사적 조건에 따른 것이라면 그 소멸/종말 또한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yoonta 2007-04-23 21:00   좋아요 0 | URL
네..어느쪽이 더 심각한지 따지는것은 큰 의미는 없는데요. 바로 위의 글에서 좀 구분없이 서술된 부분이 뭐냐면 "바야흐로 문자시대가 가고, 새로운 구술시대와 영상시대가 오고 있는 마당에서 지식인은 자꾸 낯선 곳으로 몰리고 있다. "와 같은 것은 사실 20세기 이후의 서구의 역사와 맞물려있는 보편적 현상을 설명하는 대목인 반면 "신자유주의적인 관점은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역사의 종말을 외치며 자신이 절대 지존임을 자랑한다. 그 헤게모니 체제에 대항하는 지식인은 대안 없이 허풍만 떠들어대는 자이고, 현실성이 없는 자로 취급 받는다. 지식인의 상상력은 대항 체제를 만들어내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공장 체제 안에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써야 한다고 선전된다. "와 같은 대목은 다른 나라보다 유독 신자유주의의 이식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적 특수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위의 글에는 이것을 구분없이 마치 모든 세계의 지식인들의 보편적 현상인것 마냥 서술하고 있으니 좀 문제라는 것이지요..기왕 "지식인의 상품화"를 이야기하려면 위에서처럼 허술한 얼개로 서술할게 아니라 보다 엄밀하게 서술될 필요가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좀 남네요..

로쟈 2007-04-23 22:47   좋아요 0 | URL
마지막 외부 필자의 기사의 논점엔 저도 유보적입니다. 보다 정치하게 다루어져야 할 사안인데 너무 많은 내용을 짧은 지면에 포개넣으려고 한 탓이 아닌가 싶어요...

pax 2007-04-24 02:36   좋아요 0 | URL
지식인이 죽는 건 상관 없는 데 반지성주의의 득세는 사양??ㄳ

자꾸때리다 2007-04-24 12:02   좋아요 0 | URL
고구려사에 대해 평생을 연구한 학자의 연구 작업보다. 드라마 출연한 연예인들의 말 한마디가 훨씬 영향력을 가진 세상.

웅아 2007-04-24 21:08   좋아요 0 | URL
강의실 좋구만

sb 2007-04-26 01:22   좋아요 0 | URL
로쟈님, 저도 퍼갑니다. ^^

정익원 2007-06-24 21:3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경재권력에 매수된 지식인은 부끄러운줄 모르고 당연시하고 있읍니다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만능사회 고착화 굳히기 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출을 기대합니다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작가 김소진씨의 10주기이다. 지난주에는 이를 기념하는 동료, 선후배 문인들의 문집 <소진의 기억>(문학동네, 2007)이 출간됐다. 지난 겨울 젊은 평론가들이 이 문집과 관련한 원고 얘기를 하는 걸 들었는데 바로 그 책이다. 작가의 신춘문예 데뷔작 '쥐잡기'(1991)가 발표된 지면과 첫 소설집 <열린사회와 그 적들>(솔출판사, 1995)이 기억에 남아 있는데 '63년생 작가군'의 한 축이었던 그가 유명을 달리한 지 어느덧 10년이다. 문단의 유망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그의 소설들을 미처 챙겨읽기도 전이었다. 이번에 추모문집이 나와서 든 생각이지만 김소진의 죽음과 그에 대한 추모는 시인 기형도의 죽음/추모와 겹친다. 장르는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신춘문예로 등단해서 언론사 기자생활을 했던 일까지 공통적이다. 그리고 요절까지. 이들을 추억하는 선배 이경철 (전)기자에 따르면(http://daesan.or.kr/wepzine/2006winter/%BF%EC%B8%AE%B9%AE%C7%D0%C0%C7%BC%F8%B0%A3%B5%E9.htm) 두 사람의 죽음은 한국문단의 한 분기점들을 이룬다. 김소진에 대해 추억하고 있는 대목.

기 시인의 죽음이 젊은 시단의 한 분수령이 됐다면 1997년 4월 22일 소설가 김소진 씨의 34세의 갑작스런 죽음은 젊은 소설계의 한 분수령이 된 상징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김 씨는 죽기 한 해 전 잘 다니던 한계레신문 기자직마저 팽개치고 소설에만 전념, 가장 주목받은 작가로 떠오르며 그해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도 수상했다.

스스로도 전업작가로 돌아서길 잘했다며 한 해 세 권의 소설집을 펴낼 정도로 창작욕에 불타오르던 김씨는 이듬해 초 췌장암으로 손 한 번 제대로 못써보고 “형, 먼저 가서 미안해”라는 말만 남기고 숨을 넘기고 말았다. 김 씨를 96년도 가장 주목받은 작가로 선정, 기사도 다루고 본격소설의 위의를 지켜달라고 격려했던 나 역시 그의 죽음이 쓰렸지만 내심 아프고 당혹스러웠을 사람들은 김 씨보다 앞서 전업의 길을 택한 작가들이었을 것이다.

민주화도 눈에 띨 정도로 진척되고 경제도 95년 1만 불 시대로 나아가던 1990대에 접어들자 신예작가들이 ‘이제 글만 써도 먹고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판단에 직장도 팽개치고 하나 둘씩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고 김 씨 또한 그러했다. 본격소설의 위엄을 지키며 한국소설의 대들보로 떠오르던 김 씨는 선배 전업작가의 창작욕을 부추겼을 뿐 아니라 돈 등에 딴눈 팔지 말고 본격소설을 지키게 하는 하나의 항체로 작용했을 것이다.

김 씨의 요절 직후 IMF 외환위기를 맞아 경제가 거덜 나 많은 잡지, 사보 등이 폐간될 수밖에 없었다. 중앙일간지들의 연재소설 지면과 문예지의 페이지도 줄어들고 원고료도 인하돼 고료수입도 거덜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뒤에서 본격문학의 양심으로 무섭게 추동해대던 김 씨마저 죽고 없는 젊은 전업소설계는 상업화의 유혹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후에 우리는 뭔가 다른 소설들을 읽게 되었던 듯도 하다. 우리문학이 끝까지 가지 않은 길('80년대 문학')의 한 이정표로 그가 서 있었던 것은 아닐까도 싶고. '푸르른 계절'로 가는 길목에서... 그가 한동안 몸담았던 한겨레신문에서 작가의 10주기 관련기사들을 옮겨놓는다.

한겨레(07. 04. 20) 목마른 한국문학 ‘그리운 김소진’

작가 김소진(1963~1997)이 우리 곁을 떠난 지 22일로 꼭 10년이 된다. 1963년 음력 12월 3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에서 태어난 김소진은 1997년 양력 4월 22일 새벽 서울 연희동의 한 한방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향년 34의 풋풋한 나이였다.

1991년에 등단해 1997년에 세상을 뜨기까지 불과 6년여의 활동 기간 동안 김소진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글을 썼던 다산의 작가였다. 그 사이 그의 소출은 소설집 네 권, 장편 2편과 미완성 장편 하나, 콩트집 2권, 동화 1권, 산문집 1권에 이른다. 그러나 김소진 소설의 의미와 가치를 양적인 측면에서만 찾아서는 곤란하다. 그의 활동기는 80년대를 풍미했던 공동체적 윤리감각이 90년대의 개인주의에 자리를 내준 시기와 겹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청년기이자 습작기였던 80년대의 문학관을 의연히 작품 속에서 견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80년대적 교조까지도 답습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민중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결코 민중을 맹목적으로 신격화하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 사회가 더욱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소설 속에 담았지만, 그런 당위에 꿰어 맞추느라 현실의 복합성을 호도하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김소진은 80년대적 가치를 90년대적 현실에 적합한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애쓴 작가였다. 80년대 문학의 ‘전통’을 지양함과 동시에 90년대 문학의 새로운 ‘주류’와도 분명한 거리를 둔 그는 차라리 2000년대 문학의 선구자로 불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없는 세월이 10년의 두께를 쌓아 가는 동안 ‘김소진’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희미해져만 갔다. 그의 사후에 등장한 젊은 독자들은 물론 그와 동시대를 호흡했던 ‘늙은’ 독자들조차 더 이상 그의 소설을 읽지 않으려는 듯하다. 그가 죽음의 방문을 받고 더는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자 독자들 역시 그의 소설 읽기를 그만두기로 작정이나 한 듯이.

그의 10주기를 맞아 남은 이들이 펴낸 추모문집의 제목이 <소진의 기억>(문학동네 펴냄)이라는 것은 그런 점에서 적절해 보인다. ‘소진(金昭晋)의 기억’은 지금 ‘소진(消盡)의 기억’이 되어 버렸으므로. 그러나 <소진의 기억>의 편자들(안찬수 정홍수 진정석)이 썼다시피 김소진 문학은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일 수도 있어 보인다.

중심에서 배제된 주변부적인 것들에 대한 이 작가의 생리적인 애착과 공감은 잘 알려져 있지만, 김소진 소설 역시 문단의 주류나 문학적 평가의 중심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중심에서 한 걸음 비껴나 자기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밀고 나간 김소진의 소설이야말로 19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어떤 편향과 맹목을 되비쳐주는 하나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2007년 현재 시점에서 김소진을 다시 읽어보는 일은 의례적인 추모 행위를 넘어 한국소설의 좌표를 점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당대적 실천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편자들이 고인의 대학 친구들이자 절친한 문우들이라서 하는 얘기만은 아니다. <소진의 기억>에 실린 문인 30명의 글들에서 김소진 문학에 대한 그런 평가는 두루 확인된다. 유희석 전남대 영문과 교수는 ‘김소진과 1990년대’라는 제목의 평문에서 △김소진 소설 속의 민중은 1970년대 미아리 산동네 사람만이 아니라 21세기 오늘의 민중이 겪는 희노애락의 표정까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김소진의 ‘후일담’은 이념과 탈이념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반후일담적 후일담’이고 △단편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등에서는 변혁운동의 관료화 징후와 기층 민중의 주변화를 감지했으며 △중편 <목마른 뿌리>에서 보다시피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예측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김소진 문학의 21세기적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평론가 김형중씨 역시 ‘비루한 것들의 리얼리즘’이라는 글에서 비루한 존재들의 위계 없는 등장과 발언으로 특징지어지는 김소진 소설의 리얼리즘이야말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이 운위되는 이즈음의 문학 상황을 선구적으로 구현한 형태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래 및 후배 소설가들이 산문과 소설의 형태로 표한 애정 또한 지극하다. 후배 작가 천운영씨는 ‘쥐덫과 쥐잡기’라는 제목의 산문에서 생전에 일면식도 없었던 김소진과의 기묘한 인연을 털어놓는다. 대학을 마치고 다시 입학한 예술대학 문창과에서 그가 생애 처음으로 쓴 소설의 제목이 ‘쥐덫’이었다. “집 안에 득실거리는 쥐를 잡기 위해 곳곳에 쥐덫을 놓으며 시간을 보내는 실직한 가장”과 운동권 아들의 이야기. 스스로 만족해하며 친구에게 보였더니, 그가 읽어 보라며 권한 소설이 김소진의 등단작인 <쥐잡기>였다. 아직 등단하기 전인 후배 작가는 <쥐잡기>를 미처 읽어 보지 못한 상태였거니와, 두 소설은 제목과 설정, 그리고 몇몇 구절까지가 흡사했던 것. “선점이라는 게 이거구나, 더 많이 읽어야 이런 일이 없겠구나, 습작소설과 작가가 쓴 소설은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복잡다단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씁쓸한 생각과 아울러, 언젠가 등단하게 되면 만나서 할 얘깃거리 하나가 마련되었다는 생각에 재미있어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배는 후배 작가의 등단(2000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절친한 문우였던 시인 안찬수씨는 “동트기 전/새 울음소리를/듣고 있는 게/나 혼자는 아니다”(<블랙마운틴에서>)라는 말로 친구를 그리워했고, 후배 시인 장철문씨는 “동구 밖으로 가듯이 지평선으로 가듯이/멀어져갈 때,/그냥 내버려두었다/잔을 놓는 벗의 겉옷을 집어주듯이/그때 내 상반신이 튀어나와 꺼이꺼이 울며/달아나는/그림자를 따라가 붙잡으려 했다/나는 뒤에서 내 허리를 꽉 껴안았다”(<2005년 4월, 마르세유>)며 애써 슬픔을 다독였다.

후배 작가들이 쓴 헌정 소설들도 흥미롭다. 김중혁씨는 <무방향 버스­리믹스 ‘고아떤 뺑덕어멈’>이라는 단편에서 김소진의 소설 <고아떤 뺑덕어멈>의 첫 두 문장과 마지막 두 문장을 자신의 소설 속 첫 두 문장과 마지막 두 문장으로 써먹는 식으로 선배 작가에 대한 ‘오마주’를 시도했다. 윤성희씨는 김소진 소설들에 구멍을 통해 훔쳐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에 착안해 <구멍>이라는 단편을 썼다. 김중혁 소설에서 어머니가 ‘무방향 버스’를 타고 사라지는 데 비해 윤성희 작품에서는 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생의 블랙홀(구멍)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비슷한 설정이 등장한다는 점은 가외의 재미를 준다.

‘그에게 바치는 ‘쐬주’ 한잔’이라는 산문을 기고한 선배 작가 이혜경씨는 생전의 김소진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그런 그가 추모문집에 글을 보탠 것은 “이 인연으로라도 그의 묘지에 ‘쐬주’ 한잔 올리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이혜경씨는 21일 낮 경기도 용인에 있는 고인의 무덤(김소진의 사후 거처는 용인공원묘원 63번지 5-310이다)에서 바랐던 대로 소주 한잔을 바치게 될 것이다. 이혜경씨말고도 은희경 성석제 김연수 김중혁 윤성희씨 등 50여 명의 문우들이 이날 묘소 참배에 동행할 예정이다. 시인 김정환씨가 추모시 <김소진, 죽은 지 십 년>을 낭송하고, 천운영씨는 문제의 <쥐잡기>의 일부를, 전성태씨와 윤성희씨는 각각 <고아떤 뺑덕어멈>과 <눈사람 속의 항아리>의 일부를 낭독한다.

“혹 지금의 우리는 집단적으로 김소진이라는 이름의 폴더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추모문집에 실린 평론가 이경재씨의 글 ‘아버지의 진실’의 한 대목이다. 그러나 추모문집과 추모모임이 이어지면서, “자기 목숨을 앞당겨 글을 씀으로써 소진”(이혜경)한 김소진의 10주기가 아주 쓸쓸하지는 않게 될 모양이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겨레(07. 04. 23) 소설가 김소진 10주기 추모식

소설가 김소진(1963~1997)의 10주기 추모식이 21일 낮 경기도 용인공원묘원에서 열렸다. 추모식에는 김정환 신현림 박상순 안찬수 장철문(이상 시인) 이혜경 은희경 성석제 김인숙 권여선 박현욱 전성태 김중혁 천운영 윤성희 편혜영(이상 소설가) 류보선 서영채 정홍수 진정석 신수정 김영찬 손정수(이상 평론가)씨를 비롯한 문우들과 학교 후배인 오철우(<한겨레> 기자)씨 등 5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삶과 문학을 되새겼다. 진정석씨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행사에서는 후배 소설가 전성태 천운영 윤성희씨가 김소진 소설의 일부를 낭독했으며, 김정환씨가 추모시를 읽은 데 이어 추모문집 <소진의 기억>을 무덤 옆에 묻는 의식이 진행됐다.

먼저 낭독에 나선 전성태씨는 “김소진 선배님이 암 투병 중이라는 말을 듣고 병원으로 갔지만, 병실엔 들어가지 못하고 열린 문 틈으로 무릎과 종아리 언저리만 살짝 보고 나온 뒤 몇 시간 만에 부음을 들었다”면서 “살아 계셨다면 글 쓰는 동료로서 서로 외롭지 않았을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다. 전성태씨가 <고아떤 뼁덕어멈> 중 주인공이 아버지의 화대를 대신 지불하는 대목을 낭독하고 나자 진정석씨는 “김소진과 전성태씨는 여러 모로 상통하는 소설 세계를 지니고 있는 작가라서 소진이 살아 있었다면 두 사람이 잘 어울렸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낭독자인 천운영씨는 자신이 습작기에 처음 썼던 작품 ‘쥐덫’과 김소진의 등단작 <쥐잡기>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소진의 기억>에도 실린 이 이야기를 소개한 데 이어 그는 “<쥐잡기>를 읽고서 거기 쓰인 순우리말과 토속어 어휘에 자극 받아 당장 헌책방으로 달려가 두툼한 국어대사전을 사 왔던 기억이 난다”며 “그때 읽었던 김소진의 책을 다시 펼쳐 보니 당시 내가 몰랐던 단어들에 밑줄이 쳐져 있고, 내가 특히 좋아했던 부분에는 네모 표시가 되어 있다”면서 <쥐잡기> 중 자신이 네모 표시를 했던 부분을 읽었다.



마지막으로 윤성희씨가 낭독에 나섰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의 마지막 부분을 읽운 그는 “주인공이 재개발을 앞둔 산동네 빈집에 들어가 똥을 누는 장면인데, 이 장면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나도 소설을 쓸 때면 꼭 똥을 누는 장면을 포함시키곤 했다”고 소개했다.

추모문집 <소진의 기억>을 무덤 곁에 묻는 것으로 공식 추모 행사를 마무리한 일행은 무덤 주변에 자리를 깔고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으며 고인을 추억했다. 추모 문집과 추모식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한 친구 정홍수씨는 “소풍 치고는 너무도 좋은 소풍”이라며 “매번 올 때마다 날씨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게 아무래도 무덤 속 소진이가 힘을 써 주는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7. 04. 22.

P.S. 개인적으로 나도 먼저 보낸 친구가 있어서 해마다 5월이면 그를 추모하는 조촐한 학술발표회의 발표를 맡곤 한다. 올해는 그가 좋아했던 작가 안톤 체홉과 레이몬드 카버의 마지막 단편들에 대해 몇 마디 늘어놓을 참이다. 그렇다고 그런 것이 위안이 될 수는 없다. 아래에서 한 친구의 시한부 삶을 되새김질하는 칼럼의 제목처럼 '오늘에 살라'는 정언명령에 충실할 밖에. 충실? 우리가 실천하고 있지 못한 어떤 것의 이름... 

씨네21(07. 03. 16)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오늘에 살라

내가 그를 처음 안 건 대학 시절 교련 수업 때였다. 학과가 달라 평소 수업을 같이 듣지 않았지만, 교련 수업은 단과대학별로 수강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그를 봤다. 자주 얼굴을 부딪치다 보니 졸업할 때쯤에는 인사말 건네는 정도의 사이가 됐다. 졸업을 하고 신문사에 기자로 취직을 하고 출입처에 나갔는데 다른 신문사의 기자가 된 그를 또 만났다. 그렇게 5년 정도를 같은 출입처를 나갔다. 입사 10년이 지나 내가 사표를 내고 모교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그가 만나자고 해서 다시 만났다. 당시 그는 경찰출입기자들의 우두머리인 시경캡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대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이듬해 그는 나와 같은 대학원에서 한 학기 수업을 같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가 기자직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한 건 딱히 학문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도 아니었고, 대단한 사회적 성취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다만 불안하게 흔들리는 현재의 자리보다 조금 안정적으로 공부하고 글쓰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를 위해 그는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십수년간 열심히 쌓아온 기자 경력을 버렸고, 물려받은 유산없이 월급으로 모은 재산의 상당 부분을 썼으며, 공부하는 내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싸웠다. 덕분에 5년 뒤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얼마 뒤 한 명문대학에 교수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3년은 재임용을 위해 논문 집필과 강의준비에 매진했다. 지난해 가을 그는 재임용을 통과했다. 그 무렵 오랜만에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이제 한시름 놓았다”고 했다. 좀더 안정적인 자리를 위해 불안과 싸우며 7, 8년을 보낸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난해 연말 나와 공동연구를 하던 그는 잦은 두통과 언어장애를 호소했다. 병원진단 결과는 뇌종양 말기였다. 치료를 위한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동안 자신을 돌볼 틈이 없어 보험도 들어놓은 게 없었다. 늦게 낳은 아들은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자신이 꿈꿨던 안정을 누리는가 싶은 순간에 그는 생애 가장 불안한 상황 속으로 미끄러졌다. 그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기까지 불과 두어달 사이에 그가 겪은 지옥 같은 마음의 풍경을 내가 다 헤아릴 순 없다.

종종 그는 억울했해고, 타인과 자신을 비교했다. 더러는 안정을 위해 매진한 자신의 삶을 회한어린 눈길로 쳐다보기도 했다. 병을 물리쳐야 할 적으로 간주하고 투병의지를 불태우는가 하면 이내 더불어 가야 할 친구로 생각하고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는 세상 밖으로 나가 있던 시선을 거두어 자기 자신을 조용히 응시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가 한창 진행될 때쯤이었다. 그는 방사선 치료가 끝나면 공기 좋은 조용한 시골에 들어가 마음을 다스리며 지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일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우리 대부분은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노후를 위해 저축과 연금을 들고, 투병을 위해 암보험을 들고, 더 안정적 직장을 위해 대학원에 등록하고, 자녀의 안락한 삶을 위해 교육에 조기 투자하고…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위해 자신의 노동생산성을 쥐어짜야 하고,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음주와 흡연을 하고, 피로를 씻기 위해 헬스클럽에 등록해야 하고… 그렇게 살다보니 주변의 인간관계가 도구적으로 되고, 소통없는 내면은 황폐해지고, 정서적 충족을 위해 불륜까지 몽상하고… 그리하여 다시 회귀하는 불안을 잊기 위해 지속적으로 안정의 고지를 향해 전진하는 이 단성생식의 삶. 2007년 한국사회의 중년, 누가 여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불안을 잊기 위해 안정의 고지를 구축하는 데 매진하는 삶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안정의 고지는 다가가면 멀어지는 신기루이며, 부재의 대상은 욕망할수록 불안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불안을 극복하는 다른 삶의 방식을 아직은 잘 모른다. 아마도 나눔이 아닐까 하는 심증은 간다. 불안이 내가 가진 것 혹은 갖고 싶은 것에 대한 상실의 공포에서 비롯된다니, 본인이 먼저 나눠주면 상실의 대상 자체가 없어져버릴 테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그런데 이 단순한 형식논리를 우리는 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일까?(남재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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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4-23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갈게요. 책만 사두고 언제쯤 읽을는지...

작은앵초꽃 2007-04-23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10년이 되었군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도 퍼가겠습니다.

로쟈 2007-04-23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이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