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가을에 라캉 읽기에 대해서 몇 자 적어둔 글을 옮겨놓는다. '라캉 읽기의 몇 가지 방식'이란 제목을 달고 있었는데, 말투로 보아 라캉 입문서를 묻는 질의에 대한 응답이었던 듯하다. 그 사이에 변화된 사정에 대해서 얼마간 보충하도록 하겠다.

 

 

 

 

현재 라캉 읽기에 있어서 대표적인 선두 주자들이라면, 슬라보예 지젝과 브루스 핑크를 들 수 있을 겁니다. 국내 출판계에서도 프로이트 전집 발간 이후 차츰 라캉 읽기쪽으로 독서층의 관심을 이동시키고자 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물론 그 독서층이라는 것이 몇 줌이나 되랴 싶지만, 푸코나 들뢰즈의 대한 열광적인 반응을 재연할 수만 있다면(그래봐야 1만부 미만일 거라는 제 짐작이지만)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겁니다. 그것이 출판계의 요구/관심일 테고, 다른 한쪽에는 서구의 첨단 이론이나 철학을 수입/소개하는 데에 어떤 소명의식을 느끼는 일련의 지식인(지식분자)들이 있습니다.

이미 플라톤이나 프로이트 등과 같은 '거장'의 반열에 들어가 있는 라캉은 20세기가 산출한 가장 난해한 저작(들 중의 하나)의 생산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치 문학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대학이란 제도 안에서 박사/교수들이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주었듯이 라캉 또한 알 듯 모를 듯한 이론과 도식(수학소)들을 통해서 (라캉을 아는)지식인들과 (라캉을 모르는) 일반인들을 가르는 준거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것입니다.

물론 현재로선 라캉에 대한 앎이 우리 사회에서 대단한 상징적 권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의 이론이 대중화될수록, 그래서 대중에게 라캉이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중요한 사상가로 각인될수록, 즉 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수록 라캉에 대한 지식은 곧 권력화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에 대한 사회학적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겠지요. 아시다시피 이미 프랑스 정신분석학과 라캉에 대해서는 셰리 터클의 <정신분석적 정치>(<라캉과 정신분석혁명>(민음사, 1995)으로 번역됨) 같은 책이 나와 있습니다.

 

 

 



다시 지젝과 핑크로 돌아옵시다. 혹자는 지젝에게서 임상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하는데, 사실 그것이 지젝의 라캉 읽기/해석에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자면, 한국에서의 모든 라캉 읽기가 결여하고 있는 것이 임상입니다. 임상은 임상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또 프랑스에서 라캉식 정신분석의 자격증을 따온다는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국내에서 법적으로 그러한 정신분석이 공인되어 있지 않는 한 말입니다. 국내의 일부 정신분석의들이 라캉식 치료법을 어깨너머로 응용/적용한다고 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잘 해야 '흉내'이고 대개는 '사이비'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요. 지젝은 라캉을 임상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갔고, 그의 생산성이 보여주듯이 그러한 접근은 꽤나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향락의 전이>에서 지젝 자신이 고백하듯이 그가 대중문화 텍스트를 읽는 데 라캉을 이용한 것은 일차적으론 그 자신이 라캉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이론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사례를 찾듯이, 아니 사례를 통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되듯이, 지젝은 (자신이 읽기에도) 난해한 라캉을 이해하기 위해서 영화나 대중소설들을 동원한 것인데, 뜻밖에도 성공을 거둔 것이고, 그것은 라캉 이론을 더 풍부하게 확장시켜 나가는 데 기여합니다.



보다 정통적인 의미에서 라캉의 '주석가' 역할을 하는 핑크는 이러한 지젝의 작업을 상당 부분 보완해 주는 듯합니다(이들은 알렝 밀레르가 모는 라캉 정신분석학이란 쌍두마차의 두 마리 말과는 같아 보입니다). 핑크는 이미 국내에 번역된 <라캉과 정신의학>(원제는 <라캉식 정신분석에 대한 임상적 입문>)과 <라캉의 주체>를 통해서(*국역본이 근간예정이다), 그리고 세미나에 대한 주석서들의 편찬을 통해서 새로운 라캉 읽기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곧 그가 새로 번역한 영역판 <에크리>도 다시 나온다고 하지요(*핑크의 완역본 <에크리>는 올해 출간됐다).

이 두 마리 말, 지젝과 핑크는 꽤 절친한 사이로 보이는데, 그것은 아마도 똑같이 밀레르의 세미나를 통해서, 즉 후기 라캉을 통해서 라캉에 접근해 나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라캉에 대해 다시 흥미를 갖게 된 것도 순전히 이들의 작업 때문이고, 이들에 의해서 소개받은 후기(70년대의) 라캉 이론이 갖는 파워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라캉 이론은 일관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수십년간 몇 차례의 탈바꿈, 혹은 이론적 방점의 이동에 따라 진화해 온 것입니다. 단순화시키면, 상상계-상징계-실재(계) 순으로 그 방점이 이동해 왔고, 밀레르 사단은 실재에 대한 라캉의 이론을 중심에 놓고 그 이전의 작업들은 재해석 혹은 '번역'(핑크 자신이 쓴 용어입니다)합니다. 그리고 이 후기의 라캉은 사실 <에크리>(1966) 이후의 라캉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에크리>가 국역된다고 해서 라캉에 대한 우리의 기존의 이해(구조주의자 라캉!)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고, 후기의 세미나들이 마저 번역돼야 할 듯합니다. 물론 그 세미나들에 대한 주석서들과 참고서들도 함께 소개돼야 하겠지요.

 

 

 


지젝과 핑크, 그리고 다리언 리더의 만화책(<라캉>)을 제외하면, 국내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라캉 연구서들은 상상계와 상징계를 중심으로 라캉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근거해서 라캉에 대한 평가와 비판을 진행합니다(<철학의 외부>에서 이진경도 그렇게 한정된 라캉의 상을 소개하고 그의 '구조주의'를 비판하더군요). 조금 과장되게 얘기하면, 우리가 접하고 있는 것은 어떤 동일한 라캉이 아니라 라캉'들'입니다(*지젝은 '라캉 대(對) 라캉' 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라캉 이해에 가장 시급한 것은 그 라캉'들'을 윤곽지어줄 수 있는 교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왜냐하면 라캉 자신은 그러한 차이들에 대해서 친절하게 해명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부분적인 라캉에 대한 소개로 이해를 대신하려는 시도들은 그간의 것으로 충분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젝과 핑크의 책들이 보다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번역되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작업에서 비춰지는 라캉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유용할 거 같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러한 유용성에 비추어 볼 때, 몇몇 라캉 연구자들의 젠체하는 태도도 충분히 용인해줄 수 있을 겁니다. 그마저 없다면, 무슨 보람으로 그 머리아픈(!) 일들을 해나간단 말입니까?...

02. 09. 30/ 06. 08. 22.

P.S. 다리언 리더의 <라캉>(김영사, 2002)에 기대어 국내에서 라캉 읽기의 지름길(?)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다리언 리더는 라캉의 법적 상속자인 자크 알랭 밀레르(밀러) 사단의 일원으로 보이는데, 런던에서 개업하고 있는 정신분석가라고 한다. 책의 말미에 더 읽기(Further Reading)로 라캉의 1차 문헌과 그에 관한 2차 문헌 해제를 싣고 있다.

라캉의 <에크리>(1966)는 방대한 분량의 저서인데, 영어권에는 셰리단의 발췌 번역(1977)으로 소개돼 있고, 이 책은 국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리더에 의하면 그 번역이 썩 좋지는 않은 편이고 또 내용도 난삽하다(*지금은 핑크의 완역본이 나왔으니 셰리단의 영역에 의존할 필요는 없어졌다). 그래서 권하는 것이 세미나인데, 밀레르에 의해 20권 가량(?)으로 편집되고 있는 불어본 세미나는 대학 도서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불어를 못 읽는 독자는(그의 책은 웬만큼 불어를 하는 사람들도 읽어내지 못한다) 영어본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는데, 1,2,3,7,11,20권까지 5-6권 정도가 영역돼 있고, 브루스 핑크가 주석서가 2-3권 나와 있다(1,2권, 11권). 참고로 러시아어로는 <에크리>가 아직 번역되지 않은 상태이며 세미나만 5권 정도가 번역/소개돼 있다.

 

한국어본에만 의존하려고 할 경우 사정은 더 안 좋은데, <욕망이론>(문예출판사, 1994)이라고 발췌 번역된 라캉의 책은 셰리단의 책을 중심으로 번역한 것으로(그러니가 중역이다), 50년대 라캉의 중요한 글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읽기가 쉽지 않다(부분적으로 지나치게 의역하고 있다). 아니카 르메르의 <자크 라캉>(문예출판사, 1994)은 구조주의 시절의 라캉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이 책엔 라캉의 서문이 실려 있다), 이 역시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소쉬르 이후의 구조주의 언어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리더가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라캉의 초기 논문에 대한 자세한 분석으로 라쿠-라바르트와 낭시의 'The Title of the letter: a reading of Lacan'이 있다. 국내 도서관들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이다(라캉이 칭찬했다는 책이다). 하지만 전문적이다. 일반 독자들로선 핑크의 'Lacan to the Letter'가 가장 요긴하겠다.  

다리언 리더가 적극 추천하고 있는 책은 벤베뉴토의 <자크 라캉의 저작>인데(하나의학사에서 김종주에 의해 <라깡의 정신분석 입문>으로 번역돼 나왔다), 이 역시 우리말 번역본을 전적으로 신뢰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거의 절판된 책이다. 그리고 필수적인 참고서라 할 사전. 딜런 에반스의 <라캉 정신분석 사전>(인간사랑)이 번역돼 있는데, 국내 라캉학자들이나 호사가들이 번역진으로 망라돼 있지만, 편차가 심하고 용어도 아직 통일되어 있지 않아서 가급적이면 원서와 같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요컨대 라캉에 대한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거의 없는 셈이다. 리스크가 필수적인 것.

 

 

 



그래도 라캉을 읽으려고 한다면, 그래도 번역이 괜찮은 지젝이나 핑크의 책을 권할 수밖에 없다. 지젝의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은 부분적인 오역과 불성실한 교정에도 불구하고(인간사랑에서 나온 모든 책에 공통적이다) 읽을 만하다. 하지만, 역시나 쉬운 책은 아니며, <삐딱하게 보기>나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같은 책으로 시작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향락의 전이>인데, 아쉽게도 이 책은 지젝의 번역본 가운데 최악이다. <라캉과 정신의학>이라 번역된 브루스 핑크의 책은 다 읽지 못했지만, 좋은 평을 얻고 있는 책이고, 다이언 리더도 적극 추천하고 있다. 그 책과 짝이 되는 것이 <라캉의 주체The Lacanian Subject>인데, 도서관 등에서 구해볼 수 있으며 두껍지 않은 분량이기 때문에 도전해 볼 만하다.

라캉의 전기서로는 루디네스코의 <자크 라캉>(새물결)이 가장 자세하다. 하지만, 다소 근거없는 사실들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그나마 라캉 읽기에서 다행인 것은 적극 추천할 만한 2차 문헌이 많지 않다는 것. 때문에 한줌의(?) 책만 열심히 읽으면 된다.

02. 10. 04.

 

 

 

 

P.S.2. 본문에서 언급된 책이지만 브루스 핑크의 <에크리 읽기>(도서출판b, 2007)이 이번에 출간됐다. 근간 소식은 전부터 듣고 있었는데, 여름이 가기 전에 출간되어 반갑다. 핑크의 책으론 <라캉의 주체>가 마저 나온다면 <라캉의 정신의학>과 함께 '트로이카'가 되겠다. 그러고 보면 올해는 지젝의 <HOW TO READ 라캉>(웅진지식하우스, 2007)까지 지난 봄에 출간됐으니 적어도 '라캉 입문'에 대해서만큼은 기념할 만한 해가 아닌가 싶다. 정작 라캉의 <에크리>도 <세미나>도 나오지 않은 것이 기이한 일이긴 하나 이 또한 '한국적 현상'이 아닐까 싶고...

07. 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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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8-22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퍼갑니다. :) 그래도 한 때 홍준기 선생님께 라캉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던 학생으로서 밝혀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아서^^; 홍준기 선생님께서 '임상'을 실천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로쟈 2006-08-22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염두에 둔 건 '법적 공인'입니다. 라캉주의 정신분석가가 국내에서 법적인 인가하에 '영업'할 수 있는 건가요? 과문하지만, 그런 케이스는 아니지 않나요?..

기인 2006-08-23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치료실도 개포동인가 쪽에 여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

비로그인 2006-08-23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갑니다..;;

자꾸때리다 2006-08-23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과 의사 아닌 사람이 정신분석치료 영업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안됩니다.
왜나면 저는 기득권자이기 때문이지요.ㅋㅋㅋㅋ

로쟈 2006-08-24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다가 정신의학과 라캉식 정신분석은 치료의 전제나 목적에서 상당한 의견차를 갖고 있으니까 '똑같은 영업'을 하면 안되겠지요...

열매 2006-08-2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임상을 할 수 있는지 여부가 궁금해 정신과 레지던트를 밟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는데, 분석치료를 할 수 있다고 하던데요. 다만 약물 처방과 같은 의료행위는 안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홍준기씨 같은 경우 '정신분석연구원'같은거 차리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그것이 연구실같은 것인지 couch 갖다 놓고 임상치료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문제는 한국인들은 talking care하러 정신분석원이나 정신과보다 점쟁이한테 간다는 것이겠지요^^

로쟈 2006-08-26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료행위'가 아닌 '분석치료'가 가능한 건가요?.. 야메 같은?..

열매 2006-08-27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위의 두명의 정신과의사,레지던트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 '의료행위'는 약물처방을 말합니다. 의사인 분 말씀이, 실제로 talking care는 환자가 원하면 한다고 합니다. 비용도 많이 청구되며 많은 시간과, 특히 환자가 그 과정을 힘들어하기 때문에 쉽사리 권하지 못한다고 하네요. 오히려 약물치료를 더 건장한다고 합니다. 특히 환자들이 '대화치료'에 대해 부정적이며 그 효능에 대하여 의심한다고 합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대화)분석치료에 어떤 (의료적) 조건(학위)이란 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여부였는데, 그들에게서 들었던 것은 의학대학 정신과 학위등이 없어도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심리학과 진학 등을 통한 임상심리학, 상담심리학쪽으로도 자격 요건이 있다고 합니다.
상담소를 차릴 수 있다고 하는데, 의료행위에 포함되지 않아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한국에선 talking care가 의료행위가 아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로쟈 2006-08-2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단히 말해서, 국내의 합법적인 의료행위의 경우, 일정한 자격(의사자격시험 같은) 요건을 갖추고 허가받은 의료기관이나 시설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받는 식이지요(세금도 내고요). 국내의 '라캉주의 정신분석' 임상이란 게 그러한 요건들을 충족시키는 의료행위인가 하는 것이죠. 그런 게 아니라면 '임상'은 비유적인 의미가 아닐까 하는 거구요...

열매 2006-08-27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답변을 수정하는 중에 답글을 다셨네요^^
마지막 말에 붙였지만, 제가 들은 바로 판단한다면, '라깡주의 정신분석' 임상은 한국에선 '의료'행위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그것은 한국 사회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 사회이며,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비유'일 것입니다.

biosculp 2006-08-28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예총문예아카데미에서 강의하시던 이창재 이분이 개설하신 연구소인데.
http://www.freudphil.com/index.php.
의료행위로서의 치료라기보다는 이런정도가 아닐런지요.

로쟈 2006-08-28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런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은 여러 분 계시죠.
 
벌거벗은 해 열림원 이삭줍기 5
보리스 필냐크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림원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1921년 내전은 종식되었지만, 그것이 곧바로 사회주의 러시아의 안정된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1920-21년 사이에 볼가강 지역을 휩쓴 가뭄으로 오백만 명 이상의 농민이 죽었다. B. 필냑/필냐크(1894-1937)의 표현을 빌면 말 그대로 ‘벌거벗은 해’였고, “죽음이 삶이나 출생보다도 더 자연스러운” 시절이었다. 필냑의 <벌거벗은 해>(1921)는 흔히 소비에트 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혁명 이후의 소비에트 산문문학은 일단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않은 벌거숭이 상태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벌거벗은 해>는 1917년 혁명이 가져온 사회적/문화적 혼돈(카오스)과 에네르기를 문학적으로 육화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혁명 직후 러시아의 사회현실적 삶과 정신적 삶의 현실이 문학텍스트 속으로 수축되어 들어간 것이 바로 <벌거벗은 해>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작가 필냑의 고유한 현실관(혹은 세계관)이다. 무엇이 진정 현실적인 것이냐라는 문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요,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는 식의 헤겔의 말을 비틀자면, 필냑에게선 “반복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요, 현실적인 것은 반복적인 것이다.” 예컨대, “아들아, 너는 살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포기하지 말아라. 결혼해서 아이들을 갖도록 해라, 아들아……” “이렇게 하여 집과 가게와 성경과 매질과 마누라와 마슈라 사이에서 4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매일매일이 그런 식이었고, 40년이 한결같이 그런 식이었다.”라거나 “인생의 모든 것은 바로 부메랑과도 같아... 내가 저지른 모든 일이 나에게 되돌아올 거야.” “백만 년 전에도 밤은 있었어. 지금도 밤이 있고 백만 년 후에도 밤이 있을 거야.” “나는 지금의 당신이었고 당신은 지금의 나일 것이다.” 등등의 구절들.

필냑에게서 ‘고대적인 것’이란 테마는 이때 반복적인 것, 반복할 수 있고 반복되어야 하는 것에 해당한다. 표트르 대제의 유럽화(18세기) 이전의 러시아, 반(半)아시아적이고, 야만적인 러시아가 바로 그것이다. 한 문학사가의 지적에 의하면, 필냑은 인간은 환경에 의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인간 본질의 불변의 요소>에 대해 항상 언급했다. “그는 단지 출생, 사랑, 죽음이라는 기본적인 과정에 관심을 두었고, 그의 탁월한 작품은 고독, 이성, 절망의 슬픔과 공포, 자연과의 일체감을 다루고 있다. 인간의 마음에는 사회의 대변혁을 초월하는 고정된 불변의 요소가 있어서 제국의 몰락, 군중의 폭동, 사회개혁이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이나 혼란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필냑은 항상 암시하였다.”(마르크 슬로님)



20년대에 비교적 평탄했던 필냑과 당국의 관계(필냑에겐 자동차가 2대 있었다)가 30년대에 접어들면서 냉각되고 급기야는 숙청당하게 되는 사정의 밑바탕에는 그의 이런 세계관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벌거벗은 해>에서 ‘볼셰비키’와 ‘코뮤니스트’의 차이. “니체, 로자노프의 사상 및 슬라브주의적 영감을 민족주의적 볼셰비즘의 특이한 향취와 혼합한 필냑은 혁명을 부자연스런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대의 종말 및 17세기 모스크바 시대의 부활로 보고 환영하였다. (그에게서) 혁명적 폭발의 거친 원시주의는 단순하게는 일종의 스키타이인과 같은 삶의 방식의 재개를 선언하는 민족적 에너지의 방출이었다. 야만적인 러시아, 스텐카 라진과 푸가초프의 러시아, 필냑은 성적인 열정이나 순수한 애정적 환락의 장면에서 이러한 러시아인의 육체적인 힘을 찬양하고 무력하고 위선적인 유럽과 대비시켰다”(마르크 슬로님) 대략 이런 것들이 필냑이 가졌던 아이디어이다. 그리고 <벌거벗은 해> 등의 나타나는 특징적인 기교들과 기법들은 모두 이런 아이디어의 형식적 등가물이 될 것이다.

<벌거벗은 해>에 등장하는 고대성의 특징적인 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인물의 상징성, 알레고리성. 이야기 서술의 주체로서의 근대적 개인이란 것은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과 맞물린 근대소설의 발명이다. 근대소설은 이 문제적인 개인의 ‘내면’과 ‘심리’에 대한 묘사를 득의의 영역으로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서양 소설의 전통과 엄격하게 단절하고자 했던 필냑은 그의 인물들에게서 심리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인물들에 ‘고대성’을 부여한다. 즉 인물들은 자신의 내적 동기화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입장이나 신념, 관점, 주의, 주장들을 대표하는 자로서 선택된다. ‘누구누구의 눈으로’라는 식의 이야기 토막들이 들어가게 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따라서 <벌거벗은 해>에는 고유명사가 존재할 수 없고, 모든 상황이나 모티브가 반복되는 것처럼 인물의 형상 또한 반복된다. 오르드이닌가의 보리스와 글렙이 성자 보리스와 글렙의 이름을 가지는 것처럼.

둘째로, 이야기의 메시지나 이념적 논쟁이 주로 인물들간의 대화를 통해서 표출된다는 점. 이것은 알레고리적인 인물이 선택될 경우 당연한 귀결이다. 인물에 성격화가 부여되지 않을 경우 상황묘사를 통한 메시지의 전달은 빈약해질 수밖에 없고 이것은 보완하는 것이 바로 대화인 셈이다. <벌거벗은 해>에서 혁명에 대한 인물들의 입장이나 태도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가령, 1917년의 혁명에 대해서 그것이 마르크스(=유럽)의 유물사관에 입각한 과학적 사회주의의 공식을 보여주는 것이냐, 아니면 러시아 민중에게 잠재되어 있는 천년 동안의 믿음이 현실화된 것이냐에 대한 논의. 근대소설의 경우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이런 류의 교술성을 또한 고대문학적 특성과 연관지어 이해할 수 있겠다.

셋째로, 의인화되는 자연. 이 또한 눈에 두드러지는 것이지만, 가령 <이고르 원정기>에서와 마찬가지로 <벌거벗은 해>에서의 자연(특히 눈보라)는 이야기 상황에 적극적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발언한다. 그래서 마치 희랍비극에서의 코러스처럼 여기저기 참견하듯이 으르렁거리고 울부짖으며 “비유비유가가 샤샤샥”거리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전범이 되는 것은 동화(=옛이야기)의 세계이다.

넷째로, 연대기적 구성. 사제 실베스트르가 연대기 편찬자로 나오지만, 이미 ‘벌거벗은 해’라는 제목 자체가 연대기적이고 구성 또한 ‘서문’ ‘서술’ ‘결론’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바, 이 또한 연대기의 구성을 모방한 것이다. 그렇다면, <벌거벗은 해>의 작가 필냑은 근대소설의 작가와는 다른 작가적 위치와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인데, 연대기 편찬자로서의 필냑은 재료(material)의 편집자(editor)로서만 이야기 속에 개입하는 것이다. 때문에 혁명에 대한 필냑 자신의 태도는 상대적으로 모호하다.

하여간에 이렇듯 나이브한 상태의 재료들이 텍스트에 편입됨으로써(텍스트는 ‘잡화상’이 된다) 야기되는 결과는 현실과 허구간의 경계가 흐리마리해지는 것이다. “빵도 없고, 철제물도 없고, 있는 것이라곤 기아와 죽음과 공포와 두려움”뿐인 1919년, 동시대의 상황, 즉 혁명 이후의 2-3년간의 기간은 일종의 무중력적 시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배적인 체제와 가치의 붕괴가 동반하는 이러한 혼란과 아노미 상태, 카오스모스적인 상태는 일시적으로 역사가 정지된 상태이다. 즉 역사서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그것은 역사를 꿰뚫어 서술할 수 있는 단일한 시각적 입지(=퍼스펙티브)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해>에 등장하는 볼셰비키, 아나키스트, 분리파교도, 수구세력 등은 저마다의 시각과 가치관의 코드를 통해 혁명과 당대의 현실을 해석하려고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결정적이지는 못하다. 따라서 모든 현실의 파편들, 재료들을 자신의 단일한 코드로 편집, 재구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허구적 장르의 지배력은 거의 무력화되는데, 이러한 사정은 작가 필냑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그가 선택한 연대기라는 형식이 어떤 의미에선 그에게 강요된 형식일 것이기에 그러하다. 따라서 <벌거벗은 해>의 고대성의 모티브들이 암묵적으로 제시하는바, 혁명의 눈보라가 몰아친 후 드러나게 될 17세기 이전의 러시아, 아시아적 러시아상은 텍스트 속에서 반복되는 여러 가지 모티브들에도 불구하고 명료하게 정식화되거나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에트 문학 중에서 혁명과 혁명에 참가한 주인공을 서사적인 형식으로 그리고 새로운 소설을 창조하려 한 최초의 시도가 B. 필냑의 소설 <벌거벗은 해>였다. 그러나 새로운 형식과 문체로 있지도 않은 현실을 재현하려고 한 바람에 작가는 인간과 사건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였고, 혼란스럽고 절충주의적인 관점만 드러내고 말았다.”(V. 부즈닉, L. 에르쇼프) 이러한 관점은 한편으로 정당하기 짝이 없는데, 소비에트 문학사는 소비에트의 승리, 볼셰비키의 승리라는 역사적 결과를 전제로 하여 서술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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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 2006-08-23 0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20년대 자체가 러시아문학에서 그야말로 '문제적인 시대'로 기록될 만하지만, 쟈마친, 올례샤, 필냑, 플라토노프 등의 유수한 작품 중 필냑의 [벌거벗은 해]가 역시나 가장 문제적인 듯. 하지만 이 소설의 온갖 난해성도 늙은 아르히포프가 임종시 아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인 "“아들아, 너는 살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포기하지 말아라. 결혼해서 아이들을 갖도록 해라, 아들아……”(로쟈님이 인용한 부분)를 되새기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싶네요. 실상, 저 말 때문에 이른바 "가죽 재킷"(=공산주의자) 아르히포프가 결혼을 택하는 것이기도 한데... 겸사겸사, 골룹코프 교수의 책도 1920년대 문학의 틀을 잡는 데 아주 유용함.
 

지젝 입문서 한 권이 출간됐다. 사라 케이의 <슬라보예 지젝>(경성대출판부, 2006).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앨피, 2005)에 이어서 두번째이고, 이안 파커의 책도 근간 예정인 것으로 안다. 조만간 서너 권의 입문서를 우리는 갖게 될 것이다(영어권에서 나온 지젝 입문서가 현재 댓 종 가량이다). 알라딘의 저자 소개는 엉터리로 떠 있기에 참조할 바 없고(사라 케이는 캠브리지 대학의 불문과 교수이다), 번역자는 영문학 전공자이다. 기존의 번역서들을 참조했다면 무리없는 번역서가 나왔을 법하다.

 

 

 

 

표지 이미지가 눈에 확 띄지는 않는데, 원서는 아래에서 보듯이 오히려 원색에 가까운 편이다. 원서 'Zizek: A Critical Introduction'(Polity Press, 2003)은 'Key Contemporary Thinkers' 시리즈의 한 권인데, 이 시리즈엔 쟁쟁한 동시대 서구 사상가들이 망라돼 있다. 이전에 한번 소개한 대로 콜린 데이비스의 <엠마누엘 레비나스>(다산글방, 2001) 등이 이 시리즈의 국역본들이다. 근간 예정인 책으로는 올 12월에 나온다는 레이다 안드레아스 듀의 <들뢰즈>(Polity Press, 2006)가 있다(아마도 국역본 판권이 벌써 입수되었는지도 모르겠다).

Deleuze (Key Contemporary Thinkers)

지방대학의 출판부에서 지젝 입문서가 나온 건 좀 의외인데, 경성대출판부는 사실 가장 '전위적인' 책들을 출간하고 있긴 하다. 미술비평가 할 포스터의 책들이 포함돼 있는 '경성대문화총서'가 대표적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그 총서의 16번째 책이었고, 지난달에 나온 14번째 책이 폴 비릴리오의 <탈출속도>이다. 역자는 이미 <정보과학의 폭탄>은 옮긴 바 있는 배영달 교수. 비릴리오의 난삽함이 얼마나 덜어졌을지는 의문이지만 하여간에 이런 책들을 출간하는 대학출판부를 '전위적'이라 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지방인 만큼 책을 주문하면 거의 열흘 가까운 시일이 소요된다. 태풍이 북상하는 속도보다 몇 배는 느리다. 하니 그걸로 여름을 '탈출'하기는 이미 틀린 듯하다. 독서의 계절에나 읽을 책들이다. 지젝과 함께 가을을?..

06. 08. 22.

P.S. 위의 스틸사진은 Sophie Fiennes의 다큐필름 'The Pervert’s Guide To Cinema'(2006)의 한 장면이다. 지젝은 이 영화에서 나레이션을 맡고 있다고. 말하자면, 그가 영화사의 '가이드'이자 '도착증자'이다. 참고로, 이번 서울영화제에서 상영예정이라는 이 영화의 영문 소개를 옮겨놓는다. 

Is cinema one big Freudian slip? What can the Marx Brothers tell us about the workings of the unconscious? And why exactly do the birds attack in Hitchcock’s masterpiece of horror? The Pervert’s Guide to Cinema takes the viewer on an exhilarating ride through some of the greatest movies ever made. Our guide is the charismatic Slavoj Zizek, acclaimed philosopher and psychoanalyst, who delves into the hidden language of cinema, uncovering what the movies can tell us about ourselves. Known as ‘the Wild Man of Theory’, Zizek illustrates psychoanalytic theory using examples culled from film and pop culture. From Charlie Chaplin to Ingmar Bergman, from the Wachowski Brothers to David Lynch, Zizek thrills with his formidable insight and provocation. He illuminates the screen with his passion, intellect, and unfailing sense of humour. Conceived and directed by documentary filmmaker Sophie Fiennes, The Pervert’s Guide to Cinema takes the form of a film essay in three parts. Shot on location and in replica sets, the film creates the illusion that Zizek is speaking from within the films he is discussing. The Pervert’s Guide to Cinema provides all the tools necessary to read movies in an entirely different way —with Zizek studying his notes in the Psycho (1960) fruit cellar, observing the attempted exorcism in William Friedkin’s The Exorcist (1973), or revealing to The Matrix’s (1999) Morpheus the true meaning behind those red and blue pills. Zizek says: ‘Cinema is often described as a pervert’s art, because cinema tells us how to organise our desires’. This film exposes the very conditions that regulate our desires, inside and outside the mov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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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8-22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이름은 매트릭스로 철학하기에서 보았어요. 그 이상 아는 게 없었는데 이렇게 생겼군요. 호옷...

로쟈 2006-08-22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이 카테고리는 전체가 지젝에 관한 것인데요(^^;)...

로쟈 2006-08-22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아마도 '사라예보'와 겹쳐 읽으신 듯.^^

푸른괭이 2006-08-22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 열풍 얼마나 갈까요...? -_- 위의 사진은 꼭, 늙은 조지 클루니를 연상시키는군요.

로쟈 2006-08-22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풍'이 중요한 게 아니고, (자신에게) 무얼 말해주느냐가 중요하겠죠...

기인 2006-08-22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건, 노인과 바다도 아니고, 갈매기의 꿈도 아니고, 묘하군요. 노인과 바다의 배경에서 조나단이 날고 있었는데,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가 배따라기를 부르며 집을 나서며 '인형의 집'을 부수는 것? ;;; 헛소리였습니다 ㅎㅎ
그런데 갈매기는 합성이겠지만, 지젝도 합성 같아요 ㅋ

로쟈 2006-08-22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합성입니다.^^

열매 2006-08-24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치콕의 '새'의 한장면 같군요.
실재the real의 중핵으로 들어가는...

로쟈 2006-08-23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부 2006-09-0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 스틸 'Pervert's guide to cinema'라는 영국영화의 스틸 사진으로 알고 있는데요.. '지젝의 신기한 영화강의'인가 하는 제목으로 이번 서울영화제에 상영예정인 것으로 들었습니다

로쟈 2006-09-0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신기한 영화강의> 상영 소식은 들은 바 있는데,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건가 보죠? 덕분에 정보를 업데이트했습니다.^^
 

건드리면 덧나는 문제이긴 한데, 성매매 문제와 관려하여 스크랩해놓은 기명 칼럼 몇 개를 옮겨놓는다. 며칠전 한겨레에 김기원 교수의 칼럼 '성매매 여성의 인권'이 게재되었는데, 그가 이전에 쓴 칼럼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을 나는 읽은 바 있고 많은 대목에서 공감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송경숙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전국연대 대표의 반론이 제기됐었던 모양이다. 생각할 자료서의 가치가 있는 듯하여 모두 옮겨놓는다. 

한겨레(06. 07. 28)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

-성매매 처벌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되어간다. 성매매처벌법으로 성병검진 대성 여성이 준 게 질병관리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최근 발표도 물의를 빚었지만, 이 법을 둘러싸고는 지금까지 뜨거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시장논리에 어긋난 법률이라고 비난한 학자가 있는가 하면, 재계총수는 사회의 하수구가 있어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중산층여성을 위해 한계층여성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한 여성운동가도 있다. 반대로 여성단체는 엄격한 법집행을 요구한다. 도대체 어느 쪽이 옳을까.

 

 

 

 

-인간의 서비스는 대부분 훌륭한 상품인데 유독 문제가 되는 것은 성적 서비스다. 세계적으로 성매매는 옛날엔 합법적이었으나 현대에 와서 여권신장과 더불어 사정이 달라졌다. 우리나라도 광복 이후 비로소 공창제도를 폐지하고 1960년대에 성매매를 불법화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기껏 교통신호 위반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성매매처벌법은 그런 관행을 바꾸어 징벌을 강화하는 조처였다.

-그러면 이 법률의 효과는 어떠한가. 먼저 다른 나라의 예를 보자. 미국은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 주만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있다. 거기선 성매매를 단속하는 다른 주에 비해 성매매의 거래량은 많다. 하지만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공개장소에서 영업을 하며 정기적 검진을 실시하므로 성병 등 거래행위에 따른 위험은 현저하게 낮다. ‘어느 업소는 어떻더라’는 소문을 들을 수 있고, 서비스에 문제가 있을 때는 업주에게 항의할 수 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착취도 줄어든다.

-성매매가 불법화한 주에서는 성병 걸린 성매매 여성들이 거리를 배회한다. 음성적 매춘행위에 대해선 서비스의 질을 보장받기가 어렵다. 그리고 여기선 폭력이나 부패와 같은 범죄가 자라나기 쉽다. 폭력배가 불법 매춘업에 기생하며 관련 업주들이 단속공무원에게 뇌물을 상납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집창촌 지역을 담당했던 김강자 서장이 공창제도를 주창한 것도 이런 폐해들 때문이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는 둘 다 선망의 복지국가다. 그런데 성매매에 대한 시각은 판이하다. 스웨덴은 성매매를 불법화했고, 네덜란드는 성매매를 양성화했다. 그 결과는 미국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다. 성매매여성 비율은 네덜란드가 훨씬 높은 반면, 스웨덴에선 성매매여성이 뚜쟁이에게 종속된 정도가 크고 위험에 노출되는 확률이 높다.

 

 


 


-요컨대 성매매의 양적 축소를 중시하느냐, 아니면 성매매와 관련된 성병과 범죄의 축소를 중시하느냐 하는 가치판단에 따라 성매매 단속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양쪽 입장 다 일리가 있다. 이런 게 모의 국민투표의 대상이 아닐까. 물론 어떤 방향으로 가든 성매매 여성에게 다른 생계수단을 제공해야 하고 건강한 노동의식도 함양시켜야 한다. 또 사회의 투명화로 술자리 접대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장애인과 같은 성소외자에 대한 배려도 빠져선 안 된다.

-성매매처벌법 시행 이후 우리 집창촌 종사자 숫자는 줄었다. 하지만 성매매가 더욱 음성화한 것도 분명하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법 제정 때 여론수렴이 충분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이 역시 졸속정책의 사례가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엄중단속의 방향을 선택하더라도 시행시기를 잘 잡았어야 했는데, 하필 경기가 나쁠 때였으니 부작용이 크고 저항도 거셌다. 조폭관련 업소부터 단속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집행단계도 신중히 밟아 나갔어야 했다. 이런 부분들을 경시해 정부는 결국 법도 흐지부지되게 만들었고 관련 하층서민의 지지도 잃었다. 지금이라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한겨레(06. 08. 12) '성매매 처벌법 논란'의 남성주의

-7월28일치에 실린 김기원 방송대 교수의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이라는 칼럼을 보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는 이에 앞서 ‘셩매매 특별법과 남신숭배’(6월23일치)라는 제목의 외부필자 칼럼에서도 성매매 방지법 관련 내용을 다루면서 법의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을 넘어 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을 실었다.

 

 


 


-김 교수의 칼럼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 방지법) 중 처벌법에 대한 문제를 주로 짚고 있다. 물론 법이 만능은 아니고 현행법 또한 한계가 있는데, 법 취지에 맞게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에 대한 인권보호와 자활지원이 확실히 보장되고 있는가에 대한 법 집행력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근거가 불분명한 내용과 추측에 기반하여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김 교수는 마치 성매매가 합법화한 나라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잘 관리가 되어 범죄 발생이 줄어든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성매매를 합법화해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것이 범죄 축소에 효과적인 양 선전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본질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성매매 합법화가 여성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대안이 아니라는 점과 오히려 합법화한 나라에서 불법 영역이 확대되고 국제적 인신매매 범죄의 온상지가 되고 있는 사실에 눈감으면서 다른 한쪽의 입장만을 옹호하는 것은 옳지 않다(*어느 주장이 팩트인가?).

-어느 성매매 여성도 대안이 제시된다면 성매매를 지속하지 않겠다고 한다(*미용사가 대안인가?). 성적 서비스를 직업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또한 대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전세계적인 ‘빈곤의 여성화’로 수많은 여성들이 성매매와 인신매매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이들을 노리는 알선업자들은 돈벌이를 위해 여성들을 모으고 이동시키면서 착취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오히려 합법화가 대안인 양 선전하는 것은 또다시 모든 이에게 거짓된 환상을 심어주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칼럼은 또한 성매매의 주요 원인이기도 한 성차별적인 남성 중심의 성 의식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성 구매자인 남성들의 안전을 위한 성병 검진의 필요성과 장애인(남성)의 성적 욕구 해결에 대한 요구가 그것이다. 남성의 성적 욕구를 해결해주는 성적 서비스로서의 성매매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쓰인 이 글은, 성매매와 성 구매자로 인해 오히려 심각한 각종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성매매 여성의 건강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 남성의 성을 살 권리(?)를 논하기 전에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먼저 살펴보길 바란다.

-성매매가 합법화하지 않아서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것이 아니라 ‘성매매는 필요악’이라고 허용하면서도 동시에 여성들에 대해서는 도덕적 낙인을 가하는 이중적인 남성 중심적 성 의식과 문화가 성매매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 구조에 유입된 순간부터 여성들은 인권침해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송경숙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전국연대 대표)

한겨레(06. 08. 18) 성매매 여성의 인권

-성매매처벌법을 다룬 필자의 7월28일치 칼럼을 두고 송경숙씨가 8월12일치 신문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반가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토론이 활발해져야 성문제를 제대로 처리하는 사회가 앞당겨진다. 다만 송씨의 글에는 필자의 뜻을 오해하고 사실을 왜곡한 부분이 있어 이를 해명하면서 논의를 진전시켜 보자.

-성매매에 관한 필자의 글이 남성주의라고 몰아세우면 남성이라는 원죄(?) 때문에 대응하기 난처하다. 하지만 필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성매매처벌법이 중산층 여성을 위해 한계층 여성을 희생시킨다는 어떤 여성운동가의 지적과, 주류 여성계의 냉대 속에 성매매 여성들이 50일 동안 단행한 천막농성이었다. 여성 전체가 남성에 의해 차별받지만 동시에 여성 사이에도 차별이 존재한다. 이는 자본에 의해 차별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을 연상시킨다(*여성 내부의 차별은 남성중심사회의 필연적인 결과인가? 때문에 나중에 처리되어야 하는? 혹은 남성중심적 사회구조를 혁파하면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성매매 불법화는 송씨의 주장과 달리 해당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보다 침해할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 성매매 여성 중 에이즈 감염자는 성매매가 합법인 네바다주엔 거의 없는데, 불법인 워싱턴과 뉴저지주엔 절반가량이다. 또 합법인 네덜란드에선 투명한 거래 덕분에 인신매매 등 관련범죄가 잘 드러나는 반면, 불법인 미국에선 은폐되기 쉽다. 불법인 경우에 화대 갈취나 단속 공무원 부패도 더 심하다.

-성매매는 술이나 마약처럼 사람들이 효용을 과대평가하고 폐해를 과소평가하는 비가치재(demerit goods)다. 비가치재에는 국가가 여러 규제를 가한다. 성매매의 폐해는 성병 감염, 결혼제도에 대한 위협, 인간관계의 황금만능화다. 그런데 술은 극소수 국가만 금지하고 마약은 극소수 국가만 허용한다. 성매매는 그 중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서른 나라 중 네 나라에서만 불법이다. 근래 유엔도 모든 성매매를 범죄시하던 과거의 태도를 바꿨다. 다수파가 항상 옳지는 않지만 다수 선진국이 성인의 자발적 성매매를 인정한다면 우리도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사랑 없이 재벌가문에 시집가는 것과 성매매를 하는 것은 어떤 점이 다를까. 결혼여성은 전속 매춘부고 성매매 여성은 프리랜서 매춘부라고 말한 과격한 여성운동가도 있지만, 성매매 여성보다 더 열악한 처지의 주부도 없지 않다. 중요한 문제는 성적 거래를 포함한 남녀관계의 실제상태다. 군산 매춘여성이 숨졌을 때 정부는 거래상태를 개선하는 대신 업종을 폐쇄하는 성매매처벌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은 성매매를 더욱 음성화하고 관련 하층서민의 생활을 악화시켰다.

-한국의 성매매 여성 비율은 네덜란드의 네 배, 미국의 두 배가 넘는다. 불법인 미국이 합법인 네덜란드보다 비율이 높고, 또 한국은 그들보다 더 높다. 성적 서비스에 자원배분이 과다한 현실을 시정하는 데 처벌이 능사가 아닌 셈이다. 북한처럼 인민의 삶을 철저히 통제할 수도 없다. 사회보장 제도의 충실화, 사회의 투명화가 관건이다. 그를 향한 과정에서 대안도 없으면서 성매매 여성을 내몰아선 안 된다. 또 송씨는 장애인 남녀의 성욕을 하찮게 여기는데, 그래도 되는 걸까. 성욕은 억압대상이 아니라 관리대상이다. 성매매가 합법인 네덜란드에서 장애인에 대한 성적 자원봉사도 활발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양대 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성매매 여성을 외면했다. 이처럼 지지기반조차 챙기지 못하니 헤매는 게 당연하다. 성매매처벌법 재검토를 용기있게 제기할 다음 대선 후보가 있을까. 정치인은 민감한 문제를 피해 간다. 하지만 양극화에 신음하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란 성매매 여성 같은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인물이 아닐까.(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06. 08. 21.

P.S. 송경숙 대표의 이어지는 반론을 기대한다. 해법은 당위와 현실의 이분법을 넘어서 현실적합성을 갖는 당위를 찾아가는 데 있지 않나 싶다. 혹 이 문제에 해법이 있다면... 

P.S.2. 마이페이퍼 작성시 저작권 침해 예방에 동참해달라는 알라딘의 요구에 따라 앞으로 다른 사이트의 글을 페이퍼에 옮겨오는 일은 중단할 예정이다(따라서 이 페이퍼가 마지막 '인용'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옮겨왔거나 인용한 글들은 상황을 봐서 비공개로 전환시키도록 하겠다(단, 얼마간의 유예기간을 갖도록 하겠다). 책에 관한 리뷰들을 알라딘에서 참조할 수 없는 건 유감스럽지만 덕분에 책 읽을 시간이 좀 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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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8-21 19:10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저도 송경숙 대표의 반론이 기대됩니다. 성매매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까닭은 역시, 성노동이 다른 노동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전제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질적'인 문제이고, 이 '질적' 문제는 '양적'인 차이들의 누적 때문에 생기는 것은 맞지만, 김교수의 '사랑 없이 재벌가문에 시집가는 것과 성매매를 하는 것은 어떤 점이 다를까'라는 말은 폭력적인 것 같습니다.

로쟈 2006-08-21 19:30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은 좀 다른데, '사랑 없이'란 전제를 단 것 자체가 오류이죠. 일반화된 성매매(성의 계약)는 그러한 주관적 감정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것 아닌가요?..

yoonta 2006-08-21 19:50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으로는 송경숙씨의 의견보다는 김기원교수의 의견에 동조하는 편입니다. 송씨는 기본적으로 성매매에 대한 터부시를 바탕으로 깔고 이야기하는 건데 전 왜 성매매가 다른 매매행위와는 다르게 유독 터부시되고 금기시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심지어는 노동력도 상품화되는 자본주의적 현실이 <불가피한> 지금의 현실이라면 성매매라는 매매행위도 <불가피한> 매매행위의 하나로 보지 말아야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성매매는 오히려 자본주의보다 더욱 역사가 오래된 매매행위중 하나죠.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들의 성노동을 터부시하고 죄악시하는 것은 그와 같은 성차별적 시각을 처음에 만든 남성주의적 시각을 재전유하는 것에 다름아니라고 봅니다.

성매매을 터부시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논거로 제시하는 것이 인신매매와 같은 범죄와의 관련성 때문입니다. 이것도 위에서 김교수가 이야기한 것처럼 공창제를 운영했을때 오히려 감소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술이나 마약 그리고 매매춘등은 금지하고 터부시하면 할수록 더욱 법의 사각지대로 숨어버리게 될 뿐입니다. 결코 없어지지 않죠. 그것은 쉽사리 제어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이 그와같은 상품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욕망에 대한 절제라는 문제를 "당위"라고는 할수있지만 그것이 결코 "범죄행위"는 아니라는 거죠. 이처럼 각 개인의 윤리 내지는 도덕에 의해 판단되어져야 할 문제를 (성매매금지)법으로 규율하려고 한다는 것은 어떤점에서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로쟈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로쟈 2006-08-21 20:08   좋아요 0 | URL
본문에 살짝 적어놓지 않았나요?^^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있는 나라와 불법화하고 있는 나라가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 문제가 일방적이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성매매를 불법화하는 것이 진보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죠). "요컨대 성매매의 양적 축소를 중시하느냐, 아니면 성매매와 관련된 성병과 범죄의 축소를 중시하느냐 하는 가치판단에 따라 성매매 단속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양쪽 입장 다 일리가 있다." 적어도 그런 전제하에 토론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로쟈 2006-08-21 21:45   좋아요 0 | URL
이 글을 포함한 인용 페이퍼들은 일주일 후에 모두 비공개로 전환하겠습니다. 그동안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의 깊은 양해를 바랍니다...

로쟈 2006-08-22 15:13   좋아요 0 | URL
**님/ 본문에 덧말로 적었는데, 알라딘의 지침이 펌글을 자제해 달라는 것입니다. 해서, 제가 군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은 페이퍼들은 전부 비공개로 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이 페이퍼는 방주에 남겨놓을까 생각중입니다)...

로쟈 2006-08-22 16:11   좋아요 0 | URL
**님/ 예, 앞으로는 별문제이지만 이미 상품넣기를 한 페이퍼들이 처치 곤란이어서요(더불어 알라딘쪽 주문은 퍼오는 것 자체를 자제해달라는 것입니다). 집주인이 나가주었으면 좋겠다는데, 버팅기기도 그렇고... 해서, 쇠뿔도 단 김에 빼버렸습니다...

로쟈 2006-08-22 18:02   좋아요 0 | URL
**님/ 알라딘은 카피라이트를 확실하게 챙기기로 방침을 정한 거 같습니다. 집주인의 방침이 그러하다면 따라줘야지요. 다소 불만스럽지만, 장기적으로 순기능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3794 2006-08-25 11:58   좋아요 0 | URL
<전세계적인 ‘빈곤의 여성화’로 수많은 여성들이 성매매와 인신매매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전세계적 빈곤의 여성화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 일까요? 3업종이라 불리는 업종은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없어 외국에서 노동력을 수입하고 있죠) 그러한 업종에 종사하는 최저 빈곤층이 우리사회에 존재하구요. 가난을 벗어날 큰돈을 받는 댓가로 베트남의 빈곤한 가정에서 20살난 여자아이를 한국의 3,40대의 노총각에게 시집보냅니다. 하지만 명품빽을 사기위해 매춘하는 여고생처럼 우리나라의 매춘을 빈곤과 연계시킬수 있는걸까요?


로쟈 2006-08-25 14:21   좋아요 0 | URL
정말로 빈곤한 여성들(하위주체들)은 그걸 사회적 의제로 만들거나 이론화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결여돼 있죠. 페미니즘 담론의 딜레마 중 하나는 그러한 '대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얘기가 아닌 것이죠...
 

지난주에 출간되 교양과학서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책은 데이비드 베인브리지의 (고즈윈, 2006)이었다. 남성(XY)과 여성(XX) 모두에 들어있는, 그러니까 실상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성염색체가 바로 X인 것이니 남의 관심사로 미뤄둘 수 없는 거 아닌가? 아직 아무런 리뷰도 링크돼 있지 않은 듯하여, 두어 개의 리뷰 기사를 옮겨온다.

한국일보(06. 08. 19) 남과 여, 염색체 하나 다를 뿐인데… X염색체의 비밀

-1890년, 독일의 헤르만 헨킹은 현미경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특이한 것을 발견한다. 별박이노린재라는 곤충의 정소에서 추출한 염색체였다. 정소는 다음 세대를 창조할 정자를 만들기 위해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장소. 세포는 두 번의 연속 과정을 거친 분열을 통해 정자를 만드는데, 이때 정확한 지침대로 움직이고 과정 내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당시 헨킹은 그 과정에 참가하지 않은 채 한쪽에 조용히 비켜서 있는 염색체를 발견한다. 훗날 그가 X염색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그는 이 염색체를 ‘여분의’(extra) 염색체라는 뜻에서 X염색체라 불렀는데 나중에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이것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바탕임이 밝혀졌다. ‘X염색체의 비밀’은 제목대로 여러 유전적 형질을 전달하는 X염색체의 비밀을 규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임상해부학자이자 강사(*한 서평자 왈: "베인브리지는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도킨스, 매트 리들리에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 그는 놀라운 속도로 독자들을 X염색체의 영광으로 초대한다." A급이란 얘기이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부모로부터 X염색체와 Y염색체를 물려받아 XX여성 혹은 XY남성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X염색체가 하나인 남성과 둘 인 여성은 어떤 차이를 보이게 될까. 무엇보다도 남성은 유전적 질병에 잘 걸린다. X염색체는 응고인자 8번 또는 9번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갖고 있는데 남성은 만약 그것이 손상되면, 과다출혈로 죽음에 이르는 혈우병에 걸리게 된다. 힘없이 주저앉는 근이영양증이나 색맹도 마찬가지다. 반면 여성은 X염색체가 둘 이어서 하나만 정상이어도 끔찍한 유전적 질병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은 자가면역성 질환에 훨씬 잘 걸린다. 다발성 경화증은 남성의 두 배, 남창은 열 배나 되는 등 자가면역성 질환 환자의 80%가 여성이다. 그 배경에 두 개의 X염색체가 연관돼 있다. 저자는 이런 과학적 사실을 사회적 가치 부여에 이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남성과 여성은 상반되지도, 대항적이지도 않다. 단지 여러 면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다를 뿐이다.”(박광희 기자)

중앙일보(06. 08. 19) 볼셰비키 혁명 속에도 X염색체가 숨어 있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문명이란 관점에서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다른 종과 별 차이가 없는 하나의 포유동물일 뿐이다. 특히 수정란 상태에서 남녀의 성(性)을 결정하는 아주 성(聖)스러운 과정에서 인간은 다른 포유류와 똑같이 X와 Y의 두 염색체를 이용한다. 즉, X염색체끼리 한 쌍을 이룬 XX의 수정란은 여성이 되고 X염색체와 Y염색체가 쌍을 이룬 XY는 남성이 된다.

-그런데 이질적인 조합인 XY 염색체를 가진 남성은 단 한 종류뿐인 X 염색체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달리 이를 대체하거나 수리할 '부품'이 없어 유전병을 고스란히 앓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XX 염색체를 가진 여성은 또 다른 X염색체가 있어 그런 병을 비켜갈 수 있다. 혈액응고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과다출혈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혈우병이나 색맹 등이 남성에게만 생기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인류사에는 갖은 굴곡이 나타났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자손들이 앓던 혈우병이 러시아.독일.스페인의 왕가로 퍼진 이야기가 좋은 예다. 빅토리아의 딸인 알렉산드리나는 할아버지의 손상된 X 유전자를 물려받아 아들인 러시아 황태자 알렉시스에게 혈우병을 안겨준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비극은 로마노프 황가의 통치 태만과 무기력으로 이어지며 결국 볼셰비키 혁명을 부른다. 스페인 왕가도 혈우병으로 타격을 입어 국가가 내전으로 가는 상황에서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성캐서린 대학의 임상해부학자인 지은이는 X염색체를 주인공으로 과학과 역사, 그리고 남녀의 문제라는 거대한 드라마를 그려 나간다. 헤르만 헨킹이 1890년 X염색체를 발견한 뒤 이를 남아도는 염색체로 보고 여분(extra)을 뜻하는 X라는 이름을 붙였다든가, 태평양의 작은 섬 핀지랩의 주민 대부분이 색맹이 된 까닭,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에 잘 걸리는 이유, 일란성 쌍둥이는 왜 여자가 더 많은지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우리 삶의 비밀을 들여다 본 지은이의 결론은 간단하다. 남녀의 서로 다른 염색체 배열은 다른 생물학적 기능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보다 더 잘 낳고 자신들의 유전적 특질을 계속 물려주기 위해 진화, 발달해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Y염색체는 우리의 성별(性別)을 결정하고 성 정체성을 부여하지만 X염색체는 수천 가지의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조절한다고 한다.

-즉 생물학적으로 남녀의 유전자는 서로 다를 뿐 우열은 없으며, 남녀는 서로 상반되지도 대항적이지도 않은 동반자 관계라는 게 지은이의 강조점이다. 재미와 정보가 잘 버무려진, 그러면서 생각거리가 있는 교양서를 찾는 이들에게 권한다.(채인택 기자)

동아일보(06. 08. 19) 인간생존의 비결 X파일…‘X염색체의 비밀’

-남자들은 혈우병-근이양증-색맹과 같은 유전병이 많다는데 왜? 여성보다 생존능력이 떨어진다는데 왜? 그것은 X염색체를 하나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염색체는 희한한 구조의 한 쌍이다. Y염색체는 성별을 결정하는 한 가지 사명에 매달리지만 X염색체는 수천 가지 방식으로 우리 삶을 조절한다(*아래는 서간체 서평이다. 요즘은 서평도 좀 튀어야 하니까).

-나의 전남편 ‘Y’에게.

-안녕, 땅딸보. 저예요, ‘X’. 당신의 전 부인(ex-wife).

요즘도 그렇게 숨어서 은둔의 세월을 보내고 있나요. 당신은 내게 진저리를 치겠지만 우리가 3억 년 전 이미 이혼했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공포되기에 이르렀음을 알려 주기 위해 펜을 들었어요. 1890년 독일의 생물학자인 헤르만 헨킹이 나를 최초로 발견했을 때 내 이름을 X로 지어준 것이 내가 당신의 전 부인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서가 아니라는 것은 당신도 잘 알겠죠. 헨킹은 별박이노린재라는 곤충의 정소에서 정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 다른 염색체들은 모두 둘로 분리되는 춤을 추는 동안, 묵묵히 한쪽에 서 있는 나를 보고 남아도는 ‘여분의(extra)’ 염색체라는 의미에서 X라고 이름을 지었잖아요. 무도회장에서 남자들에게 춤 신청도 못 받는 여성을 뜻하는 ‘벽의 꽃(wall-flower)’이라는 모욕적 별명까지 내게 붙은 것을 알고 당신이 폭소를 터뜨렸다지요.

-하지만 그건 내 책임이 아니에요.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생겼다는 성경 말씀이나, 남근이 없는 여자 아이가 좌절감 때문에 남근을 선망하게 된다는 프로이트의 남성 우월적 주장과 맞아떨어져 생긴 오해니까요. 거기에는 당신의 책임도 있잖아요. 1905년 미국의 생물학자 네티 스티븐스가 쌀벌레의 정자에 숨어 있던 당신을 발견한 뒤 당신의 몸에 새겨진 ‘SRY’(태아의 생식샘을 고환으로 전환시키는 유전자)라는 문신이 남녀의 성별을 결정하는 유전자로 밝혀지면서 다소곳하고 수동적인 X염색체, 활발하고 능동적인 Y염색체의 신화가 생겨났으니까요.

-물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책임은, 세포마다 X가 두 개씩 있는 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X와 Y를 짝으로 지닌 남자에게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남아선호 문화를 지닌 국가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하던 여성들을 구제해 주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관계는 기존에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어요. 성과 관련된 일부 유전정보를 제외하면 당신은 손상된 유전자 조각으로 가득한 쓰레기장이고, 나야말로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 정보가 가득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남성들이 혈우병, 근이양증, 색맹과 같은 유전병에 취약하고 여성보다 생존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내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란 것도 이미 알려졌지요. 인간의 유전자 중 가장 덩치가 큰 디스트로핀이라는 슈퍼 유전자를 운반하는 것도 저라는 것이 밝혀졌고요. 반면 당신은 다른 염색체들보다 작고 못생겼을 뿐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도 떨어지는 ‘염색체계의 왕따’라는 점이 들통 났지요. 심지어 두더지 들쥐와 같은 동물들은 아예 당신을 자신의 세포에서 제거해 버렸다는 비참한 사실까지 밝혀졌어요. 그들에게 당신의 존재는 그만큼 부담스러웠던 거지요.

-사람들은 당신의 능력은 성별을 결정짓는 한 가지밖에 없지만 나의 능력은 생존을 결정짓는 수천 가지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문제는 우리의 이런 역할 분담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우리가 실은 오래전에 이혼한 사이라는 비밀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에요. 다른 염색체들처럼 평범한 커플로 시작한 우리가 오래전 파경에 이르렀음이 밝혀진 거죠. 우리는 다른 염색체 커플과 달리 이미 오래전부터 의사소통도 어려운 남남이 됐잖아요.

 

 

 



-몇 년 전 맷 리들리라는 사람은 <게놈-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이란 책을 통해 당신이 나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거나 속임수를 써 당신의 유전정보를 발현시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폭로했지요. 이제 우리 관계가 그 말 많고 멍청한 할리우드까지 퍼졌나 봐요. 슈퍼 여성을 사귀다 배반한 평범한 남자의 처절한 봉변을 그린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My Super Ex-Girlfriend)>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졌다니까요.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내 눈치를 보고 있을 당신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지만 그 알량한 자존심에 큰 상처 입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옛정을 생각해 기원합니다.

-지금도 세속적 평가보다는 진실한 사랑을 믿는 당신의 전 부인 ‘X’로부터.(권재현 기자)

06. 08. 21.

P.S. 이 페이퍼를 포함하여 언론 리뷰를 옮겨온 '프리뷰' 카테고리의 페이퍼들은 일주일 후에 모두 비공개로 전환할 예정이다. 저자권 침해 예방에 동참해 달라는 알라딘측의 권고에 따른 것이며, 그간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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