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출간되 교양과학서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책은 데이비드 베인브리지의 (고즈윈, 2006)이었다. 남성(XY)과 여성(XX) 모두에 들어있는, 그러니까 실상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성염색체가 바로 X인 것이니 남의 관심사로 미뤄둘 수 없는 거 아닌가? 아직 아무런 리뷰도 링크돼 있지 않은 듯하여, 두어 개의 리뷰 기사를 옮겨온다.

한국일보(06. 08. 19) 남과 여, 염색체 하나 다를 뿐인데… X염색체의 비밀

-1890년, 독일의 헤르만 헨킹은 현미경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특이한 것을 발견한다. 별박이노린재라는 곤충의 정소에서 추출한 염색체였다. 정소는 다음 세대를 창조할 정자를 만들기 위해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장소. 세포는 두 번의 연속 과정을 거친 분열을 통해 정자를 만드는데, 이때 정확한 지침대로 움직이고 과정 내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당시 헨킹은 그 과정에 참가하지 않은 채 한쪽에 조용히 비켜서 있는 염색체를 발견한다. 훗날 그가 X염색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그는 이 염색체를 ‘여분의’(extra) 염색체라는 뜻에서 X염색체라 불렀는데 나중에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이것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바탕임이 밝혀졌다. ‘X염색체의 비밀’은 제목대로 여러 유전적 형질을 전달하는 X염색체의 비밀을 규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임상해부학자이자 강사(*한 서평자 왈: "베인브리지는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도킨스, 매트 리들리에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 그는 놀라운 속도로 독자들을 X염색체의 영광으로 초대한다." A급이란 얘기이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부모로부터 X염색체와 Y염색체를 물려받아 XX여성 혹은 XY남성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X염색체가 하나인 남성과 둘 인 여성은 어떤 차이를 보이게 될까. 무엇보다도 남성은 유전적 질병에 잘 걸린다. X염색체는 응고인자 8번 또는 9번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갖고 있는데 남성은 만약 그것이 손상되면, 과다출혈로 죽음에 이르는 혈우병에 걸리게 된다. 힘없이 주저앉는 근이영양증이나 색맹도 마찬가지다. 반면 여성은 X염색체가 둘 이어서 하나만 정상이어도 끔찍한 유전적 질병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은 자가면역성 질환에 훨씬 잘 걸린다. 다발성 경화증은 남성의 두 배, 남창은 열 배나 되는 등 자가면역성 질환 환자의 80%가 여성이다. 그 배경에 두 개의 X염색체가 연관돼 있다. 저자는 이런 과학적 사실을 사회적 가치 부여에 이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남성과 여성은 상반되지도, 대항적이지도 않다. 단지 여러 면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다를 뿐이다.”(박광희 기자)

중앙일보(06. 08. 19) 볼셰비키 혁명 속에도 X염색체가 숨어 있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문명이란 관점에서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다른 종과 별 차이가 없는 하나의 포유동물일 뿐이다. 특히 수정란 상태에서 남녀의 성(性)을 결정하는 아주 성(聖)스러운 과정에서 인간은 다른 포유류와 똑같이 X와 Y의 두 염색체를 이용한다. 즉, X염색체끼리 한 쌍을 이룬 XX의 수정란은 여성이 되고 X염색체와 Y염색체가 쌍을 이룬 XY는 남성이 된다.

-그런데 이질적인 조합인 XY 염색체를 가진 남성은 단 한 종류뿐인 X 염색체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달리 이를 대체하거나 수리할 '부품'이 없어 유전병을 고스란히 앓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XX 염색체를 가진 여성은 또 다른 X염색체가 있어 그런 병을 비켜갈 수 있다. 혈액응고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과다출혈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혈우병이나 색맹 등이 남성에게만 생기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인류사에는 갖은 굴곡이 나타났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자손들이 앓던 혈우병이 러시아.독일.스페인의 왕가로 퍼진 이야기가 좋은 예다. 빅토리아의 딸인 알렉산드리나는 할아버지의 손상된 X 유전자를 물려받아 아들인 러시아 황태자 알렉시스에게 혈우병을 안겨준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비극은 로마노프 황가의 통치 태만과 무기력으로 이어지며 결국 볼셰비키 혁명을 부른다. 스페인 왕가도 혈우병으로 타격을 입어 국가가 내전으로 가는 상황에서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성캐서린 대학의 임상해부학자인 지은이는 X염색체를 주인공으로 과학과 역사, 그리고 남녀의 문제라는 거대한 드라마를 그려 나간다. 헤르만 헨킹이 1890년 X염색체를 발견한 뒤 이를 남아도는 염색체로 보고 여분(extra)을 뜻하는 X라는 이름을 붙였다든가, 태평양의 작은 섬 핀지랩의 주민 대부분이 색맹이 된 까닭,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에 잘 걸리는 이유, 일란성 쌍둥이는 왜 여자가 더 많은지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우리 삶의 비밀을 들여다 본 지은이의 결론은 간단하다. 남녀의 서로 다른 염색체 배열은 다른 생물학적 기능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보다 더 잘 낳고 자신들의 유전적 특질을 계속 물려주기 위해 진화, 발달해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Y염색체는 우리의 성별(性別)을 결정하고 성 정체성을 부여하지만 X염색체는 수천 가지의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조절한다고 한다.

-즉 생물학적으로 남녀의 유전자는 서로 다를 뿐 우열은 없으며, 남녀는 서로 상반되지도 대항적이지도 않은 동반자 관계라는 게 지은이의 강조점이다. 재미와 정보가 잘 버무려진, 그러면서 생각거리가 있는 교양서를 찾는 이들에게 권한다.(채인택 기자)

동아일보(06. 08. 19) 인간생존의 비결 X파일…‘X염색체의 비밀’

-남자들은 혈우병-근이양증-색맹과 같은 유전병이 많다는데 왜? 여성보다 생존능력이 떨어진다는데 왜? 그것은 X염색체를 하나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염색체는 희한한 구조의 한 쌍이다. Y염색체는 성별을 결정하는 한 가지 사명에 매달리지만 X염색체는 수천 가지 방식으로 우리 삶을 조절한다(*아래는 서간체 서평이다. 요즘은 서평도 좀 튀어야 하니까).

-나의 전남편 ‘Y’에게.

-안녕, 땅딸보. 저예요, ‘X’. 당신의 전 부인(ex-wife).

요즘도 그렇게 숨어서 은둔의 세월을 보내고 있나요. 당신은 내게 진저리를 치겠지만 우리가 3억 년 전 이미 이혼했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공포되기에 이르렀음을 알려 주기 위해 펜을 들었어요. 1890년 독일의 생물학자인 헤르만 헨킹이 나를 최초로 발견했을 때 내 이름을 X로 지어준 것이 내가 당신의 전 부인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서가 아니라는 것은 당신도 잘 알겠죠. 헨킹은 별박이노린재라는 곤충의 정소에서 정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 다른 염색체들은 모두 둘로 분리되는 춤을 추는 동안, 묵묵히 한쪽에 서 있는 나를 보고 남아도는 ‘여분의(extra)’ 염색체라는 의미에서 X라고 이름을 지었잖아요. 무도회장에서 남자들에게 춤 신청도 못 받는 여성을 뜻하는 ‘벽의 꽃(wall-flower)’이라는 모욕적 별명까지 내게 붙은 것을 알고 당신이 폭소를 터뜨렸다지요.

-하지만 그건 내 책임이 아니에요.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생겼다는 성경 말씀이나, 남근이 없는 여자 아이가 좌절감 때문에 남근을 선망하게 된다는 프로이트의 남성 우월적 주장과 맞아떨어져 생긴 오해니까요. 거기에는 당신의 책임도 있잖아요. 1905년 미국의 생물학자 네티 스티븐스가 쌀벌레의 정자에 숨어 있던 당신을 발견한 뒤 당신의 몸에 새겨진 ‘SRY’(태아의 생식샘을 고환으로 전환시키는 유전자)라는 문신이 남녀의 성별을 결정하는 유전자로 밝혀지면서 다소곳하고 수동적인 X염색체, 활발하고 능동적인 Y염색체의 신화가 생겨났으니까요.

-물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책임은, 세포마다 X가 두 개씩 있는 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X와 Y를 짝으로 지닌 남자에게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남아선호 문화를 지닌 국가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하던 여성들을 구제해 주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관계는 기존에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어요. 성과 관련된 일부 유전정보를 제외하면 당신은 손상된 유전자 조각으로 가득한 쓰레기장이고, 나야말로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 정보가 가득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남성들이 혈우병, 근이양증, 색맹과 같은 유전병에 취약하고 여성보다 생존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내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란 것도 이미 알려졌지요. 인간의 유전자 중 가장 덩치가 큰 디스트로핀이라는 슈퍼 유전자를 운반하는 것도 저라는 것이 밝혀졌고요. 반면 당신은 다른 염색체들보다 작고 못생겼을 뿐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도 떨어지는 ‘염색체계의 왕따’라는 점이 들통 났지요. 심지어 두더지 들쥐와 같은 동물들은 아예 당신을 자신의 세포에서 제거해 버렸다는 비참한 사실까지 밝혀졌어요. 그들에게 당신의 존재는 그만큼 부담스러웠던 거지요.

-사람들은 당신의 능력은 성별을 결정짓는 한 가지밖에 없지만 나의 능력은 생존을 결정짓는 수천 가지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문제는 우리의 이런 역할 분담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우리가 실은 오래전에 이혼한 사이라는 비밀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에요. 다른 염색체들처럼 평범한 커플로 시작한 우리가 오래전 파경에 이르렀음이 밝혀진 거죠. 우리는 다른 염색체 커플과 달리 이미 오래전부터 의사소통도 어려운 남남이 됐잖아요.

 

 

 



-몇 년 전 맷 리들리라는 사람은 <게놈-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이란 책을 통해 당신이 나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거나 속임수를 써 당신의 유전정보를 발현시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폭로했지요. 이제 우리 관계가 그 말 많고 멍청한 할리우드까지 퍼졌나 봐요. 슈퍼 여성을 사귀다 배반한 평범한 남자의 처절한 봉변을 그린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My Super Ex-Girlfriend)>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졌다니까요.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내 눈치를 보고 있을 당신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지만 그 알량한 자존심에 큰 상처 입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옛정을 생각해 기원합니다.

-지금도 세속적 평가보다는 진실한 사랑을 믿는 당신의 전 부인 ‘X’로부터.(권재현 기자)

06. 08. 21.

P.S. 이 페이퍼를 포함하여 언론 리뷰를 옮겨온 '프리뷰' 카테고리의 페이퍼들은 일주일 후에 모두 비공개로 전환할 예정이다. 저자권 침해 예방에 동참해 달라는 알라딘측의 권고에 따른 것이며, 그간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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