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어 저널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publishingjournal.co.kr/?p=1819). 출판저널의 '서재에서 만남 삶'이란 꼭지에서 이달에 '로쟈의 서재'를 다루었다. 아니 이번엔 '이현우 박사의 서재'이다. 실제 내가 앉아 있는 방의 풍경을 지면에서, 그리고 온라인에서 보는 일이 좀 낯설긴 하다. 취재는 지난달 초순에 이루어졌다. 방은 어지러운 상태가 더 좋다고 하여 전혀 정리하지 않았다. 지금 현재의 모양새도 거의 이런 수준이다(다만 한달새 약간 더 빼곡해졌다). 온라인에는 기사의 일부만 공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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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09년 8월호) 인문학자 ‘로쟈’ 이현우 박사의 서재

소박해 보이는 책장에 수북하게 꽂힌 책들에 둘러싸여서 고상하고 호사가적인 취미를 만끽하는 귀족주의적인 책 숭배자를 만나는 것은 절대정신으로 가득 찬 낭만적 세계를 보는 것만 같다. 러시아문학자로 안주하지 않으며 이미 인문학자로서 경계를 확장한 이현우 박사는 한국 인문학 연구의 토대를 쉼 없이 흔드는 이 가운데 하나이다. 깊게 패인 그윽한 눈동자로 세상을 예리하게 꿰뚫으려는 그에게, 책은 세상을 성찰하는 텍스트로 짜인 거울 같다. 책들의 보고 같은 그의 서재를 찾아서 ‘로쟈’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를 육성으로 경청하였다.  



가족 중 유일한 다독가  
적잖은 책 신봉자들이 인문학적 교양이 출중한 독서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마련한 서재에서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성장한 현실이 잦기에, 기자에게 이현우 씨의 집안이 선입견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지레 짐작했던 고정관념은 가볍게 빗나갔다.

“어릴 적 책이 별로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그다지 책을 즐기지 않으셨어요. 그나마 아버지께서 세계문학전집이나 방정환 선생님의 동화책을 사주신 것이 책과 관련된 으뜸 되는 추억입니다.”

그는“책을 탐독하는 유전자”를 타고난 것처럼 줄기차게 책을 읽으며 자랐다고 회고했다. 줄곧 책과 동무한 삶은 다른 세계를 사는 생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다. 그에게는‘문청’기질이 다분한 골치 아픈 룸펜보다,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이 더욱 흥미롭게 와 닿았다. 자신과 유사한 분신과 결혼하지 않고 이질적인 세계에 두 발을 깊게 담근 이와 결혼한 것도, 책이라는 성에 칩거한 이들을 일면 경계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책을 유난스레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할 무렵 석·박사논문에 치이면서 책을 다소 멀리하는 게 설핏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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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 없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긴장관계가 글쓰기의 근간
하지만 그는 책과 오래도록 연애하며 어떻게 책을 접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책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질 때는“책을 섭렵한 이후 달성하는 자유로움”이라고 통찰한 것이다. 오늘날의 그를 키운 것은 학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릴케와 장자 등의 저작들의 영향이 지대하다. 특히 자유롭게 세상을 보기위해서 필연적으로 대붕의 관점에 서야 한다는 깨달음을 안겨준 장자를 인상 깊게 읽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소요유(逍遙遊)의 드넓은 경지에 근접한 대가는 현실문제에 둔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설핏 예술가적 영혼을 지닌 그가 아직껏 자신감 있게 살 수있었던 배경은 좀처럼 입신출세를 강요하지 않은 부모님 덕분이라고 토로했다. 

“저공비행의 이미지는 현실에서 떠있다는 점과 동시에, 언제라도 추락할 위험이 상존한다는 점입니다. 날아다니는 대가로 언젠가 가차 없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긴장관계가 어쩌면 제 글쓰기의 근간일 지도 모릅니다.”  

그가 몇 년째 정성껏 열정을 다해 꾸려오는 블로그 역시 생계문제나 가족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기에 시종일관 글쓰기와 글읽기를 부단한 긴장 속에서 이어오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 나온 책 덕분에 책으로 넘쳐나는 집을 타박했던 잔소리가 다소 잠잠해졌다고 이야기했다. 경제적인 효용성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으며 그의 논문 집필 시간을 깎아먹기도 하는 블로그를 계속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주할 때 블로그는 성가신 짐 같죠. 하지만 읽은 책들을 블로그에 게재하기 위해 글을 쓰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좀 더 잘 읽게 되기에 도움이 됩니다. 혹자는 저를 스페셜리스트이기보다 제네럴리스트라고 부르곤 하는데, 제네럴리스트를 거쳐서 언젠가 스페셜리스트로 도달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려면 어느 한 분야에만 관심이 국한되는 것은 곤란합니다. 자못 인문학자라면 여러 분야에 관해 어느 정도 통달해야 하지 않을까요? 협소하고 지나치게 학구적이며 규격화된 이해를 거부하면서 말이죠.”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 '로쟈' 
이러한 생각을 견지한 그는 올해 5월에 발표된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문학전공자의 제한된 시각만을 보여주는 것을 탈피해서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와 철학, 러시아 지역학, 여성문제 등에 관해 수많은 글들을 명징하게 담아냈다.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자는 것이 단행본을 기획한 의도였습니다. 여러 관심분야를 한 권의 책에 담는 것이 목표였고, 후속적으로 다양한 꼭지들을 새끼 쳐서 추가적인 단행본으로 내려는 계획을 품고 있습니다.”

그의 서재에는 그의 광활한 관심분야와 사유의 깊이를 내보이듯 온갖 분야의 책들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문학자이자 인문학자로 살아가는 그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나타내듯 대부분의 책들은 문학과 철학 등 인문철학에 집중돼 있었다. 그의 필명인 ‘로쟈’ 역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Rodion Romanovich Raskolnikov)의 애칭 로쟈(Rodja)에서 따온 것이다.  

문학 극대론자에 대한 동경 
자신의 전공분야에 안착해있기보다 인문학자로의 길을 선택했지만, 러시아문학이 국내에서 열띠게 각광받지 않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것 같았다.  

“동시대 러시아 문학이 국내에 잘 소개되어 있지 않아요. 일단, 러시아문학 수요층이 적다 보니 출판사에서 좀처럼 엄두를 내기 쉽지 않죠. 작금에 러시아문학이 드물게 번역되는 경향은 러시아문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독자, 시장의 문제가 모조리 섞여 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문학의 경우 번역자들이 다른 주요언어들에 비해 부족한 점도 이러한 현상에 일조합니다. 비단 러시아문학뿐만 아니라 러시아 영화도 아주 가끔 국내에 개봉됩니다. 현실적인 제반문제로 인해 러시아문학 전공자로 살아가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늘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문학에 대한 서평의뢰보다 인문학 서적에 관한 서평 의뢰가 주를 이룬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 실려 있는 러시아문학 및 문화에 대한 빼어난 글들은, 그가 앞으로 러시아문학 연구풍토에 굳건하게 이바지할 밑바탕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자연스레 문학 극대론자에 관한 자신의 꿈을 소개하였다.  

“문학을 이해하려면 문학이 전부가 되어야 하고, 문학이 말하려는 총량을 오롯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텍스트에 대한 접촉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려면 일단 텍스트를 깊이 있게 향유하고 충분히 음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나긴 역사에 비해 한없이 짧기만 한 인간의 유한한 삶을 그나마 초월하는 방법은, 책을 통해서라도 여러 시대와 만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종종 저더러 ‘책상물림’이나 ‘책벌레’라고 부르곤 하는데, 저 같은 사람들에 비해 철저히 책 밖에 사는 사람들이 더욱 현실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어쩌면 주마간산 같은 구경꾼의 엿봄 내지 얕은 앎일 수도 있죠. 깊이 천착된 앎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책에서 지식의 간극을 메우며 인간의 한계성을 어느 정도 극복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책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더욱 풍족하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경유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여러 곳에 분산된 서재 
“책이 한곳에 없다 보니 연구할 때 사소한 불편이 생겨서 언젠가 여건이 된다면 책들은 한곳에 모을 작업실을 꾸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봅니다.”  

그의 수많은 책들은 한곳에 모아지지 못한 채 세 곳에 분산돼 있다. 자신의 아파트에 모조리 보관할 수 없어서, 지인이 마련해준 서재에 상당수의 책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나머지 책들은 서울대학교 연구실에 있다. 책수집가가 되기를 추호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미 어느 누구와도 필적할 만큼 수많은 책들을 소장한 그가 책을 고르는 기준을 무엇일까.  

“일단 값비싼 고서들이나 희귀본을 사서 모으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이미 재정적으로 거덜이 났겠죠. 또한, 책을 무조건 사서 읽습니다. 책을 살 때는 관심 분야의 책인지 따져봅니다. 또한,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관심사와 대중의 관심사가 맞아떨어지는 책을 주로 고르며, 특히 여러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는 책들을 선택해서 서평을 쓰곤 합니다.”

세 곳에 분산된 책들, 한우충동(汗牛充棟)이라는 성어가 곧바로 떠오를 만큼 많은 책들을 제대로 꽂을 수조차 없어서 신발장뿐만 아니라 침대 아래나 베란다에까지 보관한 그는 책이 가끔 환멸을 머금은 짐짝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언젠가 지인에게 향수를 선물 받았는데, 지인에게 양해를 구한 후 책으로 바꾼 적이 있습니다. 책을 아무리 많이 산다고 하더라도 갖추지 못하는 책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일단 장만한 다음에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정독합니다.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것은 아니고, 종종 지인에게 주기도 하고 가끔 아예 버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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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가가 책을 고르는 기준
서울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서 진행하는 대학 강의뿐만 아니라 성인교육 강좌까지 맡고 있는 그는 분초를 다툴 만큼 분주하게 살아간다. 강의에서부터 서평 작성, 번역 등을 모조리 병행하는 그가 블로그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자못 신기할 정도이다. 책이 흔해진 시대에 책을 소개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그는 자신이 대학시절을 보냈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에 비해 요즘에는 여럿이 모여서 학문적 공동체로 세미나를 하는 문화가 괄목상대하게 준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호주머니 사정이 얇아져서 책이 많아도 온전히 사보지 못하는 요즘 대학생들의 고충은, 과거 책값은 싸도 출판시장이 빈약해서 제대로 독서할 수 없었던 당시의 젊은이들과 궁극적인 고충은 통하는 것 같아요.”

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의 바람은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지성 수준이 향상되기를 바랍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블로거들이 책을 정독한 후 서평을 쓰는 문화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책이 좋아서 책에서 사는 이현우 씨는 세상과 고립된 채 자신만의 성에 갇혀 있지 않고 끊임없이 세상에 말을 걸며 소통하는 학자이다. 그가 몇 년째 운영하는 블로그는 독서대중의 저변 확대 차원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우며, 책을 읽는 의미 있는 독법을 제시하면서 지식의 확산과 토론에 이바지하고 있다. 언젠가 이산된 그의 책들이 한곳에 모여서 그의 연구 및 글쓰기가 더욱 집약되기를 바란다. 청빈한 삶 속에서 열정적으로 책을 후벼 파는 그의 ‘보수적인’ 시간표에서 생산된 결과물들이, 우리들에게 메아리칠 담론이 흥미진진할 것을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쳤다.(박정준 객원기자)

09. 08. 05. 

P.S. 잡지는 어제 받아서 읽어봤는데, "한국 인문학 연구의 토대를 쉼 없이 흔드는 이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돼 있어서 좀 놀랐다(나는 '곁다리'라고 했건만!). 의례적인 과장인가? 인터뷰가 대개 그렇지만 나의 '육성'은 기자의 기억이 재구성해놓은 것이다. 가령 '으뜸 되는' '유난스레' '설핏' 같은 표현은 나의 것이 아니어서 눈길이 간다. 내가 그런 인상을 주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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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8-0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비교적 정돈이 잘 됐다는 느낌도 드네요. 설마 저것이 다는 아니겠죠?ㅎ
그런데 가끔 궁금할 때가 있어요. 저렇게 책이 많으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ㅋ

로쟈 2009-08-05 13:47   좋아요 0 | URL
기사에 나오는데, 몇군데 분산돼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건 집에 있는 책 가운데 1/3쯤인 듯해요. 뭐가 있는지는 알지만, 못찾을 때가 있지요.--;

목동 2009-08-05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책을 보는 눈빛이 책을 뚫고 있군요. 굉장히 호기심에 찬 눈빛입니다. 근래에 저런 눈빛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정신이 밧딱 듭니다.
음~ 잘 짜여진 원목 책장과 오디오 등이 있는 서재보다는 동네 청년 소설가의 서재같습니다.


로쟈 2009-08-05 14:20   좋아요 0 | URL
잘 갖춰진 서재는 모처에 따로 있습니다.^^

드팀전 2009-08-05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사진빨이 좋아지고 계십니다.

로쟈 2009-08-05 19:11   좋아요 0 | URL
거실 식탁에 앉아 찍은 건데, 사진'작가'의 작품입니다...

[해이] 2009-08-05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집이 무너질 수도 있어요. 아파트면 조금 덜하겠지만 단독주택이나 이러면 조심해야 해요ㅋㅋ

로쟈 2009-08-05 19:11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자주 듣는 얘깁니다.^^;

가시장미 2009-08-05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사진빨이 좋아지고 계십니다.2

그런 인상 충분히 주시는데요? :)
저도 결혼하면서 혼수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게 책장인데, 많지도 않은 책인데, 점점 꽂을 곳이 없어지네요. 저도 쌓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ㅋㅋ

로쟈 2009-08-05 19:12   좋아요 0 | URL
쌓은 다음이 문젭니다.^^;

2009-08-05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5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5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5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6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6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7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7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7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7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r 2009-08-08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너무 깔끔해서 놀랐습니다^^;

로쟈 2009-08-08 10:04   좋아요 0 | URL
어떤 기대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번주 주간한국의 커버스토리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0908/wk20090803152714105430.htm). '독서의 달인'이 테마인데, 얼떨결에 그 '3인의 달인'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었다. 대단한 장서가에다 독서가인 장석주 평론가와 동급일 수는 없고 독서의 달인 '후보'(칸지다트) 정도는 가능하겠다. 그래도 관련기사이니만큼 스크랩하여 창고에 넣어둔다.   



주간한국(09. 08. 03) 그들의 독서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우리 시대 독서의 달인 3인을 소개한다. 시인 겸 문학평론가 장석주 씨는 2만 권의 장서가로도 알려져 있다. 한 해 평균 1~2권의 책을 꾸준히 내고 있는 다작의 작가이기도 하다. ‘로쟈’란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이현우 씨는 19세기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대학 강사다. 인문학, 사회과학, 사상서 등 깊이 있는 책에 관한 서평으로 이름을 알렸다. CBS정혜윤 라디오PD는 인터넷 서점 <예스 24>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책, 여행 관련 에세이를 연재하며 일반에 알려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연히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석주 평론가의 경우 새벽 4시에 일어나 원고를 쓰고 책을 읽는다. 이현우 씨는 한번에 10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직업 상 따로 독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정혜윤 PD는 방송 중간에 5분씩 짬짬이 책을 읽는다. 이현우, 정혜윤 씨도 각각 1만 권과 5000권의 책을 갖고 있다.

문학평론가 장석주
독서는 사유하는 힘


“4시에 일어나 원고를 써요. 12시까지. 오후에는 책을 읽고 저녁에는 방송국에서 녹음하고. 그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 쓰고 책 읽을 수가 없어요.”

장석주 평론가의 일상은 마치 수도승 같다. 반복적으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 평론가, 시인, 라디오 진행자 (국악방송 <행복한 문학>)로 활동하는 그는 한 주에 평균 2박스 분량의 책을 사들인다. 일 년간 평균 1200~1500권을 산다.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쓰기도 하는데, 문학평론집 <상처입은 용들의 노래>와 서평 에세이 <취서만필>이 올해 상반기에 나왔고, 한국문학 100년 역사를 정리한 <나는 문학이다>가 8월 중 나올 예정이다. 9월에는 또 두 권의 책이 기다리고 있다. 앞의 3권 모두 책에 관한 비평, 에세이집이다. 그에게 독서는 생활이자 밥줄인 셈이다.

- 장서 2만권이면 얼핏 감이 오지 않는다.

“2만 권의 책을 읽은 건 아니고, 갖고 있다는 뜻이다. 경기도 안산에 집 두 채가 있는데, 한 채는 가정집, 한 채는 책을 모아두는 곳이다. 홍대 근처에 작업실을 만든 지 3년이 됐는데 여기도 4000권 가량이 있다. 일본의 한 작가는 하루에 7권씩 읽는다고 한다.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읽지는 못한다.”

- 속독을 하나? 한 권 읽는 데 보통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보통 사람보다 빨리 읽는 편이지만, 속독이라고 볼 수는 없다. 속독을 배운 적도 없고. 다만 책을 읽을 때 집중력이 좋은 편이다. 보통 독자들이 책을 읽을 때 집중하는 시간은 10분 내외로 짧다. 그래서 앞의 내용을 자꾸 들춰보는 게 반복된다. 나는 3시간 정도는 집중할 수 있다. 책마다 다르지만, 인문학 서적의 경우 그 정도면 한 권 읽는다. 소설을 읽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 독서 달인들이 추천하는 책은 탁월하다. 책 고르는 기준은 뭔가?

“좋아하는 책 범위는 굉장히 다양하다. 미시사, 수학, 양자 물리학, 뇌 과학, 진화학. 기본적으로 미술, 건축과 같은 예술서도 좋아한다. 책 고를 때 기준은 사유를 자극할 수 있는 책이다. 내가 책을 읽는 목적은 생각하기 위함이다.”  



- 책을 읽을 때 특이한 버릇이 있나?

책에 밑줄을 긋거나 표시를 하지 않는다. 메모도 안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책과 더불어 내가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독서를 하는 동안 뇌를 입체화하는데, 책의 키워드를 입체 공간에 넣고 키워드들이 연결되는 방법과 전개과정을 하나의 마인드맵으로 만든다.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책을 따라 간다. 많은 책을 읽으면서 터득한 노하우다.”

- 독서의 달인이 되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독서는 무조건 시간을 내야 한다. 영화나 인터넷, 다른 취미 생활 중 무언가를 빼고 책 읽을 시간을 자기에게 주어야 한다. 그리고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 책을 사면 언젠가는 읽는다. 책에 관한 책, 일간지 주말 북 섹션, 서평 기사 등을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보면 책 고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

'로쟈' 이현우
노예처럼 부려먹어라


이현우 씨는 깊이 있는 인문학 서평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은 이미 젊은 지식인 사회에서 유명한 서평 블로그가 됐다. 서울대 노어노문과 강사인 그는 전공인 러시아문학 이외에도 들뢰즈, 지젝, 랑시에르 등 해외 지식인들의 국내 번역본에 관해 가장 먼저 서평을 올린다.  



올해 5월 지난 10년간의 서평을 모은 책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내기도 했다(*서평이라기보다는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서평할 책을 고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책들은 국내 지식인 사회에서 가장 ‘핫’한 책이기도 하다. 웬만한 출판, 문학 기자보다 이들 책의 출간 소식을 먼저 알고 있을 정도다. 그는 “대학과 소수 고급독자-일반 대중독자로 나뉜 국내 인문학 시장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당신의 경우 인문, 사회과학, 사상서를 특히 많이 읽는다. 내용이나 두께가 만만치 않은 책들인데, 전공을 공부하며 어떻게 이런 책들을 가장 빨리, 많이 읽어내나?

문학 공부는 말 그대로 인간에 대한 공부라서 굉장히 폭 넓다. 인문학, 사상서를 읽는 게 외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책 많이 읽는 사람은 정말 많다. 내가 아는 어떤 저자도 나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 (기자가 가져갔던 이주의 서평 책<네이션과 미학>을 가리키며) 고진도 나보다 훨씬 많이 읽지 않나.”

- 책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책 읽기는 즐거운 도망이고 즐거운 저항이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이 앎에 대한 저항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모르면 편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럼에도 감히 알려고 하라’는 거다. 감춰진 진실을 알면 불행해지고 책임을 떠안게 되는 건데, 그걸 즐겁게 감수하는 것. 그것이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 

- 로쟈의 서평은 자세하면서도 길다. 마치 한 권의 책을 다시 읽는 느낌이다. 자기만의 독서법이 있는가?

“서평과 학교 강의 등을 병행하다 보니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게 된다. 최근에는 10권 정도를 함께 읽는데 경우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는 발췌독을 하기도 한다. 책을 읽고 서평을 할 때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내용을 정리한다. 복사할 때 밑줄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번역서는 원서와 함께 본다. 의역(*오역)이 아니라도 부주의하게 쓴 부분이 있다. 사상서는 해당 저자의 책을 한 권만 제대로 읽으면 다음 책은 다 읽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젝의 책은 처음 한 권을 소화하면, 다음 책은 어떤 철학자의 책보다 쉽다. 선입견을 버리고 읽었으면 한다.”

- 독서 달인 비법에 대해 말해 달라

많이 읽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 초등학생의 경우 많이 읽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어느 정도 독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읽는 것을 어느 정도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책을 갈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선까지 저자를 이해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겠지만, 이후에는 자기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 이용해야 한다. 책을 노예처럼 부려먹어야 한다.”

정혜윤 PD
책은 독자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CBS 정혜윤 PD는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행복한 책 읽기>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한 라디오 프로듀서다. 인터넷 서점 <예스 24>에 서평을 올리며 이름을 알렸고 서평책 <침대와 책>이 인기를 모으며, 인터뷰와 책 소개를 함께 엮은 에세이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펴냈다.

그는 인터뷰 중 헤르만 헤세의 저서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움베르토 에코의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등의 일부분을 자세하게 말해주었는데, 작가의 문체와 묘사를 거의 다 기억할 만큼 꼼꼼히 읽는 것이 특징이다. 그녀는 말했다. “한 시간에 걸쳐서 줄거리를 말해드릴 수도 있어요.”

현재 영화음악과 재즈, 두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여행에 관한 에세이를, <예스 24>에 고전에 관한 서평을 연재 중이다.

- <예스 24>에 서평을 연재하면서 이름을 알렸는데, 연재 계기가 있었나?

“서평을 올리면 원고료 대신 책을 줬다. 책을 많이 받고 싶어 원래 2주일에 한 번 원고를 주는데 내가 일주일에 한 편씩 보내겠다고 말했다.” 



-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보면,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공지영 작가가 <즐거운 나의 집>에서 패러디한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문장 하나까지 기억하는 게 놀라웠는데, 이렇게 자세하게 읽을 수 있는 비결이 뭔가?

작가의 저서는 자기복제 같은 면이 있다. 한 작가의 다양한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 성향, 문체 특징이 있는데 어느 순간 독자인 나와 맞는 순간이 있다.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과정이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책을 발견해도 세상에 읽을 책은 너무 많고, 그래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다시 못 읽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캐릭터와 현실의 사람들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마치 ‘다시 못 볼 친구’처럼 본다. 내가 책을 특별히 면밀하게 기억한다면 아마도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 책은 얼마나 많이, 자주 읽나?

“생각보다 많이 읽지는 않는다. 요즘에는 고전에 관한 원고를 연재 중이라 신간은 더더욱 못 읽는다. 일주일에 5권 정도 읽는 것 같다. 방송 중간에 5~10분씩 시간을 낸다. 개인적으로 엄지와 검지 사이 손 부분을 몸에서 제일 좋아한다. 이 부분에 무엇을 움켜쥐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 간은 책이었다.”

- 책 고를 때 기준은? 안 읽는 책도 있나?

“싫어하는 책은 실용서, 자기계발서다. 자신의 계발은 자신에게 맡겨야 한다. 책을 고를 때는 보통 작가를 많이 본다. <연인>을 쓴 마르그리트 뒤라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아고타 크리스토프, 밀란 쿤데라도 좋아한다.

- 책 읽을 때 버릇이 있나?

“침대에서 온 몸을 비틀면서 읽는 걸 좋아한다. 따로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지는 않는다. 라디오 PD를 오래 하면서 생긴 습관 중 하나가 하나의 장면이나 말을 그대로 기억하는 거다. 책의 한 페이지가 사진처럼 찍혀 머리에 남는다.” 



- 당신에게 책은 뭔가?

작가 보르헤스는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다.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무한하다는 말이다. 한 권의 책의 운명은 쓰인 시간에 결판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어떤 의미 부여를 기다리는 형식이라고 했다. 나는 이것이 책과 인간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의미 부여를 기다리고 있는 존재다.”(이윤주 기자) 

09.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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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8-0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면 읽는다"는 장석주 선생님 말에 공감합니다^^ 이책을 언제 읽나 하다가도 언젠간 읽겠지 하는 생각에 책을 사게 됩니다^^ 소설이 비교적 읽기 쉽고 인문서가 읽기 어렵다는게 상식인데 소설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말씀이 재밌네요^^ 장선생에게 소설은 '전공서적'이고 인문서는 '참고서적'이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로쟈 2009-08-04 23:04   좋아요 0 | URL
인문서는 발췌독도 가능하니까요...

2009-08-04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4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종이한장 2009-08-04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확실히 책을 사 놓으면 빌려 읽을 때 보다는 읽을 확률이 확실히 높아요. 하지만, 저 같은 보통사람(?)은 사 놓고도 안 읽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이면지로도 못쓸 종이뭉치를 몇 만원을 주고 사놨구나 생각하면 오기로라도 읽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책은 어떤 사람에게는 폐품용지가 되기도 하고, 보르헤스의 말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무한한 가치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멋진 말이네요.

로쟈 2009-08-04 23:05   좋아요 0 | URL
저도 사놓고 안 읽은/못 읽은 책 많습니다.^^;

카스피 2009-08-0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세분모두 대단하시네요^^

로쟈 2009-08-04 23:06   좋아요 0 | URL
젊잖게 미친 경우들이죠.^^

2009-08-04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4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동 2009-08-04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인의 일상은 단순하며 일정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꼼꼼이 읽어보고 배워야 겠습니다. 좋네요.

로쟈 2009-08-04 23:07   좋아요 0 | URL
옆에선 보기엔 재미없는 일상이죠.^^

우동 2009-08-1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눈팅만 하다가 궁금한 것이 생겨 이렇게 글을 남겨 봅니다.
어떻게 해야 책을 노예처럼 부려 먹을 수 있을까요??

로쟈 2009-08-11 23:01   좋아요 0 | URL
책에서 많은 걸 얻어내거나 필요한 걸 얻어내는 걸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게 책을 잘 활용하는 일일 테니까요...

우동 2009-08-1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쉬운데요?! 실천해봐야겠어요 ^^
 
헤겔-라캉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

며칠전부터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을 다시 손에 들고 주로 후반부를 읽었다. 필요 때문이기도 하고 관심 때문이기도 한데, 사실 두께가 두께인 만큼 단숨에 일독하긴 어려운 책이어서 이렇듯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읽어두는 것. 단, 원서와 같이 읽기 때문에 진도가 빨리 나가진 않는다. 그럼에도 지젝의 독자라면 '지젝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한 이 책을 여러 번 숙독해봄 직하다(일독도 어렵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약간의 교정도 필요하다. 더없이 요긴한 번역본이긴 하나 으레 그렇듯이 분량이 분량인 만큼 실수와 착오도 드물지 않다. 물론 대부분은 사소한 것이나 간혹 문제가 되는 오역도 있다. 그런 걸 고쳐가면서 읽으면 된다(조금 난해할 듯싶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 책의 가치는 폄하될 수 없다. 사실 지젝보다 난해한 책들도 부지기수다).    

가령, "여기서 우리가 제안해야 하는 것은 헤겔적인 '무한판단'으로서 타자성에 대한 적나라한('비승화된') 미움만을 전시하는 폭력적 직접성이 '쓸모없는' 그리고 '과잉적' 분출의 사변적 정체성을 사회에 대한 보편적 반성 과정과 함께 주장해야 한다. 아마도 이 우연일치에 관한 궁극적인 실례는 정신분석적 해석의 운명일 것이다."(590쪽)는 '제안'을 보자.  

일단 이 책에서 '정체성'이란 단어가 나오면 한번쯤 주의해야 한다. 이 'identity'란 단어가 '정체성'이란 뜻보다는 보통 '동일성'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speculative identity'라고 하면 거의 무조건 '사변적 동일성'이다('사변적 정체성'이란 말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동일성'이라고 하면, 보통 '무엇과 무엇의 동일성'이란 구문으로 쓴다. 이 문장도 마찬가지다. 원문은 이렇다.   

"What we should propose here is the Hegelian 'infinite judgment' assertimg the speculative identity of these 'useless' and 'excessive' outbursts of violent immediacy, which display nothing but a pure and naked ('unsublimated') hatred of the Otherness, with the global reflexivization of society; perhaps the ultimate example of this coincidence is the fate of psychoanalytic interpretation."(300쪽) 

핵심구문은 'the speculative identity of A with B'(A와 B의 사변적 동일성)이다. 다만 A에 해당하는 것이 관계사절까지 거느리고 있어서 다소 길 따름. 국역본은 이를 간과해서 "사변적 정체성을 사회에 대한 보편적 반성 과정과 함께 주장해야" 한다는 식으로 엉뚱하게 옮겼다. 'global reflexivization of society'도 '사회에 대한 보편적 반성 과정'이 아니라 '사회의 지구적 재귀화' 정도다('재귀화'는 울리히 벡 등의 성찰적/재귀적 근대론자들이 쓰는 용어다).    

유사한 사례를 더 들자면, "지속되는 '테러와의 전쟁' 속에 있는 대립쌍들의 이러한 '사변적인 정체성'은 우리로 하여금 일련의 중요한 정치이론적 결과들을 도출하도록 강요하는데..."(734쪽)에서도 "대립쌍들의 이러한 '사변적인 정체성'(This 'speculative identity of opposites)"은 마찬가지로 "대립쌍들의 이러한 사변적 동일성"이란 뜻이다. 여하튼 사단은 '동일성' '정체성' 등을 모두 카바하는 'identity'의 오지랖이 우리말보다 넓다는 데 있다('진리'와 '진실'을 다 카바하는 'truth'처럼).

한두 가지만 더 짚어본다. "여기서 첫번째 교훈은 지배 이데올로기('근본주의 대 자유주의')가 부과하는 선택이 실제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항상 세번째 가능성을 찾아야만 한다. 두번째 교훈은 근대성 또는 반성적인 '위험사회' 이론의 주제 중 하나가 오늘날 우리 모두가 너무나 많은 선택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682쪽)  

이 대목은 번역만 가지고는 오역을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원문과 대조하면 너무도 단순한 착오가 포함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The first lesson here here is that choice imposed by ruling ideology ('fundamentalism versus liberalism') is not a real one: we always have to look for a tertium datur. One of the topoi of the theories of second modernity or reflexive 'risk society' is that today, we are all exposed to too many choices."(348쪽) 'second modernity'(이차적 근대)가 '두번째 교훈'으로 잘못 옮겨진 것. '반성적인'이라고 옮겨진 'reflexive'도 보통은 '성찰적' 혹은 '재귀적'이라고 옮겨지는 듯하다.   

그리고 고대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좌표에 관한 얘기. "고대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좌표는 - 모택동에 의해 복권된 기괴한 세번째, '법가'의 입장, 평등주의적인 혁명적 공포의 지지자와 함께 - (전통적인 관습, 권위 그리고 교육에 의존하는) 유교와 (자발적인 자기-계몽을 추구하는) 도교 사이의 대립에 의해 지배되었다(우리가 느끼기에 오늘날의 이데올로기적 지도는 신보수주의 근본주의적 민중주의와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결정된다). 유교와 도교는 서로에게 기생하며 둘 모두 체계에 대한 모든 대안적 선택들을 가로막는다."(683쪽)  

이 부분도 번역만 가지고는 오역을 식별하기 어렵다. 원문은 이렇다. "The ideological constellation in ancient China was dominated by the opposition between Confucianism (reliance on traditionaal customs, authority, and education) and Taoism (spontaneous self-enlightenment) - with the uncanny third position of 'legalists' rehabilitated by Mao Zedong, partisans of egalitarian revolutionary terror. In our perception, today's  ideological constellation is determined by the opposition between necconserverative fundamentalist populism and liberal multiculturalism - both parasitizing on each other, both precluding any alternative to the system as such."(349쪽) 

특이한 경우인데, 역자는 하이픈의 범위를 착각하여 두번째 문장을 엉뚱하게도 "(우리가 느끼기에 오늘날의 이데올로기적 지도는 신보수주의 근본주의적 민중주의와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결정된다)"고 괄호안에 넣어버렸다. 그래서 'both'가 가리키는 것이 '근본주의적 민중주의와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유교와 도교'가 돼버렸다. '둘다'라고 했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텐데, '유교와 도교는'이라고 해놓았으니 명백히 오역이다.  

첫 문장은 고대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배치는 유교와 도가였고, 법가가 '제3의 입장이었는바, 이 법가는 마오쩌둥과 혁명적 테러를 주도한 평등주의 빨치산(파르티잔)들에 의해 복원되었다는 게 요지. '지지자'이라고 옮긴 '파르티잔'은 짐작에 문화혁명시 '홍위병'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다.       

오래 붙들고 있을 시간이 없어서, 사소한 거지만 지젝의 번역서들에서 종종 반복되는 오역을 지적하고 마무리한다. '오역'이라고 하면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개인적으론 '오역이라고 할 만한' 사항이다. 바로 'arguably'를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이라고 옮기는 것.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슈만의 피아노 대작인 '유모레스크'는 그의 노래들로부터 목소리가 점차 사라지는 배경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715쪽)에서 첫 부분은, "'Humoresque,' arguably Schuman's piano masterpiece"를 옮긴 것이다. 'arguably'는 '논쟁할 수 있는'이란 뜻도 되지만, 보통은 '주장할 수 있는' 쪽이다. 여기서는 "'유모레스크'가 슈만의 피아노 걸작이냐 아니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런 식이 아니라 "슈만의 피아노 걸작이라고 할 만한 '유모레스크'는", 이런 식으로 나가야 한다. 책에 종종 등장하는 'arguably'는 모두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이란 식으로 옮겨졌는데, 이야말로 'arguable'하며 나로선 불편하다(다른 책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덧붙여 말하자면, 문두 부사로 쓰이는 'incidentally'를 '우연히도'라고 옮기는 것도 나를 불편하게 한다. '말이 난 김에 말하자면' '덧붙여 말하자면'이 문맥에 적합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령 아부 그라이브의 이라크 포로 학대가 미국식 하위문화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하는 이런 대목.  

"군부대에서든 고등학교 교정에서든, 신고식이 과도하게 진행되어 병사들 또는 학생들이 인내할 만한 것으로 간주되는 수준 이상으로 다치게 되거나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거나 (동료들 앞에서 맥주병을 항문에 삽입하는 것과 같은)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수행하게 되거나 바늘로 꿰어지는 것 같은 추문이 발생할 때 우리는 미국 신문에서 정기적인 간격으로 유사한 사진들을 보지 않는가(그리고 우연히도 부시 자신이 '해골과 뼈'라는 예일 대학의 가장 배타적인 비밀단체의 성원이었으므로, 입회하기 위하여 그가 어떤 의식을 감행해야 했는가를 알면 흥미로울 듯하다)?"(720쪽)  

여기서 'incidentally'를 '우연히도'라고 옮기는 건 뜬금없다. 이 경우에도 '말이 난 김에 말하자면' 혹은 '덧붙여 말하자면'이라고 해야 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자주 등장하여 독서를 불편하게 하기에 맘먹고 털어놓는다... 

09.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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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8-0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급 서적일 수록 비평이 필요하군요.
비전문가인 일반 독자의 경우 바른 것과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구별 능력이
부족합니다. 대충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책에 대한 맹신으로)

원문-> 번역(한글,한자) -> 독자의 이해의 경우,
(심심하면 한자사전을 자주 본다는 김훈님의 말이 생각남)
한 독자가 원문에 대한 직독을 한다 하더라도, 그 또한 번역에 해당됨.

외국서적에 대한 번역이 매우 중요함을 새삼 느낍니다. 특히 고급 텍스트를
번역하시는 분들께 심심한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로쟈님 덕분에 '비평과 번역'의 중요성을 느낍니다.
어쩜 '곁다리'라는 말은 인문학의 대중적인 친근미를 더 할 수 있는
적당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비전공자 입장에서)

제 맘속에 인문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도사리고 있는 듯합니다.
철학,문학,미술 등의 용어에 대한 공부 부족으로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구요.(사변적 동일성,,,등) 영어 단어는 알지만
문장으로 엮어지면 몰라버리는 경우와 같겠지만요

로쟈 님이 뒷 따르며 흘려버린 것을 운좋게 줍는다는 의미에 동감입니다.
한 책을 놓고, 독자의 의견과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매번 느낍니다.
비평이나 오류에 대한 수정은 독자에게 좋은 정보라 생각합니다.

조선 말, 일제, 6.25 등, 역사의 질곡을 거치면서 우리가 놓쳐버린 것이
많은 것같습니다. 어차피 인간 사회가 파란만장 하지만요.
분야별 더 좋은 번역서들이 많이 출판되도록 민.관으로부터 지원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09-08-04 13:29   좋아요 0 | URL
네, 지원도 필요하고, 더 중요하게는 독자층이 늘어나야겠습니다...

목동 2009-08-05 07:23   좋아요 0 | URL
어제 저녁에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서재5(내 울부짖은들 누가 들어주랴)'를 읽고서야 '~들어주랴'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번역비평은 원한의 지평을 넘어서야 한다.'외 몇 문장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특히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읽기(~서재,391~405쪽)를 읽을 때는, 음~ 해체된 백제의 미륵사지서탑(국보11호)을 재건할때 느낄 만한 떨림과 호기심을 갖게 했습니다.(수사반장처럼)

저는 '책세상'의 '릴케 전집'를 가지고 있는데, 꺼내 '비가'를 찾아 읽으려 했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제목이 다른지?)

자연과학에서 원문 번역과 인문학에서 번역이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제(자연) 분야에 번역서들을 가끔 볼 때마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하곤 했는데. 풍부한 언어적 상상력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또한, 번역서 책값이 대체적으로 비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해가
되더군요.(제2의 창작)

로쟈 2009-08-05 21:40   좋아요 0 | URL
책세상판도 <두이노의 비가 외>라고 돼 있을 듯한데요...

푸른바다 2009-08-04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이 말하는 '신보수파의 근본주의적 민중주의'가 무엇인지 번역으론 와 닫지 않는군요^^ 이 경우는 우리나라에서의 어법을 볼 때 '민중주의' 보다는 포퓰리즘이 더 적절한 번역인 것 같습니다. '근본주의'라 함은 조지 부시의 기독교 근본주의를 말하는 것인가요? 암튼 네오콘과 미국 민주당간의 대립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제 이해가 맞는 지 모르겠네요. MB 정권도 어찌보면 근본주의적 포퓰리즘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 민주당은 사실 미국 민주당보다도 리버럴하지 않지만...

저도 시차적 관심은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로쟈 님과 더불어 조금씩 읽어가야 겠군요^^

로쟈 2009-08-04 22:50   좋아요 0 | URL
두어 장을 꼼꼼하게 읽으면 나머지 장들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근본주의에 대한 지젝의 입장은 '상식'과는 좀 다릅니다.'민중주의'란 번역어는 번역본을 그냥 따른 것이구요...

seerblest 2009-08-0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guably는 로쟈님 지적대로 오역이 맞습니다. 보통은 문장 전체를 수식하면서 "틀림없이"란 뜻으로 쓰이는 부사로,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이 아니라 (오히려) "논쟁의 여지(필요) 없이"가 더 정확한 본래의 뜻이죠. 따라서, "슈만의 걸작으로 뽑기에 손색없는 유모레스크" (혹은, 누구라도 슈만의 걸작이라고 손꼽을(주장할) 유모레스크)가 정확한 번역이겠죠. 부사로서의 arguably는 누구라도 기꺼이 그렇게 주장하듯이의 어감을 뜻하니까요.

로쟈 2009-08-04 22:49   좋아요 0 | URL
잘 정리해주셨네요. 짐작엔 형용사 arguable에 너무 의지한 탓이 아닌가 싶어요...
 

'크레월드'라는 웹진 8월호의 '파워블로거'란에 '로쟈의 저공비행'이 소개됐다(https://www.creworld.co.kr/200908/intro/power_blogger.jsp). 얼마전 간단한 이메일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는데, 기사에 일부 반영이 됐다. 옮겨놓으려고 하니 같은 폭의 봉지에 또다른 봉지를 집어넣는 듯하나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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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8-0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곁다리, 곁가지 ,,, 마음에 듭니다.(가지를 쳐나가면 될 듯싶다.)
책을 버리며, 책읽는 법을 배울 것 같아요.

로쟈 2009-08-03 21:10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관심을 확장해나가는 게 공부죠...
 

2-3년내로 쓰고자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너 자신을 세라'는 제목의 책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자기 반영적인 지식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데, 그런 관심사에서 <책 읽는 뇌>(원제는 '프루스트와 오징어'이지만)나 뇌과학, 그리고 인지주의에 관한 책들도 조금 들춰본다(이 경우에도 내게 가장 유익한 건 지젝의 책들이다). 아무래도 조금씩은 준비를 해두어야 할 것 같아서이다. 맛보기로 삼자면 아래와 같은 '드루들'이 내가 생각하는 컨셉이다. 예전에 로저 프라이스의 <낚시질하는 물고기>(창해, 1994)란 책이 소개된 바 있는데, 이미지를 온라인에서 찾을 수가 없어서 폰카로 찍어 옮겨놓는다.

   

표제작이기도 한 이 드루들의 제목이 'Fish fishing', 곧 '낚시질하는 물고기'다. 저자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시끄럽게 굴기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드루들(droodle)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시비를 걸었다. “왜 낚시바늘에 미끼가 달려 있지 않은가?” 혹은 “어떻게 낚시줄을 묶을 수 있었는가?” 등등. 그 대답은 이렇다. 이 물고기는 영리하므로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곧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미끼는 필요없다. 게다가 물고기를 잡는 데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고, 낚시질하는 그 자체에만 흥미가 있다. 이 드루들에 가까이 다가가서 잘 살펴보면, 낚시줄은 그 물고기의 할아버지가 단정하게 세로매듭으로 만들어준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력과 은총>(1996)이란 책에서 이 대목을 인용하고 나는 이렇게 적었더랬다. "'8월에 내리는 눈'과 같은 책, 나는 언젠가 그런 걸 쓰고 싶다." 8월이어서 문득 그 생각이 났다... 

09. 08. 02.  

P.S.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는 그 이후에 나온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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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8-03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좋습니다...물고기도 8월의 크리스마스도..

로쟈 2009-08-03 17:38   좋아요 0 | URL
네, 휴가도 못갈 처지라 이미지만이라도...^^;

목동 2009-08-03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낚시꾼은 가장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곳에 자리를 정하고
강물에 낚시 바늘을 담근다. (하얀전쟁/안정효)

로쟈 2009-08-04 00:26   좋아요 0 | URL
낚시도 좋아하실 듯한데요.^^

비로그인 2009-08-04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낚시질하는 물고기 그림과 약간의 글을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