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어 저널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publishingjournal.co.kr/?p=1819). 출판저널의 '서재에서 만남 삶'이란 꼭지에서 이달에 '로쟈의 서재'를 다루었다. 아니 이번엔 '이현우 박사의 서재'이다. 실제 내가 앉아 있는 방의 풍경을 지면에서, 그리고 온라인에서 보는 일이 좀 낯설긴 하다. 취재는 지난달 초순에 이루어졌다. 방은 어지러운 상태가 더 좋다고 하여 전혀 정리하지 않았다. 지금 현재의 모양새도 거의 이런 수준이다(다만 한달새 약간 더 빼곡해졌다). 온라인에는 기사의 일부만 공개돼 있다.
출판저널(09년 8월호) 인문학자 ‘로쟈’ 이현우 박사의 서재
소박해 보이는 책장에 수북하게 꽂힌 책들에 둘러싸여서 고상하고 호사가적인 취미를 만끽하는 귀족주의적인 책 숭배자를 만나는 것은 절대정신으로 가득 찬 낭만적 세계를 보는 것만 같다. 러시아문학자로 안주하지 않으며 이미 인문학자로서 경계를 확장한 이현우 박사는 한국 인문학 연구의 토대를 쉼 없이 흔드는 이 가운데 하나이다. 깊게 패인 그윽한 눈동자로 세상을 예리하게 꿰뚫으려는 그에게, 책은 세상을 성찰하는 텍스트로 짜인 거울 같다. 책들의 보고 같은 그의 서재를 찾아서 ‘로쟈’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를 육성으로 경청하였다.
가족 중 유일한 다독가
적잖은 책 신봉자들이 인문학적 교양이 출중한 독서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마련한 서재에서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성장한 현실이 잦기에, 기자에게 이현우 씨의 집안이 선입견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지레 짐작했던 고정관념은 가볍게 빗나갔다.
“어릴 적 책이 별로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그다지 책을 즐기지 않으셨어요. 그나마 아버지께서 세계문학전집이나 방정환 선생님의 동화책을 사주신 것이 책과 관련된 으뜸 되는 추억입니다.”
그는“책을 탐독하는 유전자”를 타고난 것처럼 줄기차게 책을 읽으며 자랐다고 회고했다. 줄곧 책과 동무한 삶은 다른 세계를 사는 생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다. 그에게는‘문청’기질이 다분한 골치 아픈 룸펜보다,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이 더욱 흥미롭게 와 닿았다. 자신과 유사한 분신과 결혼하지 않고 이질적인 세계에 두 발을 깊게 담근 이와 결혼한 것도, 책이라는 성에 칩거한 이들을 일면 경계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책을 유난스레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할 무렵 석·박사논문에 치이면서 책을 다소 멀리하는 게 설핏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가차 없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긴장관계가 글쓰기의 근간
하지만 그는 책과 오래도록 연애하며 어떻게 책을 접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책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질 때는“책을 섭렵한 이후 달성하는 자유로움”이라고 통찰한 것이다. 오늘날의 그를 키운 것은 학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릴케와 장자 등의 저작들의 영향이 지대하다. 특히 자유롭게 세상을 보기위해서 필연적으로 대붕의 관점에 서야 한다는 깨달음을 안겨준 장자를 인상 깊게 읽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소요유(逍遙遊)의 드넓은 경지에 근접한 대가는 현실문제에 둔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설핏 예술가적 영혼을 지닌 그가 아직껏 자신감 있게 살 수있었던 배경은 좀처럼 입신출세를 강요하지 않은 부모님 덕분이라고 토로했다.
“저공비행의 이미지는 현실에서 떠있다는 점과 동시에, 언제라도 추락할 위험이 상존한다는 점입니다. 날아다니는 대가로 언젠가 가차 없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긴장관계가 어쩌면 제 글쓰기의 근간일 지도 모릅니다.”
그가 몇 년째 정성껏 열정을 다해 꾸려오는 블로그 역시 생계문제나 가족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기에 시종일관 글쓰기와 글읽기를 부단한 긴장 속에서 이어오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 나온 책 덕분에 책으로 넘쳐나는 집을 타박했던 잔소리가 다소 잠잠해졌다고 이야기했다. 경제적인 효용성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으며 그의 논문 집필 시간을 깎아먹기도 하는 블로그를 계속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주할 때 블로그는 성가신 짐 같죠. 하지만 읽은 책들을 블로그에 게재하기 위해 글을 쓰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좀 더 잘 읽게 되기에 도움이 됩니다. 혹자는 저를 스페셜리스트이기보다 제네럴리스트라고 부르곤 하는데, 제네럴리스트를 거쳐서 언젠가 스페셜리스트로 도달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려면 어느 한 분야에만 관심이 국한되는 것은 곤란합니다. 자못 인문학자라면 여러 분야에 관해 어느 정도 통달해야 하지 않을까요? 협소하고 지나치게 학구적이며 규격화된 이해를 거부하면서 말이죠.”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 '로쟈'
이러한 생각을 견지한 그는 올해 5월에 발표된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문학전공자의 제한된 시각만을 보여주는 것을 탈피해서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와 철학, 러시아 지역학, 여성문제 등에 관해 수많은 글들을 명징하게 담아냈다.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자는 것이 단행본을 기획한 의도였습니다. 여러 관심분야를 한 권의 책에 담는 것이 목표였고, 후속적으로 다양한 꼭지들을 새끼 쳐서 추가적인 단행본으로 내려는 계획을 품고 있습니다.”
그의 서재에는 그의 광활한 관심분야와 사유의 깊이를 내보이듯 온갖 분야의 책들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문학자이자 인문학자로 살아가는 그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나타내듯 대부분의 책들은 문학과 철학 등 인문철학에 집중돼 있었다. 그의 필명인 ‘로쟈’ 역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Rodion Romanovich Raskolnikov)의 애칭 로쟈(Rodja)에서 따온 것이다.
문학 극대론자에 대한 동경
자신의 전공분야에 안착해있기보다 인문학자로의 길을 선택했지만, 러시아문학이 국내에서 열띠게 각광받지 않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것 같았다.
“동시대 러시아 문학이 국내에 잘 소개되어 있지 않아요. 일단, 러시아문학 수요층이 적다 보니 출판사에서 좀처럼 엄두를 내기 쉽지 않죠. 작금에 러시아문학이 드물게 번역되는 경향은 러시아문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독자, 시장의 문제가 모조리 섞여 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문학의 경우 번역자들이 다른 주요언어들에 비해 부족한 점도 이러한 현상에 일조합니다. 비단 러시아문학뿐만 아니라 러시아 영화도 아주 가끔 국내에 개봉됩니다. 현실적인 제반문제로 인해 러시아문학 전공자로 살아가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늘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문학에 대한 서평의뢰보다 인문학 서적에 관한 서평 의뢰가 주를 이룬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 실려 있는 러시아문학 및 문화에 대한 빼어난 글들은, 그가 앞으로 러시아문학 연구풍토에 굳건하게 이바지할 밑바탕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자연스레 문학 극대론자에 관한 자신의 꿈을 소개하였다.
“문학을 이해하려면 문학이 전부가 되어야 하고, 문학이 말하려는 총량을 오롯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텍스트에 대한 접촉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려면 일단 텍스트를 깊이 있게 향유하고 충분히 음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나긴 역사에 비해 한없이 짧기만 한 인간의 유한한 삶을 그나마 초월하는 방법은, 책을 통해서라도 여러 시대와 만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종종 저더러 ‘책상물림’이나 ‘책벌레’라고 부르곤 하는데, 저 같은 사람들에 비해 철저히 책 밖에 사는 사람들이 더욱 현실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어쩌면 주마간산 같은 구경꾼의 엿봄 내지 얕은 앎일 수도 있죠. 깊이 천착된 앎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책에서 지식의 간극을 메우며 인간의 한계성을 어느 정도 극복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책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더욱 풍족하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경유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여러 곳에 분산된 서재
“책이 한곳에 없다 보니 연구할 때 사소한 불편이 생겨서 언젠가 여건이 된다면 책들은 한곳에 모을 작업실을 꾸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봅니다.”
그의 수많은 책들은 한곳에 모아지지 못한 채 세 곳에 분산돼 있다. 자신의 아파트에 모조리 보관할 수 없어서, 지인이 마련해준 서재에 상당수의 책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나머지 책들은 서울대학교 연구실에 있다. 책수집가가 되기를 추호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미 어느 누구와도 필적할 만큼 수많은 책들을 소장한 그가 책을 고르는 기준을 무엇일까.
“일단 값비싼 고서들이나 희귀본을 사서 모으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이미 재정적으로 거덜이 났겠죠. 또한, 책을 무조건 사서 읽습니다. 책을 살 때는 관심 분야의 책인지 따져봅니다. 또한,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관심사와 대중의 관심사가 맞아떨어지는 책을 주로 고르며, 특히 여러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는 책들을 선택해서 서평을 쓰곤 합니다.”
세 곳에 분산된 책들, 한우충동(汗牛充棟)이라는 성어가 곧바로 떠오를 만큼 많은 책들을 제대로 꽂을 수조차 없어서 신발장뿐만 아니라 침대 아래나 베란다에까지 보관한 그는 책이 가끔 환멸을 머금은 짐짝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언젠가 지인에게 향수를 선물 받았는데, 지인에게 양해를 구한 후 책으로 바꾼 적이 있습니다. 책을 아무리 많이 산다고 하더라도 갖추지 못하는 책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일단 장만한 다음에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정독합니다.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것은 아니고, 종종 지인에게 주기도 하고 가끔 아예 버리기도 합니다.”
다독가가 책을 고르는 기준
서울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서 진행하는 대학 강의뿐만 아니라 성인교육 강좌까지 맡고 있는 그는 분초를 다툴 만큼 분주하게 살아간다. 강의에서부터 서평 작성, 번역 등을 모조리 병행하는 그가 블로그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자못 신기할 정도이다. 책이 흔해진 시대에 책을 소개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그는 자신이 대학시절을 보냈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에 비해 요즘에는 여럿이 모여서 학문적 공동체로 세미나를 하는 문화가 괄목상대하게 준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호주머니 사정이 얇아져서 책이 많아도 온전히 사보지 못하는 요즘 대학생들의 고충은, 과거 책값은 싸도 출판시장이 빈약해서 제대로 독서할 수 없었던 당시의 젊은이들과 궁극적인 고충은 통하는 것 같아요.”
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의 바람은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지성 수준이 향상되기를 바랍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블로거들이 책을 정독한 후 서평을 쓰는 문화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책이 좋아서 책에서 사는 이현우 씨는 세상과 고립된 채 자신만의 성에 갇혀 있지 않고 끊임없이 세상에 말을 걸며 소통하는 학자이다. 그가 몇 년째 운영하는 블로그는 독서대중의 저변 확대 차원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우며, 책을 읽는 의미 있는 독법을 제시하면서 지식의 확산과 토론에 이바지하고 있다. 언젠가 이산된 그의 책들이 한곳에 모여서 그의 연구 및 글쓰기가 더욱 집약되기를 바란다. 청빈한 삶 속에서 열정적으로 책을 후벼 파는 그의 ‘보수적인’ 시간표에서 생산된 결과물들이, 우리들에게 메아리칠 담론이 흥미진진할 것을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쳤다.(박정준 객원기자)
09. 08. 05.
P.S. 잡지는 어제 받아서 읽어봤는데, "한국 인문학 연구의 토대를 쉼 없이 흔드는 이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돼 있어서 좀 놀랐다(나는 '곁다리'라고 했건만!). 의례적인 과장인가? 인터뷰가 대개 그렇지만 나의 '육성'은 기자의 기억이 재구성해놓은 것이다. 가령 '으뜸 되는' '유난스레' '설핏' 같은 표현은 나의 것이 아니어서 눈길이 간다. 내가 그런 인상을 주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