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지구촌 최고의 화제작은 스티븐 호킹의 <거대한 설계>가 될 전망이다. 무신론을 함축한 '자발적 창조론'을 주장하여 영국에서는 이미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국내 언론도 관련기사들을 내보내고 있다. <시간의 역사>(삼성이데아, 1989)가 물리학 책으로는 드물게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전력이 있는 만큼 <거대한 설계>도 곧 한국어본이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그 사이에 20년도 더 되는 시간이 지나가버렸군... 

한국일보(10. 09. 06) [지평선/9월 6일] 호킹의 우주 

다음 주말을 전 세계 많은 이들이 열광 속에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천재물리학자로 불리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책 <거대한 설계(Grand Design)>의 출간이 예고된 때문이다. 대중을 위해 알기 쉽게 우주의 기원과 구조, 팽창과정 등을 설명한 책이라곤 하지만, 앞선 <시간의 역사>나 <호두껍질 속의 우주>처럼 초끈이론, M-이론 등 난해한 현대물리학에 대한 기본이해 없이는 도전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일 것이다. 그의 책은 매번 엄청나게 팔렸지만, 마르크스의 <자본론>처럼 '가장 읽히지 않는 베스트셀러' 소리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어쨌든 <거대한 설계>는 서점에 풀리기도 전에 이미 거대한 논쟁에 휩싸였다. 영국언론은 지난 주 책 내용을 발췌 소개하면서 '신은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도발적 제목을 달았다. 우주의 기원이 된 대폭발(Big Bang)은 물리학 법칙의 필연적 결과라는 그의 '자발적 창조론'을 압축한 표현이다. 더욱이 호킹은 "(창조를 설명하려) 종이에 불을 붙여 우주를 폭발시키는 신을 부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단다. 이 냉소적 비유는 기독교신앙에 바탕한 창조론자, 다른 말로 '지적 설계론자'들로서는 가히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다.

■ 10년 전 책에서도 신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던 그에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신에게 선택된 지구'의 자긍심을 무너뜨릴 만한 또 다른 태양계의 발견이 첫 계기였다고 하지만, 보도내용으로 미루어 우주의 현상을 완벽하고 통일되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도달한 것이 결정적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정말 그런 이론 구축이 현실화한다면 창조론의 입지는 크게 좁아질 것이다. 우주와 생명, 인간의 기원과 발전과정에서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거나, 입증되지 않는 바로 그 지점이 지금까지 신이 머물러온 자리인 때문이다.

■ 모든 인간이 숙명적으로 갖고 있는 세계와 삶의 본질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이 조금씩 답을 얻어가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기꺼운 일이다. 그러나 또한 한편으론 두렵고 허망하다. 과학 발전에 따라 정신작용도, 사랑의 감정을 포함한 복잡미묘한 마음까지도 내분비계 화학적 성분의 조합으로 규명돼간다. 모든 것이 물리법칙과 화학반응으로 설명 가능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과연 후련해서 행복할까?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간의 존엄성이나 존재의미는 그럼 뭘까?…가을 문턱에서 호킹의 신작 소식에 접해 문득 어지러운 상념에 잠긴다.(이준희 논설위원) 

10. 09. 06. 

 

P.S. 책은 <위대한 설계>(까치글방, 2010)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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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주 탄생에 대한 스티븐 호킹의 대답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0-06 08:22 
    영어권에서는 지난달에 출간돼 화제를 모은 <위대한 설계>(까치, 2010)의 번역본이 나왔다(관련기사들에서 '거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로 옮겼었는데, 번역본 제목은 '위대한 설계'가 됐다). 교양과학서로는 이번주에 가장 크게 다뤄질 만한 책이다. 간단한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알라딘에서도 이미 예약주문을 받고 있는 책인데, 나도 주문을 넣어야겠다...    
 
 
마일즈 2010-09-06 17:58   좋아요 0 | URL
그런 지적에 이견은 없습니다만, 과학에 관련된 글쓰기에 항상 따르는 운명같습니다. 특히 보편청중을 청자로 삼는 과학에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 어떤 과학현상을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고 기존과 다른 입장에서 재구성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수식전개는 일반독자보다는 보편청중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의미가 있는거 같습니다.

현대물리학의 섬세한 성과를 비유적으로 차용한 문학글쓰기와도 과학글쓰기는 다른 거 같습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한 경향으로 스티븐 핑커의 글쓰기가 있습니다. 그의 글도 언어학에 관련된 여러 분야를 아우른 일종의 언어과학글쓰기로 보이는데, 맨 처음에 접했을 때 인상과는 달리 그가 전달하려고 했던 내용이 관련된 분야 책을 읽을수록 크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약간의 당혹감이 듭니다.

거의 보편청중을 염두에 둔 과학을 일반독자에게 전달하는 과학글쓰기는 또 다르게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로쟈 2010-09-07 09:04   좋아요 0 | URL
그런 글쓰기가 아쉽게도 국내에선 드문 것 같습니다. 그런 책을 쓸 수 있는 과학자뿐아니라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더 나왔으면 하는데, 그럴 여건은 아직 못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직 몇달 더 남겨놓고 있지만 2010년에 가장 중요한 인문사회과학서 번역 성과라면 김덕영 교수가 옮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길, 2010)고 함께 강신준 교수의 <자본>(길, 2010) 완역을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여 년의 노고를 담고 있는 대단한 업적인데, 프레시안에 실린 장문의 인터뷰 가운데(http://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0903151812&section=04), <자본>의 현재적 의미를 짚고 있는 후반부를 스크랩해놓는다. <자본> 3권에 대한 강조가 눈에 띈다. 인터뷰어는 강양구 기자다.   

 

지금 왜 <자본>인가?

프레시안 : 자본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책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21세기 지금 이 시점에 <자본>이 다시 번역되어야 하고, 또 가능하면 많은 이들이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강신준 : 그 질문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준비된 답변이 있다. 대개 지금까지 마르크스의 사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자본>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데만 주력했지,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을 놓고는 침묵했다'고 입을 모았다. 과연 그런가? 나는 20년 넘게 현장의 노동자와 <자본>을 같이 읽으면서 이런 평가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 생각해 보자. 오늘도 밥벌이에 지친 노동자들이라면 자본주의가 잘못된 체제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택시 기사는 12시간 맞교대로 일해서 하루 14~5만 원을 번다. 그 중 11만 원을 회사에 사납금으로 바치고, 자기는 고작 4~5만 원을 가져간다. 그 택시 기사들이 과연 이런 어처구니없는 자본주의 체제를 정상이라고 생각할까? 850만 명이나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떤가? 자동차 공장에서 정규직 노동자인 옆의 동료는 연봉 6~7000만 원을 받는다. 그런데 자기는 그들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고작 연봉 2000만 원을 가져가는 게 전부다.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본주의 체제는 잘못된 것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자본>을 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주의 체제의 임금 노동자라면 누구나 자본주의 체제가 잘못돼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왜 그는 번역을 해보면 3000쪽이나 되는 어렵고 방대한 책을 썼을까? 단지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프레시안 : 그럼, <자본>에서 진짜로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강신준 :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에는 변증법이 있다. 그에 따르면 봉건 사회의 모순이 폭발하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했다. 그 논리대로라면, 바로 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하나씩 점검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이후에 등장할 사회, 즉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의 모습도 찾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그의 기획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의 구체적 상(긍정의 미래)이나 혹은 그런 사회로 이행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이행 수단)을 쓰지 못한 대신에, <자본>의 곳곳에 그런 '긍정의 미래'의 모습과 '이행 수단'의 내용을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남겨 놓았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진보 진영에 절실히 필요한 게 바로 '대안' 아니었나? 바로 그 대안의 단초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파헤친 <자본>의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국 사회는 <자본>의 제대로 된 번역도 가지지 못한 채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에서 <자본> 1, 2, 3권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특히 <자본>에서 가장 대안의 단초가 많이 들어있는 부분은 3권인데, 그것까지 읽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단언하건대, 한 다섯 명 정도일 것이다. 대안에 대한 가장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안 읽었으니 진보의 수준이 낮을 수밖에….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촉발된 대공황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적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자본>은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대안 논의의 출발점이다.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본>을 읽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자본>의 시대다.

금융 위기 예고한 <자본>

프레시안 : 방금 지적한 대로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정체를 해명하는 데 <자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1970년대부터 얘기했던 이들도 머쓱해진 상황이다.

강신준 : <자본> 3권을 읽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현대 금융의 특징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게 '레버리지(leverage, 지렛대) 효과'다. 개인이나 기업이 차입금 등 타인의 자본을 지렛대처럼 이용해 이익을 올리려다 결국은 금융 위기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 그런데 바로 이 레버리지 효과가 <자본> 3권에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이 레버리지 효과가 결국에는 공황을 낳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보았다. 얼마나 놀라운가? 140년 전의 마르크스가 오늘날 금융 위기의 본질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류 경제학의 상황을 보자.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다는 <맨큐의 경제학>이나 요즘 대안 교과서로 많이 읽히는 <스티글리츠의 경제학>은 항상 시장에서 시작한다. 현실의 경제는 생산-교환-소비의 3단계로 이어지는데 주류 경제학은 '생산'이 빠지고 '교환(시장)'부터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황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마르크스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공황은 생산 영역에서 시작된다.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 이상의 상품을 생산한다. 이렇게 과잉 생산된 상품을 소비하려면 더 많은 소비가 필요한데, 이를 금융 자본이 부풀린다. 여기서 아까 언급한 레버리지 효과가 등장하고. 그러다 더 이상 과잉 생산된 상품을 소비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는데 바로 여기서 공황이 발생한다. 생산을 자신의 체계에서 뺀 주류 경제학이 공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847년 대공황, 1929년 대공황, 2008년 대공황, 이런 전 세계적인 공황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지적한 학자는 마르크스가 유일하다. 이런 공황의 메커니즘을 설명한 부분이 <자본> 3권이다. 이곳을 보면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공황을 촉발하는) 신용의 주요 대변인들은 협잡꾼과 예언자의 얼굴이 함께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예언자'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공황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을 통해서,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의 경제의 조건을 따져보려고 했던 것이다. 공황이 일어나는 원인을 파악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단을 궁리할 수 있으니까.

프레시안 : 예를 들자면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게 가능할까?

강신준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불일치한다. 시장을 맹신하는 주류 경제학자의 바람과는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항상 생산이 소비보다 많이 이루어진다. 생산과 소비가 시장에서 균형을 딱 맞춘다면, 왜 기업이 그렇게 많은 비용을 소비자를 현혹하는 광고에 쏟아붓겠나? 이런 불일치의 파국적인 결과가 바로 공황이다. 그렇다면, 공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한 일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시장을 맹신하는 이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다. 100개의 상품을 빌 게이츠 같은 이들이 승자 독식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다른 방식은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 케인스가 단초를 제시했던 방법이다. 바로 100개의 상품이 생산되면 무조건 50개를 떼서 사회의 구성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방법이다. 그 50개를 '사회 임금'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그것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복지 제도다. 실제로 1998년부터 전 세계가 금융 위기로 큰 충격을 받았을 때, 가장 피해를 덜 본 국가들이 독일,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유럽의 복지 국가들이다. 바로 이렇게 <자본> 곳곳에 숨어있는 대안의 단초를 찾는다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한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꿈꿨던 사회는…

프레시안 : <자본>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마르크스가 꿈꿨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강신준 : <자본>을 오랫동안 공부하면서 확실한 답변을 얻었다. 먼저 생산 부분부터 살펴보자.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사회주의'라는 말도, '공산주의'라는 말도 쓴 적이 없다. "생산 수단에 대한 공동의 통제"라는 표현을 쓰긴 했는데, 이것을 "생산 수단의 국유화"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생산은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것이고 마르크스는 그것을 명확히 인식했다.

"생산 수단에 대한 공동의 통제"는 노동자 전체가 의사 결정을 포함한 생산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모습을 뜻한다. 그게 무엇인가? 바로 민주주의다. 흔히 마르크스주의하면 즉각적으로 소련의 볼셰비키가 보였던 소수에 의한 독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절대로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그것이 아니다. 



실제로 레닌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마르크스주의자는 모두 다 이 사실에 공감했다. 내가 2006년에 번역한 칼 카우츠키(1854~1938년)의 <프롤레타리아 독재>(한길사 펴냄)를 보면 이런 사실이 잘 나온다. 이 책은 레닌이 1919년 10월 혁명을 통해서 정권을 잡은 후의 행보를 놓고 진행된 논쟁 속에서 나온 것이다.

레닌은 정권을 잡자마자 제헌의회를 해산하고, 비밀 정보기관을 가동해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프랑스 혁명 때 로베스피에르가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이런 레닌의 행보를 놓고 당시 제2인터내셔널의 걸출한 마르크스주의자 세 사람(로자 룩셈부르크, 카우츠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보면 레닌 역시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공개적으로는 카우츠키에게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정작 카우츠키와의 논쟁 속에서는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레닌 자신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카우츠키는 이 책 속에서 그런 고민이 담긴 레닌의 글을 인용하면서 주장을 편다.

역사가 말한다. 똑똑한 소수가 "좋은 사회"라는 답을 내놓고 다수가 그것을 따라가는 식으로는 절대로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는 '천국'보다는 '지옥'이 되기 십상이다. 마찬가지로 사회 전체의 수준, 그러니까 그 사회의 노동자의 역량이 사회주의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결코 사회주의의 이상향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러시아의 상황이 그랬다. 결국 소수의 정치인이 다수의 노동자를 이끌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독재와 폭력으로 귀결되었다. 그 체제를 바로 노동자들이 1991년에 끝장내지 않았나?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는 민주주의를 강조한 마르크스주의가 옳았다는 걸 입증하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소비 부분은 어떨까? 마르크스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소비하는 사회"를 말했다. "능력에 따라서 일하는 사회"는 앞에서 얘기한 대로 생산의 전 과정에서 노동자의 의사가 반영되는 것이다. 한편,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욕망을 사회가 더 많이 채워주는 것이 바로 "필요에 따라서 소비하는 사회"다.

독일,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복지 국가는 교육, 보육, 의료 등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욕망을 사회가 채워주려고 노력했다. 이런 기반에서 생산의 영역에서 개인의 창의성이 마음껏 발현되는 사회야말로 마르크스가 가려고 했던 바로 그런 사회다. 마르크스의 이상은 이미 부분적으로 실현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실현할 수 있다.

마르크스 르네상스

프레시안 : <자본>의 완간을 앞두고 2009년 독일에서 1년을 보냈다. 실제로 마르크스와 <자본>에 대한 열광을 실감했나?

강신준 : 난리다. 독일의 베를린에 있을 때 새로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을 준비하는 학자들과 교류가 많았다. 그 중에 게랄트 후프만 박사가 대학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강의하는데, 금융 위기 이후로 수강 인원이 세 배로 늘어서 나중에는 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독일의 디츠(Dietz) 출판사는 금융 위기 이후 <자본>의 판매량이 2007년에 비해 세 배나 늘었다. 심지어 2009년 기독교민주동맹(기민당)과 사회민주당의 대연정이 깨질 때까지 사민당 소속으로 독일의 재무부 장관이었던 페어 슈타인브뤼크가 "마르크스가 여전히 옳다"고 선언을 하기도 했고.

독일에서는 사민당이 1959년 고데스베르크에서 채택한 강령에서 마르크스주의를 폐기한 이래로 현실 정치에서 마르크스가 설 자리가 없다. 그런데 최근에 오스카 라퐁텐을 중심으로 한 좌파가 사민당을 나와서 결성한 좌파당(LINKE)의 강령에 마르크스에 대한 재해석을 반영하려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흐름 속에서도 얼마나 마르크스가 되살아날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수십 년의 분단을 경험한 독일 대중에게, 특히 서독 사람에게는 마르크스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마르크스에 대한 거부감을 마치 한국의 마르크스에 대한 거부감과 똑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독일의 금속산업노동조합에서 펴내는 일반 노동자를 위한 교과서 중 한 권을 보면, 임금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노동자가 받아야 할 임금을 이론적으로 따져보면 '지불노동'과 '부불노동(不拂勞動)'으로 나뉜다." 지불노동, 부불노동, 이런 개념을 사용한 이는 마르크스밖에 없다.

이렇게 독일에서는 마르크스를 명시적으로 내세우지 않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일상생활 곳곳에서 마르크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것은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도 마찬가지다. 즉, 이런 나라에서는 마르크스를 얘기하지 않아도 모든 논의의 전제에 마르크스의 사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대중은 물론이고 학자 중에도 마르크스의 주저인 <자본>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사회에서 '마르크스 이후'를 얘기한다.

프레시안 : 요즘에는 마르크스 대신 소스타인 베블런, 칼 폴라니, 생태주의자를 거론하면서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강신준 : 아까 얘기한 것처럼, 마르크스는 그 모든 사람의 출발점이다. 베블런, 헨리 조지, 발터 베냐민, 폴라니, 생태주의자 모두 서양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한 세기 동안 소화한 마르크스의 유산 위에서 마르크스가 단초로만 제시했던 것, 혹은 그가 생전에 보지 못했던 자본주의의 모습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채우면서 자신의 사상을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들 모두의 출발점이 되는 마르크스의 유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시류에 휩쓸려 마르크스 이후를 얘기한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본주의 비판과 대안의 출발점이 되는 마르크스, 특히 그의 주저인 <자본>을 다시 읽는 것이다.

냉전 시대 마르크스 연구의 한계

프레시안 : 1960년대부터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자본>의 재해석에 목소리를 높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사상 전체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위상을 낮춰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흐름은 한국의 지식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는데….

강신준 : 냉전 시대 마르크스의 사상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었다. 1917년에 혁명이 일어나고 정권을 탈취하자마자 레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당대 최고의 문헌학자 다비드 랴자노프에게 유럽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마르크스의 원고를 모아서 정리토록 한 일이었다. 비록 랴자노프는 레닌 사후 스탈린에게 숙청을 당했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원고가 소련으로 집중됐다.

얼핏 생각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적자였던 독일의 사민당이 마르크스의 원고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았다. 1930년대 사민당이 도피 중에 마르크스의 원고의 상당 부분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독지가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이 원고의 상당 부분을 지금 네덜란드의 국제사회사연구소(IISG)에서 보관 중이다.

심지어 이때 사민당이 경매 시장에 내놓은 마르크스의 원고 일부는 일본으로도 넘어갔다. 당시 일본의 오하라 연구소의 구성원을 비롯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유럽까지 와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를 수집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은 지금도 대단해서 한 권에 1500부 정도 찍는 MEGA의 절반 정도가 일본에서 소화된다. 



이런 얘기를 길게 하는 것은 냉전 시대 마르크스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마르크스의 유고 중 상당 부분, 특히 <자본>을 비롯한 후기 원고의 대부분이 소련을 비롯한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상황에서 서구의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경제학-철학 수고>(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펴냄)와 같은 초기 저작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자본>과 같은 후기 저작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는 스탈린에 대한 문제제기의 의미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자본>을 폄훼하는 흐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프레시안 : 마르크스 사상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위상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강신준 : 앞에서도 언급한 MEGA를 예를 들어보자. MEGA는 현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를 보유하고 있는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일본 등이 공동으로 펴내는 새로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이다. 총 116권으로 출간될 예정인데 현재 절반인 58권이 나왔다. MEGA는 1부, 2부, 3부, 4부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2부는 전적으로 <자본>에만 할애됐다.

그런데 이 2부의 권수가 전체 116권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자본>이야말로 마르크스 사상의 모든 것이 용해된 그의 주저인 셈이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철학, 역사학, 문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이 <자본>에 달려들어서, 마치 금맥에서 금을 찾듯이 마르크스 사상의 정수를 추출해야 한다. 



<자본> vs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프레시안 :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월급쟁이들 사이에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샤론 레히트 지음, 형선호 옮김, 황금가지 펴냄)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 책을 읽고서 많은 이들이 "아, 이건 거꾸로 읽는 <자본>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책의 메시지는 "노동자로 살면 만날 그 모양 그 꼴이니, 자본가(자산가)가 되어라" 이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에게 저항하기보다는 차라리 자본가가 되라고 유혹하는 책이었다. 1980년대에 마르크스와 <자본>에 열광(만) 했던 많은 이들이 이런 유혹에 넘어갔다.

강신준 : <자본>에 엥겔스가 오늘날의 '재테크'를 놓고 이렇게 주석을 써놓았다. 재테크는 노동자가 만들어 놓은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나눠 먹고자 경쟁하는 것이라고. 물론 이런 경쟁에 노동자도 참여할 수 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이런 경쟁에 참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책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그런 자본가 사이의 경쟁에 참여해 돈을 벌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마르크스가 <자본> 3권에서 개별 자본가가 자본가 사이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써놓았다. 워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가 대자본을 이용해서 버는 돈과 이른바 '개미'가 버는 돈은 비교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 또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지나면서 2000년대에 본격적으로 재테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997~98년에 주식 시장, 부동산 시장의 폭락했다가 오르면서 현금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엄청난 차익을 챙기면서 모든 사람이 재테크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버핏이나 소로스나 또 개미들의 몫이 커지려면, 마르크스의 설명을 염두에 두면, 잉여가치가 커져야 한다. 잉여가치가 커지려면 노동자를 착취해야 한다. 누군가의 '대박' 뒤에는 노동자의 '착취'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1997~98년을 기점으로 한국 사회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정부의 공식 통계를 봐도, 1997년 이전에는 비정규직이 250만 명이 안 되었다. 그런데 2009년도 비정규직은 570만 명이다. 정부 통계를 그대로 따라도 노동자 300만 명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학자들은 비정규직이 350만 명에서 850만 명으로 약 500만 명이 늘어난 것으로 본다.) 1997년 이전에 월 250만 원을 받았던 노동자 300만 명이 이제는 150만 원씩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에게 애초에 월급으로 갔어야 할 돈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 돈이 다 재테크 시장에서 대박 터뜨린 이들, 그러니까 버핏, 소로스 같은 사람의 주머니로 돌아간 것이다.

정상적으로 받아야 할 월급 100만 원을 300만 명이 덜 받았다고 치자. 한 달이면 3조 원이다. 1년이면 36조 원, 13년이면 수백조 원이라는 엄청난 규모가 된다. 이렇게 노동자에게 착취한 돈이 다시 그 노동자, 즉 대박을 꿈꾸는 개미에게 돌아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나는 15층 빌딩에서 뛰어내려 살아남을 확률과 비슷하다고 본다.

물론 개미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15층 빌딩에서 뛰어내려도 살아남는 사람이 가끔씩 뉴스에서 화제의 인물로 등장하는 것처럼. 자, 15층 옥상에서 뛰어내릴 자신이 있는 사람은 계속 재테크에 몰두해라. 그럴 자신이 없는 사람은 이 잘못된 자본주의를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

나한테 소박한 꿈이 있다.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라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이렇게 변했으면 좋겠는데, 조합원에게 '노동 계급의 성서'인 이 <자본>을 선물로 줘야 한다. 지금도 노동조합 창립 기념일에 많은 돈을 들여서 조합원에게 선물을 준다. 텐트 같은 것. 그런 데다 돈을 쓸 게 아니라 이 <자본>을 조합원에게 나눠줬으면 좋겠다. 만약 그런 일이 현실이 된다면, 10주든 20주든 노동자들이 원하는 만큼 강의를 할 의향이 있다. 

노동자가 <자본>을 읽는 방법
 
프레시안 : 마르크스 본인도 얘기했듯이 <자본>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 <자본>을 읽기는 더욱더 어려울 것이다. 특별히 권하고 싶은 <자본> 읽기 방법이 있는가?  

강신준 : <자본>은 앞부분이 어렵다. 보통 제1편(상품과 화폐)을 읽다가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뒷부분부터 읽기를 권한다. 1권 제4편(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부터 읽으면 좋다. 4편의 앞부분도 읽기 힘들면 12장 정도부터 읽으면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다. 제7편(자본의 축적 과정)도 읽어볼 만하다. 특히 7편의 제23장(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은 나라와 연도만 빼면 한국의 얘기와 똑같다. 노동자를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가르고, 임금을 깎고, 해고를 하고…. 이렇게 1권도 앞이 아니라 뒤부터 읽다 보면 <자본>에 익숙해질 수 있다. 



2권은 경제학 공부를 하지 않은 독자라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아까 언급했듯이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고민할 때 자극이 될 만한 부분이 많은 3권은 읽어볼 만하다. 특히 공황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 부분이 중요한데, 한국 사람들은 요즘 화폐 금융 쪽에 상식이 많아서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3권을 읽다 보면 재테크에 눈을 뜰 수도 있다. 나 같으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책을 읽을 게 아니라 자본주의의 핵심 비밀을 파헤친 <자본>을 읽겠다. (웃음) 



프레시안 : 최근에 낸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길 펴냄)을 포함해 <자본>에 대한 해설서를 몇 차례 펴냈다. 그 책들은 <자본>에 대한 정확한 설명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자본>을 읽을 때 같이 보면 좋을 만한 책이 또 있는가?

강신준 : 요즘에는 <자본> 해설을 하는 책이 많이 나와서 그 중에서 한두 권만 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에 폴 말러 스위지의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The Theory of Capitalist Development)>(이주명 옮김, 필맥 펴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리가 아주 잘 된 책이다. 그러나 어떤 해설보다도 <자본>을 직접 읽는 게 좋다. <자본>을 강의하는 독일의 교수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는데, 나랑 똑같은 의견이었다. 한 번 마음먹고 1권의 23장부터 천천히 읽어보라. 답답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될 뿐만 아니라, 본인이 찾고 있었던 해답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 번역은 진행 중

프레시안 : 오랫동안 <자본> 번역에 매달려 왔다. <자본> 완간 이후에 계획하는 일이 있나?

강신준 : 이렇게 번역한 <자본>을 노동자들과 같이 읽는 일이다. 지난 학기에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 100여 명과 8주 동안 <자본> 강의를 했다. 앞으로 그들과 <자본>을 같이 읽으면서, 그들의 문제의 해답을 같이 찾아볼 생각이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자본>에서 단초처럼 제시된 대안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축적된 성과를 논문으로도 발표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도 내놓을 예정이다.

프레시안 : <자본> 외에도 번역이 안 돼 있거나, 번역이 다시 되어야 할 마르크스의 저작이 있는가?

강신준 : 사실은 MEGA를 펴내는데 참여하는 일본 도호쿠 대학교 오무라 이즈미 교수 등이 중심이 돼 마르크스의 원고 중에서 공황과 관련된 부분만 편집해서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본에서 그 작업이 이뤄지면 그것은 번역을 해서 국내에 소개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의 저술 계획 속에서 <자본>의 4권에 해당하는 <잉여가치학설사>도 번역해야 하는데, 분량이 많아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작업이다.

프레시안 : 인터뷰 중에 MEGA 얘기가 종종 나왔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철학자들을 포함해 MEGA 번역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 출판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본> 역자로서 MEGA 번역에 직접 참여할 의사가 있는가?

강신준 : 고민도 하고, 준비도 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를 MEGA 번역을 시작하려면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두 권 하고 그만둘 수 없으니까. 장기간 번역에 몰두하려면 기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제일 급한 건 <자본>의 문헌 비판이다.

이번에 번역한 <자본>은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고 1957년과 1968년 사이에 소련과 동독이 중심이 되어 발간한 MEW 판이다. 이 <자본>은 엥겔스가 정리한 원본을 놓고 소련, 동독의 학자들이 주를 다는 등의 작업을 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 <자본>을 완성하기까지 세 벌의 초고가 있었다. 이것을 일일이 검토해서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자본> 번역도 아직 끝난 게 아닌 셈이다.

프레시안 : <자본> 역자로서 MEGA 번역을 비롯해서 마르크스의 저서의 번역에 나서려는 이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가? '함부로 시작하지 마!'와 같은…. (웃음)

강신준 : 한국에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학자가 없다. 시류에 자꾸 흔들린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정체를 규명하는 데 마르크스만큼 중요한 학자가 막스 베버인데, 한국에서는 베버를 제대로 연구하는 학자도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최근에 베버의 주저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김덕영 옮김, 길 펴냄)이 제대로 번역돼 나왔으니까….

초심을 버리지 않고,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마르크스를 연구하다 보면 언젠가는 광맥에 닿는다. 내가 그렇다. 20년 동안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를 강의하면서 <자본>을 읽었다. 또 해설을 펴내느라 꼼꼼히 본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 한 15년이 지난 2004~5년에야 <자본>에 대한 깨달음이 오더라. '아, 이 책의 구조가 이렇구나.' 그 때야 어렴풋이 감이 왔다.

내가 존경하는 학자 중에 고 김진균 선생이 있다. 그 선생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고향 마을의 느티나무는 내가 동네를 떠날 때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타지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서 지쳐서 찾아가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내가 죽을 때도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이 느티나무처럼 한 곳에 뿌리를 내려라. 한 길로 매진하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난다.

우리의 천국은 우리가 만든다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이다. <자본>과 같은 공부를 위한 책 외에 즐겨 읽는 책은 무엇인가? 



강신준 : 나는 원래 문학을 좋아한다. 특히 소설을….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옆에 두고 반추한 소설이 이청준의 작품이다. 군대에 있을 때,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견해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을 굉장히 정치적인 작품으로 여긴다. 그 안에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핵심이 들어 있다. 한 사람이 소록도로 내려가서 나병 환자를 위한 천국을 건설한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에 천국은 소록도의 환자들에게는 지옥이다. 당신의 천국이 우리의 지옥이다. 천국은 누가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이게 바로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청준의 소설은 여러 번 읽으면서 음미해 볼 만하다. 다른 책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레닌 관련 책이 여럿 나오지 않았나? 지젝 등이 공저한 것을 비롯해서. 나는 비교적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는데 사실 쏙 마음에 드는 책이 없었다. 마르크스만큼은 아니어도 레닌의 글에서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의 시도는 불만족스럽다.  

10.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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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10-09-05 14:30   좋아요 0 | URL
제가 강신준 교수 수업을 들었다니깐요ㅋ

로쟈 2010-09-05 16:19   좋아요 0 | URL
요즘은 온라인 강의도 하시죠...

2010-09-05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5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diocris 2010-09-05 20:36   좋아요 0 | URL
‘생산 수단에 대한 공동의 통제’는 노동자 전체가 의사 결정을 포함한 생산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모습을 뜻한다면서, 똑같은 일을 하고 다른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문제를 자본주의 체제 때문이라면 한입으로 두말하는 것이니, 한마디로 웃기는 짓이다.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자본’ 말고 다른 책을 읽어라. 보통의 대학교재 중에서도 괜찮은 책이 많다.

로쟈 2010-09-06 12:22   좋아요 0 | URL
독백이신가요?

mediocris 2010-09-06 14:42   좋아요 0 | URL
오만은, 독백이고 싶겠지?

mediocris 2010-09-06 20:06   좋아요 0 | URL
‘비정규직⊂노동자⊂자본주의’인데 비정규직 문제가 자본주의 때문이라니? 예금, 주식하는 노동자가 신자유주의 비판하는 코미디와 뭐가 달라? 그야말로 제 손으로 제 발등 찍기 아냐? 삽질 한번 안 해본 놈들이 노동자를 위해 ‘자본’을 읽고, 노동자를 위해 ‘자본’을 읽으라는 역겨운 계몽과 자위는 제발 그만 두자고.

여울목 2010-09-06 16:40   좋아요 0 | URL
마르크스의 <자본>의 4권에 해당하는 <잉여가치학설사>가 번역되길 바라시는 분들은 자본을 구매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출판사가 역자분도 의욕이 날듯^^

jsredman 2010-09-06 21:46   좋아요 0 | URL
네 꼭 사서 읽어야 할 책입니다.
강신준 교수님 책은 몇 권 읽었는데, 이제야 자본에 도전하네요.

코카추잉 2010-09-12 21:27   좋아요 0 | URL
강신준 교수가 재작년 페스티벌 봄에서 <자본론: 제1장 제1과> 공연 무대에 출연하셨던 것을 봤습니다. 리미니 프로토콜 연출의 이 '포스트 드라마틱 씨어터'는 실제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죠. 그 중에서도 강신준 교수가 <자본론>을 번역하게 된 과정을 직접 들려주는 장면은 작지 않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2010 인문주간 페스티벌의 한 행사로 아트앤스터디에서 고전무료특강이 개최된다(http://www.artnstudy.com/sub/HWF2010/S02_01.asp).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 다섯 차례의 강의가 진행되는데, 나는 15일(수) 16시(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해 강의하게 됐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홈피를 통해서 신청하시면 된다. 무료강의인지라 선착순으로 마감되며 온라인으로도 청강하실 수 있다. 전체 강의일정은 아래와 같다.     

9월 13일(월) 강신주 <『장자(莊子)』> (16시 ~ 18시)  

9월 14일(화) 손철주 <조선시대의 명화> (16시 ~ 18시)  

9월 15일(수) 이현우<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6시~18시)

 

9월 16일(목) 이정우<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16시~18시)  

9월 17일(금) 홍기빈 <칼 폴라니 - 『거대한 전환』> (16시~18시) 

 

10. 09.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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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4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4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4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4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새로 개장한 교보에 들렀다가 손에 든 책은 이재현의 <두더지 지식클럽>(씨네21북스, 2010), 크리스토퍼 베하의 <하버드 인문학 서재>(21세기북스, 2010), 그리고 새로 번역돼 나온 루소의 <사회계약론>(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등이다.  

 

<두더지 지식클럽>은 몇년 전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가상인터뷰 '대화'를 모은 것으로, 기억에 두어 편은 이 블로그에도 옮겨놓은 듯싶다. <하버드 인문학 서재>의 원제는 '5피트 책꽂이'. 40년간이나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했던 찰스 윌리엄 엘리엇이 "5피트 책꽂이면 몇 년 과정의 일반교양 교육을 대체할 만한 책을 충분히 담을 수 있다"는 평소 신념에 따라 1909년에 펴낸 것이 50권짜리 <하버드 클래식>(별명이 '5피트 책꽂이'라고)이라고 한다. 외할머니가 갖고 있던 이 전집을 저자가 1년간 읽어나가면서 쓴 독서노트가 <하버드 인문학 서재>다. 블로그에 연재했으니 일종의 '블룩'이다. <사회계약론>이야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텐데, 조만간 서울대출판부본과 같이 읽어보려고 한다.      

이번주 리뷰까지 참고했다면 두 권 정도는 구매 리스트에 더 포함됐을 텐데, 하나는 콜린 캠벨의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나남, 2010)이다. 물론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패러디한 제목이다.   

눈길을 끄는 제목이어서 오래전에 원서를 구해놓고 읽어보진 않았는데, 이번에 학술명저번역 총서의 하나로 나왔다. 그 정도로까지 명망이 높은 책인 줄은 몰랐다. 여하튼 원서는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번역본은 구해볼 참이다.  

그리고 또 한 권은 롤프 데겐의 <악의 종말>(현문서가, 2010). 저자는 독일의 심리학자로 <오르가슴>(한길사, 2007)의 저자이기도 하다. 생소한 저자인 줄 알았더니, <오르가슴>은 나도 소장하고 있는 책이다. 제목이 왜 '악의 종말'인가? 그건 저자가 "악에의 충동이란 없앨 수 있는 본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진화생물학적 발견에 주목한다. 먼저 공생 관계를 비롯, 비혈연간의 호혜적 이타주의 등 동물의 행태에서 발견되는 특성들이 인간의 진화 프로그램에 내장됐다고 그는 주장한다. 나아가 교환과 상호 행위에서 관계를 현성해나가는 인간의 경우, 정의와 공정성 등 특유의 가치평가적 요소들도 자연이 미리 각인해놓은 감정적 반응 기제에 따라 예민한 감각을 발전시켜 나온 결과라는 것이다. 동물적 감정이 없으면 인간적 도덕도 없다는 이 책의 명제가 그래서 나온다.(한국일보)

악이라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형이상학이 아니라 진화생물학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 책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악의 종말'은 아무려나 희망적인 결론이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서 저자존 그레이가 끌어내는 결론과 비교해보아도 그렇다.  

 

책은 원서도 주문해놓았기에 독서를 조금 미뤄두고 있는데, 원서와 함께 주문한 책이 <자유주의>(성신여대출판부, 2007)이다. 같은 시기에 <자유주의>(이후, 2007)라고 번역본이 하나 더 출간됐었는데 지금은 절판된 걸로 보아 저작권 계약이 불명확했던 모양이다. 저자 존 그레이는 2008년까지 런던 정경대학의 유럽 사상 교수로 재직했던 정치철학자이고, 내가 <호모 라피엔스>에 주목한 건 <자유주의>의 저자이기도 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유독 파괴적이고 약탈적인 종(種)이라는 점"이라는 데서 출발해, 서구 문명의 토대인 휴머니즘을 사정없이 난도질한다. 여기서 휴머니즘이란 진보에 대한 믿음, 즉 인간이 발달하는 과학지식을 활용해 동물은 벗어나지 못하는 제약을 벗어버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킨다.(한국일보)

그런 면에서는 <악의 종말>과 통하는 점도 있을 듯싶다. 악과 자유의지의 문제라면 프란츠 부케티츠의 주제이기도 한데, <우리는 왜 악에 끌리는가>(21세기북스, 2010)와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열음사, 2009)가 같이 참고할 만한 책이다. 빨리 서가 정리가 돼서 이런 책들이 한데 모아져 있으면 좋겠다... 

10. 09. 04.  

P.S. 새로 개장한 교보는 약간의 볼거리를 제공해주긴 했지만, 자주 오고 싶다는 생각은 들게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검색이 불편했고, 몇 권 찾는 책도 모두 재고가 없었다. 구하려던 책의 하나는 리타 펠스키의 <페미니즘 이후의 문학>(여이연, 2010)이었는데, 아직 입고되지 않았다고 했다. 펠스키는 <근대성의 젠더>(자음과모음, 2010; 거름, 1998)를 쓴 페미니즘 비평가다.   

그래도 수확이라고 할 만한 건 바디우의 <공산주의적 가설>(2010) 영역본을 구한 것. 알라딘에는 들어와 있지 않아서 따로 주문을 하려고 했던 책인데, 마침 교보 외서코너에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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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0-09-04 18:02   좋아요 0 | URL
교보문고는 멜로디스라도 좀 어떻게 안 해주나요? ㅜㅜ

로쟈 2010-09-04 18:42   좋아요 0 | URL
교보의 상징물 아닌가요?..

자꾸때리다 2010-09-04 20:20   좋아요 0 | URL
맛두 없구 비싸염 oㅅo

blanca 2010-09-05 11:09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이번에 재개장할때 댓글에 멜로디스 얘기가 나와서 아,,,이젠 좀 달라지겠구나 했지만 여전히 건재하더라구요--;;

yamoo 2010-09-04 20:57   좋아요 0 | URL
저는 신간이 아니라 옛날에 출간된 책을 찾으러 돌아다니는지라..ㅎㅎ
사회계약론은 4개본이 있었는데, 오늘 박영문고본이 눈에 띠어 사왔습니다. 근데, 번역이 어렵게 돼 있더군요...급실망...그럼에도불구하고 좋았던 것은 포켓에 들어갈 정도로 작기 때문에..ㅎㅎ

이 박영문고가 열댓권 있는데요...절판이라서 구하기가 넘 어려운거 같습니다..간혹가다 번역 잘된 고전이 있던데...사회계약론은 아니네요~ 펭귄클래식본을 함 보고 번역 잘됐으면 냉큼 사야 게습니당~~ㅎㅎ

교보문고가 새단장 했다는데...시간되면 가봐야 겠어요~

알비스 2010-09-05 06:27   좋아요 0 | URL
방곤 역/신원문화사의 사회계약론은 가지고 계신가요?
저도 펭귄 것과 비교 중인데, 방곤 역이 괜찮으면 그냥 그것으로 구입할 까 합니다. 펭귄 것은 직역인지 중역인지 불분명해서.

로쟈 2010-09-05 08:11   좋아요 0 | URL
펭귄판도 불어 번역이고 역자는 <에밀> 번역자입니다.
 
다윈과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이번주 출간도서 가운데 분량으로 가장 압도적인 책은 재닛 브라운의 <찰스 다윈 평전>(김영사, 2010)이다. 탄생 200주년이었던 작년에 이미 예고된 책인데, 출간이 약간 늦어졌다(하긴 <종의 기원> 새 번역본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에이드리언 데스먼드 등이 쓴 <다윈 평전>(뿌리와이파리, 2009)과 다윈에 관한 전기 중에서 단연 독보적이라 한다(사실 2000쪽이 넘는 분량 자체가 독자를 압도하고 남는다). 지난주에 나온 최종덕 교수의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휴머니스트, 2010)도 기획상으론 작년에 나와야 했을 것 같은데, 좀 늦춰진 책이다. 다윈 탄생 200주년의 '후폭풍'으로 봐야겠다. 두 책과 관련한 기사들을 챙겨놓는다.   

서울신문(10. 09. 04) 다윈과 한국사회… 대화로 풀다

찰스 다윈(1809~1882)이 1859년 ‘종의 기원’을 내놓았을 때 세상은 들끓었다.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종교적 관념의 뿌리를 뒤흔든 탓이다. 당시 우스터 주교의 부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사실이라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고 했다는 말은 다윈의 진화론이 만들어낸 충격파가 얼마나 컸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진화론이 낳은 파장과 그늘은 오히려 그 이후에 더욱 심각했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대표적 저서 자본론 1권을 다윈에게 헌정했다.’는 헛소문이 돌 정도로 사회주의적 유물론자들에게도 충격을 줬다. 다윈의 진화론이 사회혁명이론의 정당성을 자연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고 본 것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장례식장에서 “다윈이 자연의 발전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마르크스가 인간사회의 발전 법칙을 발견했다.”고 말한 연설은 유물론자들이 다윈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설명해준다.

또 1940년대 구 소련에서는 다윈의 이론을 신성불가침으로 받아들인 생물학자 리셴코가 당시 서구에서 입증된 ‘개체발생 이후의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멘델학설을 부정하며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을 반동으로 몰아 숙청했을 정도로 정치 영역으로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그뿐만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 중 핵심인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은 허버트 스펜서에 의해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으로 설명되더니, 나중에는 그의 저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약육강식’으로 슬그머니 표현을 바꿔서 자유주의 자본주의자들이 열광하는 이론으로 변모했다.

약소 국가와 민족을 침략, 정복해 식민지를 넓혀가고, 생산수단을 가진 자들이 못가진 자들을 지배하는 약육강식형 경쟁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로 활용됐다. 이러한 것의 이론적 토대로서 ‘사회진화론’을 주창한 영국 생물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는 도시마다 역 앞에 군중이 모여 그를 환영한 것 또한 자본주의가 다윈을 받아들인 태도의 단면이다.

자본주의자, 사회주의자 양쪽 모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다윈을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다. 그만큼 다윈이 남긴 학문적 성과는 과학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정치, 경제, 종교, 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뿌리가 된 셈이다. 또 그만큼 불완전한 상태로 열려 있고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학문의 한 핵심축이기도 하다. 이는 다윈이 남겨준 짙은 그늘이 지구를 절반 가까이 돌아 동양, 한국사회에서도 의미있게 논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최종덕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는 200년 전 태어난 다윈이 150년 전에 쓴 저작이 21세기 초반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여러 분야에 걸쳐 학제 간 연구-이른바 통섭(統攝)적 연구-를 진행하는 이들이 모여 머리 맞대고 논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한 최종덕 상지대 교수가 대화의 한 편을 맡고, 학문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학자 임지현 한양대 교수, 시인이면서 생명윤리에 주목하고 있는 전방욱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 의철학을 전공한 인문의학자 강신익 인제대 교수, 노장철학 전공자이며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론을 연구하는 김시천 인제대 연구교수 등이 번갈아 또다른 한 편에 서서 대화를 나눈다.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과학이 신화의 이미지로 포장되는 것의 문제점,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뿌리가 된 다윈, 환경과 생태의 위기 대처로서 진화론 공부, 진화론과 동양적 사유의 상관성 등 폭넓고 발걸음 빠르게 문제의식들을 펼쳐낸다.

그들이 진리에 다가가는 방식은 ‘대화’다. 2000년 전 동양에서 공자가 제자들과 정치·경제·도덕·교육 등 숱한 의제를 다뤘던 방식이었고, 비슷한 시기 서양에서 소크라테스가 제자 플라톤, 소피스트들과 다투고 논쟁하며 진리를 도출해 냈던 방식이었다.

특히 김시천 연구교수와 최종덕 교수의 대화를 통해 진화론적 사유구조는 당연히 생물학적 진화론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과학적 진화론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세계 속에서 잉태한 총체적 사유구조를 뜻함을 보여준다. 생명의 역사와 문명의 시간을 사유하는, 서로의 궤적을 확인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새로운 범주의 고전 해석을 바라보는 것도 이목을 끈다.

이와 함께 ‘찰스 다윈 평전’(전2권, 재닛 브라운 지음, 임종기 옮김, 김영사 펴냄)은 태어나서 비글호 항해를 거친 시절인 1858년까지의 삶과 ‘종의 기원’을 펴낸 1859년부터 말년까지로 나눠 정리했다. 두 책 모두 ‘종의 기원’ 텍스트 자체는 없지만 개념의 정립과 함께 얽혀 있는 뒷얘기, 주변부 사례 등 풍성한 맥락의 설명이 돋보인다. 이를 통해 다윈에 대한 이해를 넘어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해주며 ‘종의 기원’ 원저를 읽고픈 충동을 느끼게 한다.(박록삼기자)   

 

한국일보(10. 09. 04) 다윈 편지 1만4000통 면밀 분석 "진화론은 개인 아닌 사회적 작품"

찰스 다윈(1809~1882)이 활동했던 19세기 영국은 진화와 진보의 시대였다. 인간의 정신과 사회구조의 본질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뿌리내리기 시작했고, 사상가들은 신의 권능보다는 인간 능력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표했다. 경제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생겼다. 급속한 산업화로 시장이 확대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기업가들의 발빠른 상황 적응이 부각됐다. 구체적으로 '진화'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두고 '사회의 자연법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가 생존해 그 변이를 후대로 전달한다는 다윈의 진화론은 지금까지 한 위대한 자연과학자의 인내와 통찰의 결과물로 평가돼왔다. 하버드대 과학사 교수로 다윈 전문가인 재닛 브라운(60)은 그러나 <찰스 다윈 평전>에서 다윈의 업적을 다윈 개인이 아닌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종교 각 분야에서 거대한 변화가 진행되던 빅토리아 시대의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종의 기원>이 출간됐을 때 공공연히 진화론 사상을 옹호한 사람은 정작 다윈이 아니라 그의 과학계 친구들이었다.

저자가 다윈의 위대성을 수많은 정보를 관리하고 중개하는 능력에서 찾는 점도 특색있다. 그는 다윈의 인생을 "편지로 굴러갔다"고 요약한다. 현재 남아있는 다윈의 편지는 1만4,000통이 넘는데 저자는 이를 면밀히 분석, 진화론이라는 다윈의 이론이 사회적 작품이자 집합적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다윈이 자신의 이론을 완성하기 위해 편지를 교환했던 인물은 비글호 항해를 함께했던 동료는 물론 사촌, 숙모, 정원사, 대학교수, 생리학자, 말 사육자, 정원사, 사냥개 사육자 등을 망라한다. 다윈은 다운이라는 농촌마을에서 살았지만 그의 집은 은거지가 아니라 세상과 과학적 교류를 맺는 거대한 '축'이었다는 것이다.

두 권의 책이 각각 1,000쪽 내외의 방대한 분량인데, 양에 걸맞는 내용의 충실함 때문에 <찰스 다윈 평전>은 다윈의 생애와 진화론을 조명한 수많은 책들 가운데 마스터피스로 꼽힐 만하다. 과학자로서뿐 아니라 재테크에도 능했던 자산가로서 다윈의 면모 등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이왕구기자) 

10. 09.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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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4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4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비스 2010-09-05 06:47   좋아요 0 | URL
원서는 1,2권 각각 622, 600쪽인데 번역본은 어떻게 편집을 한 것인지 1권이 1140쪽,2권이 984쪽이네요. 게다가 1권은 거의 2배로 쪽수가 늘어났구요. 혹시,쪽수와 책값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 수도.

로쟈 2010-09-05 08:12   좋아요 0 | URL
한국어판을 보니 표준적인 편집입니다. 원서가 빽빽한 게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