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지구촌 최고의 화제작은 스티븐 호킹의 <거대한 설계>가 될 전망이다. 무신론을 함축한 '자발적 창조론'을 주장하여 영국에서는 이미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국내 언론도 관련기사들을 내보내고 있다. <시간의 역사>(삼성이데아, 1989)가 물리학 책으로는 드물게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전력이 있는 만큼 <거대한 설계>도 곧 한국어본이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그 사이에 20년도 더 되는 시간이 지나가버렸군... 

한국일보(10. 09. 06) [지평선/9월 6일] 호킹의 우주 

다음 주말을 전 세계 많은 이들이 열광 속에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천재물리학자로 불리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책 <거대한 설계(Grand Design)>의 출간이 예고된 때문이다. 대중을 위해 알기 쉽게 우주의 기원과 구조, 팽창과정 등을 설명한 책이라곤 하지만, 앞선 <시간의 역사>나 <호두껍질 속의 우주>처럼 초끈이론, M-이론 등 난해한 현대물리학에 대한 기본이해 없이는 도전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일 것이다. 그의 책은 매번 엄청나게 팔렸지만, 마르크스의 <자본론>처럼 '가장 읽히지 않는 베스트셀러' 소리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어쨌든 <거대한 설계>는 서점에 풀리기도 전에 이미 거대한 논쟁에 휩싸였다. 영국언론은 지난 주 책 내용을 발췌 소개하면서 '신은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도발적 제목을 달았다. 우주의 기원이 된 대폭발(Big Bang)은 물리학 법칙의 필연적 결과라는 그의 '자발적 창조론'을 압축한 표현이다. 더욱이 호킹은 "(창조를 설명하려) 종이에 불을 붙여 우주를 폭발시키는 신을 부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단다. 이 냉소적 비유는 기독교신앙에 바탕한 창조론자, 다른 말로 '지적 설계론자'들로서는 가히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다.

■ 10년 전 책에서도 신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던 그에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신에게 선택된 지구'의 자긍심을 무너뜨릴 만한 또 다른 태양계의 발견이 첫 계기였다고 하지만, 보도내용으로 미루어 우주의 현상을 완벽하고 통일되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도달한 것이 결정적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정말 그런 이론 구축이 현실화한다면 창조론의 입지는 크게 좁아질 것이다. 우주와 생명, 인간의 기원과 발전과정에서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거나, 입증되지 않는 바로 그 지점이 지금까지 신이 머물러온 자리인 때문이다.

■ 모든 인간이 숙명적으로 갖고 있는 세계와 삶의 본질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이 조금씩 답을 얻어가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기꺼운 일이다. 그러나 또한 한편으론 두렵고 허망하다. 과학 발전에 따라 정신작용도, 사랑의 감정을 포함한 복잡미묘한 마음까지도 내분비계 화학적 성분의 조합으로 규명돼간다. 모든 것이 물리법칙과 화학반응으로 설명 가능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과연 후련해서 행복할까?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간의 존엄성이나 존재의미는 그럼 뭘까?…가을 문턱에서 호킹의 신작 소식에 접해 문득 어지러운 상념에 잠긴다.(이준희 논설위원) 

10. 09. 06. 

 

P.S. 책은 <위대한 설계>(까치글방, 2010)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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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주 탄생에 대한 스티븐 호킹의 대답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0-06 08:22 
    영어권에서는 지난달에 출간돼 화제를 모은 <위대한 설계>(까치, 2010)의 번역본이 나왔다(관련기사들에서 '거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로 옮겼었는데, 번역본 제목은 '위대한 설계'가 됐다). 교양과학서로는 이번주에 가장 크게 다뤄질 만한 책이다. 간단한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알라딘에서도 이미 예약주문을 받고 있는 책인데, 나도 주문을 넣어야겠다...    
 
 
마일즈 2010-09-06 17:58   좋아요 0 | URL
그런 지적에 이견은 없습니다만, 과학에 관련된 글쓰기에 항상 따르는 운명같습니다. 특히 보편청중을 청자로 삼는 과학에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 어떤 과학현상을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고 기존과 다른 입장에서 재구성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수식전개는 일반독자보다는 보편청중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의미가 있는거 같습니다.

현대물리학의 섬세한 성과를 비유적으로 차용한 문학글쓰기와도 과학글쓰기는 다른 거 같습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한 경향으로 스티븐 핑커의 글쓰기가 있습니다. 그의 글도 언어학에 관련된 여러 분야를 아우른 일종의 언어과학글쓰기로 보이는데, 맨 처음에 접했을 때 인상과는 달리 그가 전달하려고 했던 내용이 관련된 분야 책을 읽을수록 크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약간의 당혹감이 듭니다.

거의 보편청중을 염두에 둔 과학을 일반독자에게 전달하는 과학글쓰기는 또 다르게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로쟈 2010-09-07 09:04   좋아요 0 | URL
그런 글쓰기가 아쉽게도 국내에선 드문 것 같습니다. 그런 책을 쓸 수 있는 과학자뿐아니라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더 나왔으면 하는데, 그럴 여건은 아직 못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