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 미들리의 <본성과 양육>(김영사, 2004)은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이고 나는 나중에야 구해놓았다. 교양과학서 서가에 꽂아두기만 했었는데 도킨스 덕분에 다시 꺼내들었다. 국역본에서 챙기고 있지 않은 책의 부제는 '유전자, 경험,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Genes, Experience, and What Makes Us Human)'이다(국역본의 부제는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이다). 도킨스 왈, "도중에 놓기 힘든 책이다. 얼마나 훌륭한 작가인가. 그는 갈수록 발전하는 것 같다."


 

 

 

저명한 이 과학저널리스트/저술가의 책들은 국내에 네 종이 번역돼 있는데(<붉은 여왕>의 경우는 개역본이 나왔다) 나는 물론 모두 챙겨두었고 <이타적 유전자>는 영어본도 갖고 있다. 참고로, <HOW TO READ 다윈>(웅진지식하우스, 2007)과 <리처드 도킨스>(을유문화사, 2007)의 저자/편자인 '마크 리들리'는 혼동하기 쉽지만(내가 예전에 혼동했었다) 또 다른 '리들리'로서 도킨스의 제자이자 현재는 옥스포드대학 동물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12인의 털보들(Twelve Hairy Men)'은 <본성과 양육>(원제대로 하면 <양육을 통한 본성>)의 '머리말'이다. 지난 2001년 '게놈' 발견의 가져다 준 충격이 이후에 씌어진 것인데 전체적인 요점을 미리 짚어주면서, 동시에 '흥미로운' 과학서는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시사점도 던져준다.  

먼저 요점은 이렇다: "나는 인간의 행동이 본성과 양육 모두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어느 쪽도 편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용의 도'를 취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게놈은 실제로 엄청난 변화를 몰고왔지만 그 변화는 논쟁이 종료되었거나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누르고 승리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논쟁의 양쪽이 중간에서 만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주장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유전자가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과, 반대로 인간 행동이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이 밝혀지면 논쟁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더 이상 본성 대 양육 논쟁이 아니라 양육을 통한 본성 논쟁이 될 것이다."(17-8쪽) 

그리고 시사점. 리들리는 가상의 사진 한 장을 떠올려보자고 제안하는데, 1903년에 찍힌 이 사진은 "가령 바덴바덴이나 비아리츠 같은 휴양지에서 열린 국제회의의 기념사진이다." 이 가상의 사진이 국역본 속지에 들어 있는 것인데(그러니까 인물들은 모두 조합된 것이다) 거기엔 '1903년 4월 1일 프랑스 바이리츠에서'라고 돼 있다(만우절에 찍은 사진이다!). 비아리츠는 프랑스 남서부의 해변 휴양지이다. 즉 아래 사진 같은 곳에서 국제회의를 연 걸로 치자는 것이다.  

참석자는? "사진 속 인물들은 남자들이지만 어린 소년도 있고, 아기도 있고, 유령도 있다(*실제 나이를 고려하면 그렇다는 얘기이다). 나머지는 중년이나 노인이고, 모두 부유한 백인이다. 모두 12명인데, 나이에 걸맞게 대부분 수염을 기르고 있다. 미국인, 오스트리아인, 영국인, 독일인이 각각 2명이고, 네덜란드인, 프랑스인, 러시아인, 스위스인이 1명씩이다."(18쪽) 이 사진의 모델이 된 건 "1927년 솔베이에서 찍은 물리학자들의 유명한 단체사진(아인슈타인, 보어, 마리 퀴리, 플랑크,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디렉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이건 진짜 사진이다!).

이 물리학자들의 단체사진과 견주기 위해 리들리가 불러모은 "12명은 20세기를 지배하게 될 중요한 인간 본성 이론을 완성한 사람들이다." 이 가상의 사진을 옮겨올 수 없으므로 다만 상상만 해보시길(국역본에 들어 있는 사진은 모두가 서 있는 걸로 보아 리들리가 상상해본 사진과는 다른 버전으로 보인다. 국역본 편집자들의 작품인가?).

"우선 머리 위에 떠 있는 유령은 찰스 다윈(1809-1882)인데, 이 사진을 찍기 11년 전에 죽었기 때문에 턱수염이 가장 길다. 다윈의 생각은 원숭이의 행동에서 인간의 특성을 찾는 것으로, 가령 미소 같은 보편적 인간 행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사진 왼쪽 끝에 꼿꼿이 앉아 있는 노신사는 그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1822-1911)으로, 81세의 나이에도 매우 정정해 보인다. 양쪽 뺨에는 구레나룻이 흰쥐처럼 매달려 있는 골턴은 유전의 열렬한 옹호자다."

"그 옆에 앉아 있는 미국인 윌리엄 제임스(1842-1910)는 61세인데, 각지고 어수선한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본능의 옹호자인 그는 인간이 가진 충동이 다른 동물보다 적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다고 주장한다."

"골턴의 오른쪽에 서 있는 식물학자는 인간 본성과 관련된 모임에 참가한 것이 못마땅한 듯 헝클어진 턱수염에 찡그린 인상을 하고 있다. 그는 55세의 네덜란드인 위고 드브리스(1848-1935)로, 유전의 법칙을 발견했지만 30여년 전, 모라비아의 수사 그레고르 멘델이 자신보다 10년 먼저 그것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안 후로는 늘 우울한 표정이다."

"그 옆에 선 54세의 러시아인 이반 파블로프(1849-1936)는 회색 턱수염이 유난히 무성하다. 경험주의 옹호론자인 그는 마음의 열쇠가 조건 반사에 있다고 믿는다."

"그 앞엔 유일하게 말끔히 면도한 존 브로더스 왓슨(1878-1958)이 앉아 있다. 파블로프의 이론을 '행동주의'로 발전시킨 그는 단지 훈련만으로도 성격을 임의대로 바꿀 수 있다는 주장으로 유명하다."

"파블로프의 오른쪽에는 통통한 체격에 안경을 쓰고 콧수염을 기른 독일인 에밀 크레펠린(1856-1926)과, 깔끔하게 턱수염을 기른 비엔나 출신의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서 있다."

"47세의 동갑인 두 사람은 후대의 정신병 의사들에게 '생물학적 설명에서 벗어나 개인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는 각자의 이론을 가르치는 중이다."

"그 옆에는 사회학의 개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이 있다. 45세의 나이에 덥수룩한 턱수염을 기른 그는 사회적 실체가 그 부분들의 총합 이상이라고 열심히 주장한다."

"이 점에 있어서 정신적 파트너에 해당하는 사람이 그의 옆에 서 있다. 45세의 프란츠 보아스(1858-1942)는 축 늘어진 콧수염과 결투의 상처가 보이는 위세 당당한 얼굴을 똑바로 들고, 인간 본성이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인간 본성을 만든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한다."

"맨앞의 어린소년은 스위스에서 본 장 피아제(1896-1980)로, 그의 모방과 학습이론은 세기 중반에 결실을 맺을 것이다."

"유모차 속에 있는 아기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콘라트 로렌츠(1903-1989)다. 1930년대가 되면 그는 하얀 염소 수염을 자랑하면서 본능에 대한 연구를 부활시키고 각인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설명할 것이다."

세기의 학자들을 이렇게 다 불러 모아놓고 저자 리들리가 제기하는 주장: "나는 이 12명에 대해서 아주 놀라운 주장을 제기하고자 한다. 즉 그들은 모두 옳았다.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며, 도덕적으로 옳다는 얘기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진실의 씨앗을 간직한 독창적인 개념으로 인간 본성의 과학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옳았다. 그들 모두 거대한 벽에 벽돌을 놓았던 것이다."(21쪽)

요컨대 "인간 본성은 다윈의 보편성, 골턴의 유전, 제임스의 본능, 드브리스의 유전자, 파블로프의 반사, 왓슨의 연상, 크레펠린의 역사(개인사), 프로이트의 형성적 경험, 보아스의 문화, 뒤르켐의 노동 분업, 피아제의 발달, 로렌츠의 각인이 모두 결합된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속에 합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없으면 인간 본성에 대한 어떤 설명도 부실해질 것이다."  

여하튼 그만하면 화려한 캐스팅이다.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거울 여행'을 매트 리들리와 함께 시작해볼까...

07. 08. 05.

P.S. '12인의 털보들' 가운데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은 개인적으로 처음 알게 된 이름이다. 그밖에 골턴과 드 브리스, 그리고 왓슨과 보아스도 국내에는 소개된 바가 없지 않나 싶다(왓슨의 경우엔 그의 제자인 B. F. 스키너가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다윈과 프로이트도 제외하고 나머지 5명의 책들만 꼽아보도록 한다(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책의 한계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윌리엄 제임스, <심리학의 원리> 외

 

 

 

 

이반 파블로프

 

 

 

 

에밀 뒤르켐,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 외


 

 

 

장 피아제, <교육론>

 

 

 

 

 콘라트 로렌츠, <솔로몬의 반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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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08-05 23:58   좋아요 0 | URL
와.. 꼬장꼬장한 분들 많이 모아놓았네요. 그런데 책 재밌겠어요.^^

로쟈 2007-08-06 00:17   좋아요 0 | URL
인간 본성론에 관심을 갖고 계시다면 핑커의 <빈 서판>과 같이 읽어볼 수 있는 책이죠...

수유 2007-08-06 14:58   좋아요 0 | URL
<본성과 양육> 아주 흥미로운 책이네요..구입해서 읽어보렵니다.
삐아제 양반 얼굴을 수십년만에 다시 보는 감회..
12명의 털보들.. 그들의 수염은 그들의 벽돌 만큼이나 멋지네요^^;;

로쟈 2007-08-06 16:50   좋아요 0 | URL
출간된 지는 꽤 된 책이지요.^^;

심술 2007-08-06 19:34   좋아요 0 | URL
프랜시스 골턴이 저렇게 생겼구나. 주식투자하는 데 도움 된다고 해서 피터 번스틴의 리스크라는 책을 읽다 중간에 포기했는데 거기에도 골턴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수유님이 말씀하신 벽돌이란 뭔지요? brick을 말씀하신 건 아닌 듯 한데...

로쟈 2007-08-06 20:24   좋아요 0 | URL
본문에 "그들 모두 거대한 벽에 벽돌을 놓았던 것이다"란 문장이 있습니다.

심술 2007-08-07 18:47   좋아요 0 | URL
아, 다시 읽어 보니 보입니다.
 

화제가 되고 있는 책,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에서 제6장 '도덕의 뿌리: 우리는 왜 선한가?"를 읽었다. 주중에 피터 싱어의 <다윈의 대답1: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이음, 2007)를 읽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어진 독서였다.

 

 

 

6장은 네 개의 절로 나뉘어져 있지만 핵심적인 절은 '다윈주의와 도덕의 기원'일 것이다(일단 타이틀이 대표성을 띤다). 번역도 매끄럽고 여러모로 잘 만들어진 이 책에서 그래도 흠을 잡자면 참고문헌이 수록되지 않은 걸 들 수 있겠다. 미주까지는 붙어 있지만, 가령 6장의 미주3)에서 참고하라고 소개된 Hinde(2002)가 무슨 책을 말하는 것인지는 번역본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다(물론 손품을 좀 팔아서 검색해본다면 알아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대다수 독자들이야 별로 불편함을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서지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좀 아쉬운 일이다(참고문헌만 복사할까 했더니 도서관의 책은 대출중이다. 참고문헌 때문에 원서를 구입해야 할까?).

예컨대, Hinde(2002)라고 표기된 참고문헌은 본문에서 "로버트 힌데의 <선은 왜 선인가?>"(325쪽)로 옮겨진 'Why Good is Good: The Sources of Morality'란 책을 가리킨다. 다는 아니겠지만 참고문헌 읽기를 즐기는 독자들에겐 이런 정보가 본문만큼이나 요긴하고 흥미롭다. 문제는 그 흥미를 충족시키는 일이 좀 번거롭다는 것.

그나마 로버트 힌데의 책은 나은 편이고 "우리의 옳고 그름에 대한 관념이 다윈주의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몇몇 책들, 곧 '다윈주의와 도덕의 기원'에 대해서 말해주는 책들로 도킨스가 거명하고 있는 다른 책들은 번역된 제목만 가지고 서지를 추적해야 한다. "마이클 셔머의 <선과 악의 과학>, 로버트 버크먼의 <신이 없어도 우리는 선할 수 있는가?>, 마크 하우저의 <도덕적 마음: 자연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인 감각을 어떻게 설계했는가?>" 같은 책들의 경우가 그렇다.

잠시 손품을 팔도록 한다. 먼저 셔머의 책이 그래도 쉬운 편인데, <선과 악의 과학>이니까 키워드 몇 개를 쳐넣으면 'The Science of Good and Evil:  Why People Cheat, Gossip, Care, Share, and Follow the Golden Rule'(2004) 같은 다소 긴 제목의 책이 뜬다(368쪽 분량이니까 우리말로 옮기면 450쪽은 되겠다). 저자 마이클 셔머는 'Michael Shermer'로 표기된다는 것도 알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곁가지로 같은 저자의 <과학의 변경지대>(사이언스북스, 2005)가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는 사실도 챙길 수 있다.

그리고 두번째 로버트 버크먼(Robert Buckman)의 책의 경우도 대충 영작을 해서 검색해보면 'Can We Be Good Without God?: Biology, Behavior, and the Need to Believe'(2002)란 책이 뜬다(278쪽 분량이다). 그리고 마크 하우저(Marc Hauser)의 책 'Moral Minds: How Nature Designed Our Universal Sense of Right and Wrong'(2006)도 쉽게 검색되는데(512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사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구입한 독자들이 같이 산 책이라고 열거돼 있기도 하다.

 

 

 

 

도킨스는 이 장에서 서두에 열거한 저자들이 펼친 주장을 그 나름대로 다시 개진하겠다고 하는데, 여하튼 보다 심화된 독서를 위해서는 힌데, 버크먼, 하우저의 책들도 참고해볼 수 있겠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매트 매들리의 책을 들 수 있을 터인데, 도킨스 또한 잊지 않고 있다. "매트 리들리는 <덕의 기원>에서 다윈주의적 도덕이라는 분야 전체를 명쾌하게 설명할 뿐 아니라 평판에 대해서도 아주 탁월한 설명을 제시한다."(331쪽) 여기서 도킨스가 언급하고 있는 <덕의 기원(The Origins of Virtue)>이 우리에겐 <이타적 유전자>(사이언스북스, 2001)로 번역된 바로 그 책이다(오해의 소지가 있는 제목이긴 하다).

<이타적 유전자>를 펼쳐본 이라면 알겠지만 책의 프롤로그는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탈옥'을 다루고 있는데, 거기서 '어느 무정부주의자'란 '상호부조론'의 제창자 표트르 크로포트킨(1842-1921)이다. 그는 1876년 동지들의 치밀한 계획과 헌신 덕분에 차르의 감옥으로부터 탈옥에 성공한다. 이후에 영국으로 망명한 크로포트킨은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저작에 몰두하기 시작하며 "저술을 통해 그는 무정부주의의 이상을 설파했다. 또 그와 동지들이 붕괴시키기 위해 투쟁해 온 중앙집권적-귀족주의적-관료적 국가를 재창출하려는 시도로 여겨지는 이념적 라이벌인 마르크시즘을 공격했다."(12-3쪽) 그렇게 해서 저술한 것이 대표작 <상호부조론>(<만물은 서로 돕는다>)이다. 그의 이론에 대한 리들리의 평가는 이렇다.

"크로포트킨의 이론은 찰스 다윈의 이론과 같은 기계적 진화론이 아니었다. 다윈은 사회성이 높은 종이나 집단이 사회성이 낮은 종이나 집단과의 경쟁에서 적자생존을 한다는 것 외에는 상호부조가 어떻게 사회 속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크로프트킨이 절반은 옳았음을 입증하는 한편, 인간 사회의 뿌리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뿌리 깊은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다. 사회가 제구실을 하고 굴러가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훌륭하게 고안해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우리의 진화된 소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본성에 내재한다."(15쪽)

어떤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진화적 본성, 혹은 협동(상호부조) 성향을 도킨스가 정리하고 있는 바는 이렇다: "현재 우리가는 개체들이 서로에게 이타적이고 관대하고 '도덕적'이 되려는 타당한 다윈주의적 이유를 네 가지 알고 있다. 첫째, 유전적 친족 관계라는 특수한 경우가 있다.둘째, 호혜성이 있다. 받은 호의에 보답을 하고, 보답을 '예견'하면서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셋째, 관대하고 친절하다는 평판을 얻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다윈주의적 혜택이다. 넷째, 자하비가 옳다면 과시적 관대함은 속일 수 없는 진정한 광고의 역할을 한다."(332-3쪽) 

그렇다면 이러한 '이타적' 본성은 어떻게 진화될 수 있었을까? 도킨스의 생각으론 '실수'나 '부산물'로 진화돼 왔다: "인간이 비비처럼 작고 안정적인 무리로 살아가던 시대에 자연선택은 인간의 뇌에 성적 충동, 굶주림 충동, 이방인 혐오 충동 등과 함께 이타적 충동도 프로그램해놓았다.(...) 나는 친절함, 이타주의, 관대함, 감정이입, 측은지심 등의 충동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성(불임이나 다른 어떤 이유로 자식을 낳을 수 없을지도 모를 상대)에게 욕망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울먹이는 불행한 사람(친척도 아니고 보답을 받을 수도 없을 누군가)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측은지심을 느낀다. 둘다 빗나간 사례이자 다윈주의적 실수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행스럽고 고귀한 실수이다."(334-5쪽)

마치 오목눈이 어미새의 뻐꾸기 사랑처럼...

07. 08.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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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0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최근 이런쪽 - 조금 벗어나있긴 하지만 - 에 대해 책 읽고 있는지라, 다른 관점에서 도덕을 바라보게 되는군요.

로쟈 2007-08-05 11:36   좋아요 0 | URL
언급된 책들 가운데 하우저의 책은 도킨스도 풀이해주고 있는데 번역되면 좋겠습니다. 종교와 무관하게 우리의 진화적 본성(도덕감각)은 일정한 틀을 갖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블루비니 2008-04-08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책 열거는 하나 책 내용에 대한 건 별로 없군. [대다수 독자들이야 별로 불편함을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서지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좀 아쉬운 일이다] ㅋㅋㅋ 그렇게 튀고 싶수?
 

'경계인'이란 말에서 당신이 어떤 이념적 경계, 가령 송두율 교수의 <경계인의 사색>(한겨레출판, 2002) 같은 책을 떠올렸다면 좀 미안한 일이다. 아래 기사에서 '경계인'은 '경계성 성격장애인'을 가리키고 나도 그런 뜻의 제목을 붙였다. '경계성 성격장애로부터 내 삶 지키기'란 부제를 가진 신간 <잡았다, 네가 술래야>(모멘토, 2007)에 관한 리뷰인데, 책에 대한 나의 관심은 두 가지 근거를 갖는다. 하나는 우리 주변에 '경계인'들이 의외로 드물지 않다는 것.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인물들을 이해하는 데 유용할 수도 있겠다는 게 다른 하나다. 부제를 고려하건대 저자는 경계인들의 주변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취지로 책을 낸 듯싶다. '심리치료'로 분류되는 책들의 홍수 속에서 한 권 건져놓는다.   

한겨레(07. 08. 04) 경계성 성격장애인, 이 ‘웬수’ 같은 그대여!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이 시에는 폭발하는 질투와 좌표 잃은 사랑이 염천의 개처럼 헐떡인다. 그렇지만 문학적 열정과 회한이 상대를 할퀴고 끝내 자신마저 할퀴는 실제 상황으로 바뀐다면 그사람은 경계성 성격장애인(이하 경계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피부의 90% 이상에 3도 화상을 입은 사람과 같다. ‘정서적 피부’가 없어 사소한 접촉에도 심한 괴로움을 느끼니까. 경계인은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예측 못할 행동으로 주변 사람을 곤경에 빠뜨린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에게서 자꾸 도망가는 것 같아 조바심내고, 검은과부거미한테 쏘인 것처럼 펄쩍펄쩍 미쳐 날뛴다.

경계인의 참담한 고백을 들어보자. “어제 약혼자에게 악을 쓰다가 약혼반지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러나 오늘 나는 그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논리적 이유는 없지만, 그가 바람을 피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머니와 통장을 뒤진다. 직장으로 찾아가서 그가 있는지 확인한다. 별일 없으면 안도감과 함께 창피함을 느낀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하지만 헛일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주변 사람이다. 경계인은 누군가를 붙잡아 술래로 만들어야 하고, 그 대상이 된 사람들(이하 비경계인)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도대체 자신이 왜 그 사람한테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경계인보다 더 참담한 비경계인의 말도 들어보자. “직장에서 귀가 시간이 5분이라도 늦어지면 아내는 끊임없이 전화를 건다. 친구들과 외출할 수도 없다. 영화를 보는 중에도 벨이 울린다. 스트레스가 심해 이제는 아내와 함께가 아니면 친구와 어울리는 일도 그만두었다.”

경계인들에게 초점을 맞춘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배우자, 연인, 가족, 친지 등 그들의 곁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 경계인을 아끼기 때문에 훌쩍 떠나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때로는 ‘감정 노동’이, 때로는 ‘정서적 전투’가 필요한 지피지기의 살벌한 전장이다. 비경계인의 생생한 증언이 이 책의 고갱이다. 그 생생한 증언은 ‘고독한 자에게 보내는 키스’이며 훌륭한 ‘생활의 지혜’다. 자, 주변을 둘러보자. 마치 80년대 ‘이런 사람을 신고하자’는 국가안전기획부의 간첩 식별법 같은 몇 가지를 열거해 본다.

△그 사람이 감정변화가 극심한지 △자신의 행동을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반대로 타인의 행동에 지나친 책임감을 느끼는지 △당신의 말과 행동을 의도와 다르게 왜곡해 공격하는지 △흑백논리의 양극단을 끊임없이 오가는지 △자신이 관심의 초점이 되지 않으면 무시당했다고 느끼는지 △바라는 바가 변화무쌍해서 도저히 비위를 맞출 수 없는지 △과음, 약물남용, 폭식, 난폭운전 등 자해적 행동을 하는지 △당신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늘 빠뜨리는지를 살펴보자.

해당 사항이 많다면 당신은 피곤하다. 그러나 쉽게 매도하지는 말자. 경계인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수칙들을 숙지하면 비경계인이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복음을 얻게 된다.

주변에는 비교적 중증인 나 자신을 포함해 경계인 의증 환자들이 여러 명 보인다. 실제로 1996년 서울 여자대학 3곳의 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5.6%가 경계인이었다. 그들은 타인과 친밀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기 때문에 치료가 어렵다. 약물을 쓰기도 하지만 감정, 행동, 사고, 생리적 요인까지도 세심하게 보살펴야 한다. 각각의 사례들은 그와 당신 사이에 놓인 높은 성벽과 깊은 해자를 밀어내며 소통의 첫 단추를 끼우게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경계인도 하늘에서 떨어진 별종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 가진 특징을 좀더 과장되게 지닌 사람들일 뿐이라는. 그러므로 경계성 성격장애인은 나와 당신에게 들이대는 반성의 거울이다.(손준현 기자)

07. 08. 04.

P.S. 혹 주변에 '경계인'이 없다면(그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지만) 경계성 성격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영화들을 참조해볼 수 있겠다. 김혜수 주연의 <얼굴 없는 미녀>(2004)가 그런 영화이다('경계인' 증상에 더 맞는 제목은 '피부 없는 미녀'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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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8-04 18:40   좋아요 0 | URL
끄윽, 채점해 보니 저도 경계선 인격장애군요.

로쟈 2007-08-05 11:16   좋아요 0 | URL
주변에 생각보다 많습니다.^^;

philocinema 2007-08-07 17:50   좋아요 0 | URL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경계성 인격장애)에 대한 미국정신의학회의 보고에 의하면 유병률은 0.7~1.0%정도 되며, 여자가 남자보다 3배 많다고 합니다.
또한 정신과 입원 및 외래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인격장애 랍니다.

다양한 환자분들을 만나온 8년간의 정신과 의사로서의 경험을 되짚어 볼 때 개인적으로 가장 마주하기 힘든 분들이 바로 "경계인"들이었습니다.

이 책이 일반인들로 하여금 주변의 경계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로쟈 2007-08-07 18:36   좋아요 0 | URL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대하기 어렵다니까 흥미롭네요...

philocinema 2007-08-08 11:38   좋아요 0 | URL
가장 흔하면서 가장 대하기 어렵다는 것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대하기 쉬웠다는 것은 결국 의사의 입장인데, 쉬웠다는 것은 의사의 면담을 통해 환자가 자신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는 얘기일테고(그래야 의사 입장에선 대하기 편했다는 생각과 치료가 수월했다는 생각이 들테니까요!) 성찰이 충분히 이뤄져 인격에 변화가 왔다면 이제 더 이상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상황은 아닐테니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가 없겠지요!


글은 처음 남기지만 2년전부터 이곳에 들르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올초까지 군에 있었던 군의관 생활동안 독서모임을 정기적으로 1주에 2번씩 가졌는데, 참석했던 분들에게 로쟈님 서재를 소개했고, 그중 몇 분은 로쟈님의 서재를 방문한 뒤 소개만 해드렸을 뿐인 제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시더군요.
이 자릴 빌어 그 분들과 저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좀 엉뚱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만나뵙고 얘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구요.


로쟈 2007-08-08 11:42   좋아요 0 | URL
사실 저 혼자 떠드는 일이 대부분이어서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때가 많은데, 가끔씩 좋은 평들을 해주시면 감사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냥 기본적으론 좋은 책이 많이 나오고 많이 읽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고(그럼 세상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란 기대도 있구요) 그게 다음 세대에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게, 물려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따름입니다. 그러러면 좋은 의학서적들도 많이 나와야 할 텐데요.^^

philocinema 2007-08-08 15:45   좋아요 0 | URL
실제로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건너편에 상대가 있어 말을 주고 받는다곤 해도 따지고 보면 자기 생각을 그냥 혼자 떠드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만 그런 독백들 가운데에서도 귀 기울이고 싶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고 싶은 독백들이 있더군요! 바로 로쟈님의 독백이 그런 경우 였습니다. 적어도 제겐^^..
독백으로 말하고 있었는데 누군가로부터 관심을 받으시니 어리둥절하다는 느낌이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어리둥절한 그 순간이 바로 독백으로부터 상호간 대화로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님의 말씀처럼 저 또한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책이 출간되고 읽혀졌으면 하는 소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답니다. 자기 분야의 specialist는 많아 보이지만 교양인으로서의 generalist는 만나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전 개인적으론 제 분야의 책은 그리 많이 읽지 않고 있습니다. 시간 나는대로 다른 분야의 책을 되도록 많이 접해보려고 하지요, 그런 상황에서 만난 님의 글은 메마른 대지에 나리는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좋은 의학서적이라!
워낙이 의학분야가 고유의 "인본주의"가 사라진채 상업적 자본주의와 결탁이 되어서 그런지 획기적이라고 발표되는 논문이든 책이든 다국적 제약회사의 입맛에 맞는 분야의 연구들만 진행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많습니다.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것이 때론 부끄럽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런 기우의 대척점 어디선가 좋은 의학서적이 써지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놓지 않고 싶네요. 진화생물학이나 심리학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은데 로쟈님이 한 번 써 보실 생각은 없으신지?


 

한겨레 북리뷰란에 연재되고 있는 '김윤식의 문학산책'의 이번주 이야기는 '콰이강의 다리'에 관한 것이다(영화는 http://www.youtube.com/watch?v=7DWlVNCiM8E 참조). 칼럼을 읽다가 의문(호기심)도 생기고 개인적인 기억까지 겹쳐서 '조사'를 좀 해보았다. 몇 마디 보탠다. 모처럼 비가 시원스레 오는군...

한겨레(07. 08. 04) '콰이 강의 다리’의 조선인 포로감시병

휘파람 행진곡의 익살스러움을 아시는가. 그럴 수 없이 경쾌한 행진곡에 누더기 군복 차림의 영국군 포로의 행진이 화면 가득 펼쳐졌소. 차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 두목 니콜슨 대령의 당당함, 그를 따르는 병졸들의 해맑은 표정. 영화 <콰이 강의 다리>(1957, 데이비드 린 감독)를 보고 있노라면 연합군 포로 수만 명의 희생 위에서 가까스로 이루어진 태국·미얀마 접경 철도 건설(1942~43)의 비극은 가뭇없고 문득 저 헤겔의 주인·노예의 변증법만이 커다란 얼굴을 내밀고 있소. 다리 건설 과정을 통해 포로수용소 소장 사이토 대령이 노예로 전락하는 과정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지 않겠는가. 설계도를 작성할 수 있는 노예란 벌써 노예일 수 없는 것. 이 점을 1930년대 코제브는 파리고등연구원에서 메를로 퐁티, 조르주 바타유 등에게 가르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기껏해야 행진곡의 경쾌함이 가까스로 남았을 뿐. 


원작소설의 경우는 어떠할까. 그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원작자 피에르 불의 소설 <콰이 강의 다리> 제1부에는 이런 대목이 있소. “니콜슨 대령은 두 사람의 거인에게 끌려갔다. 그들은 둘 다 조선인으로 사이토의 호위병이었다”(오징자 역)라고. 잇달아 이렇게도 적혀 있지 않겠는가. “한 주일 동안을 그는 고릴라 같은 조선인 보초병의 얼굴밖에 볼 수 없었다. 그 보초병은 자기 개인의 특권으로 매일같이 쌀밥에 소금을 덧쳐주는 것이었다”라고. 또 썼군요. “니콜슨 대령은 또 다시 얻어맞았다. 그리고 그 못생긴 조선인은 처음의 그 비인간적 대우를 다시 하라는 냉혹한 명령을 받았다. 사이토는 그 호위병까지 때렸다”라고. 일본군은, 포로 감시원으로 조선인을 사용했음이 조금은 드러나 있소. 8년간 말레이시아에서 토목기사로 종사한 작가이고 보면 이 점이 썩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오.

어째서 일본군은 포로수용소 감시병에 조선인을 사용했을까. 이 물음은 혹시 전범으로 연합군에 의해 처형된 홍사익(1900~46) 중장에도 이어질까(*사진에서 오른쪽 끝). 조선인으로 별을 셋이나 단 이는 홍사익뿐이었음은 모두가 아는 일. 육사 26기이자 조선인으로 유일한 육대 출신의 홍사익이 필리핀 포로수용소 소장으로 간 것은 1944년 10월. 처형 당한 것은 종전 이듬해 9월. 그렇다면 사이토 대령에게 모질지 못한 탓에 얻어맞은 고릴라처럼 생긴 조선인 감시병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실마리 하나를 잠시 볼까요. 조선인 학병으로 비극의 버마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귀환한 이의 기록에 따르면 귀국선 캠벨호엔 병정 40여 명이 위안부 5백여 명 그리고 포로감시원 7백여 명이 탑승했다 하오(이가형, <버마 전선 패잔기>). 기억에 의한 기록이기에 그 숫자의 정확성 여부까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요컨대 기록자의 말 그대로 ‘모두가 불운했던 민족의 제물들’임엔 분명합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 중 전범으로 처형된 조문상(趙文相)의 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유령으로라도 지상에 떠돌 것이다. 그도 불가능하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라도 떠돌 것이다”라고.

<콰이 강의 다리>란 우리에겐 새삼 무엇일까. 하나는 영화이고 또 하나는 소설이다, 라고 스스로 묻고 대답해 봅니다. 환각으로서의 스크린이고 환청으로서의 휘파람 소리이다, 라고. 동시에 사실이고 역사이다, 라고. 그렇다면 실체란 없는 것일까. 만일 실체란 것이 있어야 한다면 거기에 놓인 실체란 저 헤겔이 말하는 주인·노예의 변증법이 아니었을까.(김윤식 / 문학평론가, 명지대 석좌교수)

07. 08. 04.

P.S. 몇 가지 조사해본 내용이란 건 원작자 페에르 불과 <콰이강의 다리>의 국역본에 관한 것이다(홍사익 중장에 대해선 이규태 칼럼을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다). 일단 시중에서는 <콰이강의 다리> 국역본을 구할 수 없다는 것.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만 좀 의외이다. 칼럼에서 '오징자 역'이라고 돼 있는 것으로 보아 번역본이 나왔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한데 '오징자'? 불문학 번역자인 '오증자' 교수와 동일인인 듯싶은데 어째서 '오징자'일까, 하며 찾아보니 '오징자'로 검색되는 책들이 있다. <콰이강의 다리>는 여러 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었는데, '오징자 역'으로 돼 있는 건 삼진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12권(1976)이다(같은 번역의 다른 판본들도 나와 있다). 징후/증후에서처럼 한자 음독의 문제일까?  

원작자 피에르 불(1912-1994)은 이름이 말해주듯이 프랑스 작가이다('피에르 불레'로도 표기돼 왔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게 바로 <콰이강의 다리>(1952)와 <혹성탈출>(1963)이다(팀 버튼이 리베이크하기도 했던 바로 그 영화). 얼핏 같은 작가의 작품일까 싶지만, '탈출' 모티브로 묶이는 것도 같다.

이 <혹성탈출>도 예전에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승산서관, 1979) 등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 아마도 일역본에서 중역된 것이 아닐까 싶고, 그 일역본의 제목이 '혹성탈출'인 듯싶다(원제는 '원숭이의 혹성'이다). 이 정도면 대중적인 지명도를 갖춘 작가/작품인데 도서관에서나 찾아 읽어볼 수 있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 아닐까...

P.S.2. <콰이강의 다리>는 내게 언제는 초등학교 2학년 때를 떠올리게 해준다. 갓 전학온 학교의 담임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들려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의 줄거리였다. 덕분에 별다른 기억을 따로 갖고 있지 않은 이 선생님의 인상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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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8-0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색도 좋구요. 첨 들어보는 작간데 작품은 영화로 둘 다 본 적 있습니다. 그 두 작품 원작자였구나.

로쟈 2007-08-04 18:29   좋아요 0 | URL
저도 작가의 이름은 이번에 처음 확인했습니다...

2007-08-05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8-06 00:14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가능한 일이긴 한데, 그랬다면 좀 쑥스럽군요.^^;
 

한겨레21에서 간혹 시집 대신에 '시 읽어주는 남자'를 읽는다. 최근에 나온 읽을 만한 시집들이 어떤 것이 있나 요긴하게 일람해볼 수 있는 연재 꼭지이다. 대개는 읽고 말지만 오늘은 하도 '번뇌'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이기에 옮겨놓는다. 시인과 평론가가 합창하며 말하기를 우리의 삶은 '백팔번뇌 콘서트'가 아닌가, 라고 하니 춤은 안되더라도 박자는 맞춰줘야 하는 게 아닌가도 싶고(그래야 민폐를 안 끼칠 테니!). 자, 곧 당신 차례다. Are You Ready?

 

한겨레21(07.08. 02) 라라라~ 백팔번뇌 콘서트

SES’는 3명, ‘핑클’은 4명이었다. 한창 활동 중인 ‘원더걸스’는 5명이다. 그리고 이제 ‘소녀시대’가 온다. 이번에는 9명이다. 최근 온라인 틴에이저 커뮤니티의 최대 이슈 중 하나가 이 9명의 소녀들이다. 음반도 출시되지 않았고 방송 데뷔도 아직 안 했다. 그러나 이들의 노래와 영상은 이미 인터넷에서 인기다. 그래서 보았다. 상큼한 노래, 발랄한 군무, 다 좋다. 그런데 9명이라니, 너무 많지 않은가.

천만에. 일본에는 초대형 걸그룹 ‘번뇌걸즈’가 있다. 이 해괴한 이름의 팀을 구성하는 멤버는, 놀라지 마시라, 총 108명이다. 그러니까 백팔번뇌인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이 팀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들은 삼각편대로 대열을 맞추고 말도 안 되는 노래를 무표정하게 부르면서 그야말로 ‘엉거주춤’을 추고 있었다. 정말이지 번뇌가 밀려왔다. 도대체 뭐하자는 건가. 조롱하고 냉소할 힘도 없다. 어쩐지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어 영상을 끄고 말았다.

물론 대중음악은 본디 예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산업의 영역이다. 그러니까 무에서 유를 낳는 창조의 영역이 아니라 유가 더 많은 유를 낳는 장사의 영역이다. 인재를 발굴해 자본을 투입하고 스타로 만들어 잉여가치를 뽑아낸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튀어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108명은 너무했다. ‘장사’가 되기는 할까? 이것은 무한경쟁 상업주의의 제 살 깎아먹기가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진부한 물음이다. 시인들의 뛰어난 상상력은 물음 자체를 바꾼다.

“라라라, 여긴 매우 비좁군요 머릿속은 당신이 모른 채 당신이 상연되는 콘서트장이죠 걱정 말아요 우린 아주 잠시 동안만 당신을 빌릴 거예요// 우리의 하모니는 서로를 비난하는 데 바쳐지죠 당신은 누구지요? 이름이 뭐예요? 우리는 의심 많은 소녀들, 머릿속은 고장 난 앰프처럼 먹통이 되겠죠 우린 점점 증폭되고 있어요.” 번뇌걸즈를 소재로 한 시 ‘번뇌스런 소녀들-리허설’의 전반부다. 후반부는 이렇다.

“우린 하루 종일 둥글게 둥글게 입을 모아요 각자의 목소리만 너무 사랑하는 우린 즐거운 소녀들, 라라라, 발성 연습은 언제나 아름다워요 당신이 당신을 잊어버릴 때까지 우린 노래 부를 거예요// 누구를 가장 좋아하세요? 라라라, 마지막 멤버가 도착했군요 당신은 서서히 돌 거예요 당신은 108개의 목소리를 갖게 됩니다 당신에게 새로운 노래를 불러드리겠어요.”

최근에 출간된 김경인 시인의 첫 시집 <한밤의 퀼트>(랜덤하우스·2007)에서 골랐다. 이 시는 번뇌걸즈라는 이름을 곧이곧대로 해석해 오히려 신선해졌다. 그래, 저기 108명의 ‘번뇌’들이 노래하고 있군. 그런데 당신은 뭐가 놀랍다는 거지? 저건 그냥 당신의 머릿속과 똑같아. 108명의 “의심 많은 소녀들”이 나와 당신의 머릿속에서 오늘도 콘서트를 열고 있어. 번뇌들, 내 머릿속의 소녀들, 끝없이 욱신거리는 내 영혼의 노래들.

번뇌걸즈를 보면서 상업주의의 복마전을 생각하는 일은 따분하지만, 그 소녀들을 ‘내 머릿속’으로 기꺼이 불러들이는 시인의 상상력은 재미있다. 예컨대 “우리의 하모니는 서로를 비난하는 데 바쳐지죠”라든가, “각자의 목소리만 너무 사랑하는 우린 즐거운 소녀들”과 같은 구절들은 실로 ‘번뇌’라는 굳은 단어에 대한 신선한 규정이면서 동시에 제 자신이 사랑스러운지 모르고 있기에 더 사랑스러운 소녀들 같지 않은가.

이 시가 “번뇌스런 소녀들”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래도 그것이 꼰대의 조롱이나 먹물의 냉소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이 시에 조곤조곤 감염된 탓인지 달리 생각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노동이란 것이 번뇌걸즈의 맨 뒷줄에서 열심히 노래하고 있는 소녀의 그것보다 특별히 우아한 것도 아니다. 번뇌걸즈의 영상을 다시 튼다. 번뇌가 밀려온다. 그런데 나는 몇 번째 줄 어디쯤에서 노래하고 있는 거지?(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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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8-04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표정한 108명의 여인들이 똑같은 율동에 맞춰 의미없는 노래를 중얼거린다면..번뇌가 밀려오기도 전에 제법 공포스러울 듯 하기도 합니다.

로쟈 2007-08-04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영상은 보지 않았는데, 자못 일본스런 발상이란 생각은 드네요...

twinpix 2007-08-04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8면 대단하네요. 저번에 일본에서 초등학생 여자 아이돌 그룹의 (이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요.) 동영사을 본 적도 있었죠. 아무튼 시집이 관심이 가네요. 'ㅁ'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8-05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누가 썼을까 궁금해하며 봤는데, 신형철님이었군요. 역시, 좋군요. 흠흠

로쟈 2007-08-05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에 평론집이 나온다고 했는데, 8월에 나오는 건지 모르겠네요...

누에 2007-08-06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로쟈님의 이미지와 백팔번뇌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묘한 느낌이 납니다.

로쟈 2007-08-06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뇌야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거지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