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종 데트르'는 알다시피 '존재 이유'란 뜻의 불어이다. 책마을 소식에 밝은 이라면 이번주에 출간된 김갑수의 '독서 오디세이' <나의 레종 데트르>(미래M&B, 2007)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이 책은 아직 손에 들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낮에 학회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보았지만 예기치 않은 놀라움, 혹은 발견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책은 이번주에도 만나지 못했다(물론 대형서점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다). 나올 만한, 나올 법한 책들만 몇 권 눈에 띄었다. 다소의 실망을 뒤로 한 채 이번주에는 책에 대한 책들이나 읽어볼까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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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손에 든 책이 <장정일의 독서일기7>(랜덤하우스, 2007)이다. 그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한참 뜸을 들이다가 손에 들었다고 생각했는데(장정일을 들먹이니까 왠지 파란여우님이 생각나는군), 지난 7월에 나온 책이니 아직 한 계절도 지나기 전이다(초판 1쇄인 건 당연하겠고). 그의 책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코리아, 2006)를 작년말에 구입했었으니까 1년에 한권씩은 사는 셈이다.
비록 277쪽의 분량이 두껍다고는 할 수 없지만 10,000원의 정가도 왠지 저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전철에서 책을 읽으며 더욱 굳어졌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권 이상의 책에 대한 알찬, 혹은 재미있는 리뷰를 읽을 수 있으니 그만한 비용은 들임직 하지 않은가(생각해보니까 일곱 번째 이 일기는 범우사가 아닌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됐다. 아마도 그의 '소속사'가 지난번 <공부>때부터 그리로 바뀐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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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2003년 4월 20일자부터 기록하고 있는 그의 일기에서 맨처음 다루어진 장준하의 <돌베개>(청한문화사, 1971) 얘기를 읽다 보면,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을 갖게 되면서 한편으론 언젠가 읽을 책의 목록으로도 올려두게 되니 일거양득 아닌가. 이번에 검색을 하니 아예 <돌베개>(세계사, 2007)의 새로운 판이 얼마전에 나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아울러 같이 언급되고 있는 광복군 친구였던 김준엽의 <장정 1,2>(나남, 2003)에 대해서도 메모해두게 된다(<장정>은 5권짜리 책이고 1,2권이 광복군 시절을 다룬다). 거기에 저자가 장준하에 대한 평가로 인용하고 있는 서중석의 <비극의 현대지도자>(성균관대출판부, 2002)까지 챙겨두게 되면 '독서일기'로 하는 공부는 소임을 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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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인가. 장정일도 헌책방에서 읽었다는 전민조의 <가짜사진 트릭사전>(행림출판사, 1999)을 안 그래도 사진에 문외한인 내가 무슨 수로 알고 찾아서 읽겠는가(찾아보니 그의 책들이 댓 권 이상 출간돼 있다. 사진집인 만큼 도서관에서 편하게 대출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책의 요점이며 요긴한 에피소드 등을 서너 쪽의 일기를 통해서 습득할 수가 있다. 예컨대, "상륙정에서 내려 바닷물에 무릎까지 바지를 적시며 뭍으로 걸어나오는 맥아더의 사진은 종종 인천상륙작전의 한 장면으로 우리들의 뇌리에 인상 깊게 남아 있지만, 사실 그 사진은 일본에 의해 필리핀을 쫓겨났던 맥아더가 필리핀을 탈환할 때의 사진이다."(18쪽) 같은 대목들은 '계몽적인' 효과를 갖지 않는가. 이런 사진을 또 '로쟈'는 찾아놓는다(로쟈의 레종 데트르인가?). 아래 사진이다.
이게 가짜라는 것인데, 실상은 좀더 '복잡'하다. "이 사진 역시 미군이 필리핀에 상륙하는 역사적 장면을 놓친 <라이프>지의 기자를 위해 맥아더가 군함을 동원해 상륙 당시를 다시 연출한 사진이다. 필리핀을 쫓겨나면서 '나는 돌아오리라'는 호언을 남겼던 맥아더로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말했던 바를 실천했음을 증명해 놓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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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또 맥아더와 인천상륙작전에 관한 책들을 점검해놓는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 "스페인 내란 당시 프랑코 파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인민전선 측의 병사를 찍은 로버트 카파의 저 유명한 사진이 연출된 것이라는 사실은 작은 충격이다."(19쪽) 지난봄 로버트 카파 전시회에서도 본 바로 아래의 사진이다(음, 이 '순간의 감동'이 '조작된 감동'이라는 얘기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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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도 재미있는 내용들은 계속 이어진다. 그 재미는 주로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2003)처럼 많이 알려진 책이 아니라 이병주의 <대통령들의 초상>(서당, 1991)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운 좋게 만나지 못했다면 있는 줄도 모르고 넘어갈 뻔한 기서(奇書)"(21쪽)들을 다룰 때 배가된다(장정일이 왜 '기서'라고 부르는지는 직접 확인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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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알고 보면 출판인 출신의 방송인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에서 독후감은 <장정일의 독서일기>처럼 연대순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 분류를 따른다. 아직 구입하지 않았기에 알라딘의 맛보기만을 옮겨오면 이런 식이란다(저자 자신이 58년 개띠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두 번 만난 인연밖에 없지만 어쩐지 '희경아'라고 부르고 싶은 작가 은희경이 펴낸 <마이너리그>.(...) <마이너리그>는 58년 개띠 네 친구들의 25년간에 걸친 성장소설이다. 이 글을 쓰는 내가 바로 58년 개띠이니 그 시간의 흐름을 체험적으로 추적해나가는 게 가능하다.(...) 이 소설의 가장 우둔한 독법은 적어도 자신의 삶은 만수산들과는 다르게 진지하고 치열했노라고 자위하는 일이다. '이보다 더 한심할 수는 없는' 인물들에게서 위안 받는다면 작가의 교묘한 조롱에 말려 들어가는 것일 테니까. 다음으로 우둔한 독법은 개띠들의 초상을 잘못 그렸다고 작가에게 항변하는 일이다. 의외로 신문서평에 그런 지적이 많이 보인다. 한데 작가가 언제 58년 개띠의 대표선수를 선발하겠다고 했나.('들어라, 58년 개띠들아' 중에서)
그리고 한겨레 기자를 역임한 언론인 차기태의 <고전, 내 마음의 엘리시움>(필맥, 2007)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고전 읽기'라는 점에서 앞의 두 책과는 다르다. "성서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부터 알베르 카뮈, 존 스타인벡의 소설까지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전하는 서양고전에 대한 감상과 해설을 담은 책"이라고 소개돼 있다. 장정일의 책을 사들고 나오다가 신간코너에 있길래 잠시 들춰본 책이다. 역시나 독서일기류의 책들에 주목한 중앙일보의 책소개를 잠시 인용해본다.
독서일기류의 책들이 눈에 띄는 한 주였습니다. 저마다 삶에 울림을 줬던 책들을 소개하고, 현실과 접목시켜 해설하고 있습니다. 그 중 <고전, 내 마음의 엘리시움>(필맥)은 기자 출신인 저자 차기태씨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플라톤의 『국가론』, 루소의 『에밀』 등 서양 고전의 감상과 해설을 담아낸 책입니다. “수 많은 출판사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진정한 지혜로 초대하는 책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책은 오히려 영혼의 칼을 무디게 만들 뿐이다”는 게 저자가 고전에 빠져든 이유랍니다. “잡초같이 많은 서적 중에서 지혜의 샘물이 되고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은 결국 고전뿐”이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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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덧붙여야 할 문제의식은 물론 믿고 읽을 만한 고전 번역서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겠다. 원로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의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강, 2003)은 유일하게도 다른 책들과 달리 몇 년 전에 나온 책이다. 최근에 나온 독서일기를 다루면서 굳이 거명한 것은 예전에 문예지에 연재될 때 한번 읽었던 글들을 다시 한번 훑어볼 생각에서이다.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8편의 고전 가운데 <햄릿>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내가 이번 학기에 강의해야 하는 작품들이어서 문득 생각이 났다.
![](http://media.washingtonpost.com/wp-dyn/images/I4382-2004Jan09)
끝으로 지난주에 출간된 <오픈북>(을유문화사, 2007)은 "30년째 유력지 '워싱턴 포스트'의 서평란을 이끌고 있는 퓰리처 상 수상 작가이자 서평가 마이클 더다가 유년 시절부터 스무 살까지의 삶을 자신이 읽었던 책들을 통해 회고한 일종의 회고록. 노동자 집안의 아들에서, 우등생으로, 문학 소년, 명문대 장학생이 되기까지의 책과 연계된 삶을 그리고 있다."는 책이다. 물론 나는 더다란 이름도 그의 서평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국내에 소개된 적도 없는 듯하고) 이런 류의 독서일기는 읽어볼 용의가 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07. 09. 14.
P.S.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을 펴낸 출판인의 소감도 읽은 기억이 나서 옮겨놓는다. 한겨레(05. 07. 01)에 '권위에서 비껴난 고전읽기'란 타이틀로 게재됐던 기사이다.
![](http://www.forum1921.org/files/member/정진홍.jpg)
정진홍 선생은 흰 고무신을 신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집 인근에 작업실 용도로 마련하셨다는 자그마한 아파트는 단정했다. 책과 책상, 손님맞이용 탁자와 의자가 다였다. 대학시절 선생의 연구실로 찾아갔을 때 늦가을 오후의 어둑함 속에 불도 켜지 않고 앉아 계셨던 모습이 아마도 이런 정갈함이었지 싶었다. 강출판사로 복귀해서 대책 없는 암중 상태를 하루하루 꺼가고 있는 게 보기 그랬던지 비평하는 후배가 문예지에서 읽은 정진홍 선생의 글 이야기를 꺼냈던 게 그 얼마 전이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아Q정전> <햄릿> 등등의 고전 문학작품에 대한 에세이라고 했다. 그러려고 그랬겠지만 마침 도서관이 코앞에 있었다. 모처럼의 일다운 일이었다. 그러나 웬걸, 여덟 편의 글을 문예지에서 찾아 복사하는 데는 한나절도 안 걸렸다. 이젠 글을 천천히 읽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백지상태의 멍함이 그리도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선생의 글은 고전작품에 대한 찬양과 독서의 권면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나는 이런 작품들을 힘들여 읽고 그 감동 속에서 인간과 세계에 눈떴다, 당신들도 제대로 된 사람이 되려면 이런 작품들은 반드시 읽어야 된다, 라는 흔한 시나리오의 계몽적인 목소리가 거기에는 없었다. 그것은 차라리 고전이라는 권위의 성채에 대한 회의와 부인의 몸짓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혼돈 속에서 처음 입을 가르고 나오는 물음들의 산이었다. 카라마조프 이야기만 나오면 왜 다들 알료사고, ‘대심문관편’인가. 내 젊은 날의 상처입고 궁핍한 자존심이 가닿은 대목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었던가. 처음 읽었을 때 <마담 보바리>의 그통속성이라니. 내게 <모비 딕>을 권했던 선배는 정말 작품을 읽기는 읽었던 것일까. 미친 사람을 마음껏 착취하고 조롱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돈 끼호테>는 달리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역설이었다.
선생은 거듭 이들 작품을 읽었고, 그 우연하고 해명하기 어려운 반복의 사건 속에서 각 작품의 고전다움을 자신만의 언어로 새롭게 발견하고 그려내고 있었다. 좌절한 독후감의 흔적들이 한 종교학자의 고백의 언어에 실려 고전의 열린 지평을 향해 거슬러오르는 광경이 거기 펼쳐져 있었다. '필독서’라는 권위의 언명에서 비껴나 고전과 젊은 정신들의 다양한 만남을 자극할 가능성이 그렇게, 거기 함께 있었다.
반년 넘게 일을 놓고 있었던 터라 더더욱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가 보다. 여덟 편의 글마다 ‘나를 움직인 대목들’을 넣자고 제안해놓고 보니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진홍 선생은 작품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으면서 인용문을 뽑고 거기에 일일이 코멘트를 붙였다. 두 달 남짓 걸렸고 원고량이 350매 가량 되었다. 물론 별도의 원고료를 드리지는 않았다. 작품마다 관련 사진 자료를 찾고 그걸 편집해 넣느라 없는 손발이 바빴다. 그렇게 찾은 사진 자료가 아까워서 본문은 2도 인쇄를 했다. 제목을 정하느라 선생을 괴롭힌 수차례의 전화는 결국 “알아서 하시라”는 체념 섞인 대답 끝에 지금의 다소 계몽적이고 권위적인 제목이 되고 말았다.
46판 양장본으로 만들어 책에 고전적 품격을 불어넣어보려던 생각은 본문 필름에 표지 디자인까지 다 나온 상태에서 제본비라는 암초를 떠올리는 순간 좌초했다. 그 덕분에 본문용지 95그램, 380쪽의 두툼한 책은 페이퍼백이라는 몸에 꼭 죄는 옷을 얻어 입고 말았다. 마음만 바쁜 시절이었다. 고전을 ‘다르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나고 질문하는 이 책의 고유한 자리를 편집이나 출간 이후의 과정에서 잘 드러내지 못했다는 자책이 좀체 끝나지 않는 아쉬움으로 남아있다.(정홍수/강출판사 대표)
P.S.2. 이 페이퍼는 이번주에 즐찾 1300명을 넘어선 데 대한 '자축'과 '위로'의 의미로도 작성됐다(오늘로써 1303명이다). 1200명을 넘어선 게 지난 7월 초엽이었던 듯한데, 이런 페이스라면 올 겨울에는 1500명을 돌파할 수도 있겠다(총 방문자는 30만명을 넘어서고). 이 서재의 '변화'를 말해주는 다른 지표가 없으니 내가 참조할 수 있는 건 그런 수치들뿐이다. 그때쯤이면 '고마해라'는 소리들이 터져나오지 않을까? 레종 데트르가 다하면, 박수칠 때 떠나도록 해야지.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기엔, 날이 너무 궂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