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이 최근 신작 신집 <못난 시들>(이룸, 2009)과 함께 네 권의 산문집을 동시에 펴냈다. 산문집에 실린 많은 글이 작년 촛불집회에 촉발되어 씌어진 듯하다. 마침 시인과의 육성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노컷뉴스(09. 05. 08) 김지하 시인 “이명박 대통령, 촛불 의미 못 읽으면 혁명 온다” 경고  

▶ 진행 : 변상욱 대기자(CBS 라디오 '시사자키 변상욱입니다')
▷ 출연 : 김지하 시인


시인이자 생명운동가, 민족과 민중의 문학을 일궜고 유신독재에도 맞섰던 김지하 시인이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아주 쉬운 시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시집과 함께 4권의 산문집도 동시에 펴냈고요. 김지하 시인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뭔지 들어보겠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시집과 산문집을 동시에 들고 오셔서 반갑습니다. '못난 시들'이라는 제목을 지으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 김지하 시인> 계기가 작년 시청 앞 촛불 때부터인데요. 촛불의 주역들이 20대 미만의 미성년, 어린이들, 이름 없는 많은 여성들, 노인들, 비정규직, 노숙자들 아니에요. 그러니까 못난 사람들이죠. 이들이 주체가 되고, 시청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때가 오는 걸 저는 제가 공부한 동학, 그러니까 후천개벽이라고 하죠. 거긴 기독교 방송이니까 예수 복음으로 하면 밑바닥 사람들을 이끌고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과 같죠. 그런 것들을 못 난 이들의 시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아마 옛말에 대교는 약졸이라고 하더니 정말 지혜로운 것은 그렇게 어수룩하고 못나 보인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 김지하 시인> 그건 너무 과찬이시고요.(웃음) 



▶ 진행/변상욱 대기자> 촛불집회에 나가서 살펴보셨던 모양이군요. 젊은 사람들과 얘기는 나눠보셨습니까?

▷ 김지하 시인> 제가 얼굴이 팔리면 정부에서 안 좋게 생각할까봐 슬금슬금 밤에 가장자리에 가서 오래 있지도 못하고 4,5번 갔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촛불이 1주년을 맞았습니다. 제2의 촛불, 제3의 촛불이 있었다고도 얘기하지만 촛불은 다시 켜질 거라고 보십니까?

▷ 김지하 시인> 이미 커졌죠. 이건 단순한 정치사건이 아니고 문명사 변동의 중요한 계기라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 보십시오. 금융위기니 뭐니 하면서 문명의 중심이 유럽과 미국 중심의 방향에서부터 동아시아 태평양 쪽으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어요. 경제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그런 전체적 대세로 봐서 한반도에서 어린이들, 여성들, 노인들, 비정규직 같은 사람들이 정치주체로서 소리를 낸다는 것은 문명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계기죠. 이런 일은 자꾸만 반복될 것이라고 봤죠. 물론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었죠. 저는 그것을 횃불, 숯불이라고 부르는데요. 그런 것에도 불구하고 촛불이라는 처음 순수한 못난 사람들의 희망이 계속해서 촛불을 켤 것이라고 봤습니다. 가만 보니까 5월 2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요. 



▶ 진행/변상욱 대기자> 촛불을 문명사의 변동이라고 본다면 거기서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권이 차지하는 위치나 역할은 뭡니까?

▷ 김지하 시인>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무지한 거죠. 그걸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 본인이 북악산 올라가서 머리를 숙이고 어쩌고 했듯이 이 예쁜 촛불을 오히려 들어 올리고 존중하는 태도로 가면 우리나라 국운이 지금 상당히 좋거든요. 그렇다면 문명의 대세가 우리나라로 오고 있는 것일 텐데. 맞이하고 마중하는 자세가 되고요. 만약 그것을 탄압하게 되면 문화혁명 같은 시끄러운 사태가 나요.

▶ 진행/변상욱 대기자> 87년 당시를 기억하시겠습니다만 민주화 운동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이어질 때 '죽음의 굿판을 거두라'고 일갈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정치 세력들이, 사람들이 너무 어둡게 몰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걱정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렇게 볼 때 지금 철거민들이나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저항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 김지하 시인> 그것도 좋지 않아요. 하여튼 목숨 끊는 건 안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자살자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거든요. 대학생 자살자 수만 한 달에 30여명입니다. 또 고등학생 자살자도 1년에 140명입니다. 전체 자살자 수가 12000여명 되는데 이것은 OECD 국가 중 첫째예요. 전 세계 수준으로는 네 번째이고요. 젊은 여성 자살자 수가 남자보다 더 많습니다. 이건 내가 보기에 안 좋은 현상인데요. 이 안 좋은 어두움도 이 나라에서 큰 문명 변동이 오리라는 신호입니다. 해뜨기 전에 시커먼 것처럼.

▶ 진행/변상욱 대기자> 전조 같은 걸까요?

▷ 김지하 시인> 그런 거죠. 그러니까 시커멀 땐 흰 빛이 숨겨져 있다고 보는 거죠. 그렇게 봅니다만 자살은 안 해야죠. 용산 참사도 그렇고 이런 경우에 조금 지나쳤고.

▶ 진행/변상욱 대기자> 그렇게 몰고 가는 사회적 구조에 대해 분명한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들도 있는데요?

▷ 김지하 시인> 그래야겠죠. 그러니까 그것까지 포함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그 촛불 안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가지 갈망, 희망, 아젠다를 존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존중해서 받들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데 자꾸 억누르려고 하고, 옛날 박정희 시대에 하는 식으로 흉내 내고 싸우면 혁명 터집니다. 제가 보기엔 틀림없어요.

▶ 진행/변상욱 대기자> 그래서 쇄신이라는 얘기가 요새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정치권의 쇄신이라고 구호는 내걸고 있는데, 어떻게 쇄신했으면 좋겠습니까?

▷ 김지하 시인> 말로만 자꾸 떠들죠. 말만 쇄신이에요. 예를 들어 홍준표 같은 사람은 4월엔 경제개혁법을 통과시켰고, 5월엔 사회개혁법, 6월엔 무슨 개혁법을 하고. 순 형식주의적이고 표피적인, 국회 통과시키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양 그래요. 그러니까 보선결과 보세요. 완전참패 아니에요. 그건 이명박 정권 전부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너희들 그렇게 진짜 쇄신을 안 하고 말로만 떠들면 우리는 너희들을 안 찍겠다는 말이에요. 그 분위기를 빨리 읽어야죠. 그런데도 못 읽는 것 같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문제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내가 보기엔 형편없습니다. 지금 4대강 깨작깨작 해서 국민들 불만만 많고 거기서 무슨 경제적 이득이 오겠어요? 그러니까 좀 성큼성큼 시원시원 나갔으면 좋겠어요. 



▶ 진행/변상욱 대기자> 동아시아 시대에 국운의 융성이 호기를 맞았는데요. 이 상황에서 김지하 시인께선 앞으로 어떤 일을 주로 하실 겁니까?

▷ 김지하 시인> 저는 정치운동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담 쌓았습니다. 동국대학교와 원광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특강만 합니다. 거기서 불교와 동학, 기독교, 유교 등 전통사상과 서양사상, 나는 예수를 참 좋아하니까 이렇게 결합시켜서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태평양에 오고 있는 새로운 문명의 대세, 여기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안 제시라든가 예감이라든가 이런 것과 연관해서 르네상스, 아시아 르네상스가 와야 한다고 보거든요. 워낭소리라든가 똥파리라든가 이런 게 예감이 와요. 그렇다면 불교와 기독교의 결합이라든가 이런 걸 가지고 사상사적인 변화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강의나 하고 글이나 쓰고 이러다 가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그래서 그것이 이번에 제목으로 다루신 못남의 길일 수도 있고요.

▷ 김지하 시인> 맞습니다. 이번 책도 전부 그 얘기예요. 

09. 05. 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카이 나오키와 니시타니 오사무의 대담집 <세계사의 해체>(역사비평사, 2009)가 지난주에 출간됐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서평이 올라오지 않는다. 이번주에 다뤄지는지 모르겠지만, 들춰보니까 대담집이라고 해서 생각만큼 만만한 책은 아니다. 정색하고 읽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여러 권 소개된 사카이 나오키의 책을 정색하고 읽진 못한 듯하다. 가라타니 고진 읽기와는 비교가 되는데, 아무래도 비평가인지라 가라타니가 조금 더 편하게 글을 쓰는 듯싶다. 가라타니에 비하면 사카이는 '인문학자'인 것이니까. '번역과 주체'라는 문제틀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여서 조금 깊이 읽어보려고 한다(그런 생각을 한 지가 이미 오래됐군. 영어본도 구해놓았건만). 니시타니 오사무는 프랑스철학 전공으로 블랑쇼와 레비나스, 바타이유, 낭시 등을 일본어로 옮겼다고 한다. 상당한 실력자라는 걸 알 수 있다. 실제 대담에서도 니시타니의 멘트 가운데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니시타니의 경우는 더 소개된 책이 없어서 사카이 나오키의 리스트만 만들어둔다.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세계사의 해체- 서양을 중심에 놓지 않고 세계를 말하는 방법
사카이 나오키.니시타니 오사무 지음, 차승기.홍종욱 옮김 / 역사비평사 / 2009년 4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2009년 05월 08일에 저장
품절
일본, 영상, 미국 : 공감의 공동체와 제국적 국민주의
사카이 나오키 지음, 최정옥 옮김 / 그린비 / 2008년 9월
18,900원 → 17,010원(10%할인) / 마일리지 940원(5% 적립)
2009년 05월 08일에 저장
절판

번역과 주체
사카이 나오키 외 지음 / 이산 / 2005년 6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09년 05월 08일에 저장

국민주의의 포이에시스-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
사카이 나오키 지음, 이규수 옮김, 이연숙 대담 / 창비 / 2003년 10월
10,000원 → 9,500원(5%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9년 05월 08일에 저장
품절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노이에자이트 2009-05-09 15:31   좋아요 0 | URL
임지현과의 대담도 있었는데 대담집을 이번에도 내는군요.

게슴츠레 2009-05-09 17:20   좋아요 0 | URL
<세계사의 해체>는 잠깐 책방에서 들춰봤는데 이거 뭐 대담집이라고 해도 쉽게 읽기는 힘들겠더군요...허나 읽는 데 따르는 '고난'은 차지하고서라도 두 학자가 '세계사의 해체'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지 기대가 됩니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 '이벤트'

지난주 화요일(4월 28일)에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 출간을 앞두고 퀴즈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9년전 처음 출제했을 때와는 달리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한다. 어제(5월 5일)까지 일주일의 응모기간이 지났기에 이제, 정답과 함께 당첨자를 발표하도록 한다.  

1. 러시아의 시인이자 작가 철학자로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알료샤의 모델이 되었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 많은 분들이 '드미트리 블라디미르비치 카라코조프'라고 답을 해주셨는데, 알료샤의 모델은 되지만 '러시아의 시인이자 작가, 철학자'라고 전제했기 때문에 '블라지미르 솔로비요프'만을 정답으로 처리했다.  

2. 도스토예프스키가 속기사인 자신의 두번째 아내를 만난 것은 어느 작품의 집필 때문이었을까요?  -> <죄와 벌>을 답으로 써주신 분들도 계셨는데, '어느 작품의 집필 때문이었을까'로 한정했기 때문에 <도박자>만을 정답으로 처리했다.

3.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인 <가난한 사람들>을 처음 읽고 감격하여 당대 최고의 비평가 벨린스키에게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알린 러시아 시인(작가)은 누구일까요? -> '그리고로비치'를 답으로 써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이 문제 역시 '벨린스키에게 알린 러시아 시인'이라고 한정했으므로 '네크라소프'만을 정답으로 인정했다.  



4.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중 국내에 가장 먼저 번역 소개된 작품은 어느 것일까요?(힌트. 일어에서 중역되었습니다.) -> 많은 분들이 1933년 신태삼 역의 <청춘의 사랑>이라고 적시해주셨다. <가난한 사람들>의 번역서였다.

5. 작가 장정일이 <죄와 벌>을 패러디한 작품이 있습니다. 모대학 노문과에 다니는 여대생이 주인공인데, 그녀가 찾아간 전당포 노인(노파가 아닙니다)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 고르비 영감(허만수)이 정답이다.   

순수하게 문제의 답을 적어주신 응답자는 모두 스무 분이었고, 이 중 일곱 분이 정답자였다. 이 중 최초 정답자와 사다리 추첨을 통한 당첨자 2명을 포함한 세 분의 이벤트 당첨자는 nevermore님, 두둥실님, mai님이다. 당첨을 축하드리고, 두둥실님과 mai님은 비밀댓글로 주소를 적어주시기 바란다. 책은 교정작업이 한 차례 더 진행되어 예상보다는 며칠 늦은 5월 18-20일 사이에 출간될 예정이다. 사정을 보아 출간을 전후로 하여 이벤트를 한번 더 개최하도록 하겠다. 많은 성원이 있으시길!^^ 

09. 05. 06.


댓글(2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anon 2009-05-0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의 인문학 서재>가 이 알라딘 서재의 글들을 모은 책인가요?

로쟈 2009-05-06 07:20   좋아요 0 | URL
지면에 발표한 글도 대부분 서재에 옮겨놨기 때문에 일종의 '블룩'이 됐습니다...

Kir 2009-05-06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책이 그때쯤 나오는군요. 괜히 제가 두근두근^^;
선정되신 세 분 모두 축하드립니다~

로쟈 2009-05-06 08:38   좋아요 0 | URL
저는 두근두근까지는 아닌데, 행여 잘못 적은 대목들이 있을까 신경은 쓰이네요.^^;

멜기세덱 2009-05-06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언제 이런 이벤트가.....ㅠㅠ;;

로쟈 2009-05-06 07:22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들어오신 듯.^^

마노아 2009-05-06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답을 알고 나니 좀 시원해집니다. 두번 검색할 엄두가 안 났더라는..ㅜ.ㅜ
당첨되신 분들 축하해요. 저에겐 너무 어려웠지만 그래도 무척 재밌고 신선했습니다.^^

로쟈 2009-05-06 07:23   좋아요 0 | URL
의외로 많은 분이 정답을 맞히시던데요.^^

다락방 2009-05-06 08:41   좋아요 0 | URL
저도 어려웠어요, 마노아님. :)

푸른바다 2009-05-06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역시 어려운 문제였군요. 저는 1번이 틀렸습니다. 별 생각없이 카라코죠프라고 적었던 것 같네요. 저는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고 2때 읽었고 그 후 알료샤의 모델은 카라코조프라고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시인이자 작가 철학자라고 적어 놓으셔서 대학생 생이었던 카라코조프가 언제 시를 짓고 글을 쓰고 철학을 했나 하는 의문은 잠시 품었었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네요. 카라마조프 형제들은 언제고 다시 읽어야 겠다고 다짐하는 책 중의 하나인데, 생각난 김에 새로 번역된 판본을 (어떤 번역이 추천 할만한가요?) 다시 구매는 해 놓아야 겠네요^^ 제가 예전에 읽었던 책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답니다. 아무튼 책 출간 축하드리고 저도 가능한 구매하도록 하겠습니다^^

로쟈 2009-05-06 07:24   좋아요 0 | URL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일수록 아무래도 읽기가 더 편합니다...

2009-05-06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6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9-05-06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답을 알려주셔도 모르겠어요. ^^

로쟈 2009-05-06 21:41   좋아요 0 | URL
흠, 어떤 답을 원하시는지?..

허리우스 2009-05-06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축드립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도전하겠습니다. 따님이 아주 예쁘시네요. 저도 곧 아이를 낳는 예비 아빠인데 로쟈님의 따님처럼 예쁜 딸을 낳고 싶다는 .... ^^;;;; 그럼 이만 총총 건승하시길 .....

로쟈 2009-05-06 21:41   좋아요 0 | URL
직접 낳으시나요?^^

이매지 2009-05-06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랫만에 들어왔더니 놓쳤네요.
(사실 알고 있었다고 해도 ^^;;)
어쨌거나 당첨되신 분들 축하드리고, 로쟈님의 책 출간도 축하드려요~

로쟈 2009-05-06 21:42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konstant 2009-05-06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출간 축하드려요~~ ^^

읽어야 할 책이 또 한권 늘어나겠군요 ㅠㅠ;;

로쟈 2009-05-07 08:02   좋아요 0 | URL
^^;

2009-05-07 1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7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이제 고유명사다.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홍상수의 신작 제목이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모든 영화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하지만 <밤과 낮>은 아직 보지 못했다) 당연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도 관심을 두게 된다. 박찬욱의 <박쥐>나 봉준호의 <마더>보다도 더 기대를 한다면, 그건 순전히 나의 취향 탓이다. 나는 '영화 같은 영화'보다는 '영화 같지 않은 영화'를 좀더 선호하는 것이다. <박쥐>에 밀려서 동네극장에서는 <똥파리>가 자취를 감추었는데, <박쥐> 때문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연착하는 게 아닐까 우려된다. 내주에는 영화감상 시간을 좀 내야겠다. 짤막한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05. 04) 잘 알지만 잘 알지 못하는 내 자화상

홍상수 감독의 신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그의 필모그래피(작품 목록)에서 가장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영화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독설과 조롱은 전작들에 비해 한결 줄었으며, 감독 자신의 표현대로 “나이가 들어 편안해진” 것처럼 보인다. 나르시시즘에 빠져 살짝 미쳐 있는 여자들, 센 척 하지만 항상 쩔쩔매는 남자들, 어디선가 본 듯한 친숙한 인물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충분히 있을 법한 말과 행동을 쏟아내는데, 기이하게도 홍상수는 그 익숙함을 낯설게 포착해내는 데 성공한다. 관객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일상의 조각에 참았던 웃음을 터뜨린다. 

일상을 살짝 비튼 웃음

홍상수의 주인공은 언제나처럼 길 위에 서 있다. 예술영화 감독 구경남(김태우)은 제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제천에 갔다가, 얼마 뒤 학생들에게 특강하러 제주도에 간다. 영화는 구경남이 제천과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일상의 장면들을 비틀어 웃음을 이끌어내는 홍상수식 유머는 거의 정점에 이른 듯하다. 이를테면 구경남과 제천영화제 프로그래머 공현희(엄지원)가 처음 만나는 장면. 구경남은 전날 한숨도 못 잤는데,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한두 시간 잤더니 다섯 시간 잔 것처럼 개운하다는 등의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공현희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말허리를 자르며 명함을 건넨다. 저녁에 열린 파티에서는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흥행 감독이 됐다고 어깨에 힘을 주는 후배에게 질투심을 느낀다. 싸잡아 얘기하면 너나없이 다 속물들인데, 그런 속물들이 사는 곳이 바로 세상 아닌가, 홍상수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지키지도 못하면서 vs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의 주인공은 여전히 연애에 관심이 많지만, 예전처럼 본능적 욕구를 해결하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영혼의 ‘짝’을 갈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짝을 만났다고 자부하는 두 커플을 만난다. 그러나 구경남이 확인한바, 부상용(공형진)·유신(정유미) 부부는 자기 안에 갇힌 과대망상의 ‘송충이’이며, 양천수(문창길)·고순(고현정) 부부는 바람을 피운다. 구경남 자신은 이번에도 짝을 찾는 데 실패한다.

제천과 제주라는, 앞 글자가 같은 두 공간의 대구는 ‘지키지도 못하면서’와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대구이기도 하다. 제천에서 만난 공현희는 구경남에게 지키지도 못하면서 왜 약속을 남발하느냐고 타박하고, 제주에서 만난 고순(고현정)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남의 일에 간섭하느냐고 구박한다. 영화는 결국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인간들에 대한 경멸을 드러내고, 스캔들을 비난하는 세상을 향해 “위선 떨지 마, 지가 하고 싶은 거였으면서”(구경남)라고 야유를 보낸다.

 

영화에 대한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극장전>(2005)보다도 훨씬 직접적으로 감독 자신의 작품(혹은 작품 활동)에 대해 대놓고 말하는 ‘영화에 대한 영화’(메타 영화)다. <씨네21>이 실명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자신의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텍스트 안으로 끌고 들어와 스스로 흔들고 풍자한다. “왜 사람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영화를 계속 만드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구경남은 뭐라고 답변하지만 그 말은 공허하게 허공을 떠돌고 결국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 구경남은 “다음 영화는 200만”이라며,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데, 그래서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지금까지 나온 홍상수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다.

“사람이 되긴 어려워도 괴물이 되진 맙시다”(<생활의 발견>), “생각을 해야겠다.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극장전>)와 같은 영화 유행어를 남긴 홍상수는 고현정의 입을 빌려 달관한 사람처럼 일침을 놓는다.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은 홈비디오로 찍어놓은 자기 모습을 극장에서 보는 것처럼 쑥스럽고 민망하다. 그러나 그런 보잘것없는 자화상과 대면한 뒤 극장 문을 나서면 관객은 다시 그 쑥스럽고 민망한 세상 속에서 살아나갈 힘을 얻는다. 홍상수의 유머는 힘이 세다.(이재성기자)  

09. 05. 05.


댓글(9) 먼댓글(1)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Like You Know It All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5-16 21:40 
    기분전환도 할 겸 오랜만에 동네극장에서 심야영화를 보기로 하고 정한 프로그램은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다. 박찬욱의 <박쥐>도 상영중이지만 한편만 봐야 한다면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여러 리뷰를 보건대 <박쥐>의 감상이 유쾌할 것 같지 않다). 두 시간쯤 남았는데, 마침 감독 인터뷰 기사가 있기에 '기념'으로 스크랩해놓는다. 인터뷰의 홍상수는 이젠 나도 잘 아는 홍상수이다. 아, 그의
 
 
2009-05-05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6 0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6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6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6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6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konstant 2009-05-06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폰지 하우스에서 이 영화 개봉에 맞춰서 홍상수 감독의 전작들을 상영하는
감독전을 3주간이나 진행한다고 하네요~

밥은 굶어도 책사고 영화보느라 돈을 꽤 쓰는 편인데,
안 그래도 가벼운 지갑 속 잔돈까지 탈탈 털어서 챙겨봐야겠어요 ^^

로쟈님은 홍상수 감독 영화 중 어떤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전 <오! 수정>만 아직 못 봤는데 그외는 다 좋아합니다;;;)

밀리 2009-06-02 14:52   좋아요 0 | URL
<오!수정>은 꼭 봐야 합니다!!^^;

2009-05-07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린이날에 대한 기대를 잔뜩 안고서 아이가 늦게 잠이 들었다. 할일이 태산보다도 1센티는 더 높이 쌓여 있건만 아이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없으니 진퇴양난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계시라도 받아야겠다. 사실 준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번달 <고교 독서평설> 갑론을박 꼭지에 실은 글이 동화작가 안데르센에 관한 것이니까. 다만 문제는 아이가 고등학생이 아니라 아직 초등학생이라는 것. 이런 글로 아이가 만족할 리는 만무하다. 나대로의 알리바이일 뿐이다.   

  

고교 독서평설(09년 5월호) 순수한 동심의 상징 VS. 상처받은 쓸쓸한 영혼  

덴마크의 천재 동화 작가, 안데르센
북유럽의 작은 나라 덴마크가 ‘동화의 나라’라고 불리는 이유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 덕분이다. 구전 설화에서 시작된 동화를 하나의 문학 장르로 만든 사람, 156편에 이르는 많은 이야기를 창작해 냄으로써 ‘동화의 아버지’라는 칭호까지 얻은 사람, 그가 바로 전 세계 어린이에게 가장 사랑받는 동화 작가 안데르센이다.  

동화가 어린이의 삶에 중요한 문화적·정신적 자양분이며,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W. 워즈워스)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작가로서 안데르센의 지위는 더욱 확고해진다. 자신의 특이한 외모를 조롱하던 이들을 향해, “언젠가 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 성공한 시인에게 경의를 표할 거야. 나는 세계적인 천재로서, 호메로스와 단테, 셰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파르나소스 산에 오를 거야.”라고 다짐했던 그의 꿈이 과연 사후(死後)의 명성을 통해서 실현된 것일까. 푸르른 5월을 맞아 이달에는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삶과 문학 세계를 살펴보면서, 동화라는 장르의 이중성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  

 

환상 속에 숨겨져 있는 불행한 현실
안데르센의 생애를 다룬 여느 전기나 할리우드 영화들은 흔히 그를 ‘신으로부터 재능을 부여받은 어릿광대’의 이미지로 묘사한다. 하지만 사실 그의 창작은 고치고 또 고친 육필 원고의 흔적들이 보여 주는 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도, 그가 벗어나고자 했던 현실의 쓰라림보다는 견딜 만한 것이었다.   

안데르센은 1805년 덴마크 오덴세의 가장 궁벽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한스 안데르센은 스물두 살의 구두 수선공이었고, 어머니 안네 마리는 서른 살의 세탁부였다. 안데르센은 자서전에서 아버지를 “재능이 넘치며 순수한 시적 정서를 간직한 남자”로, 어머니를 “사랑으로 가득 찬 분”으로 묘사했지만 이들 부부의 삶은 가난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행복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다만 아들에게 책을 읽어 주거나 가끔 그림으로 연극을 꾸며 보여 줄 때만 행복해 보였다. 편지를 읽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름조차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어머니는 그럼에도 아들은 무척 아꼈으며, 그가 자신에 비해서 얼마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지를 자주 일러 주곤 했다. 홀어머니의 강요 때문에 구걸에 나서야 했고, 구걸을 못하면 다리 밑에 앉아 하루 종일 울곤 했던 것이 어머니 안네 마리의 어린 시절이었다.  

실제로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추운 겨울날 성냥을 팔러 다니던 한 소녀가 성냥 불빛에 의지해 잠시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으려 하다가, 다음 날 아침에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아름다운 동화’라기보다는 ‘잔혹 동화’에 가깝다. 이 동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사람들은 소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을 보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새해 아침에 할머니와 함께 얼마나 영광스런 나라로 갔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이것을 ‘동화적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맨발로 어두운 밤거리를 서성거려야 했던 성냥팔이 소녀의 현실은 분명 냉혹하며 비극적이다. 성냥 불빛으로 밝히기에는 현실이 너무 어둡고, 그 불꽃으로 몸을 데우기에는 한겨울의 추위가 너무 매섭다. 하지만 그녀는 성냥 불빛 속에서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죽은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 곁으로 가기를 소망하고, 결국 그 소원을 이룬다. 소녀의 환상(판타지)은 분명 현실이 아니지만, 그러한 환상마저 허락되지 않는다면 현실은 너무 무자비할 것이다.  

안데르센은 『성냥팔이 소녀』를 쓰면서 어머니의 어린 시절 모습이 너무도 분명하게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잠시 로마에 머물고 있던 때, 그는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고향 오덴세에 가지 않았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드디어 어머니의 고통이 막을 내렸습니다. 불효자인 저는 어머니의 고통을 조금도 덜어 드리지 못했습니다.”라며 애도의 눈물을 뿌렸지만,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현실에서가 아니라 그의 상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했던 것이다. 이를 ‘동화 작가의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안데르센은 언제나 동화나 상상의 세계를 통해서만 외부와 소통했다. 아니, 동화적 상상력을 통해서만 그는 자신의 비천한 출신과 비루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성냥팔이 소녀』는 그의 동화에 대한 동화로도 읽힌다.

상류 사회를 향한 끝없는 욕망
가난한 하층 계급 출신이라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했고, 성장하면서 ‘타고난 고귀함’이라는 개념에 집착하게 된 안데르센은 작가로 성공한 뒤에는 자신이 속했던 하층 계급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는 거의 강박 관념에 빠진 사람처럼 자서전을 썼다. 이미 스물일곱 살 때 “내 인생은 멋진 이야기다. 행복하고 온갖 신나는 일로 가득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자서전을 쓰고, 거의 10년마다 새로운 내용을 보탰다. 남의 집 빨래를 해 주면서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간 가난하고 무지한 여인의 아들과, 온 유럽에 명성을 떨치면서 여러 나라의 군주와 사교계 명사들의 친구가 된 작가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커서,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봐야 했다는 것이 전기 작가들의 분석이다.   

안데르센은 ‘시인’의 재능을 타고났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 재능은 상류 계급에게 인정받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청년 안데르센이 수도 코펜하겐으로 올라왔을 때 그의 후원자 역할을 해 준 요나스 콜린(Jonas Collin) 같은 인물이 그 상류 계급의 대표적 인사다. 콜린은 그 당시 재정부 장관이자 은행 설립자요, 극단 대표였고 예술가 후원 재단의 사무관이었다. 인자하지만 독재적인 콜린은 곧 안데르센의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안데르센과 콜린의 관계는 안데르센이 자서전에서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지만 나는 아버지(콜린)가 정말로 무서웠다. 그 이유는 내 인생의 행복, 아니 내 온 존재가 그에게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토로한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콜린은 안데르센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아버지도 아시지요. 제가 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란 사실을 아버지가 알아주시는 것, 그것이 제게는 가장 큰 자부심이자 기쁨이라는 것을 말입니다.”라는 고백에는 그의 진심이 담겨 있다.  

콜린에게는 다섯 명의 자녀가 있었고 안데르센은 비슷한 연배의 그들과 자주 어울렸지만, 그들 틈에서 안데르센은 종류가 전혀 다른 생물처럼 보였다. 단단한 체구에 사각형 얼굴, 짙은 색 머리칼을 지닌 콜린 가족에 비해서 비쩍 마르고 길쭉한 몸에 새의 부리처럼 입이 튀어나온 안데르센의 외모는 말 그대로 ‘미운 오리 새끼’를 연상시킨다.   

안데르센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미운 오리 새끼』는 알다시피 정체성에 관한 동화다. 엉뚱하게 오리 둥지에서 깨어난 ‘미운 오리 새끼’는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주변으로부터 차별과 따돌림을 당한다. “내가 못생겨서 모두들 날 싫어하는 거야.”라고 생각한 미운 오리 새끼는 고향을 떠나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렇게 잔인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미운 오리 새끼는 아름다운 백조의 무리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헤엄쳐 간다. 오리들에게 쪼이고 닭에게 맞고 겨울에 굶주려 죽느니 차라리 백조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바로 그때 미운 오리 새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한 마리 백조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애초부터 그의 참모습은 백조였기 때문에 오리에게서 태어난 것쯤은 아무런 허물도 아니었다.”는 이야기 속 화자의 언급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읽어 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윽고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가 닭장이 아닌 아름다운 정원에서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을 만끽하는 것으로 이 동화는 마무리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자신의 현재 모습에 낙담하지 말고 주변의 냉대와 차별도 잘 견뎌 내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하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동화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리고 반복적인 학교생활이나 직장 생활에 지친 이들이 조금 더 인내를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준다. ‘혹 내가 미운 오리 새끼는 아닐까?’, ‘백조다운 본질을 되찾으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은 그래도 성냥 불빛보다는 환한 전조등이 되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 동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계급적·우생학적 전제도 간과하기 어렵다. 일단 고상한 ‘백조’와 평범한 ‘오리’라는 전혀 다른 종의 구분이 있으며, 이들 간의 우열 관계는 이 동화에서 전혀 의심되지 않는다. 이들의 각기 다른 운명은 ‘아름다운 정원’과 ‘농장’이란 공간적 대비에서도 확인된다. 농장에서 태어난 ‘아기 백조’가 열등한 하층 계급 동물들에게 구박받고 쫓겨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아기 백조의 타고난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아기 백조’는 차라리 백조들에게 죽는 게 낫다고까지 여긴다. 여기서 안데르센은 평민들의 운명에 대한 분명한 경멸을 표현한다. 하층 계급 사이에서 고난을 당하느니 상류 계급에게 모욕당하는 것이 더 낫다는 식이다.  

『미운 오리 새끼』는 마치 안데르센의 인생 역전을 보여 주는 듯한 동화지만, 현실에서 안데르센의 운명은 ‘미운 오리 새끼’의 운명보다 덜 행복한 편이었다. 자신이 ‘백조’라는 걸 확인한 뒤 “미운 오리 새끼였을 때, 난 이런 큰 행복은 꿈꾸지도 못했어요!”라고 기뻐하는 ‘백조’와 달리, 안데르센은 자신의 재능과 정체성에 대해서 끝까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은 콜린 집안이었지만 그 고향은 그가 끝내 도달할 수 없는 곳이었다. 더불어 안데르센은 자신이 선택받은 부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검증 필요성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가 평생 동안 신경 질환과 정신 장애에 시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 다른 대표작 『인어 공주』에서 왕족과 사랑에 빠진 인어 공주가 ‘높은 분들’과 섞이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초는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인어 공주는 물 밖으로 빠져나와 왕족들 사이로 걸어 다니기 위해 꼬리가 다리로 변형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다리로 걷거나 춤출 때마다 칼날 같은 아픔을 감수한다. 그녀는 자신이 왕자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는데도, 자기 부류, 자신의 계급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부정과 함께 다만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할 따름이다.   

백조가 되지 못한 미운 오리 새끼
하지만 이런 것이 안데르센이 보여 준 동화적 윤리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에 대한 가장 탁월한 반전은 말년작 『정원사와 주인 나리』를 통해서 제시된다. 주인공 정원사의 일은 코펜하겐 외곽에 있는 오래된 성에서 오만한 귀족 주인의 정원을 돌보는 것이다. 주인은 그의 충고를 듣지도 않고 실력을 인정해 주지도 않는다. 단지 왕실에서만 그의 실력을 최고로 인정해 주는데, 그렇다고 정원사는 잘난 척하거나 자만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 그리하여 결국엔 덴마크 전역에서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주인 부부는 정원사를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지 않으며 언제든지 내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이기 때문에. 그런데 주인 부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점잖은 사람들’이어서. 이러한 줄거리 속에는 안데르센이 인생의 말년에 도달하게 된 성찰적 아이러니가 반영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 정원사는 안데르센 자신이며, 주인 나리는 콜린가(家) 사람들을 비롯한 그의 후견인들이자 덴마크의 상층 계급이다. 그들은 안데르센을 끝내 ‘시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다만 괜찮은 ‘대중 작가’ 정도로 치부했다. 안데르센은 그들에게 예속된 상태에서 평생에 걸쳐 상층 계급을 모범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질서를 정당화하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고통과 굴욕, 모멸과 고문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의 동화가 ‘문명화의 도구’로서 기능하면서도 ‘전복을 꿈꾸는 상상’일 수 있는 가능성은 그러한 인식에서 비롯한다. 안데르센은 비록 비굴한 인물이었지만 자신이 우러러보았던 가치를 동시에 혐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의 진정한 천재성은 이것이 아닐까 한다

09. 05. 05.


댓글(4) 먼댓글(1) 좋아요(4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안데르센 동화의 불편한 진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10-21 22:59 
    주말 북리뷰를 대충 훑어보다가 발견한 책은 '주석달린'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주석달린 안데르센 동화집>(현대문학, 2011)이다. 안데르센 동화에 대해 예전에 쓴 글을 좀더 증보할 일이 있어서 안 그래도 책을 구하려고 했는데, 마침 최적의 판본이 나온 듯싶어 반갑다. 냉큼 주문을 넣고 소개칼럼은 스크랩해놓는다.한겨레(11. 10. 22) 안데르센 동화에 첨부한 ‘불편한 진실’안데르센 이야기를 빼놓고 어린 날의 ‘도덕’이란 걸 이야기하긴 힘들
 
 
2009-05-05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5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이] 2009-05-05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원밖에 안되는 안데르센 동화전집이 있었다니!!!!!! 정보고맙습니다

로쟈 2009-05-05 13:53   좋아요 0 | URL
네, 현대지성사판은 너무 비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