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일에 복귀하자 마자 해치우려고 계획한 일의 하나는 올해의 마지막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작성하는 것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웹진을 찾으니 아직 철학과 과학, 교양 분야의 추천도서가 올라와 있지 않지만, 그냥 나대로의 추천도서로 다 채워넣기로 하고서 '12월의 읽을 만한 책'을 꼽아본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고른 문학분야의 책은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현대문학, 2009)이다. 이미 소개 페이퍼를 올려놓은 적이 있고 해서 군말을 더 필요없을 듯. 추천의 변은 이렇다. "<사과는 잘해요>는 젊은 작가 이기호의 첫 장편소설이다. 그 동안 단편소설 모음집인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두 권은 펴낸 바 있다. 이 작가는 출발부터가 독자로 하여금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려는 듯 작품을 읽는 동안 웃음이 만발하게 하는 유머로 무장하고 등장했다.(...) <사과는 잘해요>는 제목에 등장하는 ‘사과’보다는 ‘죄의식’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작가의 독특한 화법이 여전히 웃음과 가독성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웃을 수만은 없는 둔중한 근원적인 아픔이 남는 작품이다. 우리가 흔히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과’의 집단성과 사회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그 사과의 집단성과 사회성의 올해의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기에 여러 모로 음미해볼 만하지 않나 싶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고른 역사분야의 책은 우동선 외,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효형출판, 2009)이다. 이렇게 거명되지 않았다면 나로선 그냥 흘려보냈을 책이다. 궁궐의 역사가 눈물의 역사이기도 한 것은 다음의 소개를 통해 알 수 있다.  

"아마도 궁궐만큼 식민지 시대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현장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은 이토록 수많았던 궁궐 전각들이 식민지 시대를 거치는 100년 동안 어디로 사라져갔는지를 추적한 책이다. 19세기 말 북궐도형(北闕圖形)에 그려진 경복궁 내 전각 수는 모두 509동이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를 거치고 남은 전각의 수는 불과 40동에 불과했다. 그 많은 전각들이 어떻게 사라졌으며 어디로 갔는지 체계적 연구가 부족한 것은 의아한 일이다.  

창경궁을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만든 것은 일제가 조선의 궁궐을 어떻게 대접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심지어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과 임금의 침소였던 회상전이 남산의 일본계 사찰 조계사(曹谿寺)로 팔려나가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데 쓰였던 사실이나, 일본인 상대 요정에 팔려가 기생들의 놀이터가 된 사실, 고종이 평양에 세웠던 황궁인 풍경궁(豊慶宮)이 일제의 군사기지로 전락했던 사실들은 일제의 궁궐 훼철이 의도적이고 조직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선조의 궁궐을 소개하는 윤돌의 <우리 궁궐 산책>(이비컴, 2008)의 부제가 '정겨운 朝鮮의 얼굴'인 것과 사뭇 대조된다. 아마도 예비적으로 읽어야 할 책은 홍순민의 <우리 궁궐 이야기>(청년사, 1999)일 듯싶다. "울에 남아있는 조선왕조의 5대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의 역사와 그곳에 살았던 왕들의 이야기. 저자는 궁궐이 세월의 풍상을 지나면서 훼손된 과정,특히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조선왕조의 왕궁 문화를 촘촘히 되살리고 있다."고 소개된다.   

3. 철학  

나대로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리처드 번스타인의 <한나 아렌트와 유대인 문제>(아모르문디, 2009)이다. 예전에 아렌트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 눈길을 맞춰둔 책인데(번스타인은 지명도 있는 철학자로 국내에 몇 권의 책이 소개된 바 있다) 이번에 아렌트 전공자인 선욱 교수의 번역으로 읽어볼 수 있게 됐다. 겸사겸사 국내 연구자들의 논물을 모은 <한나 아렌트와 세계사랑>(인간사랑, 2009)와 엘리자베스 영-브륄의 <한나 아렌트 전기>(인간사랑, 2007)도 같이 읽을 책으로 꼽아놓는다. 사실 영-브륄의 전기는 재작년에 <정치의 약속>(푸른숲, 2007)과 함께 '12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골라놓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손에 집어들 여유가 없었는데, 내달엔 그 일부라도 펴보고 싶다.  

공교롭게도 아렌트에 대한 관심이 주기성을 띠게 됐는데, 되짚어보면 얼마전에 읽은 아감벤의 <목적 없는 수단>에서 아렌트의 '우리 난민들'(1943)이란 글이 인용된 걸 보고 관심이 되살아난 것이기도 하다. "아렌트는 자신이 겪은 난민 혹은 무국적자의 조건을 뒤집어 이 조건을 새로운 역사의식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한다"(24쪽)고 아감벤은 적었다. 우리시대의 정치철학적 패러다임이 '시민'이나 '민중'이 아니라 '난민'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아감벤의 주장에 공감하게 되면서 덩달아 아렌트의 난민론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출간돼 나온 그녀의 유대인론에 대한 관심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고른 정치/사회분야의 책은 라틴아메리카 전문가인 이성형 교수의 <대홍수>(그린비, 2009). 저자의 책으론 봄에 나온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민족주의>(길, 2009)에 이어진 것이다. 책의 내용은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 20년의 경험'이란 부제가 집약해준다. 부제만 보자면, <신자유주의 이후의 라틴 아메리카>(모티브북, 2008)란 책과 같이 묶일 수 있겠다.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1992년 외채 위기 이후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 개혁의 명암과 최근의 중도좌파 정부에 의한 신자유주의 타개 경험을 다루고 있다. 이 지역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을 도입하면서 실업의 증가, 고용의 불안, 사회적 양극화 등으로 인해 심각한 사회경제적 시련과 좌절을 겪었다. 이 책의 제목 ‘대홍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인해 파괴된 삶의 터전을 상징하는 단어다."

 

해서,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는 게 추천의 변이다. 모처럼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관한 책이 언급된 김에 몇 권 더 꼽아본다. 애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수탈된 대지>(범우사, 2009)는 라틴아메리카 500년사를 다룬 이 분야의 고전으로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다. 그리고 <라틴아케리카의 근대를 말하다>(그린비, 2008)는 <대홍수>가 포함된 '트랜스라틴' 시리즈의 첫권으로 나온 책으로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해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의 논쟁을 담았다. ‘라틴아메리카의 근대가 언제부터였는가’라는 주제를 인류학, 역사학, 지리학, 문학 등의 학제적 연구를 통해 해명한다. 주로 서구학계에서 만들어진 근대성 담론을 비판한다." 이 역시 우리의 근대성 논의에 시사점을 제공해줄 수 있겠다. 그리고 김영길의 <남미를 말하다>(프레시안북, 2009)는 저널리스트의 생생한 현장 리포트이다. 몇 권을 겹쳐 읽으면 대략 라틴아메리카의 좌절과 희망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겠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고른 경제/경영 분야의 책은 토드 부크홀츠의 <유쾌한 경제학>(리더스북, 2009). 예전에 <유쾌한 경제학>(김영사, 1997)이라고 나왔던 책이 다시 출간된 걸로 보인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김영사, 2009)가 개정판이 나온 것처럼. 추천의 주된 이유는 저자의 글솜씨에 있다. "경제학 서적 중 토드 부크홀츠가 쓴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만큼 오랫동안 스테디셀러의 위치를 차지해 온 책은 극히 드물다. 경제학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무슨 책을 읽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바로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답이 자주 나온다. 이 책에서 보여준 부크홀츠의 글 솜씨는 정말이지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그 책의 속편 격인 <토드 부크홀츠의 유쾌한 경제학>에서도 그의 번뜩이는 재치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래서 뛰어난 책은 아니지만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어볼 만하다는 것.    

6. 과학 

나대로 고른 과학 분야의 책은 저명한 뇌과학자인 마이클 가자니가의 <왜 인간인가?>(추수밭, 2009). 이미 전작인 <윤리적 뇌>(바다출판사, 2009)와 함께 소개 페이퍼는 올려두고 나는 원서까지도 도서관에서 대출해놓았지만 아직 읽을 짬을 못 내고 있는 책이다. 역시나 바쁘겠지만 12월엔 시간을 좀 낼 수 있으면 좋겠다.  

 

대중성에서 가자니가의 책에 밀리긴 했지만 대니얼 데닛의 <자유는 진화한다>(동녘사이언스, 2009)는 뇌과학과 인지과학이 마음의 철학에 어떤 통찰을 던져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저작으로 개인적으론 12월의 독서목록에 올려놓은 책이다. 뇌과학 입문서로 출간된 데이비드 린든의 <우연한 마음>(시스테마, 2009)와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갤리온, 2008)도 같이 읽으면 좋을 만한 책. 기묘한 뒤죽박죽으로 진화된 뇌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클루지>는 작년에도 '12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골랐었는데, 뇌과학에 대한 관심 또한 주기적인 모양이다(그만큼 주기적으로 이 분야의 책들이 나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정준호의 <이젠하임 가는 길>(삼우반, 2009)이다. 제목만으론 감을 잡을 수가 없는데,' KBS 'FM 실황음악' 진행자 정준호가 이야기하는 음악과 예술'이 부제다. 추천사에 따르면, "음악해설가 정준호는 좋은 작품을 고르고, 그것을 연주한 사람들의 연결고리, 작품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사건들, 다른 장르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들, 작곡가가 그 작품의 첫 번째 음을 적기까지 있었던 많은 일들의 입체적 맥락을 풍부하고 맛깔스럽게 드러내 놓았다. 이 책에서는 따로따로 알고 있던 사실들이 입체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음악 안으로 녹아들어가는 과정을 읽는 큰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음악에 과문한 탓에(FM도 듣지 않는 탓에) 저자는 생소한데, 이미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삼우반, 2006)을 출간한 이력이 있고, '현대 음악의 차르'에 대한 평전 <스트라빈스키>(을유문화사, 2008)도 쓴 바 있다. 왜 제목이 '이젠하임 가는 길'인가? 저자의 답변은 이렇다. 



“16세기 이탈리아 다성 음악의 절정을 이루었던 팔레스트리나는 몬테베르디라는 새로운 시대의 총아에게 자랑스럽게 자리를 내어준다. 이들의 이야기를 20세기 초에 한스 피츠너라는 독일 작곡가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피츠너의 ‘예술가 오페라’는 후배인 힌데미트가 <이젠하임 제단화>를 그린 중세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를 주인공으로 오페라를 쓰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뤼네발트의 그림에 나오는 세바스찬과 안토니우스 성인은 브람스의 변주곡과 드뷔시가 쓴 극 부수음악의 주인공이다. <이젠하임 제단화>는 이 책을 가로지르는 핵심 코드이다.”(6쪽) 

 

8. 교양 

나대로 고른 교양서는 윤미화의 <깐깐한 독서본능>(21세기북스, 2009)이다. '파란여우'님이란 닉네임이 아직은 더 친숙한데, 알라딘 마을 면장님의 책을 리스트에서 빼놓긴 어려운 일이다(내 책은 리스트에 못 올려놓더라도). 하지만 그런 '정치적' 이유는 부수적이고, 책은 보기 드문 하중과 함량을 자랑한다. 책읽기를 통해 깐깐한 '교양'이 무엇인지 경험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강추할 만하다. 덧붙여 요즘 독자층이 부쩍 늘어난 듯싶은 유네하라 마리 여사의 <대단한 책>(마음산책, 2007)도 같이 읽어봄 직하다. 요네하라 마리 독자들에겐 말이 필요없는 '대단한' 독서기. 거기서 더 여유를 부릴 수 있다면, 크리스티아네 취른트의 <책>(들녘, 2003)까지 손에 들어볼 수 있겠다. '책에 대한 책'으로 네버 엔딩 책 얘기이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고다마 사에의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책공장더불어, 2009)이다. '유기동물'이란 주제를 다룬 드문 책인 듯싶은데, 저자의 사연은 이렇다고. 

“1997년 봄, 회사 근처 선로 옆에 하늘색 쓰레기 봉투가 버려져 있었다. 봉투에는 ‘죽은 개’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고, 빨간 목걸이를 한 하얀 개가 죽어 있었다. 이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책은 이런 물음에서 출발해 동물의 존엄성에 눈을 돌리고 있다. 출발은 유기동물 문제가 심각한 일본이다. 무책임하게 버려져 살처분 운명을 맞는 동물은 1년에 개 16만 4,209마리, 고양이 25만 5,628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저자는 그러나 개인적인 슬픔과 안타까움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유기동물에 관한 사진전.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곳곳에서 전시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그 곳에서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발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물의 생명에 대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책은 사진전을 옮겨 놓은 형식이다. 

저자가 내미는 책의 결론은 이런 것이라고 한다. “반려동물에게 인간과의 우정과 신뢰는 삶의 모든 것이다.” 생각보다 무거운 울림을 던져주는 책이다. 이 번역본을 낸 출판사 '책공장더불어'는 ‘동물전문 1인 출판사’인데, 리디아 히비의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를 시작으로 하여 <펫로스, 반려동물의 죽음> 등 오직 동물을 주제로 다룬 책만을 여러 권 출간했다. 어느 정도 고정독자층도 형성된 듯싶은데, 이런 전문/특수 분야를 전담하는 출판사들이 좀더 많아지면 출판계도 좀더 다양해지고 풍성해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10. 다윈주의 

끝으로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다윈주의'로 잡았다. 물론 올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이었던 걸 고려해서다. 아직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 새 번역본이 나오진 않았지만, 최근에 두툼한 <다윈 평전>(뿌리와이파리, 2009)가 출간되어 분위기를 살리고 있고, 그밖에도 몇 권의 관련서가 더 나왔다. 개인적으론 마이클 셔머의 <왜 다윈이 중요한가>(바다출판사, 2008)을 손에 들어보려고 한다. 그건 그의 신작 <진화경제학>(한국경제신문, 2009) 때문에 다시금 상기하게 됐기 때문이다. 다윈과 다윈주의 관련서들이 몇 권 출간될 듯하므로 해가 넘어가도 '다윈'은 여전히 출판계의 화두가 될 듯싶다. '놀랍고 색다른 이야기'들이 더 많이 쏟아지길 기대한다... 

09. 11. 29.  

P.S. 올해의 마지막 고전은 이지(이탁오)의 <분서>(한길사)이다. 1, 2권이 2004년에 나왔고, 속편은 2007년에 번역되었다. <이탁오 평전>(돌베개, 2005)은 조금 뒤적여보았지만, 나는 <분서>를 챙겨놓진 않았는데, 그건 책이 2004년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사정과 관련이 있다. 러시아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이 책에 대한 아무런 식견을 갖고 있지 않았다('이탁오'란 이름만 들어보았을 정도). 그러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의 책에서 인상적인 독후감을 읽고 관심을 갖게 됐고, 피에르 부르디외가 <호모 아카데미쿠스>(동문선, 2005)의 서문에서 그 책을 자신의 '분서'라고 일컫는 걸 보고 흥미가 이어졌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의 책은 아니어서 독서는 미뤄두고 있다. 이번에 골라놓는 것은 파란여우님의 강추 덕분이다(독후감은 <깐깐한 독서본능> 참조). 면장님은 이렇게 적었다. 

"분서를 읽는 동안 슬프고 외로웠다. 분서 속의 이지가 자꾸 술을 권했음을 고백한다. 다수와는 다른 사상을 지녔다는 이유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결국에는 스스로 목에 칼을 그어 죽은 인간 이지의 고독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해서, 이지를 읽을 독자라면 냉장고에 술병을 댓 병 대기시킬 것을 권한다."(<깐깐한 독서본능>, 187쪽)  

볼과 함께 시작한 우리의 한 해는 술병과 함께 저물어갈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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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9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9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동 2009-11-29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하시니 좋습니다.
영화 '2012'처럼 지구 환경의 급변때는 '홍수'가 동반되더군요.
'룰라'의 '신자유주의' 대한 극복에 대해 읽고 싶군요.

로쟈 2009-11-29 21:34   좋아요 0 | URL
여러모로 반면교사가 되는 나라들입니다. 우리도 그 나라들의 반면교사가 될지도 모르겠구요...

sophie 2009-11-29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돌아오셨어요? ^^
저는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가 눈에 띄네요. 여기 미술사 전공하는 학생 얘기를 들어보니 수업에서 그림에 영향을 받은 음악을 감상하고 미술과 음악에 대해 얘기한다고 합니다. 예전에 오히려 미술, 음악이 넘나들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상적인 수업인 것 같아 양해를 구하고 청강을 하기로 했는데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한 답니다. 공부 좀 좋이 해야겠어요. ^^

로쟈 2009-11-29 21:35   좋아요 0 | URL
흠 너무 일찍 컴백한 건가요?^^; <보리스 고두노프>에 대한 강의는 저도 듣고 싶은데요...

수유 2009-11-29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반려 동물의 죽음이나 유기견 이야기, 학대받는 동물들, 로드킬 당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읽기는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애써 외면하기도 하지요..

<이젠하임 가는길> 눈에 들어오네요^^

로쟈 2009-11-29 21:35   좋아요 0 | URL
네, 그러실 듯해요.^^
 

며칠간의 휴식을 뒤로 하고 다시 복귀한다. 쉰다고는 했지만, 일상생활에서 따로 '휴가'를 가진 것은 아니었으므로 순수하게 하루에 서재일에 투자했던 한두 시간(때론 두어 시간)을 쉴 수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름 휴식이었고 자유시간이었으니 다시 복귀하는 일요일이 마치 월요일 같다!   

아침에 의외로 방문자가 많은 것으로 보아 휴식 이후에 무얼 갖고 돌아올 것인가 궁금해하신 분들이 많은 듯싶다. 흠, 대단한 걸 내놓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먼저 실토해야 할까? 다만 지난 화요일에 처음 휴식을 공지하고, 내가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한편 정도는 '공유'하고 싶다.    



7명의 감독들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 <텐 미티츠: 트럼펫>(2002) 편에서 내가 본 건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개들에겐 지옥이 없다(Dogs have no hell>이다(http://www.dailymotion.com/video/x6ifim_aki-kaurismaki-dogs-have-no-hell_shortfilms).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의 한 사람이다(우연찮게도 그는 <죄와 벌>(1883)로 데뷔했다. '로쟈'와 인연이 없지 않다). 이 단편영화는 앞뒤에 나오는 트럼펫 연주까지 포함하여 12분이니까 내가 얻은 휴식만큼이나 짧다. 영화에서 흘러가는 시간도 짧다.   

"유치장에서 한 남자가 나온다. 시베리아로 떠나고 싶어하는 그에게 남은 시간은 30분. 그는 주어진 시간 안에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려 한다."는 게 그 줄거리다(개들에겐 천국만 있다?). 그 시간에 그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한 여인에게 찾아가 구혼을 하고 결혼반지를 사고 모스크바행 기차를 탄다!  

이 영화의 재미는 카우리스마키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남녀 배우를 볼 수 있다는 점과 무엇보다도 마르코 하비스토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마르코 하비스토의 노래는 영화에 3분 남짓 포함돼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piVzI5q81y0). 특이하게도 핀란드어가 아닌 영어로 부르는데, 노래의 제목은 '천둥과 번개'.     

 

지난 휴식기간에 나는 매일같이 마르코 하비스토의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밴드명은 'Marko Haavisto & Poutahaukat'이다). 찾아보니 마르코 하비스토의 노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과거가 없는 남자>(2002)에서도 콘서트 장면에서 들은 적이 있다. '파하 바니'란 노래다(http://www.youtube.com/watch?v=fn7wsxGZltM). 대체로 나는 이런 노래를 좋아한다(가사는 "매일 악마에게 쫓기고 있으니 하나님 도와주세요"라는 식으로 돼 있다. 하비스토의 또 다른 베스트로 꼽을 만한 노래는 '룸푸 소이'(http://www.youtube.com/watch?v=R9yukbhrrI0&feature=related). 가사는 전혀 대중할 수 없지만 길거리에서의 연주 장면은 흥겹고 재미있다.     

흠, 대략 이런 식으로 나는 휴기기간 동안에 잠시 '핀란드'에 다녀온 걸로 치고 싶다(그의 최근작 <황혼의 빛>(2006)도 조만간 봐야겠다). 책? 카우리스마키에 관한 책을 찾아봤지만(물론 핀란드어 책은 제외하고) 영어권에는 거의 읽을 만한 책이 나와 있지 않다(그나마 한권 눈에 띄는 건 도서관에 주문을 해놓았다).  

Андрей Плахов, Елена Плахова Аки Каурисмяки. Последний романтикКоллекция Аки Каурисмяки. Том 1 (3 DVD) Гамлет идет в бизнес / 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 Жизнь богемы 

이미 카우리스카미 컬렉션까지 출시돼 있는 러시아에서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마지막 낭만주의자>(2006)란 책이 나와 있다(러시아에서는 '아키 카우리스먀키'라고 표기한다. 핀란드어로는 '아키 카우리스매키' 정도로 발음한다). 그의 영화에 대한 비평과 함께 감독 인터뷰와 시나리오, 산문까지 모아놓은 자료집 형태의 책이다. 다음번 휴가때는 이 책을 읽어야겠다!.. 

09.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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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전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4-12 00:37 
    어제 접한 가장 좋은 뉴스는 핀란드의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전' 소식이다. 4월 19일부터 5월 1일까지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된다고.내겐 칸느영화제 부럽지 않은 '선물'이다. 비록 몇 편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이번 기획전에서는 국내에 소개 되었던 <성냥공장소녀>, <과거가 없는 남자>, <황혼의 빛> 외에도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연작, 감독의 보헤미안 정신을 가장 잘 대표하는 <보헤미안
 
 
목동 2009-11-29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영화나 단편소설에서 느끼는 까칠함은 입안 침샘이 말라버린 건조함 같아요.

로쟈 2009-11-29 21:36   좋아요 0 | URL
카우리스마키의 초기작이 '프롤레타리아 3부작'인데, 이런 건 좀 출시되면 좋겠어요...
 

오늘부터 28일(토)까지 한시적으로 서재일을 쉬려고 합니다. 서재를 닫아놓는 건 아니고, 다만 며칠간이나마 제가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용히 혼자 쉬면 될 일이지만, 공연한 오해나 걱정을 살 수도 있을 듯해서 공지를 달아놓습니다(이 공지는 토요일 자정에 삭제하겠습니다->댓글이 많이 붙어서 보존해놓습니다). 일년간 휴가가 전혀 없었는데, 12월은 또 연말이라 바쁠 듯싶어서 따로 쉴 시간도 없을 것 같단 생각이 오늘 아침에 들었습니다. 서재를 즐겨찾으셨던 분들도 이번주는 같이 쉬시면 좋겠습니다.^^ 12월엔 방문자가 1백만명을 넘어서게 될 듯해서 조촐한 이벤트도 열 계획입니다. 며칠간 이런저런 구상을 하겠거니 하고 생각해주시길... 그럼 일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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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9-11-24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이라도 좀 다녀오시죠...

로쟈 2009-11-29 12:07   좋아요 0 | URL
책 속의 여행입니다.^^;

마노아 2009-11-24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고양이 표정 너무 흡족스러운데요. 로쟈님도 저런 표정으로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9-11-29 12:07   좋아요 0 | URL
아직은 고양이 팔자가 못되구요.^^;

목동 2009-11-2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좋은 시간 되십시오.

로쟈 2009-11-29 12:08   좋아요 0 | URL
감사...

무해한모리군 2009-11-2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콤한 휴식되세요 로쟈님 ^^

로쟈 2009-11-29 12:08   좋아요 0 | URL
서재일만 쉬었을 뿐이에요.^^;

반딧불이 2009-11-24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은 시간이지만 푸~~욱 쉬세요. 덕분에 제 마우스도 좀 쉴것 같으네요.

로쟈 2009-11-29 12:08   좋아요 0 | URL
너무 일찍 돌아왔나요?^^;

twoshot 2009-11-24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푹 좀 쉬세요^^

로쟈 2009-11-29 12:09   좋아요 0 | URL
흠, 다른 의미는 없으신 거죠?^^;

sophie 2009-11-25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푸욱~ 쉬세요에 한 표 ^^

로쟈 2009-11-29 12:09   좋아요 0 | URL
일년 뒤에 컴백할 걸 그랬나 봅니다.^^;

philocinema 2009-11-2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은 휴식이 필요해요! 정말이지~

로쟈 2009-11-29 12:09   좋아요 0 | URL
네, 누구에게나 그렇습니다!..

헛헛헛헛 2009-11-25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팅~ 'ㅁ'

로쟈 2009-11-29 12:10   좋아요 0 | URL
전투적으로 쉬라는 말씀인가요?^^

비로그인 2009-11-26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충전 후 좋은글 기대해 봅니다

로쟈 2009-11-29 12:10   좋아요 0 | URL
재충전까지는 아니어서 좋은글은 나중에...^^;

토탈리콜 2009-11-2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세 그런대 작장인은 쉬고 싶어도,,,,,
 
아감벤과 도래해야 할 정치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아감벤의 <목적 없는 수단>(난장, 2009)을 다루고 있다. '정치에 관한 11개의 노트'란 부제대로 책은 저자가 발전시켜나가게 되는 철학적 구상의 노트이면서 독자에겐 아감벤의 전체적인 철학적 기획을 일별하게 해주는 조감도이다. 병렬적인 구성이긴 하나 '기 드보르를 추모하며'란 헌사가 시사해주듯이 '<스펙터클의 사회에 관한 논평>에 부치는 난외주석' 같은 글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글에 대해서는 두 역자가 자세한 해제(간주곡)를 붙이고 있어서, 나로선 '삶-의-형태'와 ''인권을 넘어서', 정치에 관한 노트' 등의 장을 중심으로 리뷰를 작성했다.   

 

한겨레21(09. 11. 30) 벌거벗은 난민의 생명에서 탈주하라 

“우리의 정치적 전통에서 핵심에 놓인 주권과 제헌권력이라는 개념을 버리든가 처음부터 다시 사유해야 한다.”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서양 정치철학의 근원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주장이다. ‘주권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새로운 정치철학적 범주를 제시한 <호모 사케르>(새물결 펴냄, 2008)를 통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아감벤은 현재 가장 문제적인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사유의 ‘맹아적 저작’이라고 불리는 <목적 없는 수단>(난장 펴냄)은 비교적 가벼운 부피의 책이지만, 이 ‘사유의 거장’이 어떤 문제의식을 품고서 자신의 사유를 발전시켜나가는지를 안내해주는 압축적인 저작이다.   

아감벤의 문제의식이란 무엇인가? 정치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명령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는 정치철학의 전통적인 개념과 범주로는 오늘날의 정치적 현실을 제대로 포착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본다. 경제에서 제1차 산업혁명이 구체제의 사회적․정치적 구조에 ‘거대한 전환’을 가져왔다면, 근대 이후 특히 20세기에 경험한 현실은 그에 걸맞은 새로운 사유를 요구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오늘날 정치적 행위의 의미가 실종되고 또 망각되고 있다면, 그것은 주권과 법/권리, 국민/민족, 인민, 민주주의 같은 고루한 용어로 지시할 수 있는 현실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용어들을 여전히 무비판적으로 사용한다면 “문자 그대로 자신이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감벤은 미셸 푸코를 따라서 “오늘날 문제가 된 것은 생명”이며 따라서 정치 또한 생명정치적인 것이 되었다고 본다. ‘호모 사케르’ 연작을 통해서 그가 더 자세하게 발전시키게 되는 주제이지만, 이때의 생명은 ‘벌거벗은 생명’, 곧 단순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생명이다. 우리말로는 ‘목숨’에 가깝다. 이 벌거벗은 생명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발표하는 신종플루 사망자 수나 백신접종 대상자 수처럼 통계적 ‘숫자’로서 존재하는 생명이다. 그것은 국가권력에 의해 복속되는 한에서만 보호되며 관리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감벤은 인간이나 시민이 아닌 난민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중심적 형상이라고 본다. 이런 구도에서 현실적 삶은 말 그대로 ‘생존’으로 환원된다.  

그럼 다른 의미의 생명이 또 있다는 것인가? 물론이다. 아감벤은 개인이나 집단에 고유한 살아가는 방식이나 형태를 의미했던 그리스어 비오스(bios)에서 생명의 다른 의미를 길어올린다. 그것은 ‘삶 자체가 문제가 되는 삶’,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문제가 되는 삶’을 가리킨다. 아감벤은 ‘삶-의-형태’라는 용어로 표현하지만 좀더 이해하기 편하게 말하면 ‘폼 나는 삶’이고 ‘행복한 삶’이다.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삶이 아니라 품위 있는 삶, 행복을 향유하는 삶, ‘더 나은 삶’이 새로운 정치철학의 기초가 돼야 한다는 것이 아감벤의 주장이다.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 단지 살아남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가 되는 삶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가리켜 삶에 있어서 행복이 문제가 되는 유일한 존재라고 했다. 이때 행복은 동물적인 욕구의 충족을 가리키지 않는다. 인간에게 삶이란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을 실험하고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그러한 삶이 가능한 공간이 바로 정치 공간이며, 정치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행위에 참여할 때 우리의 삶은 본래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질문해야 할 것은 현재의 삶이 과연 ‘삶-의-형태’에 합당한 삶인가 하는 것이다. 아감벤의 진단에 따르면, 정치권력은 항상 삶의 형태라는 맥락에서 벌거벗은 생명을 분리․추출해내는 데 기초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치적인 삶은 그러한 일체의 주권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탈출을 감행함으로써만 사유될 수 있다. 그것은 달리 목적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목적 없는 수단’으로서의 삶이기도 하다.  

09 11. 23.  

P.S. '인권을 넘어서'란 노트에서 아감벤이 주장하는 바를 좀더 적으면 이렇다. "이제 멈출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국민국가의 쇠퇴와 전통적인 법적-정치적 범주의 전반적인 해체 속에서, 난민은 어쩌면 오늘날 생각할 수 있는 인민의 유일한 형상이다. 그리고 적어도 국민국가와 그 주권이 와해과정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이상, 난민은 오늘날 도래하는 정치공동체의 형태와 그 한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범주이다. 만일 우리가 맞닥뜨린 완전히 새로운 과제를 처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정치적인 것의 주제를 대표해온 근본 개념들(인간, 권리를 가진 시민들, 또한 주권자로서의 인민, 노동자 등)을 지체 없이 포기하고, 난민이라는 이 둘도 없는 형상에서 우리의 정치철학을 재구축해야 할 것이다."(25-26쪽) 아감벤의 '난민'은 우리의 '철거민'으로 다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치철학' 또한 철거민에서 바로 재구축되어야만 하리라. 그러한 정치철학이 우리에게 도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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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11-24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인 일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영전을 들고 한 발 한 발 걷는 모습은 참답합니다. 주검을 넘고 저 검은 구름사이를 향할때,,아이들(자식)은 어찌 마음을 다 잡겠습니까!

2009-11-24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4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4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상 위에 가득 놓여 있는 책들 가운데, 파란여우님의 <깐깐한 독서본능>(21세기북스, 2009)을 잠시 손에 들었다가 추천사를 쓰기 위해 읽은 대목 중 하나를 다시 읽었다. '파란여우가 생각하는 책'이란 꼭지다. 저자가 자주(?) '우려먹는 이야기'이지만, 펼칠 때마다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이 책이 저자의 '실존을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는 걸 시사해주는 대목이기도 해서다. 알라딘에는 이 책의 '미리보기'가 뜨지 않아서, 한 독자의 재량으로 (저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내가 읽은 대목을 옮겨놓는다. 저자의 말대로, "고향을 잃은 사람, 고향의 정적들로부터 떠나온 사람, 진정성을 의심받고 마음을 다한 기도가 하늘에 닿지 못해 부서진 사람, 세상의 바깥으로 홀로 던져진 사람"에게, 혹은 "종종 심허증으로 앓아눕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분들에게 책을 권한다. <깐깐한 독서본능>을 권한다...  

 

“가련한 넋이여! 짐을 꾸려 토르네오로 떠나자. 어쩌면 더욱 멀리라도 가자. 발틱해의 맨 끝까지라도. 할 수 있다면 인생에서 더욱 더 멀리. 북극에 가서 살자. 거기 태양은 비스듬히 땅을 비추고, 낮과 밤의 느린 교대는 변화를 없애고 허무의 반쪽인 단조로움을 북돋아 준다. 거기서 우리 오래도록 어둠의 미역을 감을 수 있을 것이요. 그동안,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극광은 때때로 우리에게 지옥 불꽃의 반사광처럼 그 장밋빛 햇살 다발을 보내 주리라! 마침내 내 넋의 말문이 터지더니만 슬기롭게도 내게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어딘들 상관없어! 다만 그곳이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_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중 



자, 이제 내 얘기를 좀 하자.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빗대면 나에게도 책의 역사가 있다. 나도 이거 언젠가는 쓸 테지만(모르죠, 카프카의 유언처럼 모두 불태워 버려! 이런 변덕이 없으란 법도) 내 삶에서의 책은 곧 세상이다. 그것도 그냥 세상이 아니고 새 세상이다. 또 우려먹는 이야긴데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시기는 마흔 살이 된 어느 날부터였다. 남들 마흔과 내 마흔은 다르다. 나는 마흔 살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었고 직장생활도 변변치 못했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객(客) 노릇을 했으니 절친도 없었다. 마흔이 되니까 허무했다. 나는 읽지 않는 책을 사들였다. 단지 샀을 뿐이다. 내겐 장식용이라도 뭔가가 곁에 필요했다. 하필이면 그것이 책이었다. 사들인 책을 책상 위에 쌓아놓고 스위트콘과 양송이와 양파, 피망과 소시지, 블랙 올리브와 피자치즈 등의 토핑이 풍부한 책의 화려한 표지를 눈요기하며 영혼의 허기를 채웠다.   

 

폼 잡고 싶은 허영기를 선풍기 날개처럼 윙윙 돌리는 욕망으로 맨 처음 산 것이 ≪완당평전≫이었는데, 완당의 <세한도(歲寒圖)>가 내게 있어 세한도(歲閑渡)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보들레르가 이 세상 바깥의 그 어디로든 떠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한 절규, 난 그때 그런 심각한 상태였다. 돈도 없고 빽도 없이, 속된 말로 미모도 재산도 권력도 그리고 연인도 없이 시골 면사무소로 출근하는 늙은 여자에게 누가 애틋한 눈길을 주겠는가. 세상 인심이란 것이 내 주머니가 두둑하면 파리, 모기가 배고픈 상어 떼처럼 달려들고 빈 주머니가 되면 빈대까지 나가 버린다. 함께 술 먹을 상대로는 좋았는지 만날 술타령은 원 없이 했다. 변두리에 술집 하나 차릴 만한 돈이 내 지갑을 떠났다. 허무하고 허탈하여 허허로운 때에 책은 내게 왔다. 첫 책인 ≪완당평전≫ 세 권을 읽으면서 다른 건 잊고 완당의 <세한도>만 내게 남았다. 압축완당이다. 고향을 잃은 사람, 고향의 정적들로부터 떠나온 사람, 진정성을 의심받고 마음을 다한 기도가 하늘에 닿지 못해 부서진 사람, 세상의 바깥으로 홀로 던져진 사람. 책은 불면의 밤을 붉은 포도주처럼 흥건히 위로했다.  

 

그때 내가 잠시 근무했던 면사무소 앞마당에는 수령이 백 년이 넘은 고로쇠나무가 있었다. 여름이 가고 쓸쓸한 가을을 지나 무덤덤하게 겨울을 보내고는 다시 봄을 맞는 동안, 늙은 나무는 출퇴근을 서두르는 키 작은 나를 등 굽은 할머니처럼 마중하고 배웅했다. 경칩을 전후한 이른 봄이 되면 종이컵에 담긴 수액이 직원들의 책상으로 배달되었는데 그 맛이 무척 달콤했다. 늙은 나무가 제 몸의 혈액을 외롭고 신산한 세상의 빈혈에 시달린 나를 다독였다. 나는 한 모금씩 천천히 혀를 입 안에서 굴려가며 아껴 마셨다. 세상은 팍팍했고 나는 춥고 허기졌다. 종종 심허증으로 앓아눕기도 했다. 완당의 <세한도>에 나오는 나무가 고로쇠라고 착각했다. 면사무소 앞마당 늙은 고로쇠나무는 내가 잃은 꿈, 간직하고 싶은 꿈을 알고 있었다. 고로쇠나무 아래에서 독백으로 흘린 내 꿈의 파편들을 나무는 말없이 바람에 쓸려 보냈다. 나는 종종 화가 났고 괴로웠고 외로웠다. 검은 상복 같은 정장을 즐겨 입고 기형도처럼 세상을 증오한다고 발광했다. 면사무소의 늙은 고로쇠나무는 내 삶의 어느 한 시점의 완벽한 증인이다.  

그리고 책이 내게 왔다. 뻥쟁이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풍요로운 수다를 듣고 수잔 손택의 윤택한 지성도 만났다. 이탁오를 읽는 동안에는 그의 고독에 전염되어 밤마다 한 모금씩 소주를 마셨다. 책을 읽기 전 온몸으로 세상을 관통하느라 생긴 상처에 책은 빨간약을 발라줬다. 나는 한 차례 쩌릿쩌릿 아프고 나서 새 세상의 문이 쾅쾅 열리는 것을 봤다. 열려라 참깨 같은 주문은 없었지만 그것은 마법이었다. 황야에서 뒹굴던 여우는 널빤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툴렀다. 삐뚤빼뚤.  



“결국 인생의 여러 가지 경험들, 이리저리 찢겨지고 갈래갈래 조각난 경험들을 숙고해보건대 내가 참으로 실존의 책상에 임하는 것은 차라리 백지 앞에서, 나의 램프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어 책상 위에 펼쳐진 흰 페이지 앞에서이다. 그렇다. 내가 최대한의 실존, 팽팽한 실존, 앞을 향하여, 보다 앞을 향하여, 또 그 위를 향하여 긴장되어 있는 실존을 알게 되는 것은 나의 실존의 책상에서이다.”
_가스통 바슐라르, ≪촛불의 미학≫ 중


바슐라르의 책상은 실존의 책상이다. 책상 앞의 나는 어둡고 습하고 아픈 곳을 한 번 더 응시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이 세상이라고 말한다. 책상 위에서 관념을 밝히는 촛불을 창밖으로 내던지고 실존을 밝히는 새 촛불을 켜라고 책은 일러준다. 팽팽한 스트레이트 미문 때문에 소설 말고 에세이를 쓰라고 권유받는 작가 김훈은 밥은 지엄하다고 말한다.   

실존을 말하지 않는 책은 사이비고, 상상력으로 위로해주지 않는 책은 관 속에 넣어야 하고, 최후의 질문조차 남기지 않는 책은 불쏘시개로 끝나야 한다. 밥 먹고 똥 싸고 욕하고 웃고 우는 조촐하고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책이 열어준 새 세상에서 좀 더 많이, 더 많이, 더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09. 11. 22.  

P.S. 덧붙여, <깐깐한 독서본능>의 초고를 읽고 내가 쓴 추천사의 초안은 이랬다. 굵은 글씨가 뒷표지에 실렸다.

내가 거주하는 알라딘 마을은 책 마을이어서 모두가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수다를 떤다. ‘고수’도 많고 ‘강자’도 득실거린다. 하지만 이 마을의 ‘면장’이라면 단연 파란여우님이다. 염소치기 면장님이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마을 사람들은 늘 궁금해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 면장님이 드디어 책을 내신다! 당신은 마흔에서야 ‘지각독서인생’을 시작한 ‘종잡을 수 없는 독서가’가 내놓은 ‘뻥 과자’라고 부르지만, 그건 ‘뻥’이다. 책상물림이 아닌 ‘칼을 찬 독서가’의 용맹정진 독서기가 당차게 펼쳐진다. 도저하며 거침없다. 어서 이 소식을 알려야겠다. "여기 한 독서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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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from 뻥 Magazine 2009-11-23 15:49 
    “세상이란 도대체 무얼 말하는 걸까요. 인간들의 집단을 말하는 걸까요. 어디에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가 있는 걸까요. 그 실체가 뭐가 됐든, 강하고 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나였지만, 호리키에게서 그런 소릴 듣고 나니 문득 ‘세상이란 건 널 두고 하는 말 아니야?’ 라는 말이 혀끝까지 튀어 나왔습니다.”            
 
 
2009-11-22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3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phie 2009-11-22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이루어지는 독서를 하시고 난 평이라 그런 것 같아요. 파란 여우님의 <깐깐한 독서본능> 꼽아놓겠습니다. 읽고 나니 왠지 흐뭇해요. ^^*

로쟈 2009-11-23 00:03   좋아요 0 | URL
네, 어떤 분위기의 책인지 소개가 좀 필요할 듯해서 옮겨놓았어요...

수유 2009-11-2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모로 부러운 책이네요^^

로쟈 2009-11-23 16:12   좋아요 0 | URL
이 참에 저자 대열에 참여하심은?^^

목동 2009-11-23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늘 궁금합니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독서가)

치유 2009-11-25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경사가 왠지 우리 가족 경사처럼 행복합니다.
아이들 불러서 자랑시켜주고 흐뭇합니다.
여우님의 깐깐한 독서본능 대박기원~!

책읽는나무 2009-11-27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파란여우님이 '이장'님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단계가 더 높았었군요.^^
님의 글에서 이미 여우성님의 책을 읽은 듯하고,
좀 뭐랄까,
여우님의 모습이 눈에 잡히는 듯하여
마음이 좀 애틋하게 느껴지네요.
실은 내가 사는 이작은 동네 면사무소 한 켠에 여우성님이
고로쇠를 홀짝이고 계실 듯하여 확인하고픈 욕구도 생기구요.
암튼 얼른 사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