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문화면' 기사를 옮겨놓는다. '출판면'은 그만두었지만 '문화면' 청탁까진 거절할 수 없었는데, 더구나 인문학 커뮤니티 '비평고원'에 관한 것이었다. '내부자'이기도 하기에 안과 밖에서 보는 비평고원에 대해 적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래봐야 시간에 쫓기며 작성한 거라 주문내용이 다 들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불멸회원 로쟈가 회고하는 인문학 커뮤니티 비평고원 성장사'이자 '10주년 카페북 출간을 계기로 돌아본 어제와 오늘'이 글의 컨셉이다.    

한겨레21(10. 07. 19) 인문학 강호를 뒤흔든 비평의 강호

시작은 미미했다. 2000년 봄, 지방대학의 국문학과를 졸업한 한 청년이 대학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유학’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살이에 외로움을 느끼다 마침 등장한 인터넷 세계에 빠져들었고, 별다른 생각 없이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전자메일이 상용화된 지 1년 남짓이었고 ‘카페’라는 이름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붐을 타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가 좋아하던 작가가 밀란 쿤데라여서 운영자 닉네임은 ‘쿤데라’로 정했다. 관심을 갖던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책들이 두세 권 출간되어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인문학 동네의 ‘전설’로 떠돌고 있었다. 일종의 팬카페였던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은 이들을 조합한 이름이었다.   

그들이 미약한 시작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
쿤데라 소설의 애독자이자 고진의 <탐구>를 흥미롭게 읽은 터라 나는 우연히 발견한 이 카페에 호감을 느끼고 가입하여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대학과 학원의 강사생활을 하면서 ‘로쟈’란 필명으로 인터넷 세상을 어슬렁거리던 때였다. ‘도스토예프스키’란 팬카페를 나름대로 운영 중이었지만 더 열심히 글을 올린 곳은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이었다. 그건 소위 대화의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쿤데라 작품엔 절대적인 가치(구원)이나 종착역이 존재하지 않고 웃음은 바로 그 작품 전체구조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세상 전체가 농담이 되는 것이죠. 한데, 도스토옙스키 작품엔 웃어서는 안 되는 ‘종착역’(구원)이 전제된 상태로 현실에 역투사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유머는 진지함을 보충해주는데 그치고 있습니다.”라고 주인장이 주장하면, 나는 “도스토옙스키에게 웃어서는 안되는 종착역이 있다는 건 그의 사상의 경우에 국한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시다시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미완성작이고, 거기엔 별개의 사상과 감정들이 극단의 스펙트럼까지 공존하며 이질적인 웃음과 비장함을 빚어내고 있습니다”라고 반박하는 식이었다.  

아주 무겁지는 않더라도 제법 ‘진지한’ 대화가 자주 오고 갔고, 카페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인문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대학생과 직장인이 가세했고, 관심사도 더욱 넓어졌다. 거기에 보조를 맞춰 2004년 말에는 카페명이 ‘비평고원’으로 개명됐다. ‘쿤데라와 고진’이라는 특수성이 ‘비평’이라는 보편성으로 전화된 사례라고 할 만하다. 닉네임을 ‘소조’로 바꾼 운영자 조영일씨의 표현을 빌면, 비평고원은 곧 인터넷 공간의 ‘강호’가 됐다. 카페 개설 1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책 <비평고원 10>(도서출판b 펴냄)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무협소설에 비유하자면, 한국 지성계가 환관들에 의해 유지되는 국가기구의 하나(교육장치)라면, 비평고원은 오로지 자신의 무공에 의지하여 ‘의(義)’를 행하는 강호(또는 무림)라 하겠다.”   

그들의 강력한 무기, 고진과 지젝
얼마간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이 재치 있는 비유에는 지난 10년간 온라인 인문학의 대표적 커뮤니티로 성장한 비평고원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다. 2007년부터는 언론의 본격적인 주목까지 받게 된 비평공간(*비평고원)은 이미 “저마다 무림의 고수를 자처하며 갈고 닦은 내공으로 일합을 겨루는 공간”(한겨레), “고수들이 학벌이나 나이 등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필력으로만 자웅을 겨루는 공간”(경향신문) 등의 평판을 얻은 터다. 조영일씨는 한걸음 더 나아가 비평고원의 존재의의를 한국사회의 “관료지성에 대한 일반지성(또는 대중지성)의 강력한 비판”이라고까지 규정했다. 크라운판 1072쪽에 달하는 이 묵직한 책의 무게가 그 비판의 무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관료지성’에 대한 비판의 ‘무기’로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과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자주 참조된 것도 비평고원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사실 조영일 씨는 가라타니 고진 선집을 기획한 ‘전담 번역자’이기도 하며, ‘로카드’란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성민씨 역시 지젝과 그의 친구들인 ‘슬로베니아 라캉학파’의 책 다수를 한국어로 옮겼다. ‘로쟈’ 또한 이들에 대한 글을 온라인에 많이 올린 사람 중 하나다. 한국 지식사회에서 고진과 지젝, 두 사람이 누리고 있는 평판의 상당 부분은 비평고원에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카페출석부’까지 포함하여 전체 11부로 구성된 <비평고원10>은 그러한 비평고원 10년의 궤적을 담고 있다. 조영일씨는 이 책을 ‘비평고원 베스트앨범’이라기보다는 ‘비평고원 매뉴얼’로 생각해주기를 당부했는데, 이 유례없는 ‘카페북’ 혹은 ‘커뮤니티북’에서 차별적인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논쟁의 고원’ 장이다. 3편씩 대논쟁과 소논쟁이 선별됐는데, ‘카페 소통 논쟁’ ‘레비나스 논쟁’ ‘번역 논쟁’ 등이 대논쟁의 주제다. 책은 온라인 논쟁의 특성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많은 분량의 댓글까지도 그대로 옮겨놓았다. 편집자에 따르면, 이 논쟁적인 글들은 “탁월한 학술적 논쟁 혹은 고도의 공동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이 노정하는 취약성을 드러내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균형점을 찾으려는 지속적 ‘불균형 상태’를 보여주는 글들”이다. 그러한 ‘불균형 상태’야말로 제도권의 ‘관료지성’이 드러내놓기 꺼려하고 기피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꾸로 이 독특한 ‘학술공간’이 예외적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비평고원이 10년 동안 지속될 수 있던 원동력으로 조영일씨는 ‘오프라인적 요소의 배제’를 꼽았다. 다른 온라인 지식 공동체들이 오프라인화를 추진하면서 흐지부지해진 사례와 견줘 그렇다는 것이다. 카페의 정기모임은 1년에 고작 한두 차례 정도이니 비평고원의 핵심 회원(‘불멸회원’)들조차 서로의 ‘안부’를 잘 알지 못한다. 지난 7월3일 저녁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카페 정기모임은 그런 의미에서 드문 자리였다. 물론 <비평고원 10> 출간을 기념하면서 10주년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회원 30여 명이 모인 이 자리에서는 10년 후 <비평고원 20>을 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덕담으로 나왔다. 그게 현실이 된다면 아마도 온라인 커뮤니티의 또 다른 ‘기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이 있는 건 아니다. 카페의 회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현재 1만 명이 넘었지만 일일 방문자 수는 정체 양상을 보인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 수도 기대만큼 늘지 않고, 이 때문에 ‘전성기’가 지난 것이 아닌가란 인상마저 준다. 말하자면 재충전과 재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평고원 10>이 그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의 창대한 미래, '비평고원들'
비평고원의 회원이든 아니든 “비평고원이 한국지성계(또는 한국인문학)를 변화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조영일 씨의 말에는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비평고원과 같은 인터넷커뮤니티가 10개 정도 된다면? 그리고 그것들이 10년, 20년 계속된다면?”이란 그의 질문이다. 이 질문이 여전히 우리를 들뜨게 한다면, 비평고원은 대표적 온라인 지식 공동체로서 앞으로도 꾸준히 자기 몫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평고원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평고원들’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이다.  

10. 07. 1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7-13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서관에 반납해야 할 책들을 챙기다 보니 카자 실버만의 <월드 스펙테이터>(예경, 2010) 원서도 눈에 띈다. 지난 4월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올려놓으면서 서평도서 후보로 고려했다가 제쳐놓는 바람에 아직 읽지 못한 책이다. 부제는 '하이데거와 라캉의 시각철학'.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이긴 한데, 방학이 끝나기 전에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주 드문 소개기사 하나를 스크랩해놓는다.    

 

주간한국(10. 04. 13) 바라보기를 통한 세계의 인식 

책의 제목인 '월드 스펙테이터(World Spectators)'는 본래 저자인 카자 실버만의 말이 아니다. 이 말은, 한나 아렌트에서 나왔다. 아렌트는 공간적으로 제한받지 않고 외부세계로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시각의 주체, 그리고 사회에서 책임, 의무, 권리를 지닌 주체를 철학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월드 스펙테이터' 즉, '세계관찰자'란 말을 지어냈다.

저자인 카자 실버만은 이 말을 전복시켜 자신의 사유를 풀어낸다. 이 전복이 블록버스터 급이다. 그녀는 '외양'과 '존재'를 엄격하게 구분했던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녀는 말한다. "바라보아야 존재할 수 있다"고. 이 책의 핵심은 바라보기를 통한 세계의 인식이다. 참고로 그녀 실버만은 국내에서 정신분석학 틀을 이용해 사진과 영화를 분석하는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매일 만나는 대중문화, 사진과 영화를 새롭게 이해하는 하나의 툴이 될 수 있을 터다.

우선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저 유명한 알레고리, '동굴의 우화'를 전복시킨다. 평생을 컴컴한 동굴에서 살아온 죄수가 어느 날 갑자기 환한 바깥세상을 경험하고 다시 동굴에 들어온다는 옛날 옛적 그리스 이야기를, 그리고 죄수는 이제 바깥 세계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그 고통이 크더라고 세계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철학자의 사명이라는 전통적 해석을 저자는 '동굴 속 개별 죄수'에 집중함으로써 비틀어 버린다.

실버만은 동굴 속 죄수 각자는 주어진 세계에 던져진 존재로 모든 것이 제한적이고 부자유스럽지만, 적어도 자신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사물이 눈에 보일 때만 실제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녀는 말한다. "결국 세계가 나타나 존재하게 될지, 아니면 비(非)존재의 어둠으로 흐려져 사라질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 뿐"(15페이지)이라고.

보기, 즉 시지각은 말하기, 언어에 앞서는 것이다. 그녀의 다음 전복 대상은 성경이다. 흔히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언어측면이 강조되지만, 실버만은 동물과 새가 아담 앞에 먼저 보이고, 그런 다음에야 아담이 존재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주체는 개별자이지만, 또한 그가 속한 세계와 분리되어 있는 단독자가 아니다. 본다는 것은 언제나 주체와 대상, 타자, 세계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실버만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타인에게 비춰질 때만, 존재한다. 나의 존재는 타자의 존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진공상태의 단독자보다 현실 세계를 사는 집합체 속 개별 주체를 강조한다. 개별적이면서도 사회 안에 집합적으로 살아가는 세계관찰자, 월드 스펙테이터는 동굴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언어 이전의 영역에서 언어가 나타낼 수 없는 존재의 근본 조건을 볼 수 있는 시각적 역량을 지닌다.

이 책의 부재는 하이데거와 라캉의 시각철학이다. 그러니까 그녀, 실버만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이데거와 라캉의 철학을 사유의 바닥에 깔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 하이데거와 라캉은 다시 플라톤과 프로이트의 사유에 기대고 있는바, 책을 읽어내기 위해 정신분석, 철학, 시각문화, 미술사 그리고 문학과 영화학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여행을 마칠 때쯤 동굴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죄수, 현상을 비틀어 볼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터다.(이윤주기자) 

10. 07. 12.   

P.S. 실버만의 책 가운데 관심을 끄는 타이틀은 몇 개 더 있다(원래는 <기호학의 주체>란 초기 저작으로 알게 된 이론가였다). 그나저나 말 그대로 '월드 스펙테이터'들이 주시하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이 몇 시간 남지 않았군... 


댓글(5)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7-12 0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2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2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2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2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주에 구입한 책의 하나는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민음사, 2010)다. 제목이야 워낙에 널리 알려진 작품인데, 작가 올비는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를 잇는 현대 미국의 대표 극작가"라고. 그런 명망의 출처를 이번에 확인해볼 수 있겠다. '신형철의 문학사용법'이 마침 이 작품을 다루고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아, 책은 이 칼럼을 읽고 구입한 듯하다).

한겨레21(10. 07. 09) 누가 환상 없는 실재를 두려워하랴?

김수영의 시 ‘전화 이야기’(1966)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여보세요. 앨비의 아메리칸드림예요. 절망예요./ 8월 달에 실어주세요. 절망에서 나왔어요./ …살롱 드라마이지요. 반도호텔이나 조선호텔에서/ 공연을 하게 돼요. 절망의 여운이에요./ …앨비예요, 앨비예요. 에이 엘 삐 이 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저 유명한 ‘푸른 하늘을’이나 ‘풀’ 같은 근엄한 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김수영의 ‘발랄한’ 면모가 잘 드러나 있는 시다. 이 시에서 김수영은 ‘앨비’라는 극작가의 살롱드라마 <아메리칸드림>의 번역 원고를 게재할 의향이 없느냐며 잡지사 담당자와 어딘가 서글픈 협상을 벌인다. 근데 앨비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다.  

정확한 발음은 앨비가 아니라 올비다.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김수영이 언급한 <아메리칸드림>(1960)보다는, 누구나 제목 정도는 들어봤음직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2)라는 작품으로 더 유명한 극작가다. 1959년에 <동물원 이야기>로 데뷔했고 팔순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활동 중이다. 미국문학사에서는 베케트나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을 계승해 미국화한 대표적인 작가로 대접받고 있고, 현대인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가차 없고 무정한 관찰이 그의 주특기로 간주된다. <현대세계희곡선집>(동화출판사 펴냄, 1970)에 오화섭의 번역으로 수록된 적이 있는 이 작품이 이번에 다시 출간됐다(강유나 옮김, 민음사 펴냄).

저 유명한 제목 얘기를 안 할 수 없겠다. <파리 리뷰>(39호)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문장은 어느 술집 거울에 씌어 있는 누군가의 낙서였다. 디즈니 만화영화 <아기돼지 삼형제>에 흘러나오는 노래 <누가 크고 나쁜 늑대를 두려워하랴?>를 패러디한 문장이다. 아기 돼지 삼형제가 집을 지어놓고 이제 늑대 따윈 두렵지 않다며 신나게 저 노래를 부를 때 늑대가 나타난다. 여기서 ‘big bad wolf’ 대신 ‘Virginia Wolf’를 집어넣은 것. 노래의 원래 맥락과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이미지가 혼합된 것일까. 저 문장이 작가의 머릿속에서는 “누가 허위의 환상이 없는 실재의 삶을 두려워하랴?”라는 물음으로 변주되었고 이 작품이 탄생했다.

바로 저 물음이 이 작품의 테마다. 환상과 실재의 대립이 그것. 우리의 삶은 스스로 의식 못하는 환상들의 부축을 받아 걸어간다. 특히 작은 환상들의 역할이 크다. ‘대한민국 언론은 진실을 보도한다’ 혹은 ‘대한민국은 지금도 여전히 민주공화국이다’와 같은 믿음이 환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인식하고 인정하지만,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사람들은 나를 좋아한다’ 혹은 ‘우리 부부는 행복하고 아이들을 엄마·아빠를 존경한다’와 같은 믿음들이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은 잘 모르고 인정도 못한다. 만약 그 환상-목발을 빼앗기면 우리는 실재-삶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 작품은 한 부부의 정신적 난투극을 집요하게 따라가면서 그 환상의 스크린을 칼로 찢고 뼈를 발라낸다.

뼈 운운은 필자의 과장이 아니다. “뼈에 도달해도 아직도 다 간 게 아니지. 뼈 안에 여전히 뭔가 들어 있거든… 골수… 그게 우리가 목표로 하는 거야.”(172쪽) 연구서들에 따르면 이 희곡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다. 1막이 피부를 벗겨낸다면 2막은 뼈를 발라내고 있고 가장 결정적인 3막에 이르면 이 작품은 6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의 환상의 골수까지를 쑤신다. 1963년에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고 당연하게도 그해 퓰리처상 희곡 부문 수상작으로 지명되었으나 퓰리처 위원회는 시상을 거부했다. “미국적 삶의 건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다. 작가로서는 더 영광스러운 일이었겠다.   

‘누가 두려워하랴?’라는 물음은 두렵지 않다는 뜻의 수사의문문이지만 이 작품의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내가… 조지… 내가… 두려워.”(193쪽) 가장 치명적인 환상이 폭로되고 정신적으로 침몰한 여주인공 마사가 내뱉는 탄식이다. 환상 없는 삶이 그토록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파국의 절정에서 도리어 기이한 희망의 조짐이 느껴진다는 것은 의외다. 달콤한 환상의 땅에서 자라는 건 허망일 뿐, 진정한 희망은 끔찍한 실재의 땅에서 싹틀 수 있다는 취지일까. 이 묘한 여운을 공연으로 느끼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볼 수 없어 아쉽다. 일단은 동명의 영화(마이크 니컬스 감독, 1966)를 먼저 봐두려고 한다.(신형철 문학평론가)  

10. 07. 10. 

 

P.S. 이번에 안 것이지만 올비의 희곡은 몇 편 더 번역돼 있다. 2003년에 한꺼번에 세 권이 나왔는데, 짐작엔 역자의 개인적인 관심에서 비롯된 듯싶다. 이번에 대표작이 소개된 김에 좀더 조명을 받을 수도 있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동 2010-07-1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뼈속에 골수를 두려워 하랴, 나의 환상이여, 그 골수를 나는 어그적 어그적 씹어 넘겨보자 그러면 내 머릿속에 여전이 유령처럼 나의 환상은 살아 있다', '올프'는 누구의 환상이었을까요.

로쟈 2010-07-12 20:47   좋아요 0 | URL
읽어봐야 알겠습니다.^^;

雨香 2010-07-14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매리스트에 올려놓은 책입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와 관련해 아주 재미있는 기억이 있습니다. 약 6년의 직장생활을 관두고 잠시 미국에서 놈팽이질 할 때, 이 연극을 봤습니다. 연극의 재미에 폭 빠져있다가 문든 '어! 내가 영어를 듣고 있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리스닝 테스트 시간이 되어 버렸고, 이후 연극에 몰입을 못했었습니다. 연극의 묘미를 관객과의 호흡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귀국하고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DVD를 구입했습니다만 잘 안보게 되더라구요.
'허위의 환상' 현재의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저도 이 '허위의 환상'을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만,...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12년 간의 독서 내역을 개인별 포트폴리오로 관리해 대입 전형에 반영하는 ‘독서교육 종합 지원 시스템’이 2학기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처음 듣는 얘긴데, 하도 시끌벅적한 뉴스가 많다 보니 주목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독서의 중요성은 강조해마지 않지만, 입시와 연계되어 '관리대상'이 되는 독서라면 정나미 떨어진다. 필시 이런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려는 '관료'들의 독서량이 턱없이 부족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독서는 주변에서 적당히 자극하고 격려하는 '넛지' 정도로 충분하다. 아이들은 '책 읽는 기계'가 아니며 더구나 '책을 읽어야 하는 노예'도 아니다. 책을 읽을 자유는 책을 읽고 아무말도 하지 않을 자유도 포함한다. 모든 개개인의 독서 이력을 점검하고 평가한다? "독서가 제일 괴로웠어요"란 비명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이 무슨 퇴행적 전체주의란 말인가. 조만간 <1984>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한국일보(10. 06. 30) [편집국에서/6월 30일] 아이들의 괴로운 독서

"아니, 이상의 '날개'를 중학교 1학년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김유정의 '봄봄'은 또 어떻구요. 뭐, 읽을 수는 있겠지만, 글쎄. 이광수의 '무정'도 그래요. 그 나이 아이들에게 썩 맞는 작품 같지 않은데."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주부에게 며칠 전 들은 이야기다. 아들이 글쓰기 지도를 받는 사교육 강사가 중학교 올라가기 전에 이 책들을 읽어둬야 한다고 했단다. 중학생이 되면 영어 수학 공부에 치여서 책 읽을 틈이 없으니 독서도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면서. 이웃 주부들에게 물어보니, 그 책들이 그 동네 중학교 필독서이고 초등 5,6학년 때 미리 읽는다고 하더란다. 잠시 고민하다가 사온 책들을 보더니 글쓰기 강사가 놀라더란다. "아니, 왜 이렇게 두꺼운 책을 사셨어요? 다들 축약본으로 보는데. 많이 팔아요. 못 보셨어요? "

요즘 아이들의 독서 풍경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아이가 소화하기 힘든 책을 골라 읽으라는 어른들도 이상하지만, 문학작품을 원전으로 읽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축약본으로 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되어 버렸다.

독서는 뭐니뭐니 해도 즐거워야 한다는 원론은 잊어버리는 게 좋겠다. 입시용 스펙 쌓기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독서논술 사교육이 번창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독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고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책 읽기는 단순한 지식 늘리기에 쏠려 괴로움이 되어버렸다. 부모의 욕심과 학교의 '이상한' 독서 지도가 아이들을 못 살게 군다. 이 주부의 아들이 4학년 때 교내 독서퀴즈 때 푼 문제를 보자. 화산활동을 재미있게 설명한 책이 대상이었는데, 퀴즈 문항이 이랬다. "다음 중 휴화산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퀴즈를 맞히려면 책을 통째로 외워야 했다.

더 기가 막힌 사례도 있다. 중학교 아이들에게 김동인의 소설 '감자'를 읽게 한 다음 "복녀는 얼마에 팔려갔습니까?"라고 묻는다. 한 지방 교육청이 시행 중인 독서활동 평가 항목이다. 너무 간단해서 어처구니가 없는 독서 평가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특수한 예가 아니며, 앞으로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15일 올 2학기부터 학생들의 독서 이력을 일일이 기록ㆍ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2011년 대입 때부터 전형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방침에 따라 각 시ㆍ도 교육청은 '독서교육종합지원 시스템'(www.reading.go.kr)을 구축해 운영한다. 학생이 책을 읽고 독후 활동 기록을 입력하면, 교사가 이를 평가해 인증하는 온라인 관리 프로그램이다. 초중고 12년 간의 독서 이력이 통합 관리되는 것이다. 대입 입학사정관은 이 시스템에 접속해 학생의 독서 이력을 점검ㆍ평가하게 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 제도가 창의ㆍ인성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입시와 연계되어 일일이 기록하고 관리하고 평가받는 독서가 과연 즐거울 수 있을까. '읽고 싶은 책'보다 '읽어야 할 책'만 늘려 아이들을 괴롭히는 또다른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을까. 아닌 게 아니라 벌써부터 학원과 독서지도 사교육 업체는 이 제도에 맞춘 필독서를 선정해 지도하는 신규 사업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제 더 큰 부담을 안고 책을 읽게 되었다. 아이들이 불쌍하다.(오미환 문화부 차장 )  

한국일보(10. 07. 10) [책갈피] '책꽂이의 자유' 마저 위협하는 세상 

사상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설령 ‘빨갱이’라 해도.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툭하면 나오는 색깔론은 분명 불합리한 잣대이지만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다.

색깔론이 다시 튀어나왔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보도한 MBC ‘PD수첩’ 중 피해자 김종익씨의 집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이 문제가 됐다. 방송에서 제목을 모자이크 처리한 이 책들은 <혁명의 연구> <김일성과 민주항쟁> <조선노동당 연구> <사회주의 개혁과 한반도> 등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 책들로 보아 “김씨는 특정 사상에 빠진 편향적 사고의 소유자”라고 주장했다. 참 단순하고 편리한 판단이다. 그 명쾌함이 감탄스럽기는 하지만, 그런 단세포적 발상이야말로 편향적 사고일 것이다. 국방부가 군대 내 금서목록을 발표해서 비난과 조롱을 산 일을 그새 잊어버린 모양이다.

독서는 극히 사적인 활동이다. 무슨 책을 읽느냐는 한마디로 ‘내 맘’이다. 국가나 권력이 이러쿵저러쿵 간섭하거나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개인의 독서 내역을 그를 위협하는 무기로 삼는 것은 더더욱 부당한 폭력이다.

어쨌거나 이제부터는 책도 조심해서 읽는 게 좋겠다. 내가 읽은 책이 어느 날 나를 겨누는 칼로 돌아올지도 모르니. 이런 조심성은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히는 게 좋겠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12년 간의 독서 내역을 개인별 포트폴리오로 관리해 대입 전형에 반영하는 ‘독서교육 종합 지원 시스템’이 2학기부터 전국에서 시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적인 독서 활동을 일일이 보고하고 평가 받으라는 것은 정신적인 지문 날인 강요와 다름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오미환기자) 

10. 07. 09.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지 2010-07-09 23:25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보통 일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아이도 벌써 독후감 숙제 땜에 스트레스 받고 있습니다... 사실은 아이보다 제가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숙제 안 하는 아이를 방치하는 어른이 되더라도 아이를 놀게 할 것인가, 숙제는 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할 것인가 사이에서 말입니다... 우리가 클 때는 실컷 놀다놀다 스스로 책을 집어들었던 것 같은데요..--

로쟈 2010-07-10 10:18   좋아요 0 | URL
앞으론 스스로 책을 집어던질 거 같습니다...

조아 2010-07-09 23:57   좋아요 0 | URL
간간이 다니는 서점에서 입구에 "교과서 수록소설 미리 읽기"라고 크게 걸어 놓고 있더군요. 뭐 저러면 장사는 되겠다 싶었죠.. 저런 정책 이전에 학교에서 책 읽으면 빼앗아 가는 문제부터 지적해야 할듯 싶은데 말이죠.

로쟈 2010-07-10 10:18   좋아요 0 | URL
그냥 학교수업이 독서중심이 되도록 하면 되지요...

빵가게재습격 2010-07-10 00:49   좋아요 0 | URL
조건만 몇 가지 붙인다면, 저는 이 정책에 찬성합니다... 정책 입안자들과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사교육 담당자들까지(입시 사정관도 포함해야겠네요) 똑같은 책을 읽고 함께 똑같은 시험, 혹은 글쓰기까지 제출하게 한다면요. 가령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누구인가? 구체적인 이름을 모두 쓰시오.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전쟁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어난 전쟁인가? 연도로 표기하시오.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 나오는 비유는 총 몇개인가? 정확한 갯수를 제시하시오.' 운운. 그리고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독서기술부'를 두어 학교선생님, 사교육 담당자들, 입시사정관, 정책입안자의 집안을 불시에 침입, 검색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불시에 습격하게 하는 겁니다. 새벽 두시에 침투, 집안을 모조리 뒤져 불온한 책이 없는지 확인한다면, 오! 진정 찬성합니다. 꼭 하자고 건의하고 싶어욧!

로쟈 2010-07-10 10:17   좋아요 0 | URL
책이 아예 없는 게 아닐까요? 지침서만 잔뜩 꽂혀 있을 듯한데요...

Sati 2010-07-10 01:26   좋아요 0 | URL
"공공장소나 텔레스크린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혼자 공상에 잠긴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정체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에 나타나는 경련, 무의식적으로 짓는 불안한 표정, 혼자 중얼거리는 습관 등 조금이라도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없어야 한다. 무언가를 감추려는 행위로 간주되어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 (가령 승전 소식이 보도될 때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된다. 심지어 이에 대한 신어까지 있는데, '표정죄'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984> (민음사, 89쪽)

로쟈 2010-07-10 10:17   좋아요 0 | URL
책꽂이 관리에 이어서 조만간 표정관리도 해야겠네요...

2010-07-10 0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0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체오페르 2010-07-10 09:53   좋아요 0 | URL
독서가 관리 대상이 된다니...으음...
이거야말로 유희가 아니라 노동이 되는 지름길이군요. 후...

그런데 지금의 현실을 보면 이렇게 강제적(?)으로도 시스템에서 책을 보게 하는것도 필요하것도 같고...역시 정답은 없는걸까요^^;

로쟈 2010-07-10 12:56   좋아요 0 | URL
기대되는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클 거 같습니다. 실효성도 의문이구요. 의무 복무도 아니고 의무 독서라니요...

kumun 2010-07-10 13:14   좋아요 0 | URL
미국에선 학교에서 단계별로 책을 나눠서 아이들이 차근차근 올라갈 수 있게 독서지도에 중점을 두더라구요

로쟈 2010-07-10 13:25   좋아요 0 | URL
미국만도 못한 셈이네요...

자꾸때리다 2010-07-10 19:14   좋아요 0 | URL
주제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저는 중고등학교 윤리 교과서 없애버리고 대신에 플라톤의 파이돈과 같은 대화편을 읽으면서 토론하는 수업을 했으면 좋겠어요.

로쟈 2010-07-10 23:04   좋아요 0 | URL
주제와 상관이 있는데요.^^

네모선장 2010-07-13 10:22   좋아요 0 | URL
저는 고등학교 전문계 교사 입니다. 이제서야 기사를 봤는데요.
실제로 강압적으로 저런걸 하고 있고 더 웃기는 것은 '독서교육종합지원 시스템'을 창의적 체험활동이란 것과 연동되게 해놨는데 얼마전에는 교육청 담당 장학사가 직접 학교로 방문하여 이용실적을 물어보고 갔습니다. 저희야 전문계고라 학생들이 워낙에 책을 안읽거나 연애소설과 판타지 소설만 주로 읽어서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서도 교육당국은 저 시스템을 이용하여 자꾸만 분량과 권수로 학교평가랑 연계한다는 거죠.
또한 학교 도서관에 대출권수는 자동으로 교육청에 집계되어서 대출 많이 했으면 우수학생 우수학급 우수학교라며 칭찬하고 있는게 요즘의 교육 현실이네요.

로쟈 2010-07-13 10:38   좋아요 0 | URL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나 모르겠네요...
 

한겨레의 '도스토예프스키 깊이읽기' 강의차 신촌에 나가는 참에 홍익문고에 들러 1층에서 새로 나온 <인형의 집>을 찾았지만 민음사판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탓에 열린책들판만 구했다. 그리고 2층에서 문의한 책이 한길사에서 새로 나온 '인문고전 깊이읽기' 시리즈. 1차분이 이번주에 나왔는데, 서점에도 막 들어와서 등록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가장 궁금한 책은 <마오쩌둥>이었고, 이어서 국내에는 소개서가 없는 듯싶은 <부르크하르트>였지만, 손에는 <마오쩌둥>과 <프로이트>를 들었다. 국내 필진이 동서양 사상가들의 생애와 핵심 사상을 소개한다는 게 시리즈의 컨셉인데, '인문고전 깊이읽기'란 타이틀은 정확하진 않은 듯싶다. '인문고전'이 아니라 '인문고전의 저자들' 내지는 '위대한 인문정신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고전을 읽기 위하여'나 '인문고전 깊이읽기를 위한 읽기' 정도로 가늠해야 맞을 거 같다. 1차분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이 시리즈는 3개월에 4-5권씩, 전체 100권 정도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맹자- 바른 정치가 인간을 바로 세운다
장현근 지음 / 한길사 / 2010년 7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3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07월 08일에 저장

프로이트- 무의식을 통해 마음을 분석하다
강응섭 지음 / 한길사 / 2010년 7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0년 07월 08일에 저장
품절
부르크하르트- 문화사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다
최성철 지음 / 한길사 / 2010년 7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3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07월 08일에 저장

마오쩌둥- 나는 중국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신봉수 지음 / 한길사 / 2010년 7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0년 07월 08일에 저장
품절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빵가게재습격 2010-07-09 01:56   좋아요 0 | URL
정말 백 권 다 나왔으면 좋겠네요. 엇비슷한 포맷을 생각하면 '한길 로로로'가 떠오르는데, 시리즈를 내다가 그만둔 것 같아서 좀 아쉬웠어요. 잘 지내시죠?^^

로쟈 2010-07-09 13:30   좋아요 0 | URL
국내 필자들로만 100권이 채워진다면 그 또한 '기록'이죠.^^

빵가게재습격 2010-07-10 00:51   좋아요 0 | URL
로쟈님도 혹시 한 권 맡고 계시지 않은가요?

로쟈 2010-07-10 13:2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럴리가요?^^

PhEAV 2010-07-09 14:36   좋아요 0 | URL
중간에 디자인도 안 바뀌는 방식으로 ^^;;;; (로로로는 중간에 바뀌어버렸죠;;)

로쟈 2010-07-09 21:11   좋아요 0 | URL
디자인이 이미 여러 가진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