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노 라투르의 정치생태학

이번주 관심도서의 하나는 브뤼노 라투르의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갈무리, 2009)인데, 서평을 쓰게 될 수도 있어서 리뷰기사를 찾아보았다. 참고삼아 스크랩해놓는다.

 

세계일보(09. 07. 11) "근대성의 큰 문제는 비대칭성 '우리는 근대인' 관념을 버려야" 

근대인은 전근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끝없는 단절을 시도했다. 그 일정한 성과를 바탕으로 태동한 용어가 ‘근대성’이다. 근대성은 사실과 가치, 주체와 대상, 자연과 사회, 야만과 문명을 분리하며 전 시대와 차별을 이뤄냈다.

학계를 중심으로 반성의 계기가 작동된 때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일련의 국제환경회의 등이 열리면서 근대성에 대한 재고의 시각이 싹텄다. 사회의 단절적 진보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 등으로 근대성이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하면서 나타난 흐름이었다. 이런 차원에서 근대성의 내용을 전면 부정하는 반근대주의적 입장과 근대성의 위기를 냉소적 관점에서 관조하는 탈근대주의적 시각이 분출했다.

하버드 대학 교수를 지낸 브뤼노 라투르(62)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교수는 ‘인류의 근대성’에 대한 자부심에 의문을 품은 대표적인 학자다. 반근대주의와 탈근대주의 모두를 극복해 근대 세계와 비근대 세계의 입장 절충을 시도해 왔다. 그의 이론은 일명 ‘근대성 없는 계몽주의’나 ‘사물로 확장된 민주주의’라고 할 만하다. 



이런 시각이 담긴 그의 역서 ‘근대성에 관한 성찰과 비판’(갈무리)이 최근 국내에서 출간됐다. 1990년대 출간 이후 24개 나라에서 번역된 책이다. 근대성 관련 저서로는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것에 비하면 국내 번역은 꽤 늦었다.  

라투르 교수는 근대인의 성공을 이끌었던 ‘비대칭성’이 위기도 불렀다고 주장한다. 비대칭성은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말한다. 라투르 교수가 지적하는 ‘근대성의 비대칭성’의 문제점은 더 있다.

“이분법적인 사고도 물론 문제가 됩니다. 더 나아가 이분법이 분할한 세계의 두 부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시도도 비대칭성으로 볼 수 있어요. 그 절정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경험했지요. 마르크스주의에서 과학과 이념의 구분은 근대성 내부의 자연과 사회, 사실과 가치, 대상과 주체를 분할하면서 비대칭성을 드러냈지요.”

근대성의 문제는 자본주의나 자유주의 사회에서도 잘 드러난다. 근대성의 문제는 전근대인(과거)과 근대인(현재)을 나누고, 근대 문명 외부의 ‘그들’과 ‘우리 현대인’을 나누는 데서도 확인된다. 인류학은 이런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학문분과이다. 전통사회와 현대사회를 연구할 때, 인류학자의 태도는 일관적이지 못하다.

“인류학자들이 전통사회를 연구할 때는 관습과 문화 등을 고려해 통합적으로 접근합니다. 근대사회를 연구할 때는 문화의 지엽적이고 주변적인 것에 중점을 두는 연구방법과는 차이가 있지요. 인류학자가 원시부족의 주술사를 연구하듯이, 똑같은 방식으로 현대사회 실험실의 공학자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근대와 비근대의 절충인 하이브리드 방식. 하이브리드 방식은 주체와 객체의 완전한 단절도 배격한다. 하이브리드 방식은 비대칭성 극복도 가능하게 한다. 하이브리드를 자유롭게 증식시킬 수 있는 근대인의 실천과 하이브리드의 연결망을 이용하는 비근대인의 실천이 결합할 때 가능하다. 그래서 라투르 교수는 선언한다.

“근대성의 가장 큰 문제인 비대칭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근대인이었다는 관념을 폐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박종현 기자) 

09. 0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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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는 근대인인가 중국인인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7-20 01:21 
    저녁에 버스를 타고 전철역까지 가서 '한겨레21'을 사들고 왔다. 엊그제 퇴고도 못한 원고를 워낙에 황급하게 보낸 탓에 '오류'는 없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브뤼노 라투르의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갈무리, 2009)를 서평대상으로 삼았지만 코드를 잘 맞추지 못해서 독서에 애를 먹었다. 기사를 확인해보니 크게 '실수'한 대목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필자가 담당인 구둘래기자의
 
 
노노바바 2009-07-11 10:13   좋아요 0 | URL
라투어 글은 프랑스 학자답지 않게(?) 어렵지 않고 영미식의 유머가 넘쳐서 재미잇게 읽엇던 걸로 생각합니다. 그의 사회학 입문서 Assembling the social도 번역된다고 소식 전해주셧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실 그는 사회학 sociology라는 개념에 반대하기 때문에 사회학 입문서라고 하면 좀 모순이긴 하죠. 대신 'i wish i could use the term associology' 같은 농담같은 문장이 잇엇는데, 그는 사회라는 개념을 부정하고 대신 무한한 '연결 association'만이 잇다고 주장합니다. 사회과학의 주체와 구조를 뒤집는 주장입니다 (이것도 역시 이분법에 대한 일관된 반대의 연장선상입니다). 따라서 공부도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끝없이 기술 description만 하라고 주장합니다. 구조와 인과관계 같은 개념에 반대하니 설명도 반대하고... 그래서 안 읽어봣지만 실험실에 대한 그의 인류학적 작업은 끝없는 기술이 이어져서 읽기가 곤혹스럽다고 하더군요.

로쟈 2009-07-12 11:31   좋아요 0 | URL
영어로는 '라투어'라고 읽겠군요. 'associology'란 말이 그럴 듯합니다.^^

virtuepeak 2009-07-11 12:22   좋아요 0 | URL
소개 기사만 보니 언뜻 나카자와 신이치의 '대칭성 인류학'이라든가 김상봉의 '서로주체성' 같은 개념들이 떠오르네요.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로쟈 2009-07-12 11:29   좋아요 0 | URL
저도 읽어봐야 알 듯합니다.^^;

코카추잉 2010-10-04 10:51   좋아요 0 | URL
나카자와 신이치는 <대칭성 인류학>의 '카이에 소바주에 대해서'라는 서문에 해당하는 글에서 라투르의 이 책이 끼친 영향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추구해온 것의 '이름'을 알게 되었노라면서. 그나저나 왜 이냐시오 마테-블랑코의 책이 번역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노노바바 2009-07-17 16:33   좋아요 0 | URL
제목이 Reassembling the social이군요. Re를 빼먹엇습니다 ㅋ
 

자작시 몇 편이 생각나서 옮겨놓는다. 모두 95년 여름에 쓴 것들이다. 아직 이파리였고 청춘이었다. 카뮈가 재혼을 하고 <이방인>을 쓴 나이였다. 나는 "한때는 모두 이파리였다"고 적었다. 지나고 보니 정말로 그렇다. "한때는 모두 이파리였다..."   

이파리들이 푸르다

이파리들이 이 여름 한껏 푸르다 한때는 모두 이파리였다 이파리 축에 끼여 한 시절이 좋았다 햇빛이 좋았고 꽃내음이 좋았고 바람둥이들이 좋았다 어디에 기대어도 모자람이 없어라 오죽하면 낯짝이 붉어지도록 지리멸렬하도록 죽어 백골난망(白骨難忘) 이 세상 거름이 되도록  

우리는 열매들이야

이 뙤약볕만으로 우리는 익어 더는 볼 것도 없이 오동나무 그늘이 아닌 데야 익어도 그만 아주 콱 익어버려 온통 열애의 날들이야 이렇듯 짱짱한 은총이야 낯뜨거움이야 더는 볼 것도 없이 눈먼 사랑이야 그리움의 허공이야 이 뙤약볕만으로 우리는 익어 바짝 마른 그리움이야 더는 태울 것도 없는 마음이야 아주 그만이야 


 
푸른 사과

나를 부드럽게 대해줘 푸른 사과는 꼭지를 따라 빙글빙글 돈다 빛과 그늘이 그렇게 세상을 싸고돈다 푸른 사과의 영토에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푸른 사과는 다만 그늘에서 익어간다 나를 부드럽게 안아줘 푸른 사과는 뛰어가고 싶고 날아가고 싶고 춤을 추고 싶다 푸른 사과는 당나귀가 되고 싶고 나팔꽃이 되고 싶다 나를 제발 부드럽게 대해줘 



꽃들이 비에 젖는다

비는 언제나 꽃을 들고 있다 꽃들은 언제나 종알댄다 비는 언제나 막연히 기다린다 꽃들이 비에 젖는다 비는 마른 꽃을 본 적이 없다 꽃들은 언제나 종알댄다 비는 언제나 그친다 꽃들은 언제나 다그친다 비는 푼돈을 벌러 다시 빗속으로 나간다 비는 언제나 꽃을 들고 있다 꽃들이 비에 젖는다 

 

09.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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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7-12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매를 기대하기에는, 제 새순이 막 돋았거든요. 지금은 영토를 넓히는 중입니다. 가끔 종알대는 새들이 날아 들어 산만합니다. 저는 꽃을 향해 마음을 더 열어야 합니다.

로쟈 2009-07-11 09:01   좋아요 0 | URL
아직 한창이시군요.^^

콩세알 2009-07-1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좋으네요. 특히 첫번째 시가..이파리 사이로 바람이 선들하게 부는 듯한 리듬이 느껴져요.

로쟈 2009-07-12 11:29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시니 좋습니다.^^

Sati 2009-08-04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사진 출처가 어딘가요? 훔쳐가도 되는 건지요?

로쟈 2009-08-04 23:0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다 훔쳐온 것들입니다.^^
 

내일자 한겨레에서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연재를 옮겨놓는다. <호모 사케르>로 소개된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을 다루고 있어서다. 필자는 <호모 사케르>(새물결, 2008)의 역자인 박진우 교수다. 아감벤의 이 연작은 국내에서도 완간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⑬ 조르조 아감벤 Giorgio Agamben

1942년 로마에서 태어났다. 로마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이후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간행된 발터 베냐민의 이탈리아어판 전집 편집자를 지낸 뒤 베로나대학과 유럽·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미학과 철학을 강의했다. 현재 베네치아건축대의 철학 교수로 있다. 대표작인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이후 <아우슈비츠에서 남은 것>(1998), <예외 상태>(2002), <군림과 영광>(2007)을 거치면서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한겨레(09. 07. 11) '벌거벗은 생명’의 영속화에 던지는 경고 

현존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철학자인 조르조 아감벤의 사유 세계 전모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아감벤의 저술 활동, 특히 그의 주저는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권이 훨씬 넘는 저술들이 이미 세상이 나와 있으며, 한국 독자들도 지난 2년 사이에 두 권의 번역서를 접한 상황에서 그의 사유를 한층 상세히 재검토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호모 사케르>라는 책, 그리고 이 책에 이르는 과정과 이후의 전개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동시대의 모든 사유와 고민들을 앞선 세기와는 단절된 형태로 근본적으로 되물어야 한다는 아감벤의 문제의식에 비춰 본다면, 또한 이를 통해 20세기가 결코 풀지 못한 과제들(여기에는 정치적 좌우의 대립, 계급과 인종의 대립, 법과 민주주의,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과 같은 핵심적인 정치적 범주들이 포함된다)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사유를 모색하는 과제와 직접 마주친다면, <호모 사케르>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아감벤은 원래 로마대학 출신의 법학도였다. 학창시절부터 이미 파졸리니, 모라비아 등이 주도한 지식인 서클에 적극 참여하면서 문학과 미학, 철학 분야로 사유 지평을 확대해 나갔다. 1970년대에 그는 자신에게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 세 명의 사상가와 본격적으로 마주쳤다. 아비 바르부르크와 발터 베냐민, 마르틴 하이데거는 초기 아감벤의 문학적·미학적 사유뿐 아니라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정치철학적 사유의 핵심적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다.  

1978년에 이탈리아어로 간행된 <발터 베냐민 전집>의 편집자로서 그의 이름이 유럽 지성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이래, 그가 직접 수집한 청년기 베냐민의 미발굴 서한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루어진 베냐민 사상 전체에 대한 급진적인 해석(그에 따르면 베냐민 사상의 진면목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적 해석과 유대 신비주의적 해석의 자장 속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기성 학계와의 갈등은 그의 명성을 유럽의 좁은 문학 연구자 서클의 범위를 넘어서게 만들었다. 이후 데리다·들뢰즈·낭시·바디우 등 프랑스 지식계의 지도자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하면서 당시 프랑스 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자양분 삼아 자신의 사유를 한층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다. <아동기와 역사>에서 <산문의 이념>을 거쳐 <언어의 죽음>에 이르는 저술들은 이런 지적 여정과 편력을 반영한 중간 결과물이자, 동시에 다음 단계의 정치적 성찰을 탄생시킨 모태와도 같은 작품들이다.  

1995년에 처음 간행된 <호모 사케르>는 같은 이름으로 간행된 연작의 첫째 권에 해당하면서, 그의 사유의 전모를 밝히는 데서 반드시 거쳐야 할 대표작이다. 사회주의권 붕괴가 결코 ‘역사의 종언’일 수 없음을 증명했던 유고 내전의 쓰라린 경험은 그에게 정치를 본격적인 사유 대상으로 삼아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제기하였다. <호모 사케르>라는 이 낯선 제목은 원래 고대 로마법 전통 속에서 범죄자로 판정받은 자를 뜻하는데, 성스러운 자이자 저주받은 자여서 그를 희생물로 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그를 죽이더라도 처벌 받지 않는 모순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저자는 이 용어를 통해 서양 정치철학의 근원적 패러다임을 재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근대 이래의 정치이론이 오랫동안 주권자와 신민의 관계, 그리고 주권자와 법의 관계를 통해 정치의 본질을 규정해 왔던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모 사케르라는 모순적인 존재를 통해 그는 정치를 궁극적으로 주권 권력과 ‘생명으로서의 삶’이 맺고 있는 ‘생명정치’의 관계로 재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니까 주권 권력에 의해 배제됨으로써 주권 속에 포함되는 이 모순적 존재, 즉 ‘벌거벗은 생명’의 존재는 법·주권·시민·인권처럼 오랫동안 서양 정치철학의 핵심 범주로 간주되었던 용어들을 의문에 부치게 만든다. 이 용어들은 결코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명정치의 맥락에서 그 의미가 재구성되어야 할 사유의 재료들인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처음 간행될 당시에는 아감벤의 필생의 사유가 응축된 ‘주저’로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저자가 새롭게 시도한 정치철학적 사유의 단초들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제기하는 사유 실험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파시즘의 역사적 경험과 기억, 나아가 아우슈비츠와 유대인 학살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이 사회적 이슈로 변모할 때, <호모 사케르>가 제시했던 새로운 사유 모델은 한 차례 대중들의 충분한 시선을 끌 수 있었다. 복잡한 정치적·사회적 의미망 속에서 의미가 점차 모호해져 가던 기억·증언·재현 같은 주요 개념들에 대해 우리를 다시금 철학적 사유로 이끌어갔던 <아우슈비츠가 남긴 것 : 호모 사케르 3>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이름과 <호모 사케르>라는 저자의 패러다임은 새롭게 주목받은 것이다. 아울러 9·11 테러와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은 <호모 사케르>가 언급했던 “예외 상태의 영속화”가 눈앞의 현실임을 역설함으로써, 그의 명성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가 볼 때 예외 상태란 법의 공백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 시대 법질서의 핵심이기도 하다. 법보다 ‘법’의 ‘힘’이 우선하며, 그것은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라는 20세기 정치사의 양대 열쇳말이자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사유의 근본 단위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호모 사케르>의 또다른 변용이자, 새로운 영역에서의 이론적 시도다. 2007년에 발표된 <군림과 영광>이라는 또 하나의 <호모 사케르> 연작은 ‘영광’의 스펙터클, 그것이 가리고 있는 경제 우선의 통치 메커니즘의 계보학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경제가 정치를 압도하는 근대 생명정치의 특성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새롭게 발표되는 그의 저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제는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제 우리 앞에는 마지막 질문이 놓여 있다. 과연 이처럼 주권 권력으로부터 배제됨으로써 공동체에 포함되어 있는 ‘호모 사케르’들의 사회, 혹은 ‘영속적인 예외 상태’ 속에서의 삶, 그리고 ‘군림과 영광’의 스펙터클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변화의 가능성이 주어져 있는가. 과연 <호모 사케르> 속에서 지금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 <호모 사케르>가 전개한 수많은 논의들을 거치고 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변화와 그 주체라는 오랜 패러다임을 오늘의 스펙터클 사회 속에서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호모 사케르> 연작이 진행되면서, 그가 가장 시달렸던 과제는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해답은 모호한 상황에서, 다행히도 저자는 우리에게 최종 답안을 전해 줄 것이라 약속한다. 그것이 바로 <호모 사케르> 연작이 도달할 최후의 종착점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가 여전히 ‘완성’을 향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의 종결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는 셈이다.(박진우/연세대 연구교수) 

09.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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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2009-07-1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슈비츠가 남긴 것>의 "대중적 성공"이라고 하면 몇 부일까요? 이번 주 강연 때 로쟈 님 책이 5000부 팔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괜찮군'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로쟈인데'하는 아쉬움이 동시에 들었더랬습니다. 학계에서는 최신 정치 이론들의 보고로 주목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대중적 성공이라고 하면 몇 부 정도 될지 궁금하군요.

로쟈 2009-07-12 11:28   좋아요 0 | URL
글쎄요, 이탈리아 사정은 저도 잘 모르겠지만 <말과 사물>처럼 팔려나갔을 수도 있지요. 수만 부씩. 한데, 이론서의 경우엔 번역시장이 또 있기 때문에 '올인'할 수도 있겠죠. 아감벤은 아주 적극적으로 저작권을 관리한다고 합니다...

2009-07-11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2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2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2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게슴츠레 2009-07-13 13:25   좋아요 0 | URL
흐흐 옙, 오히려 저한테는 좀 잘 된(?) 거 같군요. 다음에 뵐 날을 기다리겠습니다.ㅎㅎ
 

무슨 책인가 궁금했지만 당장엔 읽을 여유가 없어서 제쳐놓은 책의 하나는 매리언 울프의 <책 읽는 뇌>(살림, 2009)이다. 요긴한 서평기사가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우리의 뇌는 독서를 위해 진화하지는 않았다는 (따지고 보면 당연한!) 저자의 문제의식이 흥미를 끈다.   

한겨레21(09. 07. 13) 소크라테스는 말만 했다 

소크라테스는 글자를 믿지 않았다. 그리스 시대의 위대한 시인과 철학자들은 자신의 시를 외워서 낭송했다. 그들은 엄청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시모니데스는 연회 중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진 뒤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있던 위치를 알려주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남겼다. 소크라테스는 문자화된 말이 사회에 심각한 위험을 제기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 이유 첫 번째는, 문자는 불가변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교육의 핵심은 ‘대화’를 통한 산파술이다. 문어는 되받아 말하지 못한다. ‘죽은 담론’이다. 특히 그는 ‘문자언어가 곧 실재로 오해될 수 있다’는 점에 민감했다. 두 번째 이유는 기억의 파괴다. 그는 ‘암기’만이 개인의 지식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이유는 언어에 대한 통제력 상실이다. 기록된 문자가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떠돌아 그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손에까지 들어가게 되어, 지식에 대한 접근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에게 독서는 판도라 상자였다. 어쨌든 이 모든 이야기는 플라톤의 ‘받아 적기’로 인해 후세에 전해졌다.  

인간은 독서하지 않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를 산 소크라테스는 글과 문자의 경계에 살았다. 그로부터 2500년, ‘back’ 버튼으로 이전에 읽었던 전혀 다른 글로 이동하고, 링크를 통해 읽기를 마치기 전 다른 글로 진입하고, 모든 글들이 ‘검색’에 의해 펼쳐지는 ‘새로운 독서’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경계의 소크라테스는 이 경계의 세계에 뜻밖의 말을 함축적으로 전한다. 매리언 울프의 <책 읽는 뇌>(원제는 ‘Prost and the Squid’·살림 펴냄)는 이 소크라테스의 말을 들려준다. 책은 ‘독서’가 인류의 문명에 들어온 뒤 벌어진 일들을 인문학적이고도 과학적으로 일별해준다.

문자의 탄생과 그림문자에서 음성문자로의 진입이 일어난 게 고작 2천 년이다. 지긋지긋한 ‘독서’ 타령의 수명은 그보다 한참이나 짧다. 인간의 진화는 그렇게 빠르지 않으니 2천 년 전의 인간과 오늘의 인간이 다르지 않다. 유전자에 독서를 담당하는 게 있을 리 없다. 독서는 다섯 단계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의 주요한 일은 뇌에 문자를 읽고 해독하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음악을 많이 듣다 보면 일어나는 ‘길이 난다’와 비슷한 일이다). 마이엘린 강화를 통해 길을 내는 이 일이 어린이의 성장 과정에서 일어난다. 개체발생이 계통발생을 밟아가듯, 2천 년의 독서 역사를 통해 일어난 일이 한 인간에서 2천 일 만에 완성된다. 이 뇌의 길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본 연구 결과를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독서는) 사람의 생물학적 시간표가 고려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3개 언어에 대한 연구를 보면, 5살부터 독서를 시킨 유럽 아이들이 7살에 독서를 시작한 아이들보다 성취도가 낮았다.

우리는 독서하지 않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는 결론은 ‘난독증’에서도 나온다. 이는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저자의 한 아들은 난독증이고 다른 한 아들 역시 단어 인출에서 문제가 있다. 그의 가계도에서도 난독증은 면면하게 이어져왔다. 개인적 호기심에 학문적 호기심을 더해, 저자는 난독증으로 의심되는 과거의 인물들 리스트를 작성한다. 언어 분야에서 ‘낙제생’이었던 아인슈타인이 그랬고, 에디슨은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몸도 약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다빈치 역시 기괴하고 방대한 자필 원고에서 반전된 ‘거울 글씨’ 등을 남겼다. 그는 이러한 리스트가 두툼해져감에 따라 독특한 가설을 세운다. 난독증 환자의 가족은 난독증 증상이 있든 없든 특출한 공간적 재능을 보여준다. 독서를 통해 우뇌 우월형 뇌가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통로는 좌뇌를 우회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공간 능력 발달로 이어진다.  

‘유창한 독서가’가 아님을 탓할 게 아니라  

<책 읽는 뇌> ‘독서’는 저자가 어린 시절, 그리고 지금도 분명히 ‘책 읽기’에 매료되었음을 보여준다. 매력적인 인용문이 어디서 나왔을 것인가. 각종 뇌 이론도 책으로 공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주장한다. 인간의 지적 진화의 진정한 이슈는 구술언어와 문자언어의 융합에 있다. 두 가지 커뮤니케이션 양식 모두에 인간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관여한다. 지금의 아이들을 ‘유창한 독서가’가 아님을 탓할 게 아니라 이중 텍스트 이해자, 다중 텍스트 이해자가 되도록 키워야 한다. 또 하나 더 인상적인 것. 우리의 뇌 안에는 ‘지연 뉴런’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지연 뉴런이 하는 일은 다른 뉴런들의 신경 회로 전달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이 덕분에 조화로운 순서와 질서가 만들어진다.(구둘래 기자) 

09.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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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읽는 뇌'라는 파워옵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9-19 08:46 
    '김명남의 과학책 산책'에서 매리언 울프의 <책 읽는 뇌>(살림, 2009)에 대해 다룬 걸 보고 청소년잡지인 SEM에 실은 짧은 글이 생각나 같이 옮겨놓는다. 내 글은 다섯 명이 참여한 '책, 내 마음의 길잡이'란 기획특집의 한 꼭지이다(청소년용이라 약간의 '협박'도 포함하고 있다). 사실 독서가 일상이 아니라는 걸 반증하는 이런 특집이 반가운 건 아니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뇌가 책을 읽도록 만들어지진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TheQ 2009-07-11 01:25   좋아요 0 | URL
"인간은 독서하지 않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가 아니라, "인간은 독서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가 문맥상 올바른 것 같은데요. 오기인걸까요?

로쟈 2009-07-11 09:02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오기 같아요...

목동 2009-07-14 23:28   좋아요 0 | URL
'문자화된 말이 사회에 심각한 위험을 제기한다', '구술언어와 문자언어의 융합', '지연 뉴런', '텍스트와 그림' 등이 인상적입니다. 그림(광경,아날로그,리얼,현장)의 축약이 텍스트로, 텍스트는 전송 속도가 빠르며 부피가 가볍고 표기가 간단하지만 매우 주관적인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습니다.

로쟈 2009-07-11 09:03   좋아요 0 | URL
네, 흥미를 끄는 책입니다. '뇌를 자극하는 책'이라고 해야 할는지도...

L.SHIN 2009-07-30 10:07   좋아요 0 | URL
"유전자에 독서를 담당하는 게 있을 리 없다"

이 표현이 마음에 드는군요.(웃음)
책을 먹으려고 태어나는 자는 뭘까요?
 

지난주에 출간된 책 가운데 아직 리뷰가 뜨지 않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프랑스의 중국학자 프랑수아 줄리앙의 <사물의 성향 - 중국인의 사유방식>(한울, 2009)이다('쥘리앵'이라고 표기돼야 할 듯싶지만, 현재는 '줄리앙'으로 통용되고 있다). 저자의 책은 국내에 몇 권 소개돼 있고, 앞으로도 두어 권이 더 나올 예정인 것으로 안다(그 중 하나는 나도 적극적으로 출간을 제안하기도 했다). 짐작에 줄리앙은 프랑스의 중국학자로서 앙리 마스페로와 마르셸 그라네의 계보를 잇는 듯싶다(그라네의 책도 더 나온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무소식이다). 국내에 소개된 학자들만 놓고 보자면 그러한데, 이들을 모아놓고 읽으면 '프랑스 중국학'의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겠다 싶다. 아마도 역자 후기 등을 참조하면 보다 자세한 동향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도 싶고. 휴가철 아이템의 하나로 고려해봄 직하다. 프랑스 중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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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성향- 중국인의 사유 방식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박희영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7월
23,000원 → 23,000원(0%할인) / 마일리지 230원(1%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9년 07월 10일에 저장

The Propensity of Things: Toward a History of Efficacy in China (Paperback, Revised)
Jullien, Francois / Zone Books / 1999년 8월
57,350원 → 47,020원(18%할인) / 마일리지 2,36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1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9년 07월 10일에 저장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 도덕의 기초를 세우다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허경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6월
17,000원 → 17,000원(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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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운행과 창조
프랑수아 쥴리앙 지음, 유병태 옮김 / 케이시 / 2003년 8월
9,800원 → 9,800원(0%할인) / 마일리지 0원(0%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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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7-10 11:30   좋아요 0 | URL
프랑스 중국학... 그라네의 책만 갖고 있군요. 도올 선생이 [여자란 무엇인가]에서 언급한 책이죠.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제가 마침 파리에 방문 중이라 느낌이 새롭네요. 파리에는 한식당이 많은 편인데도 여기저기 보이는 중식당과 일식당에 비하면 5%도 않되는 듯합니다. 프랑스식 중식도 상당히 입맛에는 맞는 편인데, 문득 북경오리를 토핑한 중국식 면을 먹고 싶어지네요...^^

로쟈 2009-07-10 18:34   좋아요 0 | URL
그라네는 러시아어로도 몇 권 번역돼 있습니다. 파리까지 가셨으면 현지식으로 즐기심이. 너무 비싼가요?^^

돈케빈 2009-07-10 15:42   좋아요 0 | URL
이런 짝사랑 같은 작업.
좋아 보여요. ^^

로쟈 2009-07-10 18:34   좋아요 0 | URL
누구의 짝사랑인가요? 프랑스의? 아니면 저의?..^^;

PhEAV 2009-07-11 01:05   좋아요 0 | URL
제게는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와 그 원서가 있네요. Dialogue sur la morale. 과제 때문에 급하게 읽느라 꼼꼼히 읽은 건 아닌데, 뭔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로쟈 2009-07-11 09:05   좋아요 0 | URL
아, 대학에서 많이 읽는 저자로군요...

2009-07-28 0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8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9 0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